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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회사에 출근하기까지는 아직 두시간이나 남았다.
우선 가볍게 시작해볼까.
냉장고를 열어 한 대접 가까이 밥을 푼다.
반찬통을 뒤적거리자 나물 몇가지가 눈에 띈다.
고사리와 미나리, 무생채를 꺼내서 밥 위에 얹는다.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깨를 뿌린 뒤 비빈다.
빨갛고 윤기가 자르르한 밥을 듬뿍 떠서 한 입에 넣는다.
'맛있는건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시금 크게 한 스푼 떠서 입 안에 넣는다.
어느순간 비어버린 대접을 보고 입맛을 다신다.
다시 냉장고로 향한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듬뿍 두르고 마늘 조금 넣고 식빵을 굽는다.
고소한 향내가 품어져 나오고 바삭하게 익은 식빵을 꺼내어 땅콩잼을 바른다.
주스 한잔과 곁들어 입 안으로 넣는다.
시간도 남고 음식도 남지만 배가 부르다.
아침에는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영양제를 입 안에다가 털어넣고 회사에 갈 준비를 한다.
"김대리. 아침은?"
"먹고 왔습니다."
"그래, 자네는 잘 좀 먹어야 해. 좀 팍팍 먹고다녀. 사내놈이 비실비실해선."
기분이 나쁜 소리지만 무시하는 게 최고다.
어차피 보는 사람마다 하는 소리.
나만 보면 밥이 떠오르는지 뭐 좀 먹었냐는 소리도 이제 지겹다.
점심시간.
식판 앞에 쌓인 수북한 밥을 보며 나오는 한숨을 억지로 삼킨다.
크게 밥 한 숟갈을 입에 물고 곁들여져 나온 된장찌개를 삼킨다.
빨갛게 버무린 진미채를 한 입 물고,
육즙을 머금은 장조림을 더해 넣는다.
'맛있는건가.'
슬쩍 옆을 보니 다들 맛있게 먹는다.
그 시류에 동참해 다시금 밥을 먹는다.
늦었다.
이놈의 야근.
피곤한 몸을 소파에 묻고 한숨을 쉰다.
늦었지만, 졸립지만 이대로 자면 안되는 거겠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터벅터벅 옮긴 채 주방으로 향한다.
또 뭘 먹어야 하지?
냉장고 문을 열고 고민에 잠긴다.
채소가 보이니 쌈이나 해먹어야 할까.
버섯을 굽고, 감자를 굽고, 싱그러운 녹색채소를 깨끗하게 씻어 식탁에 올린다.
초록빛 상추에 버섯과 감자를 올린 후, 밥을 한가득 담아 입에 집어넣는다.
우걱우걱, 혹여나 체할세라 꼭꼭 씹어먹는다.
한 입더.
한입더.
대접 가득 놓인 밥을 힘차게 집어넣는다.
쨍그랑.
입 안에 남은 쌈을 우걱우걱 짓이기며, 숟가락을 집어던진다.
저절로 미간에 골이 패이고 머리가 멍해진다.
그 상황에서도 입은 계속해서 음식물을 짓이긴다.
못해먹겠다.
정말 사람 살 짓이 아니다.
하루에 세 번. 그보다 더 많이.
끼니때마다 참는것도 한도가 있는 법.
고문이 따로없다. 정말로 끔찍하다.
말라깽이. 해골.
언제나 자신을 따라다니는 말이었다.
그다지 적게 먹는 편은 아닌데.
운동도 해보고 약도 먹고 영양제도 챙겨보고,
억지로라도 살을 찌기 위해 무조건 먹었다.
위가 늘어나 남들보다 엄청난 양을 먹지만 절대로 살이 찌지 않았다.
일하는 시간,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일을 먹는 것으로 결부시켰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손을 들어 멍하니 응시했다.
뼈밖에 남지 않은 손.
길거리를 지날 때면 자신을 보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회사에서 일할 때면 부실하다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게 싫어서 억지로라도 노력하고 먹고 또 먹지만
살이 찌지 않는다.
온갖 메뉴얼들을 따라하고 트레이닝 받아도 도무지 체중이 늘어나지 않는다.
이렇게라도 뭔가를 먹지 않으면 피골이 상접해 끔찍한 몰골이 된다.
병원부터, 운동부터, 온갖 떠도는 처방들을 다 해봤으나
도무지 진척이 없다.
