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할 때 일이었어. 화장실에서 자꾸 파리가 보이는 거야. 푸세식이라니 뭔소리야. 내가 살던 곳은 빌라였거든? 뭐? 유머? 지랄하네. 너 지금 그걸 농담이라고 친 거였냐? 그 무표정으로? ...관두자. 이야기가 딴 데로 새버리니까. 어쨌든, 화장실에 자꾸 파리가 날아다니니까 에프킬라도 쓰고 모기향도 쓰고 아무튼 별 수를 다 썼는데도 이 자식들이 안 죽는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귀찮다고 생각하고만 있었지. 생각해보면 그 때부터 이상했었는데. 뭐, 그것도 얼마 안 갔어. 며칠 후에 뭔가가 썩는 냄새가 환풍구로부터 나기 시작했거든. 말이 좋아 썩는 냄새지. 으. 너, 곯은 계란 냄새 맡아본 적 있냐? 그 냄새에 암모니아 냄새랑 생선 비린내가 섞인 것 같은 그런 냄새였어. 내가 그 냄새 딱 한번만 맡고서는 바로 뛰쳐나가서 화장실 문을 봉쇄하고 아랫집으로 뛰어갔다니까. 아랫집 주인을 만나서 멱살을 붙잡고 도대체 왜 화장실에 음식물 쓰레기를 두는 건지, 둔다면 왜 저런 냄새가 날 때까지 방치해두는지 따지려고. 근데 말이야, 웃기게도 계단 중간에서 아랫집 주인이랑 딱 마주친 거야. 그 사람도 잔뜩 화가 나서 계단을 뛰어올라오고 있었던 거지. 파리. 썩는 냄새. 똑같은 일이 아랫집 화장실에서도 벌어지고 있었고. 똑같이 화가 나서 따지려고 올라오다가 나를 만났고. 결국 둘이 의기투합해서 3층으로 갔지 뭐. 문 두드리고, 소리지르고. 몇 번 그러니까 문이 열리대? 근데 연 사람은 안 보이는 거야. 집 안도 뭔가 낡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은 분위기였고. 갑자기 등골에 소름이 쫙 끼치더라. 그래도 거기서 도망치는 것도 좀 뭐해서 화장실로 가서 문을 열어보니까... 고독사? 아니 이 경우에는 사고사라고 해야 하나? 화장실은 의외로 위험한 곳이더라고. 관절염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는 더더욱. 나중에 알고보니 딸은 대학생 때 사고로 죽었고 아내는 몇 년 전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다더라. 남은 가족이 아무도 없었던 거지. 그래서야 발견이 늦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사건 자체는 그걸로 끝이야.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긴 하지만. 아까 얘기해줬었지? 아랫집 주인이랑 나랑 계단에서 마주쳤다고. 그 사람이랑 얘기해 보다가 알게 된 건데 아랫집과 우리집에서 그 썩는 냄새를 맡은 시간이 똑같았던 거야. 그게 왜 이상하냐고? 바보냐 , 넌. 냄새가 환풍구를 통해 이동했다면 우리 집과 아랫집에서 냄새가 난 시간은 조금이라도 차이가 났어야 된다고. 거기다가 그 냄새, 갑자기 확 하고 풍겨왔단 말이야. 마치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는 걸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쩌면 그건... 에이, 관두자. 어차피 다 끝난 일이고, 그 영감님도 지금쯤이면 좋은 데 가셨겠지. 아무튼 너도 이상한 냄새가 나면 조심해라. 요즘 세상은 참 냉정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