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한 적이 없고 인터넷에 글로 쓰려다 몇 번을 그만두었던 얘기다.
하지만 혼자 담고 있기에는 힘겨워 다시 써보고자 한다.
재작년 추석 연휴의 첫날 나는 본가에 가지 않고 홀로 산에 올랐다. 이 산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산으로 해발은 700m가 조금 넘는다.
목표한 코스는 버스를 타고 산입구에서 내려 하나의 봉우리에 올랐다가 능선을 따라 두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코스였다. 예상시간은 쉬지 않고 걷는다면 5시간 정도. 출발했을 때는 이미 2시가 지나있었기 때문에
하산할 때에는 어두울 것이었다. 해당 코스에서 야간산행을 한 일이 몇 번 있어서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손전등을 챙기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보름이 가까웠기도 하고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사용하면 될 것 같고 배터리도 가득 충전되어
있었다. 날씨가 좋았다. 산입구에서 한참 걸어 첫 번째 봉우리에 다와갈 무렵 이상한 것이 보였다. 내 우측의 허공에
긴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하얀 여자 얼굴 하나가 따라오는 것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있었다. 실제로 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 마치 크게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귀신을 본 적은 전에도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날 따라오는 귀신은 처음이었다.
섬뜩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돌아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홀릴지도 몰랐고 내려가는 일이 위험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할 수 없이 위로 올라갔다. 귀신은 내가 귀신의 존재를 알았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별 방법이 없었다. 기독교도도 아니라 신을 찾을 수도 없고
종교 기입란에는 불교라고 쓰지만, 불경을 읽어본 적도 없다. 좋다고 듣고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알고 있던 광명진언만 외우면서 귀신을 모른 척
앞만 보고 올라갔다. 다행히 그리 오래지 않아 귀신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곧 첫 번째 봉우리에 도착했다. 올라온 길로는 내려갈 수 없었다.
귀신머리와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능선을 따라 오르기 위해 봉우리의 오른쪽에서 올랐으니 왼쪽으로 내려갔다. 항상 다니는 길이니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지 길 상태가 올라온 길에 비해 좋지 않고 가파르다. 가파르기 때문에 산길은 구불구불하게
되어있다. 올라오면서 본 것도 있고 해서 조심하며 내려갔다. 봉우리의 절반쯤 내려오면 가파른 곳이 끝나고 완만해진다. 길도 직선이 된다.
험한 곳은 다 피했구나 하며 편하게 걸음을 내디뎠는데 무언가에 세게 부딪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큰 나무를 안고 있었다. 나무는 곧게 나지 않고
사선으로 나있어서 넘어지다시피 하면서 안은 것이다. 나무 아래로는 큰 바위가 있어서 3M 정도 허공이었다. 나무가 없었다면 그대로 떨어졌을
것이었다. 게다가 부딪히기 전에 걸어가던 길도 아니었다. 분명히 봉우리를 절반 이상 내려갔는데 내가 부딪힌 곳은 봉우리에서 조금밖에 멀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더구나 길에서 벗어나 무릎까지 올라오는 나무 덤불을 5m 가까이 헤치고 옆으로 걸어간 것이었다. 손에는 스틱도 없었다. 귀신에
홀린듯한 기분이 든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귀신에 홀린 것이었다. 화가 났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산에서 쓰레기 한 번 버린 적 없고 홀로
와서 조용히 산행을 즐기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귀신 개개끼를 속으로 외치며 일어섰다. 다시 등산로로 돌아가 마저 길을 내려갔다. 하산
하는 길과 두번째 봉우리의 갈림길에 이르렀다. 귀신 개개끼가 내게 무슨 짓을 할 지도 몰랐고 실제로 홀리기까지 했다.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대로 물러나기 싫다는 분노가 치밀었다. 보란 듯이 세 봉우리 모두를 오르고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민 끝에
결국 마저 오르기로 했다.
나머지는 이따가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