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게 다 네 탓이야!”
“아냐. 내 탓이 아냐.”
“이게 다 네 탓이야!”
로럼스는 깊은 어둠을 헤매고 있었다. 목소리들은 그들의 증오로 로럼스의 숨통을 조이고 싶어 하기라도 하는 듯 밀도 높은 공포를 로럼스에 전달했다. 뒤로 물러서는 로럼스 뒤로 벽이 드러났고 로럼스는 절망적인 비명과 함께 벽을 두드려 댔다. 어둠 속에서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하나 둘 씩 스스로를 드러냈다. 꾀죄죄한 모습의 부랑아 소년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눈 한 쪽이 박살나 있거나 턱이 없어 입술만 날름거린다거나 목 위로 달려 있어야 할 얼굴이 없었다. 로럼스의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이게 다 네 탓이야!” “여보 왜 그래?”
로럼스가 침대 위에 앉아 신음하자 그의 부인이 물었다.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해.”
“무슨 일이야?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거야?”
부인이 스탠드를 켰다. 로럼스의 부인은 심히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로럼스의 등을 천천히 쓸었다. 로럼스의 얼굴이 스탠드 불빛을 받아 얼굴의 반은 빛 속에, 나머지 반은 어둠 속에 잠겼다. 그는 심각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얼굴을 쥐어짰다.
“지금 당장 바크셔 호수로 가 봐야 겠어.”
말을 마친 로럼스는 일어나 체육복을 꺼내 들었다. 로럼스의 부인은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 뜯었다.
“지금 가면 위험하지 않을까. 가뜩이나 호수 근처에서 사람들도 많이 실종됐는데.”
“나는 바크셔를 책임지는 촌장이야. 비록 불길한 꿈에 불과하더라도, 아주 사소한 신호에 불과하더라도 바크셔를 위해 불을 넘고 물을 건너겠어. 이 것이 내가 이 직업을 대하는 의지야.”
로럼스가 주섬 주섬 옷을 입는 것을 보고 있던 그의 부인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나도 갈게. 당신 혼자 위험 속에 내버려 둘 수 없지.”
로럼스의 부인이 일어나 옷장을 열고 코트를 꺼내 들었다. 촌장의 부인이라는 위치에 걸맞지 않게 보풀이 심하게 올라와 있는 낡은 코트였다. 이런 그녀를 로럼스는 감동적인 눈길로 쳐다 보다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그래. 그럼 나가자. 만약 별 일 아니더라도 당신의 오늘 밤 잠을 설치게 한 댓가는 톡톡히 치를게.”
“나중에 혼내줄거야.”
그들은 신혼 때처럼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로럼스는 꿈의 내용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했다. 소년들의 원망에 찬 목소리가 로럼스의 귓가를 맴돌았다.
“이게 다 네 탓이야! 네가 우릴 이렇게 만들었어!”
9.
그 시각 지프 트럭에 함께 올라탄 와일드 단원들은 이미 호수 근처에 도달해 있었다. 열어 놓은 지프 트럭 창을 통해 메탈리카의 노래가 울려 퍼졌지만 그들은 곡의 이름조차 몰랐다.
“이 노래 참 위압적이지 않아? 우리를 상징하는 노래가 있어야 해. 이 노래만 들렸다 하면 우리가 오는 구나 느끼고 겁부터 집어 먹을 수 있게.”
“그래, 배트맨과 로빈처럼 등장했다 하면 노래가 들리는 거야. 빰빠빠빰 하고!”
“멍청아. 배트맨과 로빈이 등장할 때 나오는 노래는 악당들이 못 들어.”
투닥거리는 빈스와 레이를 보고 데이비슨은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고전 영화에 나올 법한 전형적인 앞잡이의 모습을 한 랜디는 이들을 보면서 경박스럽게 낄낄거렸고, 쉐인은 벌써 곯아 떨어져 코를 골아대고 있었다. 경찰인 존은 운전을 맡아 했는데 운전을 하면서도 끊임 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과가 1그램에 몇 유로. 참외가 1 킬로그램에 몇 유로. 잠깐, 내가 사과가 몇 유로랬지?”
그들은 캠핑장 근처 외진 곳에 지프차를 주차 시켜 놓았다. 차에서 내린 6명의 와일드 단원들의 손에는 모두 검은색 곤봉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이거 정말 신나는데?”
가장 키가 작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랜디가 신난 표정으로 외쳤다. 손바닥으로 곤봉을 탁탁 치는 폼이 득의 만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곤봉이나 와일드 형제 단원들이 없는 그는 일개 겁쟁이에 지나지 않음을 그의 동료들 모두는 알고 있었다.
“너무 흥분하지 마 랜디.”
데이비슨은 랜디의 어깨를 한 번 툭 치고는 총을 어깨에 짊어지고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위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심지어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작은 손전등이 어둠을 깊게 갈라 놓았다. 그런데 숲으로 들어갈수록 그들은 이상한 예감에 사로 잡혔다. 한참을 걸어도 소년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발 아래서 죽은 나뭇가지 소리만 간간이 날 뿐이었다.
“너희들 일 똑바로 처리한 것 맞아?”
데이비슨이 뒤를 쳐다보지도 않고 빈스와 레이에게 물었다.
“내가 분명 우리 쪽 애도 하나 붙여 놓으랬지? 걔들 너무 막 나가지 않게 중재하고 필요할 때 연락할 수 있도록.”
