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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ony_80779
    작성자 : 기뮤식의노예
    추천 : 8
    조회수 : 1112
    IP : 110.9.***.238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5/04/22 00:21:56
    http://todayhumor.com/?pony_80779 모바일
    졸렬한 포니 번역)에버프리의 마녀 - 3장 석양의 사과
    252269.png



    전편 목차



    1화 -언제나 선택권은 있으나..-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ony&no=80503&s_no=80503&kind=search&search_table_name=pony&page=1&keyfield=subject&keyword=%EC%95%A0%EB%B2%84%ED%94%84%EB%A6%AC


    2화 -지상 최강의 암말. 생지옥에 떨어지다 -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pony&no=80627&s_no=80627&kind=search&search_table_name=pony&page=1&keyfield=subject&keyword=%EC%95%A0%EB%B2%84%ED%94%84%EB%A6%AC




    7000단어 이상 소설을 내가 무슨 수로 3일만에, 그것도 정신 없이 바쁜 와중에 다 번역했는지 모르겠네요. 선셋 빠심의 기적인가..




    제 3화 석양의 사과


    *역주 : 이번 제목은 아마도 서부극 For a Few Dollars More(국내 정발명 석양의 건맨)의 패러디인 것 같아 이렇게 의역합니다.

    ============================================================



    나는 절뚝거리며 숲 속을 계속 활보했다. 지나가면서 만나는 모든 괴물들이란 괴물들은 깡그리 숯덩이로 만들어버렸으므로, 곧 에버프리의 괴물들은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알아서 나를 피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사실 이 짓도 슬슬 질리던 참이었다. 역시 목적도 없이 파괴행위만 저지르고 있는데 신물이 안 날 리가 있나.. 제코라처럼 숲 속의 약초들을 캐고 조사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제코라의 목표였지 내 목표는 아니었다. 


    전에는 나도 마생의 목표라는 게 있긴 있었다. 예전의 내 마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셀레스티아가 주어준 과제를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거였다. 물론 그 짓은 일찌감치 때려 치웠으니 이젠 생각하지 말자.


    제코라가 에버프리숲 외각으로 나가면 포니빌이 있다고 전에 귀띔해주었다. 아무리 절름발이라도 몇 시간정도만 걸으면 닿는 거리였다. 포니빌이라면 전에 내가 탔다가 탈출했던 기차의 종착지였지 아마. 기차를 탔는데도 정작 목적지엔 몇 주가 걸려 도착한 셈이군..


    하지만 여전히 마을에 들르기는 좀 불안했다. 물론 내가 사라진지 몇 주나 지난 뒤라 내 뒤를 쫒는 자들은 당연히 없을 테고 에버프리를 섣불리 수색하려고 들 만큼 간 큰 포니들도 없겠지만 말이다.


    에버프리숲에선 내 점성술 주문도 쉬이 교란되기 마련이었으므로, 같은 마법으로 숲 안의 날 추적할 수 있는 포니는 아마도 이 세상엔 없을 것이다. 뜻밖의 사고로 들어간 곳이 셀레스티아에게서 숨기에 딱 좋은 곳이었을 줄이야.. 이것 참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네..


    이렇게 시간낭비만 죽어라 하고 있을 때, 숲에서 무슨 목소리가 들려와 문득 그곳으로 가볼까 하고 생각했더랬다. 제코라 목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나는 망토에 간단한 환영 주문을 걸어 내 온몸을 그림자로 감싸고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살금살금 이동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났는데 제코라는 특별히 마법 같은걸 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뭇잎 밟는 소리 하나 안 내고 마치 유령처럼 숲속을 활보했었다. 어떻게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무슨 포니들은 따라할 수 없는 얼룩말의 마법 비슷한 건가?


    어쨌든, 목소리를 낸 장본마는 내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나는 일단 그 포니를 멀찌감치에서 관찰하기로 했다. 제코라랑 함께 나갈 때 제코라가 무언가를 볼 때마다 언제나 추천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나에게 맞는 방식은 보자마자 일단 때려눕히고 조사하는 거였고, 그게 더 재밌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발견한 건 나랑 같은 포니였으므로, 내 방식은 일단 제쳐두고 제코라의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한 7~8살 정도는 먹은 것처럼 보이는 망아지였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발굽을 동동 구르며 온 숲에 자기 존재를 과도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보자마자 안 때려눕힌 게 다행이었군. 그래. 따지고 보면 때려눕히는 게 지금 내 이미지에 딱 맞는 일이긴 하다. 마법의 숲에서 살지, 강력한 마력까지 지녔지, 기괴하게 다리를 절뚝대고 있지, 온갖 물약들과 가마솥이 있는 곳을 집으로 두고 있는... 그러니까 일종의 괴담에서나 나오는 망아지 잡아먹는 마녀 비슷한 포니가 되어 가고 있었지만, 난 절대 망아지 따윈 안 잡아먹을 작정이었다. 게다가 난 육식대신 채식을 선호한다.(아.. 베이컨은 예외로 하자. 아무리 고기라도 그건 꽤 맛있더라. 먹고 있노라면 배덕의 쾌감도 든달까.)


    "퍼뜩 나와라! 함 붙자!"


    망아지가 고래고래 외쳤다. 얼굴은 눈물범벅이 된 채로 말이다. 주황색 털가죽에 밀짚 색깔의 갈기를 느슨하게 뒤로 묶은 모양새였다. 자기 머리 사이즈에 비해 너무 큰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게 제일 눈에 띄었다. 아무리 내가 숲의 거의 외각에 나와 있다지만, 이 망아지 용케도 다른 괴물들에게 안 잡아먹히고 이리 깊이도 들어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안 도와주면 금방 잡아먹힐 것은 당연한 처사였으므로, 나는 한숨을 쉬고  숨어있던 덤불에서 부스럭거리며 나와 망아지의 뒤쪽에 섰다. 애들 돌봐본 적은 별로 없었는데.. 돌본 적이라고 해 봐야 까마득한 고아원 시절 이야기였고, 그때도 별로 모범적으로 잘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고아원은 빡센 곳이다. 다른 포니들을 밟고 올라가지 않으면 다른 포니들에게 밟히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서럽게 울고 있는 애를 굳이 괴롭힐 정도로 나는 악질이 아니었거니와, 지금 나는 저 망아지랑 굳이 상하관계를 설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난 최대한 저 망아지에게 최대한 잘 대해주기로 작정하며, 저 애를 숲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잘 될지는 모르겠다. 나는 다른 포니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덴 엄청 서툴렀으니까..


    "야."


    소리를 낮춰 말했는데도, 그 망아지는 펄쩍 뛸 정도로 화들짝 놀랐다. 망아지는 후다닥 뒤로 돌았지만 그 바람에 머리의 모자가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고, 그걸 허겁지겁 주우려고 하다가 그만 내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모양새였다. 나는 마력으로 그 망아지와 모자를 집어 들어 모자를 다시 좋게 씌워주고 땅바닥으로 내려놓아주었다.


    "누.. 누굽니꺼?"


    그 망아지는 질질 흐르는 코를 앞발굽으로 닦으며 말했다.


    "마을서 못 뵌 분인데예?"


