최근에 다시 박정희에 대한 이야기가 많군요.. 아래이야기는 딴지일보에서 퍼온겁니다.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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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친일 문제와 근대화론에 접근하기
2004.7.23.금요일 딴지 논설우원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필자도 어렸을 적 오락실을 다녔다. 당시 오락실엔 <겔러그>나 <보글보글> 같은 후대에까지 회자되는 명게임들이 있었지만, 필자가 심취했던 것은 <서유기>라는 게임이었다. 손오공과 저팔계가 악당들을 물리치며 서천으로 가는 게임. 그 중 처음 만나는 보스는 무슨 해적 두목같이 생긴 놈들이었는데, 필자는 이들을 물리치는 게 상당히 힘들었다.
어느 날인가 필자의 플레이를 보며 뒤에 서있던 껄렁껄렁한 동네 엉아 한 명이 스르륵 필자를 밀쳐내더니, '내가 깨줄게' 하면서 플레이를 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보스를 깨긴 했지만 그 인간은 손오공이 죽어 넘어갈 때까지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필자는 오매불망 보고 싶어하던 뒷 스테이지를 볼 수 있었건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 시키가 내 돈 내고 내가 오락하는데, 왜 뺏는거야! 그러나 쌈을 못했던 필자는 그저 맘속으로만 억울하고 서러울 뿐이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게 있다. 역사 발전의 본질이 경제적 측면에 있다고 보았을 때 일제 강점기는 나름대로 '진보'적 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말은 바른 말이다.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 강점기 사람들의 삶의 질을 따져본다면 오히려 후자가 나았다고 할 수 있다. 근대적 교육을 위한 학교 세워줬지, 교통과 산업 발전을 위한 철도 만들어 줬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장 세워줬지, 건강 생각해서 근대식 병원 세워줬지...
아닌 말로 일제 강점기가 혼란으로 점철된 대한제국보다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미개한 중세 봉건적 상태에 놓여있던 '조센진'들은 선진국 일본의 지도에 의해 비로소 근대화되었다. 처음에는 일본의 선의를 곡해하고 독립 만세 운동이니 무장 투쟁이니 하며 반발을 하기도 했지만 종국에는 수그러들었다.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는 자들의 상당수도 구질구질한 3류 독립국보다는 세계에서도 인정해주는 대일본 제국 신민으로의 삶이 가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적극 협조해 주었다.
간간이 일본을 반대하는 반인륜적 테러 행위들이 있기는 했지만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다. 일제 시기 말기에 이르러서는 대다수 조선인들도 일본의 반도 지배를 인정하고 납득했다. 일본의 대한제국 접수과정이 폭력적이었다는 흠집 따위는 그런 것으로 무마되고 남음이 있다. 일본은 조선인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것은 '합의된' 식민지 지배였다.
만약 위와 같이 주장하는 인간이 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려는가?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은 일본에 의해 근대화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구구절절 맞는 주장에 대해서 우리는 어째서 짜증과 분노를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일본 정치인 입에서 나오는 위와 같은 류의 주장을 단호히 망언이라 규정하는 것일까?
아무리 때깔 좋은 근대화라고 해도 내 자유의지의 존엄함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확실히 대한제국은 무능한 정부였다.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해보고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길 정도니 이처럼 무능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무능한 정부라 해도 가능성은 가지고 있다. 그래, 이 모지리같던 애들이 어느 순간 정신 바짝 차리고 어느 순간 일본 뺨 칠 정도로 능력을 발휘해 효율적인 근대화의 길을 걸었을 수도 있다. 갑오농민 전쟁 때처럼 개화된 시민의식을 가진 민중들의 힘으로 정부를 개혁해 냈을 수도 있다. 임요환이가 누구나 졌다고 생각했던 도진광과의 경기에서 기적같은 역전을 했던 것처럼, 창의력 제로의 모지리라고 무시 받던 땡삼이가 깡통과 우유팩에 쉬야를 받아내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처럼! 그리고 필자가 아무리 게임에 재능이 없어도 <서유기>의 해적 두목 스테이지를 스스로의 힘으로 클리어 했을 수도 있는 것처럼! 이것이 바로 역사의 가능성이다.
