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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유의의 표본 이정현 새누리 대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군신유의’의 표본인 듯하다. ‘군신유의’는 '임금과 신하의 도리는 의
리에 있음'을 뜻하는 고사인데, 이 고사에 걸맞는 역대 재상으로는 조선시대 ‘임사황’ 정도를
들 수 있다.
임사황은 이조판서, 병조판서, 숭정대부, 지중추부사를 지내고 정승의 물망에 오를 정도의 고
관대작였었는데, 그는 폭군 연산군의 학정에 아랑곳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아들 임희
재가 연산군을 비판하여 죽임을 당한 당일 날에도 슬픈 내색을 하지 않고 연산군을 위해 연회
를 치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연산군의 임사황에 대한 총애는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한줌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5일간의 살인적인 단식을 견뎌냈던 이정현 대표의 ‘파부침선’(죽
을 각오로 싸우다)의 의지가 500년 전 조선땅에서 이미 시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임사황은 특히나 자기를 비난한 자에게 일일이 앙갚음을 하고, 이미 죽은 사람까지도 부관참
시(시체를 파내어 절단내는 형벌)를 했다고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는 호언을 했던 이정현 대표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이런 말했다고 해서 설
마 새누리 비박계 의원을 찾아가서 탄핵 찬성표 찍지 말라고 협박했다는 기관의 정체불명의
검은 인물들을 이정현이 보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하여간 그렇게 새치의 혀를 놀리며, 호가호위 하며 부귀를 누리던 임사홍은 연산군의 폭정을
견디지 못해 일어난 중종반정 당시 반정군에게 붙잡혀 격살 당하는 최후를 맞는다. 이후 반정
이 성공하고 국정이 안정된 직후 의금부가 임사홍 처리에 관해 중종에게 아뢴 말은 다음과 같
다.
“임사홍은 선왕조에서 붕당과 결탁하여 조정을 문란케 하였으되 오히려 관전(寬典)을 입어 처
단을 모면하더니 폐왕조에 이르러서는 그 아들 임숭재를 연줄로 하여 나인 장녹수에게 빌붙어
온갖 꾀를 다 부리며 악한 일을 하도록 부추겼고, 충직한 사람들을 해치고 백성을 도탄에 빠
뜨리며 임금을 불의에 빠뜨려 종사를 위태롭게 하였으니 그 죄는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적
몰가산(籍沒家産)해야 합니다.” 중종은 이를 허락하여 20일간 가매장되었던 임사홍의 시신은
파헤쳐져 부관참시를 당한다.
임사홍의 500년 전 기록을 접하면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의 ‘평행이론’이 맞아 떨어져가고
있음을 살피게 된다.
* 이렇게 끝맺으면 임사홍의 후손들이 들고 일어설 듯 해서 한마디 부가하자면 그래도 임사홍
은 다양한 개혁정책을 펼쳤고, 때에 따라서는 연산군의 학정에 태만으로 응답했으며, ‘간신배
를 조심하라’는 직언도 서슴치 않았다. 반면 새누리 이정현 대표는 가케에게 추호도 누가 되
지 않는 흔들리지 않는 충심으로 ‘군신유의’의 표본을 보이고 있다. 정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
는 이러한 절대 충성은 조폭들 야사에서나 간간히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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