살기위해 뭔가를 먹지만 이렇게까지 해야하나싶은게 한두번이 아니다.
차라리 자신이 먹는것을 좋아한다면 또 모를까.
자신의 미각은 둔하다.
맛도 잘 구별하지 못하고, 뭐가 맛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느정도의 차이만 느껴질 뿐 미각으로 쾌감을 느낀적은 태어나서 단 한번도 없었다.
맛이 없으니 먹고싶지않고,
먹고싶지않으니 보기만 해도 싫고,
하지만 살아야 하니 싫은 걸 입에 우겨넣고,
억지로 행하니 더더욱 음식이 싫어져서
지금은 밥먹는 행위 자체가 괴롭기만 하다.
그래도, 그래도 살아야지.
한숨을 내쉬며 던져버린 숟가락을 찾아온다.
우걱.우걱.
입안가득 쌈을 싸놓고 기계처럼 씹는다.
응? 이게뭐지?
근무중 인터넷을 켜놓고 습관처럼 살찌는방법에 대해 검색하던 중이었다.
대부분의 글을 자신이 경험했음에도
혹시나 새로운 방법이 나타날까 이리저리 뒤적이던중.
이상한 글을 발견했다.
[100% 살찌는 방법. 급매!! 낚시아님!!]
살찌는방법?
보나마나 낚시글일테지만 클릭해본다.
[우선 주의드립니다.
살은 100% 찝니다.
하지만 부작용은 있습니다.
살이 끝없이 찔 겁니다. 더불어 다른 부작용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 살만 찌면 된다. 이런 분들만 쪽지를 보내십시오.
낚시 아닙니다!!
장난삼아 보내지 마십시오.]
하, 어이가 없다.
살이 100%찐다라.
그렇다면 자신이 왜 고민하고 좌절하겠는가.
인터넷이 널리고 널린 낚시글이라고 생각하고 창을 닫는다.
이런 글일걸 뻔히 알면서도 클릭하는 자신이 더 한심하다.
요 며칠 반복되는 야근에 몸이 뻐근하다.
더불어 체중이 줄었다.
어떻게 해서든 더 먹었어야 했는데,
졸리고 피곤해서 밤에 못먹은 영향이 큰듯했다.
회사에 나가면 잠 좀 재우라며 위해주는척 자신을 비꼬는 말들이 들려오고,
그런 말들이 듣기 싫어
억지로 더 먹어보려고 하지만 좀체 진도가 나지 않는다.
눈앞에 놓인 커다란 양푼을 보며 숟가락을 휘저어보지만
정말 도통 입에 넣고 싶지 않다.
우걱우걱.
의무적으로 입을 놀려보지만 정말 못할 짓이다.
문득 얼마전 본 낚시글이 떠오른다.
쪽지라도 한 번 보내볼것을.
낚시면 또 어쩐가.
아무리 좌절해도 막상 그게 진짜였다면 어쩔텐가,또.
입안가득 놓인 뻘건 밥을 짓이기며
이걸 다 끝마치는대로 다시한번 인터넷을 들어가보기로 한다.
"여보세요. 아까 카톡하던 사람입니다."
"네. 그럼 긴말필요없이 내일 당장 만나죠."
약속이 잡혔다.
아직도 긴가민가 싶지만 아니면 또 어떤가.
이렇게 낚이다보면 언젠가 하나쯤은 걸리겠지.
의외로 낚시글의 주인공은 까다로웠다.
왜 살이 찌고 싶은지, 정말로 쪄도 되는건지,
노력은 했는지,
많은 것을 요구했고 질문을 했다.
그가 원하는걸 다 보내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정성스레 답변을 보내면서도
꽤나 미심쩍었다.
그러다가, 미각에 둔한 점까지 요구하는 그를 보며
확실히 마음을 정했다.
조건은 꽤 명확했다.
무조건 살이 찌고 싶을것.
먹을 것을 갈구하게 될 것.
나중에 두가지 이유때문에 후회하지 않을 것.
절실하게, 목숨과 관련된 부작용이 아니라면 감안할 것.
뭐, 어느것하나 자신과 떨어지지않는 조건에
흔쾌히 약속을 잡았다.
하나하나 내미는 조건에 돈이 목적이라 생각했었건만
의외로 한달치 보약값만도 못한 돈을 받고자 했다.
