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지금으로선 확신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좋지 못한 소식을 알려야 할 것 같아요.”
폐교 안에서 요원들의 건강과 치료를 담당하는 간호 요원이 데일리에게 말했다. 데일리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렸다.
“상태는 어때?”
데일리를 만나고 나온 간호 요원에게 로라가 물었다. 로라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문 너머 조용히 앉아 있는 데일리를 바라 보았다.
데이비슨은 요원들, 그리고 뜻을 함께 하는 바크셔 젊은이들과 함께 호수로 달려갔다. 괴물이 호수 속에서 집채만한 몸집을 드러냈다. 그 기괴한 모습에 처음엔 다들 겁을 먹었지만 통제자를 잃은 괴물은 어딘가 나사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괴물의 등이 약점임을 잘 알고 있었다.
“셋, 둘, 하나! 던져!”
데이비슨과 사람들은 괴물의 등 위로 수류탄과 폭탄을 던져댔다. 괴물이 기괴한 비명 소리를 뽑아 냈다. 그들은 괴물이 다시 호수로 다가가지 못 하도록 괴물을 숲 속 방향으로 몰아냈다. 괴물은 그들을 공격하는 대신 숲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위다! 위를 봐!”
한 사람이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뒤 늦게 로라의 연락을 받고 급파된 헬기가 공중에서 괴물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둔탁한 소리가 대기를 가르며 괴물의 등 위로 떨어져 내렸고 괴물은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바닥에 쓰러졌다.
“해치웠다! 괴물 하나를 해치웠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나를 메릴랜드의 오두막으로 태워다 주세요.”
정신을 차린 데일리가 주변에 있는 요원들에게 요구했다.
“무슨 일이야?”
연락을 받고 온 로라가 물었다. 요원들이 말 없이 손짓으로 데일리를 가리켰다. 로라를 발견한 데일리는 뛰어와 그녀의 바지를 잡고 매달렸다.
“데일리 씨, 이게 무슨 일이에요?”
“메릴랜드의 오두막으로 태워다 주세요.”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로라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초점은 없었다. 잇따른 상실이 그녀에게서 영혼을 가져갔음에 틀림 없었다. 로라는 계속 헛소리를 해대는 그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에 시동 걸어놔. 내가 데일리 씨를 오두막에 데려가 지켜줘야 겠어.”
“위험해요. 그 곳은 아직 교전 중이에요.”
“닥쳐! 네가 뭘 알아?”
로라가 일어나 윽박질렀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지금 이 사람의 슬픔을 네가 알기나 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후의 삶은 결코 삶이라 부를 수조차 없다는 것을.”
로라는 데일리를 부축해 내려갔다. 요원 모두는 자살 행위에 가까운 이 두 여자의 행동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 봤다.
“데이비슨!”
무전기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데이비슨은 응답했다.
“무슨 일이야?”
“두 마리라고 했는데 왜 나머지 한 마리는 나타나지 않는거죠?”
“아직 호수 안에 있을거야. 나오면 그 때 공격하자고.”
무전기에서 다급함이 묻어 나왔다.
“그런데 저 쪽 좀 이상하게 생긴 물결이 마을에 가까운 호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하는데요. 혹시 그 괴물 녀석일까요?”
데이비슨은 말에 응답하지도 못 한 채 헐레벌떡 호숫가로 뛰어갔다. 무전기가 한 말이 사실이었다. 물결이 점점 거대해지는 모양새로 마을을 향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호수와 마을에 가장 인접한 곳에 메릴랜드의 오두막이 있었다.
“처음과 같은 끝.”
“뭐라고요?”
메릴랜드 오두막 안에 데일리를 눕힌 뒤 로라는 물었다.
“처음과 같은 끝이요. 제임스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어요. 처음은 언제나 끝과 같지. 아름다워도 아름답지 않더라도 우린 받아 들여야만 해.”
로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데일리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 봤다. 구슬픈 목소리에 로라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이 때 로라의 무전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팀장님 거기서 어서 나오세요!” “무슨 일이야?”
“괴물이 그 쪽으로 가고 있답니다. 몇 분 내로 그 오두막 앞에 도달할 거라네요!”
로라는 깜짝 놀라 데일리를 일으켰다. 데일리가 힘 없이 그 손에 이끌려 일어났다.
“정신 차려요, 우리 지금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해요!”
자물쇠를 열고 밖에 나선 로라는 깜짝 놀랐다. 호수가 마치 노한 것처럼 물결치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로라는 입을 벌리고 바라봤다.
“릴리야. 언니가 왔어. 무슨 일인지 말해 보렴.”
