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의 대선후보 지지율이 치솟았습니다. 3%대가 엊그제 같은데, 지난 12월 6~8일의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급기야 18%를 기록했습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이 조사에서 20%를 기록하여 3인 모두 오차 범위 내의 접전입니다.
그러나 지난 12월 12일, 이 시장이 CBS 인터뷰에서 행한 반문연대 발언이 문 전 대표 지지층을 자극하며 난기류를 만났습니다. 이 발언이 친노 진영에 ‘이 시장이 문 전 대표와 함께 정권 교체의 일익을 담당할 우리 편’이라는 그간의 인식 대신에 ‘문 전 대표를 통한 정권 교체를 위협할 수 있는 비노 정치인’으로 각인되면서 친노 성향의 네티즌으로부터 집중 견제를 받아 지지율이 내리막길로 돌아섰습니다.
데일리안이 알앤써치에 의뢰하여 조사한 정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흐름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이 시장은 12월 7일자 조사 발표에서 18.1%로 정점을 찍은 후, 12월 14일자 발표에서 15.5%로 하향 반전하고, 오늘자 발표에서는 10.9%로 폭락하였습니다. 이는 최고점에서 7.2% 빠진 수치로서 고점대비 40%나 하락한 것입니다. 반면, 문 전 대표는 오늘자 발표에서 29.2%로 최고치를 경신하는 급등세를 보였고, 반 총장도 23.4%로 상승세를 탔습니다.
이 시장은 이런 흐름을 감지한 듯, 지난 12월 17일 새벽, 페이스북에 문 전 대표 지지자들의 인터넷상의 견제 활동을 두고 “등 뒤 꽂히는 비수, 정말 아프다.”고 토로하는 글을 올려서 동정 여론을 통한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본적으로 이 시장의 지지율 폭락 이유가 문재인 지지층의 비수꽂기나 '반문연대' 발언의 역풍으로 보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들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이는 드러난 겉모습만 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장의 지지율이 꼭지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경향신문에서 우리나라 야권의 여론 지형에 대해 여론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2015년 12월 28~29일 양일간 조사한 ‘2016년 신년 정치세력 여론조사’가 그것입니다. 이 여론조사는 정치 지도자나 정당 이름을 거명하는 통상의 조사 방식에서 벗어나 선생님은 친박입니까, 비박입니까? 또는 친노입니까, 비노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결과, 친박 18.5%, 비박 7.7%, 친노 14.1%, 비노 15.7, 진보 4.4%로 나타났습니다. 이 조사에서 야권의 여론 지형이 친노와 비노가 41:45로 비슷하게 나온 점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친노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높이 평가하고 그를 따르는 특정의 정치 정서인데 반해, 비노는 중도 성향, 호남지역주의자, DJ주의자 등 다양한 부류가 섞여 있어서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친노의 상징성을 띤 대선주자는 단일의 정치적 정서를 지닌 50%에 근접한 야권의 국민들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기 때문에 항상 20% 내외의 지지율을 유지합니다. 반면, 이와 대립하는 비노 대선주자는 그 지지층이 다양한 정치 정서를 가진 여러 집단이라는 특성 때문에 지지율이 결집되지 못하여 10% 내외에 머물기가 일쑤입니다.
우리나라 보수 집권 세력은 단일 정치 세력으로 가장 막강한 친노 계층의 지지를 받는 정치 세력이 다시 집권하는 것이 두려워 친노와 비노를 분리시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왔습니다. 정치적으로 중대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보수 언론은 이를 계기로 떠오르는 비노 정치인을 집중 부각시켜 친노 유력 정치인과 대립하도록 함으로써 야권 분열을 꾀했습니다. 이런 공작이 절정에 이르면, 비노 성향 국민의 지지가 결집되면서 비노 정치인은 잠깐이나마 20%에 가까운 지지를 받고, 친노 유력 정치인과 맞설 정도가 됩니다. 이는 야권 비노 성향의 국민이 최대한 결집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보수 세력의 공작 효과가 최대로 발휘하여 친노와 비노의 세력이 팽팽히 맞설 만큼 분열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작년 이맘때, 안철수 의원은 새정련 내에서 문 전 대표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탈당하여 국민의당 창당 작업에 나섰습니다. 이때 보수 언론들은 한껏 안 의원을 옹호하고, 문 전 대표를 패권주의자로 깎아내렸습니다. 그 덕분에 2015년 12월 14~1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안 의원은 16.3%를 기록하여 문 전 대표의 지지율 16.6%에 맞설 만큼 추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안 의원은 이때가 꼭지였습니다. 비노 성향의 국민들이 안 의원에게 맥시멈으로 결집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해가 바뀌고 4.13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민주당이 123석을 얻고 국민의당이 38석을 얻었습니다. 호남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민주당이 123석을 얻은 성과는 경이적인 것이었지만, 보수 언론은 더민주당의 이룬 성과는 애써 무시한 반면, 국민의당 38석 획득에 대해서는 안 의원의 '정치적 대성공'으로 보도하여 안 의원을 한껏 띄웠습니다. 그 결과, 2016년 4월 26~28일 양일간 실시한 갤럽 여론조사에서 비노 계층이 또다시 안 의원에게 결집하여 안 의원의 지지율이 21%로 1위에 올라섰고, 문 전 대표는 17%로 2위로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이때가 안 의원에게 또 한 번의 지지율 꼭지였습니다.