한참을 얘기하고 카톡으로 대화하고,
그 물건을 받기로 했다.
기이하게도 보통 다른 판매자와 다르게 현장거래만 가능하다고 했다.
왜 택배가 아닌건지 미심쩍었지만
실제로 만난다면 돈만 보내고 사기당할 가능성도 줄어드니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오늘 만나기로 했다.
서울역앞 광장.
멀리 치솟은 시계탑의 초침은 또각또각 움직이고
남자의 앞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엄청나게 살이찐 몰골.
핫도그를 입에 문 채 다가오는 그는
걸음 자체도 힘겨워보여 절로 답답함이 치밀었지만
사뭇 기대감도 일었다.
저런 모습이 되고싶진않지만,
저 사람이 보내준 메일 속 사진에는
자신만큼 뼈밖에 남지않은 모습도 있었던 것이다.
그럼 나도 가능하겠지.
남자는 기대에 부풀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우물우물.
사내는 정신없이 핫도그를 씹으며 고개를 까닥했다.
한참을 씹더니 꿀꺽 목뒤로 넘기고 입을 열었다.
"우선 따라오시죠."
한 모텔방.
대낮부터 남자 둘이서 들어가는 모습에
모텔주인의 의아한 눈초리가 등뒤에 쏟아졌지만
설레고있는 심정에 그딴것은 개의치 않았다.
먼저 방에 들어간 뚱뚱한 사내는 품안에 소중하게 감싸안고 있던 보자기를 펼쳤다.
그 안에는 낡아서 금이 잔뜩 간 흰색 대접이 들어있었다.
정수기에 물을 받아 그 안에 올리더니 사내는 바늘 하나를 든 채
자신의 손을 찔렀다.
피가 뚝뚝 떨어져 투명한 물 사이로 퍼져나갔다.
인상을 살짝 찌푸린 그는 자신보고 앞으로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바늘을 건넸다.
오기 전부터 무조건 믿고 따르라 했던 말을 상기하며
검지손가락을 푹 찔렀다.
따금한 통증이 오가고 물은 점점 선홍빛을 띄기 시작했다.
뚱뚱한 사내는 왠지 초조해 보였다.
그러더니 품 안에서 초콜렛을 꺼내어 대충 껍질을 벗기는 시늉만 내더니
입안에 털어넣었다.
우물우물, 눈이 벌개진 채 한참을 초콜렛을 씹어대다 입을 열었다.
"그때 말씀드렸다시피, 전 부작용 책임 못집니다."
부작용이라.
살이 계속해서 찌고, 먹는걸 찾는다 했던가.
그런 부작용이라면 환영이다.
오히려 그걸 못해서 이리 살고 있지 않은가.
잠자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남자에게 대접의 물을 마실 것을 종용했다.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물을 억지로 꾸역꾸역 삼키자
사내는 대접을 수건으로 말끔하게 닦고 다시 보자기로 감쌌다.
그리고 그걸 건넸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이걸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마십쇼.
여기다가 뭔가를 받아서 마시지도 말고 그냥 간직만 하세요.
그러면 원하시는대로 될겁니다."
이게 끝?
뭔가 너무나도 허무하기에 사기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사내는 말을덧붙였다.
"사기치고자 했으면 그정도 액수 안받습니다.
그때도 말했듯이 믿지 않으면 어쩔수없지만,
전 진심입니다."
사기라 해도 어쩌랴, 이미 각오하고 있는 것을.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장 몇시간만 지나면 느낄겁니다.
다만, 환청이 들리고 환각이 보이고, 이질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 역시 들었다.
그래서 뭔가 이상한 약이라도 먹이나 싶었지만
자신이 먹은건 피가섞인 물뿐이 아닌가.
이제 끝난듯싶어 남자는 대접이 들은 보따리를 감싸들고 일어섰다.
대충 목인사를 한 후 발을 신는데
뒤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왠지 모르게 섭섭하고 난처한 표정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혹시나 만약의 경우입니다만,
오늘 일을 기억하고 계십시오."
만약의경우?
궁금증에 눈으로 의문을 표하자 사내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제가 한말중 거짓은 없으니 믿으셔도 됩니다.
다만... 죄책감갖지 마십쇼."
무슨말인지 묻기도 전에 사내는 남자를 쫓아냈다.
지금도 사기당한건지 아닌지 구별조차 할수없는 남자는 그저 잠자코 나왔다.
