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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일(무기징역)씨의 아내인 임인영 씨가 작성한 호소문
옆방에서 취조당하는 이수병씨(사형) 부인은 젖먹이 어린애까지 데리고 왔는데
차마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소리지르고 윽박지르고 욕을 하면서 취조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틀을 한잠도 자지 못하고 꼬박 의자에 앉아서 취조를 받았습니다.
진술서가 끝나니까
남편이 인혁당원이라는 각서를 쓰라는 것입니다.
저는 죽어도 못쓰겠다고 항의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인혁당원이고 공산주의자라는 납득이 가는 증거를 대주면 하라는 대로
협조하겠다고 애원했습니다.
그런 아무 증거도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증거가 없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남편이 무죄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곤란한 정보부원은 인혁당 사건 공판기록을 갖다 내 앞에 펼쳐놓더니
당신 남편이 재판정에서 이렇게 모든 것을 시인을 했는데
왜 죄가 없다고 하느냐 하면서 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남편이 재판정에서 전부 부인한 것을 시인한 것으로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소리질렀습니다.
왜 전부 부인한 것을 시인한 것으로 바꾸어 놓았느냐고.
정보부원은 놀라는 기색이었습니다.
얼른 공판기록을 덮어서 치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정보원도 공판기록까지 조작한 것을 모르고 있는듯 하였습니다.
참 답답하고 질식할 것 같은 세상입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서도 가만히 참고만 있어야 할까요?"
말이 막힌 정보부 한 계장이
"글쎄. 전창일은 공산주의자로 보이지는 않는데 왜 그 나쁜 사람들과 자주 만났는지
그것이 한가지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친구끼리 알게 되어 다방이나 술집으로 다닌 것이 인혁당을 조직하여 정부전복 모의하러
다방에서 만났다는 것입니다.
공소사실에 나오는 그 다방을 저는 일부러 찾아가보았습니다.
충무로에 있는 지하다방이었습니다.
의자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고 다방은 굉장히 많은 사람으로 붐볐습니다.
조작을 하려면 그럴듯이 할 것이지,
이 다방에서 어떻게 지하당 정부전복 모의를 할 수 있다고 공소 사실에 기재하여 놓았는지,
세살먹은 어린아이라도 웃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다방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각서를 쓰지 않고 4일간을 버티다가
집에 아이들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중앙정보부 모 계장이 말을 뱅뱅 돌려서 적당히 부드럽게 쓴 각서를 그대로 옮겨쓰고 지장을 찍었습니다.
이튿날 목요기도회에서 한 부인이
남편 앨범을 전부 불에 태우고 자살을 기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놀라서 기도회가 끝나자마자 그 부인이 사는 김포로 달려갔습니다.
가서 집을 찾을 수가 없어 근방에 있는 다방에 가서 전화를 하였더니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집앞에 형사가 있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다방으로 빨리 좀 나오라고 재촉하였습니다.
왠일이냐고 묻는 저에게 그 부인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중앙정보부에 끌려들어가자마자 정보원 한사람이 다짜고짜로 멱살을 움켜쥐더니
"이 간첩의 여편네, 왜 까불고 다녀"
하면서 목에 상처가 날 정도로 목을 조이면서 막 욕설을 퍼부면서 호통을 치더랍니다.
이 부인은 너무나 놀라서 얼이 빠졌으며 취조를 받다가 목이 마르다고
물을 좀 달라고 하였더니 물 한컵을 주더랍니다.
그래서 반컵쯤 마셨더니 조금 있다가 몸이 비비꼬이면서 성적 흥분이 일어나더랍니다
너무나 괴로워 어떻게 할줄을 몰라 의자밑으로 떨어지면서까지
고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부인은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정보부에서 각서쓰라는대로 내 남편은 간첩이라고 쓰고
지장을 찍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집에 와서도 귀에서는 윙윙 소리가 나며 삼일이 지났는데도 한잠도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부인은 남편과 자기와 같이 찍은 사진과 자기 사진들을
전부 불에 태우고 쥐약을 사다놓고 아이들 셋에게 먼저 먹이고
자기도 먹으려고 하니
큰딸아이가 눈치를 채고 안죽겠다고 막 울더랍니다.
한참 실갱이를 하는데 친정어머니가 마침 오셔서 이 광경을 보고 쥐약을 전부 버리고
한식구가 모두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부인은 얘기를 끝마치면서 "나는 죽어야 해. 이제는 굶어죽을 거에요"하면서
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분하고 원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호소문 한번을 낭독하여 보지 못한 착하디 착한 선량한 아내를 왜 흥분제를 먹이면서
희롱을 안단 말입니까.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정보원들의 그 악랄함을.
그후 그이의 친정어머니는 놀란 가슴을 진정할 길이 없어 한달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희들은 이런 아픔과 수난을 딛고 헤쳐나가면서 드디어
1975년 4월 8일 .
생각만 하여도 몸서리쳐지는 대법원 마지막 판결의 날을 맞이하였습니다.
미리 죽이려고 공판기록까지 변조시킨 이 사건에서 어리석은 아내들은 그래도
행여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재판정에 갔습니다.
마지막 심판을 내리는 그 존엄하신 법관들,
그들은 아무 양심에 가책도 없이 8사람의 목숨을 사형장의 이슬로 보냈을까요!
그 이튿날 1975년 4월 9일, 잊혀질 수 없는 그날!
경악과 그 아픔,
죽고 싶었던 그날,
무슨 언어가 있어 그날의 아픔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수병씨는 사형장으로 끌려들어가면서도
"나는 인혁당을 알지도 못한다. 가족이 보고싶다"
하면서 죽임을 당하였고,
우홍선씨는 "너무도 억울하여 말을 못하겠구나. 구야, 나는 죄가 없다. 가족이 보고싶다"
하면서 사형장의 이슬이 되었습니다.
문세광도 가족면회 시키고 죽였다는데
이사람들에게는 대법원 판결이 있은지 24시간의 여유도 주지 않고
가족의 단한번의 면회도 허락치 않은채
사형장의 이슬을 만들도록
그 무엇이 그리도 미웠단 말입니까.
그 가족들이 너무도 불쌍했습니다
울부짖고, 아우성치고, 차길로 죽는다고 뛰어들고, 기절하고
그 여덟사람의 가족들 모습은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가족들이 마지막 소원이 성당에서 남편들의 시체를 놓고 합동장례식을 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어떻게 시체를 안고 고향으로 갈 수가 있겠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소원도 들어주지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흡혈귀같은 악마들이었습니다.
응암동 성당으로 들어가서 장례식을 하려는 송상진씨 시체 담긴 차를 기동경찰은
애원하며 울고 매달리는 가족들을 짓밟으면서,
신부님과 목사님들이 결사적으로 시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항의하는데도
문신부님의 다리를 평생을 쓰지 못하게 골절상을 입히면서까지
시체차를 하늘 공증으로 들어가지고 화장터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더이상 심장의 고동이 멎는듯 하여 이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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