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에 털이 자라기 전까지는 저도 교과서 보다 만화책을 좋아 하고 프라모델에 열광하며 석차도 걱정이지만 주먹싸움에도 지기 싫은 보통의 평범한 남자 아이였어요. 하지만 겨드랑이에 털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죠
송곳니가 자라기 시작한 거에요. 어릴 때는 그냥 남들보다 조금 더 날카로왔을뿐이었 거든요 그런데 이놈에 송곳니는 하루가 다르게 자꾸만 다른 이들보다 커지더군요.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 송곳니들 때문에 입을 꽉 다물고 있기도 힘들고 음식을 먹을 때도 꼭꼭 씹어 먹을 수가 없어서 설사를 하기 일쑤였죠. 단순히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날카롭기는 또 어찌나 날카로운지 거울에 비춰보는 나 스스로도 오싹할 정도였어요
외모에 한참 민감할 나이지 않습니까 주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마스크를 쓰기도 하고 입을 꽉 다물지 못해서 턱은 늘 얼얼했고 밤에 잘때면 입을 다물 수가 없어서 베개가 온통 침으로 흥건하게 젓어 있었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점점 건강이 나빠져 간다는 거였어요. 비정상적으로 자라난 송곳니 덕분에 이가 맞물리지 않게 되어서 밥이나 채소를 먹을 수도 없어서 우유로 배를 채우거나 어머니를 졸라 가끔 먹는 쇠고기로 그나마 근근이 버텨 나가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잠이 들었었는데 아마 고기를 먹는 꿈을 꾸었던 것 같아요. 갑자기 누군가 혀를 불로 지지는듯한 고통에 소스라치듯 놀라 눈을 떴죠. 날카로운 내 송곳니로 혀를 깨물어 혀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거에요. 침으로 젖어 있던 베갯머리에 뚝뚝 흘러 내리는 피를 멍하게 보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급히 휴지를 뜯어서 지혈을 하려고 했죠
그때.. 꿀꺽.. 목구멍으로 침과 섞인 피가 넘어가자 두근.. 심장이 강하게 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스멀스멀 얇은 피부 아래 정맥을 통해 흐르는 피의 느낌 까지 느껴진다 고나 할까 묘하게 신경이 곤두 서고 오감도 덩달아 날카로워졌어요. 그리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유혹으로 내 혀를 빨았죠. 꿀꺽 꿀꺽 피가 목구멍을 넘어 갈 때 마다 과학선생님의 치마 속을 상상하며 자위를 할 때 처럼 온몸이 희열로 들뜨고 뭔가 마구 폭발 할 것처럼 온몸이 스멀거리더니 갑자기 쾅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정신을 잃었죠. 다음날 아침에서야 정신을 차렸는데 혀가 다 나아 있는건 물론이고 몸이 그렇게 가뿐할 수가 없더라구요 뭔가 생기 있어 졌다고나 할까요? 늘 아침이 힘들어 침대에서 허우적 가렸었는데 그렇게 개운한 아침이라니 세수를 하고 얼굴을 닦다가 문득 세면대 앞의 거울을 보고는 생각 했죠. 어쪄면 난 드라큘라가 아닐까?
그리곤 그날 밤이었어요 환하게 보름달이 뜬 날이었는데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목덜미에 내 송곳니를 밖아 넣은 날이었죠
"그렇군요.. 그렇지만 어째서 그런 드라큘라의 이가 썩어서 치과에까지 오시게 된거죠?"
"역시나 믿지 않으시는 군요, 믿든 믿지 않든 그건 자유지만 콜라는 드라큘라의 이라고 해서 봐주거나 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리고 경험상 알게 된 건데 송곳니 말고는 그렇게 튼튼하거나 하지도 않은 거 같아요"
"네 잘 알겠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조금만 더 입을 크게 벌리세요 이제 다 끝나 갑니다."
치료를 마치고 25만원을 카드 일시불로 계산하고 나오는 내 뒤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들을 수 없는 조그만 속삭임이 들려왔다.
"지금 저 환자는 이가 문제가 아니라 정신과를 먼저 가봐야 할 거 같아 송곳니가 조금 긴걸 가지고 묘한 과대망상에 빠져 있는 것 같더라고"
"선생님 그게 아니고 혹시 개그맨 지망생이거나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사람 아닐까요? 이야기가 꽤 그럴 듯 하잖아요? 크크"
"김간호사 너무 크게 옷지마 드라큘라는 귀가 무척 밝다 구.. 오늘 저녁에 김간호사 퇴근길에 찾아 오면 어쩌려고 그래"
"선생님두 참 무섭게스리 오늘 저 집까지 바래다 주시려면 계속 하세요"
숨죽여 키득거리는 소리는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앞에 설 때까지 계속 되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싱긋 웃음이 나왔다.
'음 980번째는 드디어 치과의사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