    "마을에서 안사니까 그렇지. 여기는 대체 왜 온 거야? 위험한 곳인데."


    "위험한 거 누가 모르는 줄 아십니꺼?! 지도 지 앞가림정도는 할 줄 압니더!"


    망아지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셔?"


    나는 어께를 으쓱 하며 대답했다. 뭐 저 망아지가 대드는 게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나도 저만했을 무렵 나보다 나이 많은 녀석들이 내가 나이도 적고 허약하니까 시키는 대로 하라고 윽박지르는 건 별로 안 좋아했으니까. 물론 지금도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하지만.


    "꼬마야. 네 부모님이 걱정하시겠..."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내가 '부모님'이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그 망아지는 이내 더 큰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쓰러져 펑펑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뭘 단단히 잘못 말했군.. 역시 잘 될 것 같지 않더라니..


    "부모님.. 부모님 돌아가셨단 말입니더!!"


    망아지는 훌쩍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슬슬 주변 포식자들이 이 쉬운 사냥감을 노리고 몰려드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전 이퀘스트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유니콘인 나도 절대 이 숲에서 기습은 당하긴 싫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에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짐승들이 여기는 수 없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았어. 꼬마야. 미안."


    나는 그 망아지를 마력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너 울리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알지? 사실 나도 부모님이 없으니까 이걸로 쌤쌤....... 하아... 아까 말은 그냥 못들은 셈 쳐.. 오히려 더 울리겠는데 이거.."


    나는 망아지를 내 등에 태우며 말했다. 마력으로 계속 들고 다니는 것보다는 그래도 그 편이 쉬웠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팀버울프들에게 당해가지고.. 그래가꼬.."


    훌쩍거리고 나서 그 망아지는 말을 이었다.


    "이대로.. 이대로 끝낼 수는 없심더. 꼭 복수할낍니더!"


    이런 썅. 구구절절 사연이 나오는구만.. 물론 내가 알 바도 아니었고, 특별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오로지 저 망아지가 무언가 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이 숲에서 데리고 나가야겠다는 일념 그 하나뿐이었다. 나는 저 망아지가 왔던 곳 반대방향으로 기수를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그 망아지가 내 등에서 내리더니 자기가 원래 가던 방향으로 와다다다 달려가는 게 아닌가?


    나는 인상을 구기고 그 망아지를 마력으로 홱 낚아챘다.


    "아휴... 너 뭐 하는 거야 대체?"


    "우..울 할매가 말했심더. 모르는 포니랑은 같이 다니지 말라꼬."


    망아지는 찌푸리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언니도 결국 모르는 포니 아입니꺼?"


    "할머니가 교육 한번 잘 시켰군.."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치만 꼬마야. 이 숲은 그 '모르는 포니'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이야. 그리고 돌아가신 너네 부모님도 네가 여기서 돌아다니다가 잡아먹히는 건 바라지 않으실 걸? 오죽하면 언니같이 무서운 숲의 마녀도 널 안 잡아먹고 그냥 도와주려고 하겠어? "


    나는 분위기를 좀 환기시켜 보려고 살짝 웃어보았다. 저 망아지가 울음을 좀 그쳤으면 했었으니까. 숲에서 울고있다가는 바실리스크들이 꼬이기 딱 좋았다. 그 닭대가리들은 울음소리는 또 귀신같이 듣고 어디 다쳐서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놈 있나 하고 기웃거린단 말이지.


    "시..싫슴더."


    망아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몬가를 해야함니더. 쩌 팀버울프들이 할아버지랑, 부모님이랑, 우리 가족들을 자꾸 해쳐가지고서예.."


    "꼬마야. 네 이름이 뭐니?"


    망아지에게 말을 걸고 있으면서도 난 바짝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아무리 에버프리숲의 포식자들이 날 알아서 슬슬 피한다지만, 그래도 늘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는 편이 바람직했기 때문이었다.


    "애플잭..애플잭이라고 합니더. 그리고 분명히 말해두겠는데예, 지는 저 팀버울프에게 복수할 때까진 한 발굽도 이 숲에서 안 나갈낍니더!"


    애플잭은 결연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자기 안위 따윈 아랑곳도 않고 앞으로만 달려 나가는 망아지들에게만 볼 수 있는 태도였다. 내가 어릴 때도 딱 저거 비슷한 모양새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숲에는 팀버울프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은데? 그 많은 팀버울프들을 다 때려잡겠다고? 엄청 힘들 텐데."


    "그건 걱정 마소. 지 부모님을 해친 놈만 잡을낍니더!"


    애플잭은 훌쩍이면서 말했다.


    "울 오빠 빅맥이 그러던데예, 다른 놈들보다 크고 자작나무같이 흰 놈이랬심더."


    나는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그 놈이 어떤 놈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달 전  나는 놈의 무리를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었다. 제코라가 아마 '거대 흰늑대'라고 불렀던 그 팀버울프는 그 무리의 우두머리였다. 놈은 다른 팀버울프 쪼가리들보다 더 크고, 더 사납고, 더 영리했다. 아무리 나라도 그 놈을 굳이 쫒아가고 싶지 않았을 정도였으니까. 나와 놈은 별 충돌 없이 멀리에서 시선을 교환했고 그게 다였다. 숲에서 가장 강력한 괴물들끼리의 일종의 상호 예우였다고나 할까..


    "어..어딨는지 아시는 눈친데예! 퍼뜩 말해 주이소!"


    애플잭이 금세 눈치를 채고 날 다그쳤다.


    "꼬마야. 위험하다고 했지."


    나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엄하게 애플잭을 내려다보았다. 셀레스티아가 나한테 자주 쓰는 방법이었다. 분명 비슷하게 잘 따라했었는데 어쩐 일인지 효과가 별로 없었다. 애플잭이 오히려 앞발굽들이 땅에 파묻힐 정도로 힘을 팍 주고 나를 도로 쏘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말해주시는게 좋을낍니더! 아님!.. 아님!......"


    애플잭이 앞발굽을 탕 탕 구르며 말했다.


    "그럼 뭐? 곧바로 괴물들에게 달려들어서 잡아먹히기라도 하게? 아니면 숲의 마녀에게 덤비기라도 하게?"


    나는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지.. 지는..."


    애플잭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다시 울기 시작했다.


    "원수를.. 꼭 원수를 갚아야합니더!  저 망할 괴물시키가 더 활개 치게는 몬 놔두겠심더! 근데 할매는 너무 늙었고, 오빠는 숲에는 안 들어간다 카고..  그래서. 지 혼자만.. 지 혼자만 울 부모님 한을 풀 수 있는 유일한 포니란 말입니더!"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근데 난 널 못 보내주겠거든? 정 하고 싶으면 다음에 어른 한 기 불러서 숲에 같이 오던가."


    "언니야는 어른 아입니꺼?"


    애플잭이 대뜸 말했다. 사실 법적으로 성마가 되려면 아직 멀긴 했다만..


    "게다가 그 괴물 어디있는지도 알지예? 지랑 같이 가주이소."


    "워, 워!"


    나는 저 꼬마가 갑자기 의욕 있게 다가오는 게 부담스러워 앞발굽을 절래 절래 흔들었다.


