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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80138
    작성자 : 미카엘의노래
    추천 : 11
    조회수 : 2442
    IP : 211.205.***.43
    댓글 : 6개
    등록시간 : 2015/05/25 22:45:20
    http://todayhumor.com/?panic_80138 모바일
    단편 - 문경십자가 살인사건 6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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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세뇌
     
     
    땅이 그 일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창세기 : 411)
     
     
     
     
     
     
    햇살이 따스한 어느 봄날 오후. 태수는 천연요새를 방불케 하는 자신의 신전 마당에 난 잡초들을 제초기로 정리하고 있다. 흥얼흥얼거리는 그의 입가에서는 알 수 없는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뒷산을 타고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땀이 맺힐 새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그는 마당을 정리 한 뒤 정문 입구를 따라 좌우로 듬쑹듬쑹 일렬로 심겨져 있는 어린소나무들을 가지치기한다. <뭐든지 제때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아랫것들은 빛을 받기 힘들어 살수가 없게 되는 법이야. 이 가지치기라는 것은 인간사에 있어서도 꽤나 중요한 것들이지.> 태수는 커다란 가위를 싹둑싹둑 거리며 중얼거린다.
     
    작업을 마친 그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기지개를 켜고 한결 깨끗해진 마당을 스윽 훑어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뒤 공구들을 챙겨 창고를 향한다. 창고 한가득 쌓여 있는 그의 작업공구들이 주인을 반기는 듯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들과 각종 제초기들, 그리고 대형 가위들과 망치들이 마치 새것 인 듯 마냥 깨끗이 씻긴 채 정리 정돈되어 있다. 깔끔한 그의 성격을 반영이라도 하듯······.
     
    태수는 그 중 못뽑이와 중간사이즈의 망치를 하나 골라 든 뒤 거실을 향한다. 지하실로 향하는 입구에 그것들을 내려놓은 뒤 탁자에 놓인 영국식 귀족풍 찻잔에 홍차를 한가득 따르고 잔을 든 채 대형유리로 된 거실 창밖을 응시한다.
     
    <아버지.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저는 오늘 아버지께서 주신 새로운 생명을 그들에게 하사하여 비로소 온전한 아버지의 아들로서 다시 태어나게 하겠습니다. 그들의 사명을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 바치겠나이다.>
     
    태수는 극단적인 기도를 되새기며 지하실 문을 열어 제치고 그 살벌한 발걸음을 옮긴다. 발걸음에 박자를 맞추듯 지하실 벽면에 부딪히는 망치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계단을 타고 울려 퍼진다. 열세 번째 마지막 계단을 내려 온 태수는 오른손에 쥔 망치의 목 부분을 왼손에 툭툭 치며 전방을 주시하고 걷는다.
     
    허리춤에 꽂아 놓은 못뽑이가 형광등 불빛에 반짝이며 곧 있으면 다가올 신고식에 설레는 듯 그 고부라진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앙탈을 부리는 듯하다. 지하실 바닥에는 <HC-FA>라는 스티커가 붙은 손바닥 크기정도의 빈병들이 널려져 있다. 시체를 방부 처리하는 <포름알데히드>를 제거하는 약물이다. 포름알데히드는 흡입할 경우 현기증이나 두통이 발생하며, 장시간 노출되면 정서불안, 기억력 상실, 정신력 집중에 장애를 가져오므로 <HC-FA>는 태수가 자신의 작품에 쏟은 나름 첫 번째 애정이라 칭할만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기계음을 따라 발길을 옮긴다. 대형 커튼을 우측으로 슬어 넘기자 믿기 힘든 광경이 연출된다. 피로 얼룩진 12개의 대형나무십자가. 4명의 생존자. 그 밑으로는 8개의 관이 굳게 닫혀있다. 살아있는 4명의 건강상태는 비교적 양호해 보이나 그들 눈동자의 초점은 하나같이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을 지경으로 보인다. 마치 썩어가는 좀비의 두 눈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태수의 입이 열린다.
    - 안녕하시오. 간밤에 별고 없으셨소? 오늘은 그대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왔다오. 오늘은 바로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고 <아케론 강>을 건너온 여러분들이 다시 태어나게 될 날이라오.
     
