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목차
1화 -언제나 선택권은 있으나..-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ony&no=80503&s_no=80503&kind=search&search_table_name=pony&page=1&keyfield=subject&keyword=%EC%95%A0%EB%B2%84%ED%94%84%EB%A6%AC
2화 -지상 최강의 암말. 생지옥에 떨어지다 -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ony&no=80627&s_no=80627&kind=search&search_table_name=pony&page=1&keyfield=subject&keyword=%EC%95%A0%EB%B2%84%ED%94%84%EB%A6%AC
3화 - 석양의 사과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ony&no=80779&s_no=80779&kind=search&search_table_name=pony&page=1&keyfield=subject&keyword=%EC%97%90%EB%B2%84%ED%94%84%EB%A6%AC
학생. 스승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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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에 걸린 두개의 금색 고리를 어루만졌다. 제코라에게서 주술사 수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제코라가 걸고 다니라고 준 것이다. 이걸 차고 있노라면 웬지 기분이 좋았다.
제코라는 확실히 셀레스티아보다 더 좋은 스승이었음이 분명했다. 거짓말을 하거나 진실을 섣불리 감추지도 않았고, 내가 궁금할 것 같은 건 알아서 설명해주기도 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캔털롯 도서관에서 평생 뒤져내봤자 못 알아낼 것 같은 기술들을 제코라는 많이 알고 있었고 그걸 망설임 없이 나한테 사사해주었다. 예를 들면 우거진 초목을 소리도 안 내고 지나가는 방법이라던가, 주변의 식물들과 동물들을 감지하는 방법들 말이다.
나는 내 방식대로 그걸 응용하여 새로운 마법들을 만들어냈고, 제코라는 그러는 날 응원해주었다. 내가 내게 맞는 방식으로 어떤 일을 해결하는 걸 제코라는 더 좋아했다. 이게 내가 제코라를 존중하고, 또 친구로 둔 이유였다. 제코라는 결코 날 함부로 평가하려 드는 얼룩말은 아니었으니까..
마을 거리를 지나가는 어떤 포니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난 퍼뜩 생각에서 벗어나 바로 뒤로 돌아서 빠르게 걸어갔다. 전에는 마을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꺼려했었는데..
나는 망토를 몸에 더 꽁꽁 둘렀다. 몇 년간 숲 속 생활을 하면서 망토는 거의 누더기가 다 돼 있었다. 스미스 할머니에게서 길쌈하는 방법을 아무리 배웠어도, 천 자체가 낡아 구멍이 숭숭 뚫리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낯을 가리는 포니냐면 그것도 전혀 아니었고, 애플잭을 만난 이후로 마을 근처를 돌아다니는 것도 예전보다는 많이 편해졌으나, 이런 식으로 나한테 다른 포니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여전히 영 좋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최대한 참아봐야지.. 나는 무슨 난방절 날 만드는 과자집의 크기를 실물 집 사이즈로 늘린 듯한, 마을에서 가장 기괴한 형상을 취하고 있는 건물의 문을 두드렸다. 두드리자마자 거의 그와 동시에 문이 활짝 열려 나는 깜짝 놀랐다.
"슈가큐브 코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폴짝 폴짝 뛰고 있는 핑크색 포니가 보였다. 그 포니의 활발한 기색은 나를 보자바자 싹 사라졌고, 곧 비명을 빽 지르며 내 앞에서 도망가 버렸다.
...별 수 있나. 나는 무서운 숲의 마녀 아닌가...
나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예상대로 한창 파티 중이었고, 공기 중으로 단 냄새가 진동했다. 이 파티에 참가하마하고 약속은 했었지만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애플잭은 요 몇 년간 많이도 자랐다. 이제 막 십대에 들어섰는데도 벌써 내 키만큼이나 컸다. 나는 다른 망아지들과 웃고 있는 애플잭의 근처로 걸어갔다. 아마 학교 친구들이려나?
내가 마치 밝은 방을 가리려드는 그림자마냥 파티장의 한 가운데 나타나자, 애플잭 근처의 망아지들이 일제히 수다를 멈추고 침을 꿀꺽 삼키며 날 바라보았다.
"애플잭."
