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에 청카바 입은 백골단과 같이 교양수업 듣기도 하고,
청량리 맘모스백화점에서 최루탄 종아리에서 터져 도망가다 거기 윤락여성들이 숨겨주기도 하고,
암튼 당시는 행동하는 양심이 대학생중에서도 아주 소수였지요. 워낙 탄압과 감시가 심하고
캠퍼스는 최루가스냄새로 자욱하더라도 학내 시위가 벌어지면 짜증 내는 학생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629때는 양상이 달랐죠. 일단 시위대열이 스크럼짜고(어깨동무) 정문돌파가 되기만 하면 시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고 대다수의 여론이 체육관에서 간접선거로 살인자 전대갈이 또 대통이 된다는 것은 용납이 안되는 상황이었어요.
정말 보도블럭, 돌, 시내화장실변기까지 깨서 무장경찰 깨고 안암동에서 신설동 동대문 시청까지 진군했어요
넥타이부대라고 하죠? 부모님이 어렵게 보내준 대학졸업하고 돈벌어야 하는 그런상황의 선배들도 있었죠. 양심도 재채기나 사랑처럼 숨길 수없는거죠. 이런 시민들이 사무실 박차고 나오며 광장에 모이면서 승기를 잡은거죠.
본인도 폭력시위를 반대합니다.
그러나
광장의 숫자가 줄거나, 줄어드는 조짐이 보이면
폭력진압이 먼저 시작 됩니다.
언론을 통해서 폭력시위가 먼저라고 나팔을 불면서. (시위전문프락치 많아요, 아주 쉽습니다.)
노무현님 돌아가셨을 때
걸어서 제가 졸업한 학교에서 시청까지 걸어갔습니다.
어제도 똑같은 코스를 걸어서 시청까지 걸어갔습나다.
세월은 지났어도
변치 않는 사실은 두가지,
1. 시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
2. 폭력시위는 않되지만 저들이 폭력진압을 시작하는 순간이 저들의 제사날이라는 것. 어제 돌 좀 깨본 아빠들 많이 나오셨고. 단단히 벼르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 꾸준히 모여야 합니다.
이상, 흔해 빠진 아빠님들중 한놈이 씀.
아래 짤 : 얼마남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