대답이 없자 데이비슨은 인상을 쓰면서 뒤를 돌아 보았다. 겁 먹은 표정의 빈스와 레이는 데이비슨과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어떻게 된거야 이 자식들아.”
멈춰선 데이비슨이 총의 개머리판을 바닥에 찍었다. 몹시 화난 표정이었다.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는다고. 원래 예정대로라면 10 분 전에 애들 텐트가 보여야 하는데.”
“그게 말야 형제님.”
레이가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가 지프에서 내리자마자 연락을 시도했는데 연락이 안 돼. 그리고 말야. 오는 중에 빈스 형제랑 계속 얘길 해봤는데 역시 분위기가 이상해. 돌아가는 게 좋겠어.”
“그래 맞아. 혹시 말야, 소문대로 바크셔의 괴물이 녀석들을 잡아간 게 아닐까?”
“헛소리 하지 마. 바크셔에 괴물 따윈 없어. 너희들이 이렇게까지 겁쟁이일줄은 몰랐는걸.”
고개를 내젓고 데이비슨은 총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의 당당한 모습에 금방이라도 오줌을 지릴 것 같던 랜디의 표정이 다시 득의 양양한 표정으로 변했다. 다른 와일드 단원들도 데이비슨을 따라 조용히 걸어갔다.
“피 냄새가 난다.”
데이비슨이 몸을 낮추고 오른 손을 들어 보였다. 신호에 따라 단원들은 모두 몸을 한껏 움츠렀다. 데이비슨은 황망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 때 쉐인이 무거운 엉덩이를 땋에 찧으며 비명에 가까운 신음 소리를 토해냈다.
“저, 저 나무 위를 봐!”
쉐인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그 곳에는 창자로 겨우 연결된 소년의 시신이 나뭇 가지 위에 매달려 있었다. 눈이 있어야 할 곳에는 텅 빈 구멍만 존재했고 경악한 표정은 그가 마지막에 겪어야 했던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만들었다.
“이럴 수가.”
“이런 젠장! 우리가 대체 뭘 한거야! 소년이 죽었어!”
절망에 찬 레이가 부르짖었다. 데이비슨은 허망한 표정으로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 앉았다. 그들은 평생 접해 보지 못 한 공포에 몸을 떨었다. 불안한 시선을 이 쪽 저 쪽에 옮기던 중 이들은 다른 소년들의 시체도 나무에 매달려 있음을 발견했다. 이제야 왜 그들은 왜 그들이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는지를 깨달았다.
30명이 넘는 소년들이 모두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처럼 나뭇가지들 사이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공포와 절망에 질린 이들은 나무들 사이에 매달린 시체들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데이비슨이 땅에 머리를 쳐박고 울고 있었다.
“내가, 내가 이 개자식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어. 절대로.”
얼마나 분노에 차 울며 머리를 땅에 찍어댔는지 그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그런 그를 보자 단원들은 더욱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빈스가 그에게 다가갔다.
“보이냐 빈스? 그저 재미로 아이들을 사냥한거야. 그리곤 마치 전시를 해놓듯 나무들 위에 걸어놨어.”
“대장. 돌아가자. 촌장이랑 장로들에 이 사실을 빨리 알리는 게 좋겠어.”
“아니! 아무 말도 하지마.”
데이비슨이 성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마치 악귀와 같은 눈빛에 빈스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누구도 믿지 말고. 알아 들었냐?”
데이비슨은 와일드 단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윽박질렀다.
“너희는 외부에 있는 멍청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바크셔가 천국이라고 생각하냐? 그래서 엄마한테 주르르 달려가듯 가서 일러바치겠다고? 이런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데이비슨은 그의 장총을 장전했다. 찰칵 하는 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괴물을 말하는 거야?”
“난 지금 괴물보다 더한 새끼를 말하는 거다. 나중에 이해하게 될거야. 이 쯤에서 우리 와일드는 찢어진다. 너흰 지프차를 타고 마을로 돌아가. 절대 이 일을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돼.”
데이비슨은 이를 갈면서 깊은 숲의 어둠 속으로 시선을 던졌다.
“지금부터는 나 혼자 움직인다.”
말을 마친 데이비슨은 혼자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와일드 단원들은 아무런 대꾸도 못 한 채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 때 데이비슨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종이 한 장을 빈스의 손아귀 속에 억지로 구겨 넣었다. “만약 내가 내일 아침까지 너희들 앞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 번호로 전화해 우리가 오늘 봤던 상황을 모두 전해줘.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와 함께. 나머진 그가 알아서 할거야.”
“만약 내가 내일 아침까지 너희들 앞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 번호로 전화해 우리가 오늘 봤던 상황을 모두 전해줘.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와 함께. 나머진 그가 알아서 할거야.”
평소와 다른 진지함과 결의에 가득 찬 모습의 그는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내 마지막 부탁이다.”
데이비슨은 시체들이 널린 죽음의 숲 속으로 성큼 성큼 발을 내딛었다. 아무도 그의 뒤를 따를 생각을 하지 못 한 채 단원들은 빠른 걸음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짓누르는 무력감과 죄책감에 그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못 했다. 빈스는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다. 그의 두꺼운 손으로 종이를 펼쳐보니 거기엔 제임스의 목공소 번호가 적혀 있었다.
제임스가 로럼스에게 전해줬던 그 종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