로라의 등 뒤에 업힌 데일리가 중얼거렸다.
“릴리야. 언니랑 오빠랑 엄마가 왔어. 화를 풀고 무슨 일인지 말해줘.”
“정신 차려요 데일리! 어서 빠져 나갑시다.”
순간 다른 요원들이 수류탄과 각종 폭탄을 들고 나타났다.
“괴물이 나타나면 바로 등에 공격을 퍼부을 겁니다! 팀장님, 준비하시죠!”
곧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괴물이 호수에서 솟구쳐 올랐다. 오두막과 오두막 앞에 대기하고 있던 그들 모두 폭포를 맞은 것처럼 몸이 흠뻑 젖었다. 로라가 눈을 치켜뜨기 위해 노력하면서 소리 쳤다.
“던져!”
그들은 핀을 뽑고 괴물의 등 위로 폭탄을 던져댔다. 폭탄의 대부분은 괴물의 다른 부위에 던져졌지만 몇 개는 정확히 괴물의 등 위에서 터졌다.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괴물이 몸을 흔들어댔다. 멀리서 헬기가 오고 있었다.
“이겼다, 이건 이긴 게임이야.”
로라가 벅찬 승리감에 중얼거렸다. 그 때 괴물이 입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놀란 그들이 외쳐댔다.
“조심해! 이번 놈은 공격해온다!”
“데일리씨, 이리로 와요!”
한 요원이 데일리를 향해 소리쳤다. 로라가 정신차리고 보니 데일 리가 폭탄을 품에 안고 괴물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안 돼요! 데일리씨, 당신은 사셔야 해요!”
로라가 달려가려 하자 다른 요원들이 그녀의 옷깃을 붙잡아 막아 세웠다.
데일리는 조용히 괴물을 바라 보았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오두막에 처음 들어섰던 날의 흥분과 처음으로 엄마라 부를 만한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쁨을 떠올렸다. 그리고 순전히 그녀를 기쁘게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밤 새 읽어댔던 법학 책들과 다시 만난 제임스의 늠름한 모습을 떠올렸따. 마치 그녀를 닮은 제임스의 어두운 면에 그녀는 빠져들었다. 그녀는 전생에 제임스와 남매는 아니었을까 생각됐다. 늘 말 수 적고 속을 알 수 없었지만 언제나 그는 정직했고 믿음직스러웠다. 분명 그는 좋은 남편이었고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바크셔 사람들과 화해해 어머니의 유지를 받아 메릴랜드 가문으로서 릴리를 책임지고 지켜 나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늘 머릿속으로 그렸다. 제임스의 냄새를 맡으며 부스스 일어나 작은 딸 아이를 데리고 호수로 나오는 장면을. 딸 아이가 엄마 이것 보라며 꽃을 꺾어와 자신의 눈 앞에 내미는 장면을. 그녀는 아이를 안고 손을 잡고 걸어가 호수 위로 노니는 새들과 영원처럼 그들을 비추는 태양을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괴물이 입을 부풀렸다. 데일리는 눈을 감지도 않은 채 자신을 삼키는 괴물의 모습을 바라 보았다. 그녀의 주변이 칠흑같은 어둠으로 둘러싸인다. 신체의 일부가 잘려 나갔는지 일말의 고통도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임스를 잃고, 어머니를 잃고, 릴리를 잃고, 자신의 미래를 잃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녀는 폭탄을 더욱 세게 껴안았다. 괴물의 목 안에서 굉음을 내며 터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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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손 가는 대로 썼던 글이 50페이지까지 이어졌네요. 제가 썼던 글 중에서 가장 긴 분량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이미 눈치 챈 분들도 계시겠지만 바크셔의 괴물은 괴물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입니다. 이런 생각을 토대로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이 이면에는 제가 시골로 내려가 겪었던 사람들의 군상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외 제가 생각하는 여러 비판적인 요소들도 집어 넣기 위해 노력했어요.
정치를 한다는 이들의 타락과 거짓,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의 희생..
제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린 아이들의 죽음>인데 사실 이 부분은 세월호 사건을 의미한 거에요.
물론 비행 청소년들로 그려지고 있지만, 아직 꽃 피우지도 못한 이들의 죽음이야말로 가장 비극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보이도록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비행 청소년이라도 나중에 성장해 제임스나 데일리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 것이 우리 소년 소녀들의 가장 빛나는 잠재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각하고 염두에 두었던 모든 면모들을 부족한 역량 탓에 모두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끝까지 마쳤다는 점에 저는 의의를 두고 싶어요!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A4 50장짜리 소설 읽어주시느라 다들 고생하셨어요 ㅠㅠ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