    "난 모르는 포니잖아. 모르는 포니를 대뜸 따라가면 안 돼지. 게다가 난 숲 속의 무서운 마녀라고."


    "지 이름 말했는데 아직 언니 이름은 몬 들었네예?"


    "내 이름은 선셋 쉬머긴 한데 그게 뭔 상관-'


    "자, 이제 이름도 알았으니 완전 이웃사촌 아잉교! 퍼뜩 그 괴물한테 데려가 주소! 금마를 확 뒷발굽으로 새려삐서 울 아부지 어무이 한을 풀겠심더!"


    "안된다니까 정말.."


    나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말했다.


    "안 되는 건 안.."


    애플잭은 세상에서 가장 구슬픈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과장 안 보태고 아무리 윈디고라도 그 애잔함에 슬슬 녹을 듯한 표정이었다.


    "하아... 공짜는 아니다.. 알지?"


    나는 질린 말투로 힘없이 말했다.


    "말해두는데.."


    나는 돌아서서 거만하게 고개를 꼿꼿이 새웠다.


    "나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유니콘이거든? 내 몸값이 좀 비싸다 이거야.“


    "시.. 십 비트밖에 읎는데.. 우짜지.. 내 전 재산인데.."


    애플잭이 자신 없게 중얼거렸다.


    "무..물론 언제나 비싼 값 받고 일 해줬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안심하고..."


    나는 애플잭의 갈기를 쓰다듬어주었다.


    "좋았어. 그럼 계약 성립!"


    ------------------------------------------------------------



    "너 똑똑히 기억해둬. 내가 도망가라고 하면 재빨리 도망가는 거다? 알았지?"


    걸어가면서 나는 말했다. 아직은 망아지인 애플잭을 위해 좀 느릿느릿하게 걸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웬걸, 애플잭은 별 탈 없이 따라오고 있었다. 지금껏 이런 숲 속을 별 탈 없이 걸을 수 있는 포니는 나 혼자뿐인 줄 알았었는데 의외로군..


    "알겠심더 마녀 언니!"


    애플잭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고, 그 바람에 모자가 또 들썩대다가 흘러내릴 뻔 했다. 내 이름은 선셋 쉬머라고 정정해주려다가 그냥 관뒀다. 내 이름을 외워뒀다가 마을에 동네방네 퍼트리느니 그냥 숲 속의 마녀라고 기억하는 편이 훨씬 낫겠지.


    "팀버울프들은 내가 해결할게, 네가 아무리 팀버울프랑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고 쳐도, 혹시 모를 사고에 너까지 불구로 만들고 싶은 맘은 없으니까."


    나는 내 마력으로 망토를 들어올렸다.


    "불구가 되면 안 좋은 게 많거든. 경험자의 말이니까 새겨들어."


    애플잭은 뒤틀린 내 다리와 몸에 나 있는 흉터들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어쩌다 이리 심하게 다치신 겁니꺼?"


    완전 놀란 눈초리였다. 그럴 만도 하지. 나도 평생 나보다 더 심하게 다친 포니는 본 적이 없는데 뭐. 대부분 거친 삶과는 연관이 없는 곳, 캔털롯에서 지내긴 했지만 말이다.


    "만티코어랑 싸우다가. 이제 이 숲이 위험하다는 말이 좀 실감이 나지?"


    "어..언니 세다고 하지 않았심꺼!"


    애플잭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만티코어도 못 이기믄-"


    "내가 만티코어도 못 이겼을 것 같아?"


    나는 거의 으르렁대며 애플잭의 말을 막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거의 익사할 뻔 하다 깨어났는데, 다리는 부러져있고 숲 속에서 길마저 잃은 상황에서 이겼다고! 그리고 궁금해할까봐 말해주는건데 그 만티코어가 결국 어떻게 된 줄 알아?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내 한 끼 저녁식사 신세가 되었지."


    마지막 부분은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물론 노릇노릇하게 구워버린 건 맞지만, 진짜로  먹지는 않았다. 박살난 만티코어에게 가까이 다가갈 생각도 못하고 기절했었으니까 뭐. 어쨌든 저 꼬마가 나를 무서운 마녀로 생각해서 해 될 건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난 거짓을 좀 덧붙였다.


    "아..."


    애플잭은 안절부절 앞발굽으로 땅만 파고 있었다.


    "죄..죄송합니더... 지는 진 줄 알고 그만.."


    "괜찮아. 내 실력은 직접 보여주면 돼지."


    나는 자신감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팀버울프들이 아무리 쪽수가 많아봤자 나무쪼가리였고, 나는 금세기 최고의 화염술사였다. 이 숲에서 나한테 까분 나무로 된 괴물들은 대부분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다. 불에 탄 제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녀석들의 꽁지에 불을 놔주는 건 언제나 즐거운 놀이거리였지만, 그래도 나만큼이나 화염술에 재능이 없는 포니들에게는 뭐.. 꽤 심각한 위협이긴 할 것이다.


    "쩌그.. 숲 속의 마녀들이 흑마법을 쓰고, 망아지들을 유괴해 잡아묵는다는게 사실입니꺼?"


    애플잭이 내 곁에 바짝 따라붙으면서 물었다. 여전히 말 할 기력이 남아있는 걸 보아할 때, 굳이 지쳐서 뒤떨어지는 건 아닌가 확인할 필요는 없을 듯 싶었다. 


    "아니. 망아지들을 잡아먹어봐야 내 속만 아플 뿐이고, 화염술을 쓸 줄 아는데 흑마법따윈 쓸 필요가 없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나무에 흔적이 남아있는지를 살폈다. 제코라가 나한테 알려주길 팀버울프들은 나무에 몸을 비벼 자기 나무가죽들을 손본다고 했었다. 그래서 팀버울프들의 영역에는 나무가 긁힌 자국이 남아있다고 했었고, 마침 근처의 나무 밑동에 긁힌 자국이 남아있었다.


    나는 발을 멈추고 나무 밑동을 살폈다. 껍질은 대부분 벗겨져 있었고, 나무가 썩거나 병든 흔적은 없었다. 맞게 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포니가 팀버울프의 소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걸 맞게 가고 있다고 하는 데에 동의할 포니는 별로 없을 테지만...


    "할매가 그러시던데예. 불에는 맞불 놓지 말라고.. 언제나 원래 태울 곳 외에 엉뚱한 곳들도 태워서 그런다고 했심니더."


    "그래? 할머니 말은 틀렸어."


    나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불에는 당연히 불로써 맞서야지. 아니.. 세상 모든 것에는 다 불로 맞서야 되는 법이라고."


    나는 숲 속의 공터로 들어섰다. 온 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게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새들의 울음소리도 멈췄고, 어디에서나 울어재끼는 풀벌레들과 개구리의 울음소리도 뚝 그쳤다. 나는 발굽을 들어 애플잭을 제지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움직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근처의 수풀이 부스럭대지도 않았고, 나뭇잎마저도 바람결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냥 나무들밖에 없었다. 무슨 어디에서 잘라진 것 마냥 생긴 나무들-


    아. 이제야 우리가 어디쯤 왔는지 깨달았다. 그 '어디에서 잘라진 것 마냥' 생긴 나무들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그 나무들은 보통 나무들이 아니었고, 화가 단단히 나고, 굶주리고, 무슨 늑대처럼 생긴 나무들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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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제야 우리가 어디쯤 왔는지 깨달았다. 그 '어디에서 잘라진 것 마냥' 생긴 나무들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그 나무들은 보통 나무들이 아니었고, 화가 단단히 나고, 굶주리고, 무슨 늑대처럼 생긴 나무들이였지만. 



