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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81333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0
    조회수 : 519
    IP : 221.155.***.186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7/03/05 21:19:20
    http://todayhumor.com/?lovestory_81333 모바일
    [BGM] 바람은 몹시 차지만, 하나도 춥지 않다




    1.jpg

    체 게바라나의 삶

     

     

     

    내 나이 15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 가를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2.jpg

    윤재철창호지 쪽유리

     

     

     

    유리도 귀했던 때

    창호지 문에

    조그맣게 유리 한 조각 발라 붙이고

    인기척이 나면

    그 유리 통해 밖을 내다보았지

    눈보다는 귀가 길었던 때

     

    차라리 상상력이 더 길었던 때

    여백이 많았던 때

    문풍지 우는

    바람이 아름다웠던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아름다웠던 때







    3.jpg

    복효근어떤 나쁜 습관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거시기 슈퍼 아저씨와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는 자기 집 층수보다

    한층 위에서 내려 계단을 내려간다

    이유를 물으니

    자기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함께 탔던 모기들도

    우르르 같이 내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기가 들리지 않을 만한 소리로

    복선생도 그렇게 해보라는 충고를 해준다

    그 뒤로 나는 모기가 많은 여름날이면

    부러 그 집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두 층이나 걸어 올라간다

    참 나쁜 습관이다







    4.jpg

    김사인별사(別辭)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면 나는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착하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 하겠지요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인적 드문 소로길 스적스적 걸어

    날이 저무는 일

    비 오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으로 골똘히 서 있기도 하는 일

     

    다 공부라고 하면 좀 낫지요마는







    5.jpg

    배한봉포장마차 국수집 주인의 셈법

     

     

     

    바람 몹시 찬 밤에

    포장마차 국수집에

    허름한 차림의 남자가

    예닐곱쯤 되는 딸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늙수그레한 주인이 한 그릇 국수를 내왔는데

    넘칠 듯 수북하다

     

    아이가 배불리 먹고 젓가락을 놓자 남자는

    허겁지겁 남은 면발과 주인이 덤으로 얹어준 국수까지

    국물도 남김없이 시원하게 먹는다

     

    기왕 선심 쓸 일이면

    두 그릇을 내놓지 왜 한 그릇이냐 묻자 주인은

    그게 그거라 할 수 있지만 그러면

    그 사람이 한 그릇 값 내고 한 그릇은

    얻어먹는 것이 되니 그럴 수야 없지 않느냐 한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 포장마차 주인의 셈법이 좋아

    나는 한참이나 푸른 달을 보며 웃는다

    바람은 몹시 차지만 하나도 춥지 않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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