쨍쨍한 햇빛 아래에 서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것도 사기 아냐?
참 인생한번 피곤하다 느끼며 걸을음 옮기는데
순간 욱하는 토기가 밀려왔다.
비틀거리던 남자가 가까스레 중심을 다잡고 일어났다.
뭐지?
뭔가 뱃속에서 움직인거 같았는데?
영문을 알 수 없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아침을 대충 건너뛰었더니 배가 고팠다.
키로 현관문을 열며 남자는 생각했다.
보통 집으로 오는길 뭘먹어야 하나 고민하는게 일상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독 후보가 많았다.
거기다 정말 배가 고픈느낌이었다.
이게 정말 사기가아닌가?
아니면 사기더라도 듣기좋은말에 자신이 홀려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건가?
흡사 큰 상처를 입은 이에게 별 거 아니라고 하면 상처가 더디게 느껴지는것처럼?
뭐가어찌됐든
잘된일이라고 생각했다.
이걸로 나갔던 돈몫은 충분히 하는듯했다.
배가 고픈느낌에 밥하기엔 시간이 오래 걸려
일찍 배달되는 피자를 주문했다.
조금뒤 초인종이 울리고 피자를 받아 상자를 열었다.
고스름한 치즈냄새가 퍼져나오고 아직도 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손이 데지 않게 조심하면서 한조각을 들어올렸다.
길게 늘어지는 피자치즈와 도우위에 올려진 온갖 토핑들이 시각을 자극했다.
남자는 크게 한입을 베어물었다.
음?
뭐지?
평소같았으면 그저뜨거운기운과 약간의짭짜름한 맛뿐이었을텐데
묘하게 고소한 맛이 뒤섞여있었다.
정말 사기가아니었나?
아니면 자신이 그렇게 단순한 말한마디에 혹하는사람인건가?
도대체 영문을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뻤다.
뭔가 평소보다 가뿐한느낌으로 피자한 판을 다 해치웠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한참 달게 자던 중 남자는 심장소리에 설핏 잠이 깼다.
자신의심장소리에 잠이깨다니 이해할수없었지만
잠결에 취해 그러겠거니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다시 깊은 잠에 빠질려던 순간
남자의 귓가에서 소리가 울려퍼졌다.
줘!!!!!!!!!
아주 걸걸하고 탁하면서 흡사 칠판에 손톱을 긁는 듯한 쇳소리가 섞인 소리였다.
헉.
벌떡 일어난 남자가 주위를 살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깜깜한 자신의 방 안에는 여전히 자신밖에 없었다.
뭐지? 잠에 취해 꿈을 꾼건가?
악몽이나 가위였나 싶은 남자가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드러누웠지만
이미 정신은 말짱해졌다.
이럴 시간에 뭐라도 먹을까.
먹는 생각을 하자 슬쩍 허기가 치미는게 느껴졌다.
참치와 김치를 넣고 프라이팬에 달달 볶았다.
하얀 쌀밥을 위에 올린 채 같이 볶았다.
얼마 후 불그스름하게 물든 볶음밥을 프라이팬채 상위에 올려두고 먹기 시작했다.
한입. 또한입.
프라이팬에 담겼던 볶음밥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남자는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상했다.
정말로 그딴 의식같지도 않은 게 효과가 있는건가.
억지로 입안에 집어넣었던 예전과 달리 먹는게 그때만큼 역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은 먹고 싶어서 먹을때도 있었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달라진 환경이 정말 너무나도 기뻤다.
요즘은 정말 살 맛이 났다.
"이야, 김대리. 요즘 살 좀 붙었는데? 아주 신수가 훤해졌어."
껄껄 웃으면서 부장이 말을 걸었다.
평소같으면 그저 쓴웃음으로 대처하고 짜증냈을 인사치레가
지금은 그저 기뻤다.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자리에 앉았다.
타닥,타닥,
키보드를 치며 한 손으로는 봉지 안의 과자를 한움큼 집어다가 입에 넣었다.
고소한 감자맛과 짭쪼름한 소금맛이 전신에 퍼졌다.
맛있다.
어째서 예전엔 이 맛을 몰랐을까.
한참을 일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과자가 떨어졌다.
책상을 열고 다른 과자봉지를 꺼내어 봉지를 튼다.
