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줄거리 : 아일랜드에 위치한 바크셔라는 평화로운 동네에서 사람들이 잇따라 실종되거나 의문사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여기에는 바크셔를 상징하는 가문인 메릴랜드도 얽혀 있었다. 쇠락한 명문가인 메릴랜드의 마지막 후손인 메릴랜드 부인이 사망한 것이다. 이후 부인이 아껴온 그의 아들(제임스)과 딸(데일리)은 이 사건을 파헤치고 그녀의 원수를 갚을 것을 천명한다.
촌장인 로럼스는 괴물의 정체와 그 발표를 두고 장로단과 심각한 갈등을 빚는다. 장로단을 교묘히 거스르고 마을 사람들을 도우려는 로럼스에게 그의 동생인 데이비슨이 접근한다. 데이비슨은 자신이 부리는 폭력 단체인 '와일드' 단원들을 데리고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거대한 연극을 도모하는데, 그 와중에 진짜 괴물이 나타나 데이비슨의 연극에 동원된 소년들이 모두 사망한다. 분노한 데이비슨은 괴물의 자취를 쫓아 숲으로 사라져 그대로 실종된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로럼스와 그의 아내는 숲을 찾아온다. 이후 괴물의 습격을 받아 로럼스의 아내는 죽고 만다. 로럼스도 위기에 빠진 그 순간, 빈스를 포함한 와일드 단원들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이렇게 도망치던 중 이들은 괴물 새끼들을 맞닥뜨리고 결국 많은 동료들이 희생된 끝에 빈스와 로럼스만 가까스로 숲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그리고 빈스는 제임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연락을 받고 바크셔로 온 제임스와 데일리에게 로라는 정부로부터 전해진 자신들의 임무와 계획을 말해준다. 로럼스마저 죽은 상황, 이제 제임스와 데일리를 포함한 사람들은 바크셔 호수의 괴물들에 피의 복수를 시작하게 된다.
18.
“몸은 좀 어떠세요?”
다음날 오후 로라는 바크셔 인근 지역에 위치한 대학 병원에서 팔 접합 수술을 받은 채 입원 중인 제임스를 찾아 왔다. 제임스는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데일리를 보며 로라는 ‘천상의 커플이로군’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어젠 정말 굉장했습니다. 거대한 괴물을 혼자 때려잡다니.”
“괴물의 사체는 수거했나요?”
어제 그들은 쓰러진 괴물의 사체를 밖으로 가져 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워낙 몸집이 거대한 탓에 포기하고 동굴 밖으로 빠져 나갔다. 제임스의 예상대로 괴물들은 고분고분 자리를 비켜 주었고 그들 일행은 동굴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피를 워낙 많이 흘린 탓에 제임스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다른 누구보다 데일리가 무사히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부축을 받을지언정 혼자의 힘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의 손전등은 모두 꺼진 상태였다. 카메라로 지켜볼 누군가가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믿게 하기 위해서. (물론 야간 투시경이 있다면 무용지물이겠지만, 그들 모두가 무사히 빠져 나온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네 오늘 아침에 수거했습니다. 사체는 헬기를 통해 더블린에 있는 연구소에 보냈어요. 해부를 해 봐야 알겠지만 이미 우리들은 모두 괴물의 약점을 알게 된 것 같군요.”
로라는 승리감에 젖어 미소를 지었다. 차갑고 날카롭기 그지 없던 어제와 달리 유쾌하기까지 보이는 로라의 모습에 제임스와 데일리는 살짝 놀랐다.
“목 안 쪽과 등 부위. 특히 제임스 씨가 찌른 곤봉은 괴물의 심장에 박혀 있었다고 하더군요.”
“너무 쉽게 얘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제임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고는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뭐라 대꾸하며 위로하려던 로라는 사나운 눈길로 막아서는 데일리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데일리는 그녀 눈 앞에서 더 이상 상종하기 싫다는 듯 커튼을 쳐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로라는 그들을 내버려 둔 채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깔끔하게 절단된 것이 아니라 짐승에 물어뜯긴 상처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손상됐습니다. 지금 현 상태로 남편 분이 팔을 다시 쓸 수 있는 확률은 50대 50입니다.”
의사로부터 말을 전해 들은 데일리는 차마 남편에 가서 전하지 못 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숨 죽여 울음을 터뜨렸다. 이틀 전까지 그녀를 감쌌던 모든 행복이 빠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아직 제임스에게 임신의 사실을 알리지조차 못 하고 있었다. 행복의 절정에서 고백하려던 그 멋진 순간을 앗아간 로라와 빈스와 이 모든 상황들이 그녀는 원망스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메릴랜드 부인마저 원망하려는 마음마저 들 정도였다. 데일리는 쉴 새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화장이 지워진 채 나타난 그녀를 보고 제임스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멀쩡한 오른 손으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데일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자기야,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제임스가 말했다. 데일리는 다시 눈물이 났지만 미소를 지으며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리고 몸을 숙여 제임스의 등 뒤로 팔을 둘러 그를 살짝 안았다. 남편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고 데일리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나야말로 고마워.”
데일리가 중얼거렸다.
병원을 빠져 나가는 로라의 가슴 께에서 핸드폰이 진동했다. 로라가 꺼내 보니 자신의 수하 요원이었다.
“무슨 일이야?”
“방금 저도 소식을 받은 참이라 연락 드립니다. 이게 팀장님 허락이 필요한 부분이라서요.”
“말해 봐.”
“동굴 맨 안 쪽에 누군가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거대한 개폐문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통해 괴물들이 필요에 따라 동굴을 오가는 것으로 확인했어요.”
“뭐야? 언제 그렇게 일이 진행됐던거야? 들어가 봤어?”
로라가 놀라 소리쳤다. 그녀의 옆을 스쳐가던 간호사 한 명이 깜짝 놀라 들고 있던 펜을 떨어 뜨렸다. 통화를 계속 하기 위해 로라는 자리를 옮겼다.
“네. 들어가 봤습니다. 하지만 저희 애초 예상과는 달리 만든 놈들의 근거지로 연결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땅굴 깊이 파 놓은 괴물 녀석들의 둥지를 발견했어요. 지금 우리 요원들과 정부 파견 측 사람들이 둥지에 파견 돼 있어요. 알들의 수나 녀석들 수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래? 근데 그건 그렇고 내 허락이 필요한 부분이 뭐지?”
“녀석들을 어떻게 할까요?”
“뭘 망설여? 다 불바다로 만들어.”
“근데 참 애매한 게 이 둥지와 땅굴이 아일랜드 유적지 위까지 닿아 있어서 폭발시키거나 손상을 주면 유적지까지 함께 무너져 내릴 수도 있는 상황이랍니다.”
순간 로라는 전화의 목적을 깨달았다. 정부 사람들까지 와 있는 상황에서 왜 둥지를 가만 내버려둔 채 그녀의 허락을 요구하는지를.
‘쓰레기같은 놈들, 나한테 독박을 씌우겠다는 것이지?’
로라는 이를 갈았다.
“우리가 가진 폭탄이란 폭탄은 다 퍼부어! 일반 총알 세례로 죽지 않는 것들이니. 알들은 모두 불태워 버리고.”
핸드폰을 끊어버리려다 로라는 다시 귓가에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죽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그것들이 몽땅 무너져 내리면 확실히 매몰할 수 있는 방법이 되니 좋지 않겠어? 내가 진심으로 그걸 바라고 있다고 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