그런데 일본은 '니들은 절대 못해. 니들끼리는 희망이 없어' 하면서 그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박탈해 버린 것이다. 우리가 열 받아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지들이 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지고지순한 가능성을 박탈해 놓고 자기 덕분에 잘 살게 되었느니 어떻느니 하면서 나불대냐 말이다.
같은 관점을 다른 경우에 대입해 보자. 박정희가 한 짓이 일본 애들이 한 짓이랑 쌍둥이처럼 똑같다. 누가 일본군 장교 출신 아니랄까봐 논리 구조가 딱 그 짝이다. '장면 정부는 무능해서 안 되. 내가 근대화 해주께' 그러더니 합법적인 정부를 총칼로 찍어누르고 지가 정부를 꾸린다.
박정희 시대, 확실히 성공적인 근대화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정희를 긍정하게 된다면 일제시기를 긍정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박정희가 한 일을 장면이 못할 이유가 있나? 대한제국이 성공적인 근대화에 성공했을지 여부를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장면 정부가 성공적인 산업 근대화에 성공했을지 여부 역시 아무도 모른다. 그 길을 걸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가능성을 원천 박탈한 건 바로 박정희다. 우리가 박정희에 분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하나의 가능성을 짓밟아 버렸다. 합법적인 정부 하에서의 민주적 절차에 따른 산업 근대화. 그 가능성을 우리는 영원히 상실해야만 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박정희가 근대화에 성공했으니까 긍정적으로 봐줘야 한다는 조갑제 식의 논리는 무책임하다. 모든 사안이 결과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면, 지금 당장 쿠데타가 일어난다고 해도 논리상 막을 수가 없다. 그 쿠데타가 경제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나쁜 결과를 가져올 지는 10년, 20년 후에야 판가름 날 테니까. 결과론에 입각해 판단을 내리자는 이야기는 지금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아무 것도 하지말고 가만히 있자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박정희가 근대화를 시켜줬기 때문에 훌륭한 인물이라고 하는 이들은 자신의 주장이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망언과 똑같은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정통성 있는 정부와 인간의 자유 의지보다 외형적 근대화와 먹고사는 문제를 우위에 놓는다는 점에서 박정희의 지배와 일제 식민지 지배는 정확히 일치하고 있으니까.
요즘 친일청산법 문제 때문에 국회가 시끌시끌한 모양이다. 박정희가 친일 부역자 조사 범주에 들어가는 바람에 그분 따님께서도 심기가 불편하신 모양이고. 돌아가는 모양새로 보건대 논리나 합리성과는 담을 쌓은 그들도 일제 강점기의 근대화론과 박정희 시대의 근대화론 사이의 끈끈한 유사성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고 보인다. 식민지 시대의 근대화 주체와 박정희 시대의 근대화 주체가 상당부분 겹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겠다. 문제는 일제시기 친일파에 대해서는 격렬한 증오감을 표출면서도 박정희에 대해서는 막연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당수의 국민이다.
오랜 기간 정책적으로 장려된 국가주도의 민족주의 교육으로 인해 마땅히 같은 선상에 놓여 비판받아야 할 소위 '근대화 주체 세력'은 각기 다른 평가를 받게 되었다. 한쪽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고 악당들에게 봉사한 후안무치한 인간 말종들로, 한쪽은 자기 무덤에 침이 뱉어질 것을 각오하고 다수를 위해 악역을 감수했던 의지의 인물들로.
그러나 두 집단이 본질적으로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상 평가에 있어서도 일관성이 적용될 필요가 있다. 역사를 반성의 도구로 삼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마음 내키는 시점에 멋대로 선을 긋고 그 이전과 이후의 사안에 대해 각기 다른 기준으로 평가를 하려 든다면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를 향한 방향타로서의 역사 활용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우리의 지난 흔적을 합리적이고도 일관적인 기준을 통해 냉엄하게 직시하고 평가하자. 그리한다면 친일 부역자 재조사 문제는 단순한 한풀이나 마녀 사냥, 정치적 공세 수단으로의 활용을 넘어서 내면화된 진정한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디딤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초딩 때의 오락실 사건이 못내 억울한
칸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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