나는 주문을 이용해 내 목소리를 에코가 끼게끔 변조시켰고, 주변의 포니들은 공포에 몸을 움츠렸다.
"널 보러 왔다."
"그림자 포니가 나타났다!"
아까 그 핑크색 망아지가 빽 소리를 지르며 위층으로 도망가 버렸다.
"선셋 언니. 왔습니꺼? 음료수 한잔 하실레예?"
애플잭은 한 치의 겁먹은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컵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음성 변조 주문을 취소하고 머리에 쓰고 있었던 후드를 내렸다. 더 이상 죽음을 몰고 다니는 창백한 포니처럼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너 정말 겁이 없구나."
나는 컵을 받아들고 포장지로 싼 상자를 애플잭에게 내밀었다.
"받아. 생일 축하한다 애플잭."
"야~ 뭐 우리사이에 이런 걸 다.."
애플잭은 환한 웃음으로 답했다.
"그저 언니가 와주신 것만으로도 지는 기쁩니더. 그나저나 새로 만든 주문 때문에 밖으로 나오신 겁니꺼?"
"주문? 아니, 주문 실험은 숲 안에서만 해도 충분하지.. 그리고 오늘은 뭐니 뭐니 해도 네 생일이잖아. 그냥 빈 등으로 와서 음식만 축내기엔 내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해서 말이지."
애플잭은 선물 포장을 뜯었다. 이걸 다 준비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들였다. 마음 놓고 마을로 쇼핑을 다닐 형편도 못 되었기 때문에 상자는 내가 직접 만든 나무 상자였고, 상자 틈은 야생 벌집에서 추출한 밀랍으로 꼼꼼히 붙여두었다.
"이게 뭔 줄 알아? 제브리카의 풍년을 기원하는 부적이야. 걱정 마. 마법 부여 된 건 절대 아냐. 네가 너희 집 사과에 무슨 마법같은 걸 쓰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건 내가 더 잘 아니까.... 그냥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이라고 생각하면 돼. 이걸 과수원에다가 세워 두면 각종 병과 해충들이 나무를 비껴간다고 하더라."
"화... 진짜 사려 깊은 선물이네예. 근데 이거 언니가 사과 속의 벌레 씹기 전에 가져왔으믄 더 좋을 뻔 했심더."
"그 이야긴 이제 그만! 아직도 혀에서 벌레 맛이 나는 것 같단 말야."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사과는 꼴도 보기 싫었다..지만 그건 오래 가지 않았다. 스미스 할머니가 만들어준 사과와 땅콩버터 브리틀 샌드위치를 먹고 금방 다시 사과를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선셋 언니. 고맙심더."
애플잭은 나를 꼭 껴안았다.
"곧 케이크 자를낀데예. 지랑 같이 잘라주심 안됩니꺼?"
나는 촛불이 켜진 케이크를 보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케이크 근처에는 가기도 싫었다. 나쁜 추억들만 줄줄이 연상되기 때문이었다.
"미안한데, 네 파티에 온 손님들이 나 때문에 겁먹고 도망가기 전에 난 그냥 이쯤에서 빠지는 게 좋겠다. 그럼 잘 있어 애플잭. 좋은 날 되고."
등을 돌리고 막 나가려던 참에 내 등에 대고 포니들이 뒷담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괜찮다.. 이건 뭐 별 거 아니다. 어차피 내가 잘 아는 포니들도 아닌데다가 동류의 포니도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난 쟤네들보다 나이도 더 먹었고, 숲에 사는 외지마니까.. 뭐 상관 없다. 지들 맘대로 쑥덕거리라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문득 아까 내 면전에서 도망간 핑크색 포니가 생각났지만, 구태여 깊게 생각은 안 하려고 했다. 분명 내가 무서운 마녀라면 이런 광경을 오히려 즐겼어야 했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고 망토에 어둠 마법을 건 후 에버프리에 몸을 숨기러 빠르게 숲 쪽으로 걸어갔다.
그래.. 이건 뭐 별 거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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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제코라의 집에 빈대를 붙은 지도 어언 4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좀 나가서 나 혼자 살 곳을 구할 때도 된 것이다.
