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제 겪은 일입니다.
어제 저는 주말을 이용해 대구에 있는 본가에 내려갔다가 밤늦게 서울로 돌아와, 터미널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던 중이었습니다. 저희 집까지 가려면 환승을 한 번 해야 해서 환승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제는 유독 같이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왠지 기분이 묘했습니다. 제가 원체 무서움도 잘 타고 하는 성격이라 지하철 안엔 사람 있으면 좋겠다 하고 딱 탔는데, 그 칸엔 남자 승객이 딱 한 명,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상하다, 오늘은 정말 사람이 없네.' 라고 생각하며 혼자 멀찍이 앉기는 괜히 무섭고 해서 그 남자 맞은편 자리에 앉아 저도 폰을 꺼냈습니다. 어느새 무서움도 잊고 인스타그램을 쭉쭉 훑어보던 게 한 5분쯤 됐을까요, 갑자기 묘한 시선을 느껴 문득 고개를 들어보자 맞은편 자리 남자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눈이 마주치자 금세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하기는 했지만 분명히 남자는 저를 보고 있었고, 뭐랄까 좀 헤벌레 하고 눈에 초점이 없는 기묘한 표정이었습니다.
남자가 급히 눈을 돌리는 통에 저도 얼결에 눈을 돌려버리고는, 지하철에 이상한 변태들이 많다던데 이거 도촬범 아냐? 하는 생각에 다시 흘깃흘깃 눈만 돌려 남자를 살펴보았지만 손에 들고 있던 폰도 주머니에 넣었는지 보이지 않고, 뭔가 사진을 찍거나 한 거 같지는 않았습니다. 하긴 애초에 뭔가의 장비로 저를 촬영하려 했다면 그 화면을 보지 제 얼굴을 뚫어져라 보진 않았을 테니까요. 그럼 그 표정은 뭐야, 왜 날 쳐다봐? 하며 제가 계속 그 남자의 동태를 살피던 때, 갑자기 또 그 남자가 슬금슬금 고개를 드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도 그 남자를 몰래 쳐다보고 있던 터라 그대로 고개를 들면 눈이 마주칠 테고, 그래도 일단 남자가 뭘 하는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저는 폰으로 눈을 떨구고 카메라 앱을 켰습니다. 시선을 보내지 않는 척 하면서 폰 카메라로 그 남자가 뭘 하는지 살피려는 생각에서요.
카메라가 켜지고, 남자 쪽으로 핀트를 맞추자 다시 저를 쳐다보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아까 봤던 대로 남자는 눈이 풀린 것 같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어깨나 허리 같은 목 아래쪽은 또 힘이 꽉 들어가 있는 게 진짜 이거 정상인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괜히 또 얼굴 돌려서 눈 마주치면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지금 누군가한테 도움을 요청하기도 애매한 상황. 제가 다음 역에서 내려야겠다, 그리고 우선 어떻게 될 지 모르니 근처 사는 친구에게 미리 연락을 해 두자,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습니다.
"저기..."
"콜록콜록콜록콜록!!!"
지하철에서 내릴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갑자기 남자가 말을 걸자 폰을 거의 떨어뜨릴 뻔 할 정도로 놀라서, 대답은커녕 갑자기 기침이 나왔습니다. 겨우겨우 심호흡을 해 진정시키고 고개를 들자 남자가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아까 그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진짜로 걱정하는 것 같아 보여서 머릿속은 또 뒤죽박죽, 그래 일단 대답을 하자, 하는 마음에 괜찮아요, 하고는 우선 폰 카메라부터 잽싸게 껐습니다.
"저기... 제가요..."
"...네"
제가 좀 안정된 것처럼 보였는지 다시 말을 잇는 남자. 무섭던 감정이 당황, 놀람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안정을 되찾고 나니 방금까지 남자가 미친놈이 아닌가 의심했던 건 잠시 제쳐두고 일단 조신하게 대답했습니다.
"저... 제가 뭘 좀 보거든요."
"네???"
여기서 다시 당황. 남자는 일단 들어보라는 듯 계속해서 말을 잇습니다.
"아니 그, 저, 이상하게 생각 마시고... 제가 귀신이나 영 같은 게 잘 보이는 체질이라서요."
솔직히 말해서, 변태인가 의심했을 때보다 이 때가 더 그 남자가 무서워 보였습니다. 그럼 아까 쳐다보던 게...
"그럼.. 저한테 뭐 붙어 있는 거에요?"
하고 물어보자 남자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뇨. 그게... 똑바로 초점을 맞춰서 보면 잘 안 보이는데, 이렇게... 초점을 흐리면 시야 끝부분에 뭔가 있는 게 보여요. 그 왜, 뭔가 있는 것 같아서 고개 돌려보면 없고 그런 거 있잖아요."
아, 그래서 방금 그런 표정을... 그제야 납득이 가더군요.
"네.. 그런데요?"
"그쪽이 지하철 타기 전부터, 세 칸 정도 옆자리에 흰 옷 입은 여자 같은 형상이..."
그 남자 이 말은 끝까지 못 했습니다. 제가 '흰 옷' 부분부터 너무 무서워서 귀를 막았거든요. 그 와중에 그 여자가 해코지 할까봐 비명은 필사적으로 참았는데, 목 뒤까지 소름이 쫙 올라오는 게 진짜 온 몸이 떨리더군요.
당장 일어나서 뛰쳐나가고 싶은데, 지하철이 멈춰야 뛰쳐나가죠. 그래도 다행인 건 곧 다음 역에 도착한다는 알림이 들려오고 있었다는 거였습니다. 일단 문이 열리자마자 도망가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문득 저 남자는 괜찮은 건가? 싶더라구요. 귀에서 손을 떼고 같이 내리자고 말할 요량으로 운을 뗐습니다.
"저... 그쪽은 안 무서우세요? 저 타기 전부터 있었다면서..."
"아뇨, 괜찮아요. 워낙 자주 보이니까... 뭔가 해를 끼치는 것도 본 적 없구요."
아... 평소부터 보이는 사람은 저 정도로 심장이 강한 거구나, 싶더라구요. 난 무서워 죽겠는데 표정에 흔들림 하나 없네, 대단하다, 하는 생각이 막 입 밖으로 나오려던 찰나, 갑자기 남자의 표정이 변해서 또 흠칫했습니다. 또 아까 그 초점없는 표정, 아마 그 형상을 다시 찾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유롭던 표정이 싹 사라지고, 긴장감 어린 목소리로,
"빨개졌네요. 저런 건 처음 보는데."
그 순간 벌떡 일어나서 옆 칸으로 전력질주했습니다. 마침 지하철 문도 열려서 바로 뛰쳐나와서, 집에 걸어가는 것도 무서워서 근처 사는 친구에게 바래다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겨우 집까지 들어와서, 밤새 방에 불도 못 끄고 잠도 못 자다가 해 뜨고 나서야 좀 자고 이제야 일어났습니다.
귀신이고 뭐고 이야기로, 영상으로만 접한 게 전부였던 저에게, 너무 섬뜩하고 무서운 경험이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그 남자는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