    우리는 멍청하게 포위당했다.


    ..사실 멍청하게 포위당한 건 애플잭 혼자뿐이었다. 나는 화염술사였다. 이건 매복공격이 아니라 내 쪽에서의 일방적 학살이 될 게 뻔했다.


    놈들이 우리를 에워싸 퇴로를 막았다. 우리를 무슨 저녁거리 보듯 보는 게 분명했다. 물론 놈들은 식물이 변질되어서 생긴 존재인 만큼 굳이 고기를 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냥 쓸데없는 짓을 계속 하는 것이다. 마치 목적 없이 파괴행위만 계속했던 나와도 같이..



    "티..팀버울프들이.. 우릴 애워쌌심더!"


    애플잭이 내 뒷다리를 부여잡고 우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저기.. 애초에 여기 오자고 한 건 너였었거든? 왜? 확 박살내 버리고 싶다면서?"


    "그래서 언니를 고용한 거 아잉교?"


    애플잭이 나를 간절히 올려보며 말했다.


    "이러다 죽겠심더! 빨랑 마법 쫌 써 보이소!"


    "허! 알았어. 그럼."


    나는 코웃음을 친 후 뿔에 마력을 집중했다. 청록색 마력이 내 뿔 주위로 모여들고 있었다.


    내 다리를 부여잡고 있는 꼬마를 숯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될 테니, 이건 평소보다 조금 까다로운 일이 될 것이다. 평소에 화염 면역이었던 탓에 조금 불을 함부로 지르고 다니는 경향이 있어 걱정도 좀 됐다. 그도 그럴게, 근처에 화염구를 폭발시켜도, 숯이 된 물체가 몸에 닿아도, 주위 모든 사물에 불을 싸질러도 나는 멀쩡했었기 때문이었다. 전략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겠군.


    나는 바람의 흐름을 읽고는, 놈들의 포위 대형과 비슷한 너비의 나선형으로 무수한 불똥들을 날려 보냈다. 불똥들은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는 놈들의 나무로 된 몸체에 달라붙었고, 곧 보기 좋게 불이 붙고 말았다. 이건 내가 평소엔 별로 안 쓰는 주문이었다. 대부분의 괴물들은 이런 광역 인화(燐火) 방사 주문을 안 써도 화염구 선에서 정리가 다 되니까. 건초 써는데 당근 써는 칼을 쓸 필요는 없지 않는가?


    팀버 울프 무리는 고통에 차 울부짖으며 허겁지겁 땅을 굴러 몸에 붙은 불을 끄려고 했다. 하지만 그 불에는 인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모든 게 허사일 것이다.


    "끄...끔찍하네예.."


    "뭐 어때? 진짜 살아있는 것들도 아닌데 뭐. 저 녀석들은 그냥 늑대인 척 하는 숲의 정령들일 뿐이야. 진짜로 고통이나 죽음의 공포를 느낄 리도 없지. 그냥 늑대의 모습을 본뜬 녀석들이니까 살아있는 늑대처럼 행동하는 것뿐이라고."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심더. 물론 아부지랑 어무이의 원수를 갚고 싶긴 한데예... 해도... 저렇게 심하게 괴롭히고 싶지는 않심더.. 점마들 중에선 포니를 안 해친 아들도 분명 있을 것이고..."


    "아휴... 알았어...."


    나는 모든 주문을 취소했다. 팀버울프들을 뒤덮은 인화들은 전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건 복잡한 소환 주문 계통이 섞인 주문인데, 보통 정령들을 소환하는 것 대신 인 성분을.... 아니 관두자. 지금 주문 분석이 중요한 게 아니지. 그래도 애플잭이 만약 교육을 받은 유니콘이었다면, 아마 내 천재성과 노련한 기술을 보고 할 말을 잊어버렸을 것이다.


    팀버울프들은 깨갱 소리를 내며 다들 새까맣게 불탄 채로 꼬리를 말고 도망가 버렸다. 그 중 몇 놈은 아직도 살짝 불에 타고 있었다.


    하지만 한 놈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거대 흰늑대가 증오에 가득 찬 눈빛으로 우릴 쏘아보고 있었다. 물론 자기가 이끄는 무리 전체가 웬 꼬마가 데리고 나타난 마녀 하나 때문에 엉망진창이 됐는데 기분이 썩 좋을 리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도 약간 진땀이 났었다. 녀석은 뒷다리로 서면 큰 나무 꼭대기에 닿을 만큼 엄청나게 컸다. 놈의 몸은 보기에도 단단해 보이는 새하얀 통나무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중추에는 녹색 마력으로 빛나는 핵이 하나 들어가 있었다.


    아마도 난 거기에서 똑같이 크고 흰 셀레스티아 공주를 연상하고 공포에 떨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지금에서야 '커다란 괴물한텐 함부로 달려들지 마시오.'라는 뻔한 상식이 생겼던가..


    어쨌든 놈이 이대로 나한테 달려들게 둬서는 안 된다. 처음 내 뇌리를 스친 것은 순간 이동 주문이었다. 하지만 애플잭이 내 다리를 꼭 붙드는 게 느껴져 순간 이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대로 순간이동을 했다간 애플잭은 꼼짝없이 잡아먹히고 말 테니까... 물론 진정한 마녀라면 여기서 살아나가려면 뭐든 마다않고 했을 테지만, 난 아직 그 정도까지 막 나가지는 않았다.


    나는 화염의 벽을 둘렀다. 근처를 둘러싼 열기 때문에 늑대는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더 복잡한 주문의 시전이 끝날 때까지 이게 충분히 시간을 벌어주겠지.


    "이거나 먹어라 썩어빠진 고목 자식아!"


    주황색 구체 여러 개가 나 뿔에서 호를 그리며 발사되었다. 그리고 잔디밭 위를 통 통 튀며 거대 흰늑대쪽로 튀어갔다. 


    화염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문이었다. 포니들이 개발한 화염구 응용 주문들을 다  습득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그 중에서도 지금 시전한 이 주문은 내 확고하고도 정확한 안목으로 평가해 봤을 때 가장 최고의 주문이었다.


    내가 시전한 지면반동형 화염구들은 놈에게 멋지게 적중했고, 난 승리의 미소를 씩 지어보였다. 처음 저 주문을 시전해봤을때가 생각난다. 그 때는 내가 시전한 지면반동형 화염구에 대상 지정을 살짝 잘못해서 나한테 유도되는 바람에 꼬리가 빠지게 도망가면서 허겁지겁 역주문을 기억해내려고 애를 썼었는데.. 뭐 쪽팔렸던 옛 기억이다. 여러 번 수련에 수련을 거듭한 끝에(그리고 연습 때 썼던 주문이 하필 무도회장을 날려버렸던 탓에 벌로 무도회장 수리를 도우면서 내 미장이질 실력도 꽤 수준급이 되고 난 이후에.)이렇게 자유자제로 구사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얼굴에 저렇게 직격으로 박힐 지는 저놈도 미처 몰랐겠지. 송곳니 역할을 하는 나무가시가 형편없이 부러졌고, 놈의 턱은 말 그대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건 너무 일방적이로군.. 아무리 크고, 날쌔고, 강한 우두머리라도 그저 숲속의 괴물에 불과했었다. 그에 반해 나는 공주나 몇몇 거대한 용 다음으로 전 이퀘스트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 중 하나였다.나는 히죽 웃으며 나무조각들이 이리저리 튀는 걸 보았다. 늑대는 재구축을 반복했지만 점점 더 눈에 띄게 줄어들어가고 있었다.