언제나 뒤틀린 초목들이 무성하고 혼돈 어린 마력으로 점철된 에버프리 숲의 중심부로 가 보면 어떤 성의 폐허가 하나 보였다. 거기를 몇 번 먼발치에서나 보기는 했지만, 결코 가까이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용기를 가지고 그곳에 한 번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이미 지어져 있는 곳에 터전을 잡으면 굳이 나무 가지고 집을 짓는 중노동을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오래된 성이 내게 가장 적합한 터전일 것 같았다. 물론 그곳엔 고대의 여러 가지 마법들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므로 탐사엔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평소 내게 있어서 '주의를 기울인다.'는 건 무언가가 숨어서 나를 노릴 것 같은 곳을 화염 폭풍 주문으로 깡그리 태워버린다는 걸 의미하지만, 이번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새로 들어가 살 집을 들어가기도 전에 태워버려서 어쩌자는 건가?
성 주변엔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거의 한 치 앞도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짜증 섞인 신음소리를 내며 안개 속을 뚫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내 반불구가 된 앞발이 웬 덩굴에 걸렸고, 나는 입에서 갖은 욕설을 내뱉으며 아픔을 꾹 참고 발을 빼내려고 몸부림을 쳤다. 발은 갑자기 빠졌고 그 바람에 난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져버렸다.
불행히도 앞길은 내리막길이었고, 나는 내리막을 따라서 데굴대굴 굴렀다. 길가의 돌멩이들과 나뭇가지들에 긁히는 건 덤이었고 말이다. 더 이상 상황이 최악으로 떨어질 데가 있나...싶었는데 어쩐지 공중으로 내던져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로 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순간 이대로 저 바닥 아래 철퍽 하고 쳐박히느니, 뭐라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마침 거의 다 무너져 내려가는 허술한 줄다리가 눈에 보여 난 그쪽을 향해 순간이동 주문을 시전했다.
순간이동 주문이 성공한 것만 해도 놀라운데, 저렇게 허술한 다리가 내 체중을 지탱하다니.. 둘 중 뭘 더 놀라워해야할지 모르겠다. 순간이동 주문은 에버프리 숲 내에선 심각할 정도로 좌표가 어긋나는 일이 빈번했는데도 이번엔 별 오차 없이 성공했다. 그리고 다리의 몇 미터 위로 순간이동이 되는 바람에 등을 나무발판 위에 심하게 찧었는데도 불구하고, 다리가 부서지거나 줄이 끊어져 그 아래로 추락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죽을세라 아까의 내 착지 때문에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줄다리를 힘껏 부여잡았다.
"이거 안심할 틈이 없는걸...."
나는 흔들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넌지시 혼잣말을 했다. 흡사 그네와도 같은 흔들림이 약간 잦아들자 나는 약간 안도감을 느꼈다. 여전히 다리는 바람에 삐꺽거렸고, 나의 땀방울들도 그 바람에 실려 떨어졌다.
"진정하자. 선셋. 그냥 다리일 뿐이잖아..."
나는 심호흡을 하고 똑바로 다리 위에 섰다. 갑자기 다리가 또 기우뚱하기 시작했고, 나는 또 비명을 지르며 거의 기다시피 슬금슬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리 아래쪽을 힐끗 보게 되었다. 최악의 실수였다.
재밌네.. 캔털롯에 있을 때는 높은 성 위에 서 있어도 그다지 무섭다스러운 느낌은 없었는데 지금은 저 까마득한 아래를 보니 진짜 무서워 죽을 것 같았다. 하긴...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거의 죽을 뻔 했었는데 고소공포증이 안 생길리가 있나..
이래선 안 돼지..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다리의 줄을 잡았다.
"잡생각 말고 앞으로 가자.. 절반 정도만 더 가면 돼. 넌 할 수 있어! 전 이퀘스트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유니콘이잖아! 떨어지면 뭐 어때! 무사히 착지할 수단은 얼마든지 있는데! 저속 낙하 주문을 사용하던가, 수많은 베개를 소환해둘 수도 있잖아! 아니면 지연 폭발형 화염ㄱ-"
무아지경으로 중얼거리던 나는 앞쪽의 나무 발판이 빠진 것도 모르고 그곳에 발을 디뎠다. 그 구멍에 내 앞발굽이 푹 빠져버렸다!
