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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80203
    작성자 : 수위아저씨
    추천 : 36
    조회수 : 3904
    IP : 116.255.***.161
    댓글 : 18개
    등록시간 : 2015/05/28 00:13:46
    http://todayhumor.com/?panic_80203 모바일
    [자작] 죽은 자의 두려움
    옵션
    • 창작글
    나는 죽었다. 정확히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죽었다. 

    살아있을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죽고 나니 그런 두려움은 다 의미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친구를 만났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얘도 죽은 것 같다. 친구와 나는 살던 도시, 혹은 그 외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놀았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졸립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런 감각이 없는 것 같았다. 


    언젠가 들은 귀신이야기처럼 사람들을 놀래켜볼까 싶었다. 조각공원에 가서 사진 찍는 연인들 사이에 끼어들어봤다. 반응을 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사진에 찍히지 않은 것 같다. 조금 시시했다. 

    내가 좋아하는 샤이니 오빠들의 녹음실에 갔다. 여기서 장난치고 친구가 좋아하는 박효신 오빠의 녹음실도 가볼 계획이다. 

    종현 오빠가 노래 부를때 옆에서 따라 불러봤다. 일부러 귀신소리처럼 "이이이이~" 소리도 내봤다. 역시 안 들린 모양이다. 

    어쩌면 귀신이 나타나고 그런건 다 거짓말같다. 아무리 해도 안 들리고, 안 보인다. 


    친구는 집에 가 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엄마, 아빠, 여동생이 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왠지 펑펑 울고 있을 것 같아 가기 미안했다. 

    그런데 친구 손에 이끌려 막상 집으로 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다들 어디 갔나 싶어서 기다려봤다. 며칠이 지나도록 가족들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쳐 친구와 여행을 계속하기로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여행이 지루해질 때쯤 친구에게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귀신에게 "지친다"의 개념은 원래 없다. 육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가 점점 지쳐하는 것 같았다. 귀신 주제에 호흡도 거칠어지고 안색도 어두워졌다. 

    그런 친구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꼈는데... 나 역시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기운이 있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한발 내딛기가 무겁고 고개를 돌리기도, 손을 들어올리기도 무겁다. 그래, 이건 몸이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이끌고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기어가다시피 어디론가 향했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여행길에 여러 귀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중 한 귀신의 이야기가 뒤늦게 떠올랐다. 왜 그 이야기를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귀신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였다. 어딘가 빈티지한 교복을 입은 빡빡머리 남자애였다. 그 귀신이 했던 말, 대충 이랬다. 

    "사실 천국이나 지옥, 환생같은 건 없어. 죽은 자는 산 자의 틈에서 산 자들의 기억을 먹고 살아가는거야.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죽은 자는 더 오래 살아갈 수 있게 되지. 그리고 죽은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줄어들면, 죽은 자의 삶도 끝나는거야. 그렇게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씩 줄어들면 죽은 자는 생명력을 잃게 되다가,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면 죽은 자는 사라지는거야. 사라진 이후의 다른 세계는 없어. 그냥... 없어지는거지"

    "나는 35년전, 5월 어느날 죽었어. 나 역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주 끔찍한 날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날 죽었다고 해. 나 역시 너희처럼 친구들과 같은 날 죽었지. 어쩌면 내가 35년간 죽은 자로 살아갈 수 있는건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고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나도 예전같지 않아. 여기서 한발 내딛는 것도 어려워. 그나마 겨우 너희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건 아직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야. 아마 엄마와 아빠, 누나가 아닌가 싶어"


    그 귀신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나니 어디론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서울 광화문으로 향했다. 역시 엄마와 아빠는 그곳에 있었다. 친구의 부모님도 그곳에 있었다. 초췌해진 얼굴로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죽은 자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그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모두 죽으면 사라지게 된다. 아마 오래 산 사람이 죽어서도 오랫동안 기억을 먹고 살다 사라지면, 미련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내 친구, 그때 그 남자아이. 이제 겨우 17년, 18년 살았을 우리는 사라지는게 두렵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구경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 그런데 대체 왜, 벌써 이렇게 약해진 것일까?

    "삶을 오래 누린 사람일수록 더 적은 기억만으로도 죽은 후 삶을 이어갈 수 있어. 하지만 어린 아이는 더 많은 산 자의 기억을 요구하지. 갓난 아기가 죽으면 며칠 못 버티고 사라져. 아마 너희가 자연사 하거나 했다면 몇 주 안에 사라졌을거야. 하지만 1년 넘게 버틸 수 있었던 건 너희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지. 내가 35년을 버틴 것? 물론 나 역시 기억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야. 하지만 나도 이제 힘들어. 아마 나도 곧 사라지게 될 거야"

    모든 이야기가 떠오르자 나와 내 친구는 광화문 복판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귀신 주제에 눈물이 난다. 이렇게 사라지긴 싫은데, 사라지게 하려는 시선이 느껴진다. 광화문에 있는 건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광화문을 떠날 수 없었다. 그 시선을 참아내고 있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떠날 수 없었다. 




    멀리서 옆반 친구가 오고 있다. 몇 명의 친구들이, 아마 우리와 같은 심정으로...무거운 몸을 이끌고... 광화문으로 오고 있다. 

    457338_2792_5618.jpg


    --------------------------------------------------

    '여고괴담4:목소리'에서 모티브를 차용했습니다.




    문제시 자삭할게요.
    수위아저씨의 꼬릿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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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GC] NO.1161 篠崎愛 Ai Shinozaki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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