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모두가 야솝이라 부르는 노인은 오늘도 쓰러지기 직전의 몸을 이끌고 힘겹게 낚싯대를 바크셔 호수에 설치했다. 해가 질 무렵 억수로 비가 퍼붓고 있었지만 그는 우산조차 쓰지 않았다.
"내 여기서 낚시질을 한 지가 어언 40년인데.."
야솝은 한 마디 한 마디 힘겹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2년 간은 물고기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 단 한 마리도. 심지어 물고기를 잡아 먹으러 오갔던 새 떼 무리도 오지 않는다고. 뿐만 아니야. 숲에 사는 동물들 곤충들조차 다 사라져 버렸어. 당신들은 보이지 않겠지."
그는 마치 훈계하려는 듯 바크셔 촌락을 향해 쭈글쭈글한 손가락을 휘휘 저었다.
"당신들은 보이지 않겠지. 물고기도 짐승도 곤충도 없는 지금이. 그런데 이 야솝은 보여. 보인다고. 세상의 멸망이.."
야솝은 지저분한 가방에서 위스키를 한 병 꺼내 뚜껑을 땄다. 플라스틱 뚜껑은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강 위로 둥둥 떠 가기 시작했다. 야솝은 위스키를 입에 힘겹게 갖다 댔다. 그리고 고개를 젖혀 위스키를 자신의 열린 입에 쏟아냈다. 그는 욕설과 함께 남은 위스키를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야솝은 안다네. 세상의 멸망을. 바크셔의 끝을. 바크셔의 더러움을."
야솝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흥겨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허나 팔을 흔들며 악을 쓰는 꼴이 그는 꽤나 신난 듯 보였다. 빗물이 하얗게 센 그의 머리카락을 적셨다.
"야솝은 안다네. 바크셔의 더러움을. 너희들의 더러움이 낳은 사생아를. 그리고 괴물을.."
노래를 마친 야솝의 팔이 점점 느려지고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고 비틀거리더니 흙 위로 힘 없이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 했다. 위스키 뚜껑만 둥둥 강물의 가운데로 떠 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천둥 소리인지 모를 분노에 찬 굉음이 그가 쓰러진 바크셔 호수를 맴돌았다.
5.
마을 장로들과 회의를 마친 로럼스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작은 집무실로 돌아온 로럼스는 오랫동안 피우지 않던 시가를 서랍에서 꺼내 피워 물었다.
"엿같군"
그가 말했다. 1시간 전 로럼스와 장로들은 양로원에 마련된 2층 회의실에서 밀담을 나눴다. 벌써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메릴랜드 영감과 브렛, 여기에 카일 일가족, 대니와 잉스, 이웃 마을 주민인 숀과 케인 등 수 많은 사람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바크셔 호수 주변에서 돌연 묘연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완전 공개와 바크셔 호수 생태공원의 폐쇄 그리고 외부 조사단을 불러 들이자는 로럼스의 주장과 마을을 드높이는 이름이 실추될까 우려해 '우리끼리' 해결해 보자는 장로단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바크셔에서 젊은 애들은 모두 매니먼이나 더블린으로 빠져 나갔습니다. 그 골골거리는 몸들을 이끌고 어떻게 해결해 보겠단 말입니까?"
"촌장. 이해를 못 하는군. 자네를 촌장으로 앉힌 사람은 우리야."
장로 중 한 사람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너무 젊은 혈기로 일을 밀어붙인다고 여기저기서 말이 많아. 그 파리 목숨, 우리한테 달려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게. 잘 생각해 보게나. 일을 키워서 뭐 하겠나? 바크셔가 가진 것이라곤 평화로운 분위기와 드넓은 호수밖에 더 있나? 이 둘을 우리 손으로 없애 버린다고 해서 좋은 건 없어. 저 호수 속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알고 싶지도 그것과 싸울 생각도 없네. 폭풍은 강력하지만 강력할수록 금방 지나가지. 우린 우리의 식견을 통해 그 폭풍이 금방 지나갈 폭풍이라는 것을 판단했어."
"정말 역겹군!"
"그저, 자네의 현실감각이 좀 떨어질 뿐이야. 우리끼리는 암묵적으로 정함세. 당분간 바크셔 사람들은 호수 주변에 가지 않기로. 다른 지역 주민들은.. 글쎄 알아서 하겠지."
로럼스는 장로들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가 장로들의 말을 무시하고 이 사건을 외부로 알린다면, 향후 정계로 진출하려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는 로럼스의 야망은 그대로 끝장난다. (인정하기 싫지만 장로 몇몇은 정계에 줄이 깊게 닿아 있다.) 하지만 이 일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호수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렇다면 로럼스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이 때 비서처럼 자신의 일을 도와주는 데이비슨이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들어왔다. 물론 노크도 없이. 그는 형이 시가를 물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형, 형수님과 무슨 문제라도 있수?"
역시 그다운 반응에 로럼스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에게 회의 때 있었던 얘기를 죽 들려주었다. 그의 앞 자리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듣던 데이비슨을 얘기를 다 듣더니 몸을 뒤로 확 젖혔다.
"이야~ 노인 양반들. 역시 고집 있으시네. 그래 어찌 됐건 형님은 그게 뭔지 알아보기라도 하고 싶다 이 말 아니우?"
"그래."
"나 역시 그게 궁금했던 참인데 잘 됐수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호수 안에 뭔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수. 진짜 조심해야 할 건 호수 밖에 있는 인간들이지, 특히 바크셔 소년원의 쓰레기들. 나는 그 녀석들이 이미 집단 탈옥해 바크셔 호수 근처에 군락을 이루고 살면서 산적질을 한다고 생각해요. 작년 여름에도 숲을 수색하긴 했고.. 형은 별로 탐탁치 않아했지만 참말이요. 아니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은 그 녀석들밖에 없다니까? 얼마 전 봤던 그 제임스인가? 뭐시기인가 하는 그 친구만 봐도 그렇잖소. 호랑이마저 겁을 먹을 만한 인상이더만. 그런 녀석들이 다섯 명만 모여 '뭔가 하겠다' 작당만 해도 노인네들만 남은 이 바크셔는 끝장이요."
"그래서,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거야?"
"아, 하겠수! 우리 형님 정계로 진출할라면 뭔가 성과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데이비슨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근데 생각은 좀 해 봐야 겠구만! 이거 원 참 잠수부가 필요할지 아니면 경찰이 필요할지 모르겠응께!"
그가 거친 남부 사투리로 떠들어 댔다.
"뭐가 됐든 조심해라."
로럼스가 데이비슨에게 말했다. 그는 빈 물컵에 시가 재를 떨궈냈다.
"네 말대로 산적 무리 정도면 좋으련만."
허리를 쭉 펴고 일어선 데이비슨은 형에게 윙크를 날린 뒤 총 한 자루와 함께 집무실을 박차고 나섰다. 이 것이 그가 형에게 보낼 마지막 윙크가 될 것이라고는 형과 동생 어느 쪽도 상상하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