먹는 재미, 먹는 재미 하더니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재미없었는지
뼈저리게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의무적으로 뭔가를 먹어야겠다 싶던 날이 언제인지도 이제 까마득하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고.
이제는 고르기가 힘들 지경이다.
오늘은 치킨에 맥주나 한 잔 해볼까.
치맥,치맥거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아아. 나는 이제 보통 사람이 되었다.
아직도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치킨을 바라보며 절로 입맛을 다신다.
노란빛 튀김덩어리를 호호 불며 한 입 베어물자 바삭하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촉촉한 살덩이가 입안을 채운다.
우물우물.
살짝 막히는 목을 시원한 맥주로 축이며,
이번엔 불그스레 물든 양념치킨을 손에 든다.
달달하고 매콤한 양념이 입 안에 퍼지고, 육즙이 몸 전체로 퍼진다.
맛있다, 맛있다.
정말 맛있다.
치맥과 함께 즐길려고 틀어놓은 영화는 어느샌가 기억에서 잊혀지고,
정신없이 치킨을 흡입한다.
보글보글.
커다란 전골냄비 위에 올려진 찌개가 기포를 방출하며 끓어오른다.
퇴근 후, 술한잔 하자며 잡는 동료들에게 거절할까 생각도 했지만,
회사 근처 맛있는 부대찌개집이 있다며 유혹하는 통에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따라왔다.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끓는 불그스름한 국물을 바라보자 잘한 듯 싶었다.
"자, 자. 건배하자고!"
잠시 국물에 정신이 팔려있다 건배하자는 목소리에 퍼뜩 깨어나 자신도 잔을 든다.
씁쓸한 소주를 한 입에 넘기고 다시금 찌개에 시선을 고정한다.
"여기 아주 맛있어, 이제 먹자고."
이 집을 소개했던 동료가 자신의 접시 가득히 국물을 퍼주었다.
숟가락 가득 햄과 소세지를 올리고 입 안에 넣는다.
얼큰한 국물이 속을 타고 들어가고, 탱탱한 라면 면발을 들어 흡입한다.
허겁지겁, 자신의 접시에 담긴 찌개를 먹어치우다 슬쩍 다른 사람의 접시를 확인한다.
냄비에 남겨진 찌개의 양도 확인한다.
남자의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처음엔 슬쩍 눈치보며 먹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인채 정신없이 흡입한다.
묘한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직장동료의 눈은
이미 남자에게는 안중에도 없다.
쩝,쩝,쩝. 우물우물.
하얀 와이셔츠는 빨간 국물이 범벅이 된 지 오래,
같이 먹던 동료들의 젓가락과 숟가락도 놓인 지 오래,
하지만 남자는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먹기에도 바쁘다.
이걸 다 먹고 밥도 볶아먹어야지.
저 빨간 국물과 남은 햄과 함께, 라면과 밥을 짓이겨 볶아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눌어붙은 누룽지를 숟가락으로 긁어먹는것도 일품이겠지.
흐흥, 남자는 생각만 해도 쾌락이 느껴져 잘게 몸을 떨며 정신없이 흡입했다.
줘!!!!!!!!
잠결에, 까끌까끌한 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진다.
뭐지? 궁금했지만, 너무 졸려서 무시한 채 다시 눈을 감는 순간,
줘!!!!!!!!!!!!!!!!
칠판을 긁는듯한 쇳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울려퍼졌다.
헉. 남자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자니,
다시 거친 소리가 울려퍼진다.
줘!! 줘!!! 줘!!!!!!
찌ㅉ찌찌찌찌ㅉ찌찌찍! 줘!! 줘!!!
흡사 테이프를 되감는 소리도 들리고, 계속해서 한 단어가 반복된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칠판을 긁으면서 자신의 귓가에서 소리치는 듯하다.
두 손으로 귀를 막아보지만, 소리는 여전히 중구난방으로 자신의 귓가를 요동친다.
헉,헉.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머리가 팽글팽글 돈다.
토기가 저절로 치밀어 오르고, 심장이 터질것만 같다.
양 손으로 귀를 막으며, 본능적으로 침대를 내려온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졌지만, 몸은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반은 걷고, 반은 기어가며 남자는 이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인다.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공간이지만, 불을 킬 생각도 못한 채 기어간다.
쿵,쿵 여기저기 부딪치지만 느낌 하나 없다.
화악, 주황색 불빛이 주변을 비추고 남자는 미친듯이 손을 움직인다.