    "그...그만 하이소!"


    애플잭이 내 발굽 쪽에 수북히 난 털을 붙잡고 소리쳤다.... 이거 나중에 좀 깎던지 해야겠군.. 숲 속에서 살다 보니 외모에 손 댈 여유는 별로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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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잭이 내 발굽 쪽에 수북히 난 털을 붙잡고 소리쳤다.... 이거 나중에 좀 깎던지 해야겠군.. 숲 속에서 살다 보니 외모에 손 댈 여유는 별로 없지만 말이다. 



    "복수하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늑대가 도망가려고 하기에, 나는 늑대의 다리에 화염 광선을 발사해 잘라내버렸다.


    "저..."


    애플잭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이건.. 쫌 아닌 것 같심더.. 암만 괴물이라고 해도 그렇지 우리도 괴물처럼 굴 필요는 읎지 않심꺼.."


    애플잭은 화염에 휩싸여있는 거대 흰늑대를 보며 말했다.


    "글고 점마는 기양 동물일 뿐임더... 지가 아무리 원수를 갚고 싶다 하더라도... 우리 어무이 아부지도 이리 심하게 동물을 괴롭히는 건 원치 않으실낍니더.."


    나는 애플잭과 같이 쓰러져 있는 팀버울프를 쳐다보았다. 고통에 찬 낑낑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어쩐지 나도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걸..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는 화염 벽을 내리고 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화염 마법은 강력하고 또 위험하지만 그에 비례해 엄청 고통스러운 계열의 마법이었으므로 안락사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농장선 어디 아픈 동물들을 빠르고 안 아프게 죽여주기도 하는데예.. 전에 우리 집 개 록산느가 광견병에 걸렸던 적이 있심더. 울 할매가 편하게 보내줬지예.."


    "빠르고 안 아프게라..."


    나는 중얼거렸다. 빠르고 고통 없이라.. 내가 영 서투른 분야로군 이거...


    "물러 서. 그러다 델라."


    애플잭은 드디어 붙잡고 있던 내 다리를 풀고 멀찌감치 물러섰다.


    나는 골골대고 있는 야수의 근처로 다가갔다. 이게 나무정령형 늑대가 아닌 진짜 늑대였다면 일이 좀 쉬웠을 텐데..


    나는 어떻게 할 건지 구상해보기 위해 일단 탐지 마법으로 팀버울프를 검색해보았다.  팀버울프는 여타 다른 마법으로 건조된(이른바 골렘이라던가)존재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팀버울프는 분명 정령 같은 존재였지만 물리적 육체를 가지고 있었고, 자가 수복 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걸 보아할 때 골렘 등에게 걸린 생명 부여 마법이 폭주한 사례와 흡사할 테니 그걸 푸는 역주문을 시전하면 될 것이다.


    그런 마법에 대한 역주문을 모른다고 치더라도, 대안은 언제든지 있었다. 예를 들어 화염구를 놈의 재구축할 마력이 바닥날 정도로 갈긴다던가.. 하지만 이건 좀 잔인한 처사였다. 거의 반영구 소각주문을 놈에게 거는 것 만큼이나 말이다.


    나는 놈의 마력의 맥을 짚어나가 그 핵심부에 다다랐다. 마력이 가닥이 마치 숲의 얽히고 섥힌 덩굴인양 너무 팽팽하게 묶여있어 풀기도 힘들었다.


    어쩌면 녀석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생물에 근접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맥박마저도 느껴졌다. 에버프리 숲의 혼돈 섞인 마력이 혈액처럼 놈의 안에서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 어쨌든 저 마력의 매듭은 지금 내 실력으로는 풀 수가 없다. 그래서 난 차선책을 썼다.  그냥 그 매듭을 강제로 끊어버리는 걸로 말이다. 녀석은 아까 내 공격에 극심한 타격을 입었는지, 심장부를 공격받고 있는데도 변변한 저항은 하지 못했다.


    성공적으로 매듭을 끊어버리자, 갑자기 놈의 마력이 그 중심부에서 찬란한 녹색 섬광을 내며 폭발해버렸다. 그 바람에 자잘한 나무 가시들이 사방군대로 튀었고, 나는 황급히 발굽으로 얼굴을 가렸다. 내 입에서는 욕설이 흘러나왔다.


    "망할.. 끝까지 방심을 못 하게 만드는군.."


    나는 한숨을 쉬고는 가시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내 몸에서 때어냈다. 애플잭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어디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다. 운이 좋네. 누구는 한 몇 주일간 발굽에서 가시를 빼느라 개고생하게 생겼는데..


    "끝났네예...생각보단 쉽게 끝난 거 같심더...."


    "말 했잖아. 나는 전 이퀘스트리아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유니콘이라고. 당연히 쉬울 수밖에. 너 혼자였으면 진작 잡아먹혔을걸."


    나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내가 일부로 성질을 좀 긁었는데도 애플잭은 아무 대꾸도 없었다.


    맞다.. 저게 쟤 부모님을 죽였댔지... 이거 또 말실수했군.


    "꼬마야... 괜찮아?"


    "원수를 값으믄 기분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애플잭이 훌쩍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다고 부모님이 돌아오시지는 않겠지예.."


    "그건.... 나도 정말 유감이다.."


    나는 애플잭의 어께 위에 발굽을 올려 주었다. 애플잭은 나한테 기댔다. 하필 내 반불구가 된 다리에 기대는 바람에 난 거의 넘어질 뻔 했다.


    "집에 가고싶슴더..."



    ----------------------------------------------------------------------



    곪아 떨어진 애플잭을 등에 태우고 숲을 나가기로 했다. 아무리 튼튼하다고 해도 결국엔 망아지다보니 이미 지칠 대로 지쳤을 테고, 이제 원수도 죽고 없으니 긴장도 풀려 힘이 딱 빠질 타이밍이긴 했다.


    나는 막 에버프리숲 외각에 도착했다. 짙었던 숲도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애플잭은  곤히 자면서도 자기 머리 위의 모자는 힘주어 꼭 붙들고 있었다.


    전에도 이야기했었듯이, 난 애들 대하는 데는 완전 서투른 편이었다. 하지만 뒤에 이 애플잭과의 만남 이후로, 뭐라 딱 꼬집어 말하진 못하겠지만, 하여튼 전보다는 나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우리 둘 사이의 공통점이 계기가 되지 않았을는지 싶다. 나는 내 부모님을 모르고 자라났고, 애플잭은 약 1년 전에 두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 내가 캔털롯에서 탈출한 지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였다.