"으아아아아아?!!? 그러게 애초에 왜 내가 그 병신 같은 날개를 원해가지고!"
나는 들어줄 포니 없는 욕설을 내뱉으며, 거의 반사 신경 급으로 순간 이동 주문을 시전했다. 다리 저편으로 이동하긴 했지만, 주문의 세부 조정을 할 여유 따윈 없었으므로 나는 거꾸로 공중에서 떨어져 얼굴부터 땅바닥에 처박고 말았다.
"아야...."
나는 아픈 소리를 내고는 다친 곳은 없는지 살폈다. 다행히 신체 모든 부위가 모두 제대로 붙어있을 곳에 붙어있었다. 웃긴 꼴을 좀 당하긴 했지만 무사히 다리를 건너기는 건넜다.
"나중에 그냥 다리 하나 새로 놔야겠다. 돌다리 같은 걸로.."
잔뜩 집어먹었던 겁이 이제는 좀 풀렸으므로, 나는 다리를 돌아보았다. 이미 먼지가 되어서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오래 된 다리였다. 아무리 내가 마법을 건다 한들 재활용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무 이유 없이 여기에 다리를 놔두지는 않았겠지.. 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길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나는 중얼거리며 주변 땅을 긁어 보았다. 주위의 땅이 평소 숲에서 볼 수 있는 잡초나 덩굴들 대신 이끼로 덮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지 그 이유는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원래 내가 밟고 있는 곳은 예전엔 석재로 포장된 도로였고, 그 도로 위를 이끼가 덮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싱긋 웃으며 이끼로 된 길을 따라갔다. 생각보다 꽤 괜찮은 곳이였다. 거대한 야수들이 남긴 흔적도 없었고, 주변을 둘러보니 경치도 엄청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성이 제법 바로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몸을 떨었다. 두렵지는 않았다. 세상에, 내가 두려워 할 게 뭐가 있어?(.....사실 셀레스티아는 여전히 무서웠다. 그리고 그 셀레스티아에게 발각 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이 두려웠다.)
성의 폐허엔 엄숙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무덤가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마도 제코라에게 수업을 받은 것 때문에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제코라는 꿈과 죽음의 세계인 영계에 대해서 말해주곤 했었고, 그 이야기에서 받은 느낌이 이 성의 분위기와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성의 폐허엔 엄숙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무덤가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마도 제코라에게 수업을 받은 것 때문에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제코라는 꿈과 죽음의 세계인 영계에 대해서 말해주곤 했었고, 그 이야기에서 받은 느낌이 이 성의 분위기와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길은 몇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전에는 분명 건물이었을 법한 돌무더기들이 무성히 돋아난 잡목들 뒤에 놓여 있었다. 여긴 원래 도시였었나? 이 근방에 이런 규모의 도시가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봤는데..
나는 맞는 길을 찾기 위해 탐지 마법으로 마력이 발산되는 곳을 추적했다. 고대의 강력한 주문들의 잔재가 마치 망령처럼 길을 따라 감지되는 게 느껴졌다. 무슨 주문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있는 걸 보니 상당히 궤멸적인 주문이었음은 틀림없었다.
성에 들어오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지키고 있는 자들도 없고, 대문은 열려있었다. 만약 닫혀있다고 치더라도 지붕이 구멍이 나 있어 그쪽으로 들어왔어도 됐을 것이다.
성 안에는 여러 가지 주문들이 광범위하고 복잡하게 걸려있었다. 대부분은 보존 마법이었다. 강력한 보호 마법들은 세월의 먼지를 타고 날아가 버렸고, 그 중 남아있는 것이라고 해 봤자 위험한 야생 동물들을 쫒아내는 정도의 주문이었다.
뭐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군. 잠자다가 잡아먹힐 일은 없을 테니, 여기 꽤 괜찮겠어..
나는 문을 열었다. 아니 열었다기보다는 밀쳐 넘어트렸다는 게 더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경첩이 낡아서 조금만 힘을 줘도 뜯어졌던 까닭에 문은 허무하게 넘어져버렸고, 곧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와 천둥과도 같은 소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드디어 내 집이 생겼군.."
