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줄거리 : 아일랜드에 위치한 바크셔라는 평화로운 동네에서 사람들이 잇따라 실종되거나 의문사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여기에는 바크셔를 상징하는 가문인 메릴랜드도 얽혀 있었다. 쇠락한 명문가인 메릴랜드의 마지막 후손인 메릴랜드 부인이 사망한 것이다. 이후 부인이 아껴온 그의 아들(제임스)과 딸(데일리)은 이 사건을 파헤치고 그녀의 원수를 갚을 것을 천명한다. 촌장인 로럼스는 괴물의 정체와 그 발표를 두고 장로단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장로단을 교묘히 거스르고 마을 사람들을 도우려는 로럼스에게 그의 동생인 데이비슨이 접근한다. 데이비슨은 자신이 부리는 폭력 단체인 '와일드' 단원들을 데리고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거대한 연극을 도모하는데, 그 와중에 진짜 괴물이 나타나 데이비슨의 연극에 동원된 소년들이 모두 사망한다. 분노한 데이비슨은 괴물의 자취를 쫓아 숲으로 사라져 그대로 실종된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로럼스와 그의 아내는 숲을 찾아왔는데, 그러던 중 괴물의 습격을 받아 아내가 죽고 만다. 로럼스도 위기에 빠진 그 순간, 빈스를 포함한 와일드 단원들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이렇게 도망치던 중 이들은 괴물 새끼들을 맞닥뜨리고 결국 많은 동료들이 희생된 끝에 빈스와 로럼스만 가까스로 숲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그리고 빈스는 제임스에게 도움을 청할 결심을 하게 되는데....
12.
“그래요.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죠.”
빈스가 얘기를 마치자 작은 취조실은 침묵에 빠졌다. 인턴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은 빈스의 증언이 끝나자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수사관이 그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그 때서야 다시 앞에 있는 노트북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빈스의 맞은 편에서 그를 상담하는 사람은 여성 수사관이었다. 갈색 머리에 덩치가 큰 여성 수사관의 커다란 가슴팍 위에는 ‘로라’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로라는 한숨을 푹 내쉬고 입을 열었다.
“만약 이런 얘기를 한 달 전, 아니 일주일 전에만 들었어도 나는 당신을 정신병자 취급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린 일주일 전 나는 상관을 통해 이 곳 바크셔에 괴물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됐어요.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지만 바크셔로 출동할 전담팀을 꾸리는 것을 보고 믿지 않을 수가 없었죠.”
로라는 그의 반응을 기대한 듯 살짝 입을 다물었지만 빈스는 얼굴을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로라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괴물을 죽이러 온 정의의 사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건을 최대한 축소시키고 기자들이 이 사건을 알지 못 하는 선에서 얘기를 정리하기 위해 파견된 하이에나들에 가까워요. 그래서 준비하는 일주일 동안 바크셔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로라의 어투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하필 우리가 파견 나오기로 한 당일, 당신들이 죄 없는 소년들을 괴물에 제물로 바칠 줄이야.”
빈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 했다.
“현장에서 확인한 정도만 해도 무려 20명이 넘는 소년들이 사망했습니다. 물론 우리 탓도 있어요. 괴물의 존재를 사전에 말할 수 없었던 점. 그래서 당신들은 괴물의 존재를 믿지 않고 그런 아주 위험하고 유치한 게임을 할 수 있었던 것이겠죠. 더 뭐라 하지는 않을게요. 당신도 친구들과 (당신이 가입한 보이 스카웃 이름이 와일드라고 했나요?) 동생을 잃었으니까요. 그 것으로 당신들도 당신들의 어리석음에 충분히 값을 치뤘다고 생각합니다.”
빈스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자, 저는 당신을 감옥에 보내기 위해 여기 온 게 아닙니다. 여기서부터는 너는 나가 있는 게 좋겠다.”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하자 옆에 있던 인턴이 재빨리 취조실에서 빠져 나갔다.