    저 멀리서 마을의 불빛이 보였다. 지금은 거의 초저녁이었다. 해가 지면 이 숲은 더욱 위험했으므로, 나는 지금 마을의 외곽에 다다른 게 약간 안심이 되었다.


    사실 나는 요새는 낯을 오히려 더 싫어했지만 말이다. 셀레스티아가 저 하늘 위에서 날 내려다보는 기분이 든달까.. 물론 이건 바보 같은 망상일 뿐이다. 셀레스티아도 자기 입으로 태양을 그런 식으로 쓰는 건 불가능하다고 나한테 공언한 적도 있고 말이다. 어쨌든 해가 지고 달이 뜰 때가 내가 가장 안 들키고 활동하기 좋을 때라는 점만은 확실했다.


    "야."


    나는 내 등에 탄 애플잭을 쿡 찔렀다.


    "방금 막 숲에서 나왔는데, 집까지 내 등에 타고가고 싶으면 어디서 사는 지나 말해."


    애플잭은 뭐라 궁시렁대더니 눈을 뜨고 여기가 지금 어디인지 알아보려는 듯 주변을 살폈다. 눈을 한 차례 부비고 나더니 어떤 곳을 가리켰다.


    "나 사는 농장은 쩌그로 쫌만 가믄 있심더. 이 방향으로 쫌만 가믄 서쪽 과수원이 나올 텐데예.."


    마을 안에서는 안 사는군. 좋은 소식이었다. 난 여전히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걸 좀 꺼려했다. 이 작은 마을에선 웬 수상한 포니가 어슬렁거린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질 테고, 그 소문이 셀레스티아의 귀에 들어가면 당장 나를 잡으러 경비병들을 보낼게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간단한 조명 마법을 시전한 후 애플잭이 가리킨 방향으로 기수를 돌렸다. 절뚝거리며 걸어간 지 10분 만에 부서진 울타리와 구획을 맞춰 심어진 지 꽤 된 듯한 나무들이 보였다. 한동안 이 부분은 관리하지 않은 모양인지 나무들이 좀 웃자라있었다.


    캔털롯의 정원들이 생각난다. 셀레스티아가 나에게 바깥에 나가서 좀 놀라고 할 때마다 난 정원에 나가서 몰래 공부를 했었다. 한적하고 고요한 게 그때의 정원들과 딱 닮았다. 물론 도로가 그 정원들처럼 포장되지는 않았지만..


    "거기 누구가!?'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굉장히 노한 음색으로 외쳤다.


    "요놈의 사과 도둑놈 자슥! 숨지 말고 썩 나와라!"


    도대체 얼마나 늙었는지도 감이 안 잡히는 녹색 털가죽의 꼬부랑 할매가 칼칼한 목소리로 나한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주름이 너무 많이 잡혀서 더 이상 주름 잡힐 곳도 없어 보이는 그런 부류의 노마들이 있는데 저 할머니가 딱 그런 부류였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정정했고 눈은 흐릿하지 않고 여전히 총기가 가득했다. 아직도 나를 숲 쪽으로 걷어차 날려 보낼 기세 정도는 남아있음직한 괄괄한 할머니였다.


    "저 도둑 아닙니다. 사실 숲에서 주운 사과를 돌려놓으러 온 거지, 결코 훔치러 온 게 아니에요."


    나는 애플잭을 내 앞에 내려다놓으며 말했다


    "거그.. 애플쨱이가! 맞제? 니 또 숲에 다녀온기가?! 야 이놈의 문디 가스나야! 내랑 니 오빠가 월매나 걱정했는줄 아나?!"


    "잘못했심니더..."


    애플잭은 시선을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그치만.. 이제 다 끝났심더. 팀버울프 금마는 이제 다른 포니들을 못 해칠낍니더."


    그러니까 이 할머니가 전에 애플잭이 말했던 그 '할매'로군. 어쨌든 그 할머니는 애플잭의 말에 꽤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순간 그 할머니의 표정엔 살짝 애플잭을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 서린 듯 했으나, 이내 엄숙한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니 와 이리 바보 같은 짓을 했노.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내 아들 조나단이랑 니 애미가 세상을 뜨고 나니까 내는 더 이상..."


    할머니는 가빠진 숨을 골랐다.


    "더 이상 피같은 가족은 잃고 싶지 않다 아이가!. 이미 가슴이 찢기도록 아픈데, 응? 니마저 잃으믄 내는 또 우야라고!"


    "죄송합니더.. 죄송합니더 할매요."


    애플잭은 단걸음에 달려가 할머니를 꼭 껴안았다.. 음.. 이제 일단락됐으니 슬슬 가봐야 될 것 같다. 


    절뚝거리면서 숲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얼마 못 가서 할머니가 날 불러세웠다.


    "거 색시! 색시는 또 어디가는기가? 이 마을선 못 본 처자 같은데..."


    "숲 속에서 살거든요."


    나는 어께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쟤처럼 일부로 위험한 숲 속으로 안 다니는 이상 저랑 만날 턱이 없죠."


    나는 애플잭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거 말고도 못 볼 이유는 많지만요.."


    "에버프리숲에서 산다꼬? 가가 억수로 위험한 데 아이가!"


    "그렇죠. 위험하죠. 자.. 그럼 얘도 집에 돌아왔으니까 전 이만-"


    "언니야! 지가 아직 보답도 못 했지 않심꺼! 쫌 같이 집으로 들어가입시더!"


    "와 니 일에 엄한 쌩판 모르는 포니를 끌여들였노?"


    할머니의 인상이 쭈글쭈글 구겨졌다.


    "제가 안 도와줘도 혼자서 들어갈 기세였던 걸요. 그럼 그걸 혼자 놔둬요?"


    나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고집이 꽤 있던 애던데요? 그런 성격 아주 맘에 들어요. 모름지기 포니로 태어났다면 아득바득 힘든 목표를 달성하는 그런 근성도 있어야죠."


    간혹 그 고집과 근성이 안 통할 때도 있긴 있다. 가령 나랑 셀레스티아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던가..


    "고럼. 쟈가 고집 하난 황소고집이지... 아고.. 그래.. 대신 싸워주라고 용병을 고용한 건 존말로도 잘했다고는 못하겠드만, 쨌든 우리 짹이가 색시에게 신세를 진 건 사실이니 신세 진건 제대로 갚아야긋제?"


    "저 용병 아니거든요. 물론 팀버울프를 물리치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고 하긴 했지만, 전업 용병은 아니라고요!"


    "모 그리 사소한 걸 걸고넘어지나."


    우리는 농장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단 훨씬 큰 집이었다. 당초에 난 무슨 통나무집이나 방 한 개짜리 오두막집을 예상했었는데 웬걸, 캔털롯 대주택급 규모의 전원주택이 벌판에 딱 지어져 있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두 포니를 뒤따라 그 집으로 들어갔다.


    최근 몇년간 내가 들어간 집이라고 해 봤자 제코라의 집뿐이었다. 제코라와 난 분명 절친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난 제코라에게 신세를 지는 게 못내 불편했었다.


    연구 중일 때 누군가가 자꾸 옆에서 말을 거는 게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 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제코라가 연구 중일 때는 그냥 없는 것처럼 잠자코 있었다. 자기가 싫은 걸 알면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니까.