독특한 석조 조각이 중앙에 서 있는 현관으로 보이는 곳에 서서 나는 홀로 중얼거렸다. 조각은 희한할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고전 미술 전문가는 아니었으니..
복도에 붙어 있는 방들은 벽들이 거의 무너져 있었으므로 별 달리 볼 구석은 없었다. 나는 조각을 지나 중앙에 있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고 그 안을 보자마자, 나는 웃음이 나왔다. 아니,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말 어디를 가든 계시는군요.."
나는 코웃음을 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왕좌 하나와 커다란 태양과 흰색 말이 그려진 족자 하나가 벽에 걸려 있었다. 누군 참 운도 좋지.. 셀레스티아에게서 도망치려고 들어간 곳이 하필 셀레스티아의 옛날 집이였을 줄이야..
...무슨 주문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있는 걸 보니 상당히 궤멸적인 주문이었음은 틀림없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왕좌 하나와 커다란 태양과 흰색 말이 그려진 족자 하나가 벽에 걸려 있었다.
누군 참 운도 좋지.. 셀레스티아에게서 도망치려고 들어간 곳이 하필 셀레스티아의 옛날 집이였을 줄이야..
"수색하더라도 여긴 제일 나중에 수색하겠지.."
나는 고대의 족자를 올려다보았다. 주문으로 보존되어 있었다고는 하나, 군데군데 낡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회한에 잠겨있었던지라, 돌아서기 전 까지 나는 한 군데 이상한 점을 빠르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상하다. 왕좌가 두 개나 있었던 것이다. 그 왕좌 뒤의 족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셀레스티아를 그린 족자와 구성은 거의 동일했지만 태양 대신에 달이 그려져 있었다. 그 공주도 셀레스티아와 거의 동등한 신분이었던 모양이다.
"두 개의 왕좌... 두 기의 공주라?... 무슨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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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 쓰러져가는 건물만 줄창 감상하려고 이 성에 들른 건 아니었으므로, 난 탐험을 계속했다. 그 중에서도 나를 거의 좋아서 죽을 정도로 까무러치게 만든 곳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도서관이었다.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아주 완벽하게 잘 보전된 장서 수천 권이 그게 고스란히 내 것이 되었다. 이히히! 내 거!
"이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운이 좋은 포니라고 해도 믿겠는데!"
나는 서가에 꽂힌 책들을 둘러보며 혼잣말을 했다. 최근엔 시간은 언제나 남아돌았으므로, 이 귀염둥이들과 보낼 시간은 충분하고도 남았으니 서두를 것 없었다.
"포네프 경전에, 메건의 책까지! 세상에! 심지어 클로버 필사본도 있어!"
나는 미친년처럼 찢어져라 미소를 지으며 박자도 안 맞는 말 춤을 추며 통로를 내려갔다.
오늘 이 좋은 기분을 그 누구도 망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내 등자 가방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강력한 마법사이자 전도유망한 수습 주술사, 그리고 무시무시한 숲의 마녀로써, 나는 바짝 쫄아 '꺅' 하고 비명을 지르며 허겁지겁 가방이 폭발하기 전에 방 저편으로 던지고 엄폐물을 찾아 숨었다.
.....꼴사납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게 가장 합리적인 대응이었다. 내 등자가방엔 오늘 내가 조합한 물약들이 잔뜩 들어있었고, 만약 이 물약들이 격렬하게 발광(發光)하면서 진동을 낼 때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일주일간 머리부터 발굽 끝까지 녹색으로 변하던가, 혹은 원하지 않게 수말인 채로 일주일을 보내게 될 수도 있었다. 그 부작용들에 대해선 더 이상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잠깐.. 터질 때가 됐는데 터지질 않는다. 설마?... 저 가방엔 내 일지도 들어가 있었고, 그것 때문에 난 더 걱정이 앞섰다. 그나마 몇 개 안 됐던 원래 내 물건이라고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었던 건 진짜 바보짓이었다. 내가 에버프리 숲에 있지만 않았다면 셀레스티아는 날 아마 몇 초 안에 찾아냈을 것이다.
