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감동이 되서 올립니다...
평소에도... 태진아 진짜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걸보고 더 좋아집니다...
방송보신분들도 있을테지만...
없으신분들이 있기때문에 올립니다...
지금부터 태진아의 13~15살로 돌아갑니다...
1965년.. 태진아... 그는 아주 가난했다.
3끼 고구마로 때우고, 공책도 어머니께서 지워서 써야했다.
하지만.. 태진아는 공책을 어머니께서 지운것도 몰랐다.
어느날 밤 새벽에 열심히 공책을 처음부터 지우는 어머니를 보고 태진아는 결심을했다.
그건바로 운동회와 동네씨름잔치였다. 그때 운동회와 씨름잔치에서 1등을하면 새공책과 새연필을 줬기 때문이다.
그는 노력하였다. 매일마다 뜀박질하고 친구들과 씨름을하였다. 그렇게하여 1등을했다.
공책과 연필을 보고 감동하시는 어머니얼굴을 보고 태진아는 차마 눈물을 안흘릴수 없었다.
그리고 몇일 후 서울에서 아는 형이 돌아왔다. 그형은 아주 성공하여 돌아왔다.
결심하였다. 태진아는.. 돈을 벌어오겠다고...
어머니에게 서울간다고 말을 하였지만.. 어머니는 반대하였다..
하지만.. 태진아가 한마디 하고난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고 태진아를 안으며 수락을 하셨다.
태진아가 어머니에게 한말은..
"서울가면 3끼 다 배부르게 챙겨먹을수있어요... "
그말을 한이유는 어머니는 태진아의 형두명을 월남에 보낸적이 있다.
그곳에가면 3끼 배부르게 먹을수 있었기 때문이다.
태진아의 어머니는 한창 클때에 아무것도 못먹는 태진아가 너무 불쌍하였던 것이었다.
어머니와 마지막밤.. 태진아는 조용히 어머니에게 물었다.
소원 3가지가 무엇이냐고...
어머니는 말하였다.
첫번째 소원은 불고기집에서 식구가모두 배부르게 먹는것이었다.
두번째 소원은 제주도에서 하룻밤만 자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마지막 새번째 소원은 그때 유행이었던 아줌마들이 끼는 가락지를 끼는것이었다.
태진아는 꼭 소원을 들어주기로 생각했다.
그다음날.. 태진아는 떠났다. 서울로
그가 간곳은 바로 자장면집.. 아는형이 일하는곳은 바로 자장면집에서 일했던 것이었다.
태진아는 배달부를 하였다. 그나이에 무거운 송판으로된 철가방을 들고 배달을 했던것이었다.
첫배달시.. 그는 아직어려서 배달속도가 느렸다.
자장면의 면발은 불어터지고 군만두는 식어 맛이없었다.
배달시킨사람들은 돈을 못준다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태진아는 처음보는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
"제발 돈주세요.. 제발요"
그때 배달시킨사람은 말하였다.
"여기서 노래하면 이 아저씨가 돈줄께"
태진아는 너무나기뻐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배달을 시킨 사람은 태진아가 부른 노래에 불만을 가졌다.
"그노래 말고 왜 그거있잔아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그노래 불러봐"
태진아는 할수없이 불렀다.
"월남에서.. 돌아온"
이소절을 부를때 태진아는 어머니 생각이 들었다.
따스한 어머니의 품이있던 고향생각이 났던겄이었다.
노래를 부르며 태진아는 느꼇던것이었다..
가난함이 얼마나 슬픈건지..
아직 엄마품에서 어리광을 부릴 나이인데..
차가운 바깥세상에 나와서 그는 냉혹한 시련을 받고 계속 살아왔다.
태진아는 매일밤 울며 지냈다. 어머니가 보고싶어서.. 단지 그이유뿐이었다.
몇년후 태진아는 성공하였다.. 트로트로..
하지만....
어머니는 기다려주지 않으셨다. 태진아가 돌아오실때 까지...
태진아는 어머니가 떠나는 걸 보지 못하였다.
태진아는 어머니를 위로하기위해 노래를 하나 만들었다..
노래이름은 "사모곡"
태진아는 지금 고기를 먹으로 가면 고기를 먹지 못한다.
어머니생각때문에 목이 막혀 먹지를 못하였다..
여기까지가 태진아의 슬픈 과거였습니다.
이이야기에서는 어머니의 사랑들 한층더 느낄수 있었습니다.
글을 쓰고있는 필자도 이것을 볼때도 그리고 다시 생각해서 이글을 쓸때..
눈물을 흘렸습니다.
트로트를 첨부했으면 좋겠지만.. 저가 링크해놓겠습니다..
네이버 아이디가 있으셔야 감상하실수 있습니다.
http://music.naver.com/search.nhn?where=trackart&m=more&query=태진아&pag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