“저는 당신의 협조가 필요해요. 특히 동굴 부분이 인상깊군요. 그 녀석들이 생식이 가능하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데.”
“지구가 낳은 모든 것은 생식이 가능합니다. 당연한 자연의 이치 아닌가요?”
빈스가 고개를 들어 로라에게 반항하듯 물었다. 눈물 젖은 그의 형형한 눈빛에도 로라는 흔들리는 기색 없이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직접 맞닥뜨리고서도 전혀 감을 못 잡으시는군요, 그렇죠? 그럼 제가 이렇게 설명하죠.”
로라가 일어나 인턴 앞에 놓여 있던 노트북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뭔가 누르더니 노트북을 돌려 빈스가 화면을 볼 수 있게 했다. 노트북 화면에는 누가 그렸는지 모를 괴물의 대략적인 스케치가 나타나 있었다.
“이게 지금 바크셔 호수에 있다는 괴물의 모습입니다. 당신들이 본 괴물의 모습과 일치하겠죠. 보면 아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미의 몸통에 사자의 앞발, 뱀처럼 구불거리는 목에 사람의 얼굴이 달려 있습니다. 보고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아주 공포스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로라가 손가락을 튕겼다.
“바로 그겁니다.”
“뭐라고요?”
“공포요, 공포.”
“그렇다면?”
“생각하고 계시는 것이 맞아요.”
로라가 노트북을 내려 놓았다.
“이 괴물은 어떤 미친 놈들이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요소들을 합쳐 만든 생체 살인 병기입니다.”
빈스의 얼굴 가까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은 로라의 얼굴에는 거의 만족이라고까지 보일 정도의 어떤 미소가 어려 있었다.
“바크셔, 아니 이 나라에 이 정도의 공포가 흘러들게 되면 우리 같은 피라미들은 다 죽는 겁니다. 다름 아닌 우리 서로들 손에 의해 말이죠, 이 생체 병기를 만든 녀석들의 의도는 이겁니다. 공포로 인간들을 타락시키는 것. 이미 2008년에 경제라는 괴물에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대중들은 결코 이 괴물이 주는 공포를 이겨낼 수 없을 겁니다.”
로라가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눈을 떼지 못 하는 빈스의 두꺼운 팔뚝 위에서 그의 털들이 경쟁하듯 불뚝 솟아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협력해 주셨으면 해요.”
“자신 없습니다.”
“당신, 정말 겁쟁이군요? 덩치는 사자같으면서도.”
빈스가 로라를 쳐다봤다. 자신감 어린 그 표정에 빈스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묘하게 그녀에게 성적으로 이끌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빈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보다 더 적임자가 있습니다.”
“누군데요?”
“제임스라는 사람이요. 실상 메릴랜드의 후계자요.”
“지금 제가 당신 촌 사람들과 가문 얘기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아니요. 지금 우리들에겐 메릴랜드라는 이름이 필요해요. 만약 그 이름이 없다면 당신들은 결코 바크셔 사람들을 통제하지 못 할 겁니다. 이 일의 해결을 위해서 바크셔 주민들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텐데요?”
“강가에서 영주 노릇을 하던 중세 시대의 명문가 가문, 현대로 오면서 쇠퇴하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가문의 이름이 그토록 당신네들에 중요하단 말인가요? 이 마을에 대해 조사하면서 메릴랜드 가문의 마지막 후손인 메릴랜드 부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게 됐어요. 그녀에게 후계자가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군요. 좋아요. 어쨌든 당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협력을 위해서는 나도 양보하는 게 있어야 하니까. 연락해요. 그 제임스라는 사람에게. 우리 조사팀에서 자리를 한 번 양보해 보죠. 그런데.” 로라가 으르렁거렸다.
“어쨌든 이 일이 끝나면 당신은 이 모든 소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제가 원하는 바요.”
빈스를 조용히 바라보던 로라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곧 무거운 침묵이 빈스를 고통스러울만치 짓누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