내가 떠난 뒤 셀레스티아는 한 번도 이 책을 통해 연락을 않았는데 인제서야 연락을 하려고 드는 것도 의문스러웠다. 아까 마을에 있을 때 발각됐었나? 혹시 내가 실수한 거라도 있었나? 왜 하필 지금 연락을 하려고 하는 거지?
나는 한동안 하늘과 문을 번갈아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다. 책을 보는 순간 갑자기 무언가가 확 달려들 가능성도 있으므로,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방을 열어보기로 작정하였다.
진땀이 얼굴과 목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내 가방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순간 이동으로 누가 이동해 올 낌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성의 침입자 경보 마법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저 공주가 나한테 서신을 보낸 것 빼고는 별 일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난 경계심을 바짝 갖추고 내 마력이 닿는 최대 거리에서 등자 가방을 열어 내 일지를 꺼냈다. 마지막 장을 열어봤는데...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책의 마법부여가 망가졌나? 아니면 에버프리의 마력 때문에 오작동한건가? 나는 책장을 샅샅이 확인해보았다.
내가 쓰지 않은 책의 여백에 알아볼 수 없는 필적으로 누군가의 글씨가 쓰여 있었다.
'이건 전 학생의 일지인 것 같다. 학습 지침표로 써도 되려나?'
'화염 마법? 공주님께 아직 화염 마법은 안 베웠는데. 이건 나중에 독자 연구를 할 때 유용하겠다.'
'이거 끽해야 몇 년 전의 일이 적혀져 있잖아! 선셋 쉬머란 포니는 지금 어디 있는 거지? 왜 공주님은 아무 말씀 안 하셨을까?'
그 외에도 내가 공부를 하면서 여러 가지 책을 찾아 핵심을 요약한 부분에 강조 표시를 하거나 재정리하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성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뻔했다. 캐이댄스에 이어서 난 또 다른 포니로 대체된 것이다. 게다가 이번엔 캐이댄스 때처럼 내게 변명 비슷한 것도 하지 않고서 말이다.
언젠가 있을 일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이를 줄이야.. 나는 두 눈을 비볐다. 그렇다. 난 울고 있었다. 물론 내가 문제를 일으키고 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셀레스티아가 날 이리 빨리 대체할지는 몰랐었기 때문이었다. 셀레스티아는 언제나 내게 말했다. 금세기 들어 나만한 재능을 가진 포니는 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라고... 그랬었나.. 그것도 결국 입에 발린 소리였었나..
하나 짚고 넘어가야겠다. 난 여전히 셀레스티아를 약간 의식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가족에 가깝다고 할 만한 유일한 포니였으니까. 하지만 금방 날 버리고 새 학생을 들이다니... 마치 나를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포니 취급하는 것처럼.....
어쩌면 셀레스티아가 날 계속 쫒고 있다고 생각한 건 순전히 내가 여전히 셀레스티아에게 중요한 존재일 거라고 멋대로 착각한 내 망상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진실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지만..
나는 일지를 내려놓았다. 새로운 글귀들이 계속 일지에 써지고 있었다. 어쩐다? 그냥 이걸 버릴까? 아마 그게 가장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공주가 새 수제자를 들였다는 건 나를 찾는 걸 그만뒀다는 이야기도 될 테니까. 그야말로 깔끔한 절연인 셈이다.
나는 일지를 내려두고 도서관의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허탈감과 분함 때문에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난 다시 일지를 집어 들었다. 나는 이 일지에 제 멋대로 글씨를 쓰고 있는 나의 새 대체품이 살짝 밉기도 했다. 이유야 간단하다. 지금 내 자리를 멋대로 차지하고 있으-
그만! 난 짜증 섞인 소리를 내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니 지금 걔를 미워해서 뭘 어쩌자고.."
나는 중얼거렸다.
"그게 지금 내 얼굴도 모르는 걔 잘못인가? 셀레스티아 잘못이지. 보아하니 이미 걔 생각으로 꽉 차서 나 따윈 잊어버린 모양인데.."
나는 몸을 굴려 뚫린 천장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더 이상 못 본 척 할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야 된다.
나는 일지의 맨 뒤쪽, 빈장을 펼쳤다.
"이거 정말 오랜만에 써 보는군.."
'그거 학습 지침표로 안 쓰는 게 좋을 거야. 내가 한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절대 공주에게는 내가 이 글 썼다고 말하지 말 것. - 선셋 쉬머.'