    제코라네 집은 집이라기보다는 연구실 같았다.(아니면 마녀의 오두막이라던가. 사실 나는 따지고 보면 마녀였으므로, 별 불만은 없었다. 내가 부족한 건 뾰족 모자나 빗자루 타고 날아다니는 것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내게 있어서는 꽤 편한 곳이기도 했다. 


    일평생 살면서 제코라의 집과 같은 집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고아원? 거기는 거의 감옥 수준이었다. 힘 쌘 포니들이 다른 약한 포니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걸 보면 일견 숲의 생태계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숲의 먹이사슬을 포니들로 치환하기만 하면 말이다. 


    성은 또 어땠냐고? 포니들이 우글우글 모여 각종 일을 보는 곳이었고 사생활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마음 놓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냐고 물어보면 동의하는 포니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마 셀레스티아도 거기를 아주 편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애플잭의 집.. 여기는 지금껏 내가 겪어왔던 그 어떤 집과는 달랐다. 아마도 '가정집'이라는 게 있다면 딱 이런 분위기일까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난 이방마였다. 애초에 여기에 있으면 안 돼는 포니였던 것이다. 그래서 순간이동으로 애플잭의 집에서 나가기로 했다. 가족은 가족끼리 있게 놔둘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채 마력을 집중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내 발목을 잡아 집 안으로 이끌었다.


    "마녀언니예, 와 밖에 서계시는 겁니꺼? 들어 오이소!"


    어쩔 수 없네.. 나는 살짝 웃고는 애플잭이 문지방 안으로 날 끌고 가도록 내버려뒀다. 집 안은 따뜻했다. 집 바닥은 목재로 되어있었는데 여러 긁힌 흔적들과 발굽 자국들이 남아있는 둥, 이 가족이 집과 함께 해온 오랜 세월의 정겨운 흥취가 바닥 부식 방지용으로 칠해놓은 밀랍과 기름 냄새와 함께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리고 집 안에는 어딜 가나 달콤한 사과 향기가 흥건했다. 몇 달 전 숲 속에서 희한하게 생긴 사과를 먹었다가 매운 맛에 호되게 데이고, 또 그 사과가 내 갈기와 꼬리 색깔을 웃기게 변화시켰었다. 제코라는 내가 가져온 표본을 꽤 맘에 들어 했던 것 같지만, 어쨌든 이 나쁜 기억 때문에 사과는 몇 달 동안 사과는 입에 댈 생각도 안 했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전의 나빴던 기억이 치유되고도 남을 법 했다.


    애플잭은 애플잭보다 나이를 좀 더 먹었음직한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숫말을 본체만체한 체 나를 주방으로 끌고 갔다. 아마도 아까 그 포니가 애플잭이 말한 오빠였을 것 같다.


    "할매요. 이 마녀 언니에게 식사 대접좀 해야 되지 않겠심꺼?"


    애플잭은 부엌 쪽에 대고 소리쳤다.


    "잠깐. 잠깐."


    나는 발굽을 절래 절래 저으며 말했다.


    "저.. 미안한데, 난 좀 바빠서.. 숲 관리 때문에.."


    아이구... 멋진 변명이다 선셋. 숲 관리라니.. 아주 급하게 둘러대는 변명 같지도 않고 딱 좋구만 좋아.


    "울 집에 온 이상 빈 속으로는 못 보내제!"


    할머니의 말이었다.


    "쫌만 식탁에 앉아서 기다리라. 곧 내 따듯한 식사 해서 내오긋다. 하루 죙일 숲에서 싸돌아다닌 울 문디 가스나 밥도 쫌 묵여야 될 테니..."


    나는 코웃음을 치고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이거 상황이 심각하구만. 웬 꼬마를 잘 못 도와준 덕분에 오랜만에 따뜻한 음식을 배 터지도록 먹어야 될 팔자라니... 아주 최악의 팔자인걸. 안 그래?


    "그럼 언니야는 가족들과 함께 숲 속에 사는 겁니꺼?"


    애플잭이 내 옆자리에 앉으며 질문했다.


    "난 날 때부터 가족이 없었어. 넌 그나마 운이 좋은 줄 알아. 암만 네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어도 너를 걱정해주는 가족이 여전히 남아있으니까."


    지금껏 살면서 나에게 있어 가족 같은 포니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있는 줄 알았지만 셀레스티아가 캐이댄스를 덜컥 입양하고 나서부터야 그게 허튼 생각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셀레스티아에게 있어 가족의 기준은 일단 알리콘이고 볼 것. 그것 하나다.


    "지도 압니더.."


    애플잭은 식탁을 내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무이랑 아부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로 집에서 뛰쳐나와 도시로 간 적이 있심더. 지에게 안 맞는 데에 억지로 껴 보겠다고 쌩고생을 별 다 했지예. 근데 갑자기 몬 일이 터진 줄 아십니꺼? 하늘 위로 갑자기 눈부신 빛이 확 하고 퍼지는 겁니더! 그때서야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됐지예. 그 때 제 큐티마크도 생겼슴더."


    "하늘 위로 눈부신 빛?"


    나는 한 쪽 눈매를 곧추세웠다.


    "무슨 무지갯빛 비슷했던 그거?"


    "언니도 보셨슴꺼?"


    "봤고말고.."


    나는 코웃음을 쳤다.


    "내 다리가 이 모양 이 꼴이 되기 바로 직전에 본 게 그거였거든. 기억에 남을 수밖에."


    나는 반불구가 된 한 쪽 다리를 들어보았다.


    "뭐 나도 그 무지갯빛 덕을 좀 본 것 같네. 이제 난 날 멋대로 조종하는 포니 하나 없는 자유의 몸이 됐으니까. 이제 내가 원하는 대로 마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애플잭은 나를 짠한 눈으로 보더니, 갑자기 와락 나를 껴안았다.


    "마녀 언니.. 가족도 없이 그런 일도 당하고... 그동안 힘드셨지예?"


    "괜찮아. 괜찮아. 괜히 나 걱정할 필요 없어."


    나는 애플잭의 머리를 다독거려주었고, 애플잭은 알아서 포옹을 풀었다. 다행이다. 얘를 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던 참이었으니까. 세상에.... 무슨 망아지가 이렇게 힘이 장사지? 빠루로도 못 떼어낼 것 같은걸..


    그 때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왔다. 애플잭의 오빠도 할머니를 도와 여러 음식 접시들을 매고 나왔다.


    "자. 저녁 묵자. 사과 시나몬 빵이랑, 구운 사과, 직화구이 사과 샌드위치, 당근빵 이랑 또....... 사과 쏘스도 있내. 많이들 먹으레이."


    "누가 사과 농장 아니랄까봐..."


    나는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사과 농장에서 살라믄 사과 좋아하는 법부터 베워야 하는 기라."


    할머니의 말씀이었다.


    ------------------------------------------------------


    저녁 식사는 별 소란 없이 끝났다.