빨간 토마토를 정신없이 먹어치우고, 계란을 바닥으로 깨 날것을 죽죽 빨아먹는다.
미리 통에 넣어놨던 나물을 손으로 집어 제대로 씹지도 않고 목구멍 뒤로 넘긴다.
통으로 넣어놨던 빨간 김치를 찢지도 않고 정신없이 뜯는다.
우걱,우걱.
지금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인지조차 못하지만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딱 하나다.
맛있다,맛있다.
더,더.더.
맛있다,맛있다.
얼굴 주변은 갖가지 양념으로 범벅이 되고,
주변은 음식물 잔해로 아수라장이지만 깨닫지 못한다.
한참을 정신없이 먹어대던 남자가 이내 멈칫하더니
바닥으로 쓰러진다.
쿵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지만 남자는 미동조차 없다.
"자, 자. 건배!"
"건배!"
잔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퍼지고, 사람들이 저마다 술을 들이킨다.
사람들을 따라서 잔을 부딪치고 남자도 소주 한잔을 비운다.
"이야, 김대리. 진짜 이제 몰라보겠는데?
근데 너무 살이 찐 거 아냐?"
"그러게나 말이에요. 김대리님. 너무 쪄도 보기 안좋아요."
옆에서 뭐라뭐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만 대꾸할 마음도 채 생기지 않는다.
지글지글, 불판 위에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는 고기가
도대체 어떤 맛일지 얼마나 맛있을지 신경쓰기에도 바쁘다.
그리고 살짝 익혀진 느낌이 들자 젓가락을 들어 고기 세네점을 집어 한입에 넣는다.
우걱우걱.
맛있다,맛있다.
몇 번 씹다 목구멍으로 꿀꺽 넘기고 다시금 고기를 집어든다.
분위기가 싸하다.
다른 테이블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회식을 즐기지만,
남자의 테이블만은 서로 눈짓만을 한 채 잔을 비운다.
고기가 채 익기도 전에 몇점씩을 집어 끝없이 먹기만 하는 김대리를 보며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회사 내부에 김대리가 좀 이상해졌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정말로 사람이 바껴도 유분수지.
삐쩍 말라서, 속칭 해골, 스켈레톤 등등의 소재로 뒷담화에 주로 오르곤 했던 김대리가
요즘은 살이 부쩍 올라 통통한 체형이 되었다느니, 그 살과 함께 식탐이 엄청나졌다느니 별별 소문이 돌긴 했지만
해도해도 심하다.
첫잔만을 함께 비운 채, 익지도 않은 고기를 거의 흡입하다시피 하며,
김치와 고기기름으로 범벅이 된 입을 닦지도 않고,
종국엔 밑반찬까지 싹싹 혀로 핥는 모습에
모두 입맛이 떨어져 그저 술잔만 비운다.
십오분.십분.오분.삼분.
남자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시계만을 바라본다.
조금만, 조금만 더.
진짜 못된 새끼들 같으니라고.
업무시간에 먹어봤자 얼마나 먹는다고 아예 못먹게해.
남자는 치밀어 오르는 욕들을 중얼중얼거리며 점심시간만을 기다린다.
째깍, 초침과 함께 시계는 열두시를 가리킨다.
벌떡 일어난 남자는 정신없이 지하식당으로 달려간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워 계단을 정신없이 뛰어가는 남자의 귓가에 계속해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줘.줘.줘.줘.줘.줘.줘.
예전에는 잠결에만 들렸던 목소리가 이제는 뭔가를 먹지않으면
끊임없이 귓가를 울려퍼진다.
남자의 머리한구석 제대로 돌아가는 사고 안에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지만
이내 치밀어오르는 식욕에 어느샌가 잊혀진다.
자기 안에 뭔가가 있으면 어떤가,
뱃속에서 꿈틀거리면 어떤가.
먹는 순간의 즐거움이 있다면, 그 맛이 있다면 다 괜찮다.
먹어야 한다.
따끈따끈한 쌀밥에 빨간 제육볶음.
상추에 밥과 고기를 올리고 마늘과 쌈장을 가득 올린채 입안가득 넣고 우물거린다.
맛있다,맛있어.
정말 맛있다.
허겁지겁 정신없이 먹어대는 남자를 주변 사람들이 멍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이젠 그 시선조차 느끼지 못한다.