나는 한숨을 쉬고 일지를 닫았다. 후회할 짓을 했군. 이 일지를 새로운 수제자에게 준 건 분명 셀레스티아였을 테니 셀레스티아가 이걸 못 보고 지나칠 리는 없을 것이다.. 분명 내가 쓴 글을 보고 나서 걔한테 내가 흑마법 장서실을 멋대로 뒤져서 제 스승을 몹시 실망시키는 바람에 성 안의 모두에게 나에 대해선 다시는 발설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같은 이야기나 해 주겠지.
책을 닫은 지 몇 초가 안 돼서 답장이 왔다. 이거 놀라운걸..
'잠깐! 이거 교신 마법도 걸려 있었어요? 일지에 멋대로 끄적거린 건 죄송해요. 저.. 사실 이 책 처음 보는 책이라 새로운 마법선가 싶어서 공주님 방에서 몰래 가지고 나온 거거든요. 근데 이게 전 학생이 써둔 일지라는 걸 알고, 어쩌면 공주님의 다음 수업 내용을 예습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보다가 그만...'
나는 코웃음을 쳤다. 허가 없이 가져왔다 라.. 당분간은 셀레스티아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군.. 새 수제자의 두번째 문자가 올라올 무렵 나는 꽤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당신도 공주님 제자인가요? 공주님이 다른 학생을 들였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제 이름은 트와일라잇 스파클이에요.'
무시할까... 그게 내 신상에 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난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엔 그랬지. 그러다가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쫒겨났고.. 너도 나랑 같은 꼴 돼기 싫으면 나랑 글 주고받았다고 말 안 하는게 좋을 걸?'
아마도 셀레스티아는 그 전 수제자의 이름을 꺼내는 것도 꺼려하는 것 같으니, 이건 꽤 중요한 조언일 것이다. 트와일라잇이
'시험에 통과 못 했다고 쫒겨났다구요? 아니 어째서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요? 말 안 할테니 제발 알려주세요!"
신경질적으로 갈겨쓴 탓인지, 뒤쪽 부분을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너무 깊게 연관되는 거 아닌가 하고 내가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을 때, 트와일라잇이 두 번째로 문자를 보냈다. 이번엔 거의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였지만, 간절하게 내 도움을 바라는 것은 확실해보였다. 뭐라도 도움이 될 만한 걸 써 줘야겠군..
'나는 나쁜 짓을 저지른 나쁜 포니거든. 앞으로 공주랑 쭉 붙어서 살고 싶다면, 공주가 하라는 대로만 하고 주는 대로만 받고 절대 그 이상은 바라지 마. 자기가 하지 말라는 걸 했다는 것 하나때문에 공주는 나를 쫒아냈으니까. 보아하니 공주는 주변 포니들에게 내가 있었다는 사실도 숨기라고 할 정도로 나를 잊고 싶은 모양이군. 절대 나 같은 실수는 하지 말도록.'
그 후로 꽤 오랫동안 답장은 오지 않았고 나는 책을 내려놓았다. 드디어 트와일라잇도 자기에게 뭐가 좋은지 알아챈 모양이다.
독서할 생각은 아까 다 달아나 버렸으니. 나는 다른 할일은 뭐 없나 생각했다. 일단 제코라에게 살 곳을 찾았다고 말해주고, 책 정리도 해야겠고, 침대도 좀 갖다 놔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몰라도 도무지 의욕이 나지 않았다. 그냥 몸을 웅크리고 한없이 시간만 버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순간 문자가 도착해서 나는 놓칠세라 책을 황급히 들여다보았다.
'진짜 나쁜 포니라면... 다음 시험문제 슬쩍 알려주실 수 있나요?'
문자를 본 내 입 꼬리가 어느새 올라가 있었다.
셀레스티아의 새 제자는 내 예상보다 꽤 맹랑한 꼬마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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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생각보다 복선을 치밀하게 잘 회수하는 것 같습니다. 1화에서 뱃속이 굶주린 만티코어 표효하는 소리를 냈다 라고 하더니 2화에서 바로 만티코어가 튀어나오는 것 하며...
아 참, 트위터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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