2016년 10월, 조선일보와 박근혜 정권의 불화, JTBC의 태블릿PC 보도로 탄핵 정국이 도래했습니다. 이 시장이 샌더스, 트럼프, 두테르테를 밴치마킹한 듯한 사이다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재벌을 해체하라! 사이비 보수 무리를 작살내겠다!” 보수 언론들이 연일 호의적 보도를 하고 대중들이 열광합니다. 문 전 대표의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밖에 없죠.” 하는 한 마디 말에 대해서는 신문 지면 1면을 할애하여 ‘사상이 불순한 위험 정치인’으로 낙인찍지만, 이 시장의 ‘재벌 해체하라’는 식의 발언에는 시원시원하고 일관성 있고, 논리가 뒷받침되는 정견으로 칭찬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런 공작 덕분에 비노의 다양한 국민들이 그에게 희망을 걸고 결집합니다. 그런 흐름이 최고조로 달할 때가 앞서 언급한 지난 12월 6~8일 3일간의 갤럽 여론조사입니다. 이 시장의 지지율이 문 전 대표의 20% 지지율에 오차 범위 내로 근접한 18%를 기록한 것은 야권의 비노 성향 국민들이 최고조로 결집했음을 의미하고, 또 정점을 찍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비노 정치인의 지지율이 친노 대선주자의 지지율에 근접하고 나서 하향 곡선을 그리는 데에는 친노 성향 국민들 특유의 결집력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안 의원이 새정련을 탈당하며 문 전 후보를 위협하는 지지율이 보이자 친노 성향의 국민들이 권리당원 가입 열풍, 표창원 등 신진 인사들의 주축이 된 정치 콘서트 참여 열기 등을 통해 친노 성향의 국민을 결집시켜 문 전 대표와 민주당 지지율을 끌어올렸고, 그 결과 비노 정치 지도자인 안 의원의 지지율은 내리막을 걷습니다.
이번 이 시장의 지지율 급등락 패턴도 유사합니다. 이 시장이 친노는 아니지만 친노와 같은 처신으로 문 전 대표와 공존하는 포지션을 취하는 동안에는 지지율이 꾸역꾸역 올랐습니다. 그러나 보수 언론이 노골적으로 그를 띄우고, 비주류 김종인 의원이 호평하고, 지지율이 문 전 대표를 위협할 만큼 오르자, 친노 성향의 국민들이 무서우리만치 결집하였습니다. 인터넷상에서 이 시장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글, 언행을 비판하는 글이 쏟아졌고, 급기야 이 시장을 부각시켜온 유명 팟캐스터가 방송 중단 선언을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런 데에는 비록 이 시장이 부인을 하지만, 반문 연대 발언으로 반 문재인 성향을 드러낸 것이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 알앤서치 여론조사에서 문 전 대표가 29.2%로 급등한 반면, 이 시장이 10.9%로 폭락하였습니다. 이런 이 시장의 지지율은 문 전 대표 지지율의 거의 1/3 토막 수준입니다.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제 나름의 지지율 분석입니다. 현 시점에서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만, 앞으로 이 시장의 지지율이 계속 문 전 대표의 1/3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친노 성향의 국민들이 가지는 정치 정서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발전하여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에 버금가는 정치 이념으로 승화하고, 문 전 대표 또한 국민들의 정권 교체 열망을 잘 담아낸다면, 제 전망이 적확할 것입니다. 그러나 친노라는 정치 정서가 퇴행적으로 흐른다든지, 문 전 대표가 국민들의 바람을 잘 담아내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이 시장이 다시 추격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