더, 더먹어야해. 점심시간은 한시간밖에 되질않아.
지금 먹지 않으면 퇴근해서야 먹을 수 있어.
남자의 머릿속은 저 생각들이 전부 잠식해 주변을 볼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질린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 왠지 안쓰러운 생각에 동료 하나가 다가간다.
"이봐, 김대리. 천천히 먹으라고."
대꾸도 없지만, 씩 웃으면서 앞자리에 앉는다.
"진짜 맛있게먹네. 그렇게 맛있어? 나도 제육볶음 먹을걸 그랬나."
슬쩍 젓가락을 들어 김대리의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으로 넣는 순간,
고개를 숙인 채 음식을 흡입하고 있던 남자의 고개가 들린다.
움찔, 붉게 충혈되어 핏발이 서 있는 남자의 눈을 보며 동료의 몸이 굳어졌다.
흡사 튀어나올마냥 눈을 커다랗게 뜬 남자의 눈이 점점 더 붉어졌다.
실핏줄이 터질듯 핏빛으로 가득 찼다.
그 괴기한 모습에 아무 동작도 못한 채 굳어있는 동료를 보며
남자가 괴성을 질렀다.
ㄱ$@갸#%꺽@^끼$@끽@!!!!!
알아듣지 못할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남자가 식판을 내던졌다.
우당당탕, 챙그랑!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퍼지고 남자는 동료에게 달려들었다.
어쩔 줄 모른 채 굳어있던 동료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내지르고 몸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 어이없는 광경에 굳어있던 사람들이 그제서야 달려들어 말리기 시작했다.
말리는 이들을 믿지 못할 괴력으로 뿌리치며 한참을 난동을 피우던 남자가
시간이 좀 지나서야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졸지에 봉변을 당한 이가 주변의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가고,
놀란 이들이 남자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자,
잠시 가만히 있던 남자가 다가오는 손들을 뿌리친채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식판에서 떨어진 음식물들을 손으로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 미친듯한 모습에 주변에 있던 이들은 소름이 돋는걸 느꼈다.
차마 말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채 남자는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내렸다.
히죽.히죽.
이제 참을 필요가 없다.
먹지 못해 괴로워할 필요도, 목소리에 겁먹을 필요도 없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게."
힘들게 들어간 회사였으나, 지금 당장은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 그저 기뻤다.
뭘먹을까. 시간이 많으니 먹고싶은걸 다 먹어야지.
탕수육을 시킬까.
바삭바삭한 튀김에 새콤한 양념을 묻혀 먹는다면 얼마나 맛있을까.
아니면 떡볶이를 시킬까.
쫄깃한 떡에 매콤하고 달달한 양념을 양껏 묻혀 먹는다면,
그 위에 치즈와 오뎅까지 한입에 넣는다면 아무것도 부럽지 않겠지.
아, 곱창도 맛있겠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노릇한 걸 집어 한입에 넣으면
쫀득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풍기겠지.
멍하니 먹을 걸 상상하자 남자의 입에서 침이 뚝뚝 흘렀다.
쓰읍, 손으로 대충 침을 닦아내고 남자는 책자를 보며 번호를 꾹꾹 눌렀다.
깜깜한 방 안.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방 한구석에서 묘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쩝쩝. 우걱우걱. 꿀꺽.
한참을 어두운 방구석에서 뭔가를 먹어대던 이는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그제서야 방 안이 환히 밝아졌다.
방은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이리저리 널부러진 피자박스와 치킨상자들,
갖가지 그릇들과 먹다 남은 잔해들.
비틀거리는 몸으로 책상위에 놓인 배달책자를 향해가던 남자의 몸이 순간 멈칫했다.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비춰졌다.
기름이 번들거리는 얼굴.
채 닦지 못해 양념이 범벅된 입가.
뒤룩뒤룩 살이 쪄 예전의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모습.
멍하니 한 팔을 들어보였다.
출렁출렁한 살들이 힘없이 늘어졌다.
이게 뭐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쓰레기우리같은 방 안이 한 눈에 들어왔고,
그제서야 고약한 악취가 났다.
욱, 토가 치밀어 올랐다.
그 자리에서 방금 먹은 것들을 토해냈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저절로 입에서 욕지기가 치밀었다.
비틀비틀 일어난 남자가 전화기를 들고 음식을 주문했다.