    이거 하난 인정해야겠다. 스미스 할머니는 내가 만난 중 최고의 요리사라는 사실을. 도대체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미스 할머니는 식사에 쓰는 접시를 구석구석 옆의 다른 접시가 비칠 정도로 잘 닦아놨었고, 또 위에서 소개한 음식들을 제외하고도 사과 타르트, 설탕에 절인 사과, 다진 사과 등의 요리들을 어스 포니의 단단한 두 발굽만 쓰고도 최고의 맛을 냈다.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내가 캔털롯에 있을 때 일류 셰프들이 만든 요리들만 먹었다지만, 여기서 먹은 할머니의 요리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언니야. 글믄 이제 숲으로 돌아가실 겁니꺼?"


    맛있는 식사를 대접받은 대가로 내가 식사한 그릇을 알아서 닦고 있을 때 애플잭이 물었다.


    나는 살짝 생각에 잠겼다. 마녀를 자처하면서 망아지를 구하다니.. 이거 태양을 좀 가리고 마을 수원지에 독을 좀 풀어야 내 마녀 평판이 복구되려나 싶었다. 이래서야 악독한 숲 속의 마녀라기 보단, 그냥 강력한 마력을 가진데다가 겸손하고 고운 마음씨까지 지닌 동네 언니 아닌가...... 그래. 겸손한 까지는 좀 아닌 것 같군..


    "거기가 나사는 데라서."


    나는 어께를 으쓱 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난 오히려 거기가 더 안전하고 말야. 거기에 있으면 날 쫒는 포니들이 날 절대 찾지 못할 테고.."


    "근데 와 도망치시는 겁니꺼? 언니야는 팀버울프도 무지 쉽게 물리치지 않았심꺼? 겁날게 읎으실 것 같은데예?"


    애플잭이 물었다.


    "글쎄.. 어떤 건 숲 속의 괴물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는 법이니까.."


    "하모. 지가 한 실수랑 마주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게 어딨겠노."


    할머니가 냄비를 닦으면서 말했다.


    "딱 보아하니 죄 저지르고 도망중인 색시 같은데, 모 내 평소 같았으면 콱 쫒아내 버렸을 끼다. 우리 손녀가 신세 진게 있어가꼬 짐 못본 척 하는기지."


    "진짜 범죄는 안 저질렀거든요? 그냥...."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할 말을 정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실수를 좀 했어요. 그거 하나는 맞추셨네요. 저도 잡히면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아무 일도 안 당할 수도 있죠. 어쩌면 지금쯤 날 쫒는 포니도 없을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제가 지금 확실히 아는 건 결코 예전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거고, 지금까지 제가 살아오던 삶은 거기서 완전히 끝났다는 거예요...왜냐면... 저한텐 그 삶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 다시 돌아오라고 부탁을 해도 안 돌아갈 거구요."


    "무슨...소립니꺼?"


    애플잭이 머리가 아파오는 듯 찡그리며 질문을 던졌다.


    "전에 네가 말 했었지? 도시는 너랑 안 맞았다고."


    내 말에 애플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랑 비슷해. 지난 몇 년 동안 어떤 높으신 포니를 세상의 전부처럼 여기면서 고분고분 잘 듣는 착한 포니로 살았었지.."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누가 여기 썬 양파라도 가져다 놨나.


    "나도 그 포니에게 있어서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어. 그 생각에 행복했었지... 하지만... 내가 틀렸었어.. 난 그저 그 포니의 실패작일 뿐이었지...."


    할머니도 일하던 걸 멈추고 날 보고 있었다. 좋구만.. 넋두리 하는 데 청중들까지 생기다니..


    "그 포니랑 너희 가족들과의 차이점이 뭔 줄 알아? 네 할머니는 네가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그걸 이해해주고 혹시나 몸을 다치지는 않았는지 걱정까지 해 주지.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니까, 그게 이유야. 너희 할머니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거리에 쓰레기 버리듯 내버리지는 않을 테고, 무엇을 줄 것처럼 가까이서 보여줘 놓고 나중 가서 안 주겠다고 입을 싹 씻어버리지도 않을 거라고."


    나는 말을 마치고 설거지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릇을 하나도 안 깨트린 걸 보니 과거의 상처도 약간은 아문 모양이었다. 전에 셀레스티아를 생각했을 땐 애꿎은 숲 속의 나무 세 그루를 하늘로 날려버렸는데 그게 지금쯤 땅으로 떨어졌을런지나 모르겠다.  거의 태양으로 날려버릴 기세로 던져버렸으니..


    "저기.. 언니는 마녀고.. 숲에서 살긴 하지만.. 언제나 시간 나믄 우리 농장에 꼭 들르소! 꼭 그러셔야 합니더!"


    애플잭이 단호하게 말했고, 나는 그 말에 한 쪽 눈초리를 올렸다.


    "아! 참고로 말해두는데, 할머니표 요리를 묵고 싶으믄 일도 쫌 도와줘야 할 낍니더. 농장 일손은 언제나 부족할 테니 혹시나 일감 떨어질까 걱정은 하지 마이소."


    "하! 감히 에버프리의 마녀에게 노동을 강요할 셈이야?"


    나는 고개를 뻣뻣이 쳐들며 환영 마법을 시전했다. 현란한 불빛이 내 주변에 펼쳐졌고 몽환스러운 느낌의 안개들이 내 망토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울 할매 파이 드시려믄 하셔야 될낀디예..'"


    애플잭이 우리는 이미 볼 장 다 봤는데 지금 와서 분위기 잡으면 뭐하냐는 의미가 담긴 싸늘한 눈초리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반박할 수가 없군.."


    나는 방금 시전한 환영 마법을 다 취소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애플잭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지긋이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폭소를 터트렸다.


    지금의 난 과거 셀레스티아의 제자로 있었던 때보다 더 삶이 충만해진 기분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는 앞발굽을 조금 흔들기만 하면 음식이든, 책이든, 잠 잘 곳이든 모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허전했다.


    무엇 때문에 허전한지 깨달은 나는 힘에 굶주렸었다. 그래. 오로지 셀레스티아를 감복시킬만한 그런 힘 말이다. 나는 셀레스티아가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여주길 원했었고 그것 때문에 한계까지 나를 밀어붙였으나 셀레스티아는 그래주지 않았다. 오로지 다른 포니들을 대하는 것처럼 나와도 거리를 뒀을 뿐..   


    여기 애플 가족의 집에서, 나는 진정한 가족은 어때야 하는지를 보았다. 서로의 눈에 들려고 애 쓸 필요도 없고, 사랑을 얻기 위해 죽을 정도로 노력을 할 필요도 없는.. 그게 진정한 가족이다. 셀레스티아는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 따윈 절대로 주지 않겠지만 말이다.


    내가 아직도 셀레스티아의 수제자였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어디 책으로 가득 찬 탑에 갇혀서 끝도, 의미도 없는 과제들과 시험을 풀어내느라 진을 빼면서 한평생을 낭비하지 않았을까? 절대로 공주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일 없이 그래도 공주와 함께 하는 게 어디냐는 거짓 행복만 가지고 살아가면서 말이다.


    앞으로 셀레스티아의 수제자로 들어가는 포니가 만약 있다면, 나와 같은 착각은 절대 하지 말기를... 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














    앞으로 셀레스티아의 수제자로 들어가는 포니라면 당연히 누구일까요? 다음 화 등장 복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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