귓가에는 끊임없이 테이프 늘어지는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줘, 줘 라는 쇳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한 손에 족발을 들고 한 손에 막국수를 들어올린 채 남자는 입안으로 끝없이 집어넣었다.
젓가락은 던진 지 오래, 조금이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많이 먹기 위해 정신없이 손을 움직였다.
맛있었다. 정말 맛있었다.
배고파. 더 먹어야 해.
조금이라도 더, 더.
머리 한구석에는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쩝쩝쩝.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억누른 채, 하염없이 음식을 먹던 남자가 들고있던 커다란 족발뼈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각오했는데, 살이 찌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든 괜찮다 여겼는데.
이게 어찌 사람 사는 거냔 말이다.
자신의 몸 속에 든 것이 끔찍하기 그지 없었다.
어헝헝헝.
남자는 그대로 음식들 위에 엎드린 채 오열했다.
배고프고 맛있고 그 느낌이 너무나도 끔찍했다.
먹고 싶지 않았다.
정말 그만 먹고 싶었다.
그럼에도 너무나도 먹고 싶어서 끔찍했다.
밥통에 온갖 반찬들을 넣고 비볐다.
한숟갈 크게 퍼먹으며 남자는 생각했다.
그 때 그 사내의 말을.
"오늘 일을 기억하고 계십시오."
그게 그런 뜻이었나.
그 때 그 뚱뚱했던 사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나기 전 보여준 말라깽이의 예전 사내의 모습도 떠올랐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의 말라비틀어진 예전 모습도 떠올랐다.
한참을 퍼먹던 남자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이 괴로운걸, 이 미친걸, 남에게 떠넘겨야 하는건가.
자기 뱃속에 무언가가 있다.
이건 음식을 맛있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살이 찌게 해주는 것도아니고
그저 괴물이다. 괴물인걸 알면서 남한테 떠넘겨야 하는건가.
이런 자조감 속에서도 허기가 치밀어 올라 다시금 숟가락을 들어 밥을 퍼먹는다.
낄낄낄낄.
뱃속의 무언가가 웃는 듯한 느낌이 난다.
아니, 느낌이 아니다.
이건 웃고 있다.
다시금 토기가 치밀어 올라 그자리에 엎드려 토를 한다.
한참을 눈물과 함께 쏟아내다가, 다시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는다.
남자의 눈이 충혈된다.
이건.
사람 사는게 아니다.
쨍그랑.
입 안에 남은 밥을 우걱우걱 짓이기며, 숟가락을 집어던진다.
저절로 미간에 골이 패이고 머리가 멍해진다.
그 상황에서도 입은 계속해서 음식물을 짓이긴다.
못해먹겠다.
정말 사람 살 짓이 아니다.
"죄책감 갖지 마십쇼."
히죽.히죽.
사내의 마지막 남은 말이 이것이였던가.
이 말이 그 사내의 마지막 남은 죄책감이였던가.
낄낄낄.
난처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던졌던 사내의 말을 떠올리며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타닥.타닥.
[100% 살찌는 방법. 급매!! 낚시아님!!]
한참을 키보드를 타닥거리던 남자가 이내 손을 떼고 마우스를 클릭한다.
자신의 글들이 잘 올려져있는지 확인하고,
의자에서 내려와 털썩 주저앉는다.
허겁지겁 눈앞에 놓인 음식물들을 입안으로 넘긴다.
카톡,카톡.
남자의 핸드폰이 번쩍거리며 알람소리를 냈다.
히죽히죽 웃으며 남자는 핸드폰을 확인한다.
그 상황에서도 입은 끝없이 움직인다.
맛있다,맛있어.
허겁지겁 먹으며 남자는 답장을 보낸다.
타닥.타닥.
어떤 부작용이든 감수하시겠습니까?
보내자마자 날라오는 긍정의 답장에 남자는 히죽 웃는다.
타닥.타닥. 쩝쩝.
좌판을 누르는 소리와 먹는 소리가 겹쳐 괴상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뱃속의 그것이 낄낄거리고 웃는 소리까지 겹친다.
이걸 먹고는 뭘먹을까?
햄버거? 피자? 치킨?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먹을 것이 떠오른다.
히죽,히죽.
맛있다,맛있어.
괴로워도 맛있다. 토할 것 같아도 맛있다.
낄낄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진다.
맛있다,맛있어.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을만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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