    태수는 첫 번째 생존자에게 다가간 뒤 그가 묶여 있는 십자가를 눕힌다. 그리고 그의 왼손 부근에 다가간 뒤 손을 뚫고 반대편으로 튀어 나온 녹이 슬어버린 대형 못을 밑에서부터 위로 망치질하기 시작한다.
    ...
    그리고 못뽑이를 이용해 솟아오른 못의 머리를 잡고 힘껏 뽑아낸다. 무심한 눈을 내려 깔아 그 장면을 바라보는 그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마치 자신의 손이 아닌 것 마냥······. 그리고 태수는 나머지 못들도 뽑아내기 시작한다.
     
    못이 뽑혀나간 그의 손바닥과 아킬레스건의 뒷부분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태수는 미리 준비해 온 귀걸이 모형의 악세사리를 그의 아킬레스건 양쪽에 걸어준다. 그리고 그의 가슴팍에 낙인찍혀져 있는 문양과 악세사리의 문양을 비교해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나키스트문양이 그려져 있는 그는 자유로워진 손을 이용해 머리에 박혀 있는 가시면류관을 뜯어낸다. 그리고 상체를 새운 뒤 십자가형틀에서 내려와 태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며 말한다.
    - 닉네임 <아이신> 주인님을 뵙습니다.
    - 그대는 오늘부터 코드명<A>로 새로운 사명을 받고 이 땅에 태어난 그리스도의 전사로다. 그대 눈앞에 있는 나를 새로운 주님으로 받들 것을 명하노니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바라노라.
    - 알겠습니다. (). 코드명<A>는 고개를 들어 태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태수는 코드명<A>를 시작으로 차례대로 생존자들을 풀어주기 시작한다.
     
    - 닉네임 <미카엘> 당신은 코드명<M>으로서 본인을 도와 주님의 사역에 평생을 바쳐야 할 것이오.
    - 닉네임 <카오스> 당신은 코드명<C>로서 본인을 새로운 주님으로 모셔야 할 것이오.
    - 닉네임 <야후리> 당신은 코드명<Y>로서 다른 이들보다 성경을 가장 빨리 다 외운 그 영리한 두뇌를 주님께 바치시길 바라오.
     
    코드명<Y,M,C,A> 이들을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기독교 청년회)>의 약자로 삼은 태수는 자신의 작품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작명능력에 흠뻑 취한 채 미소 짓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태수를 향한 증오로 가득 찼던 지하실 내부는 그의 세뇌로 인해 그들을 누구보다도 더 믿음직스러운 추종자로 바꾸어 놓았다. 태수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 지하실 입구에서 마치 아우라처럼 넘쳐 나오는 듯 해 보였다. 태수는 그들의 아킬레스건에 그들의 가슴팍에 새겨진 문양과 같은 악세사리를 걸어준다.
     
    코드명<Y>에게는 십자가 문양의 귀걸이를, 코드명<M>에게는 각도자와 컴퍼스가 겹쳐진 모형의 귀걸이를, 코드명<C>에게는 다윗의 별, 코드명<A>에게는 아나키스트문양의 귀걸이를 걸어준다. 태수를 향해 무릎 꿇고 있는 그들의 뒤꿈치 위로 순금으로 이루어진 악세사리들이 형광등 빛을 반사시켜 노란빛을 띠고 있다. 태수는 지하실 한쪽 벽에 설치 된 대형 냉장고 문을 연 뒤 그곳에서 10리터짜리 생수통을 4개 가져와 그들 앞에 늘어놓는다. 생수통에는 각각의 이니셜들이 붙어있다.
     
    그리고 태수가 말한다.
    - 나는 그대들을 사도들이라고 칭하겠소. 사도여러분. 지금부터 <세례>. 아니, <혈례>를 시작하겠소. 본인이 하사받은 이니셜대로 각자의 물통들 앞에 서시오. 그 물통에 든 내용물은 수개월간 그대들이 흘렸던 혈액이오. 그대들은 그대들이 흘렸던 그 피로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게 될 것이며, 이것으로 나와의 혈서에 도장을 찍게 되는 것이라 여기면 된다오.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이니셜이 부착된 물통의 뚜껑을 연 뒤 그것을 통째로 뒤집어쓴다. 걸쭉한 검붉은 액체가 흘러나와 그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적신다. 순간 확 풍겨오는 피비린내에 태수는 잠시 미간을 찌푸려 보지만 이내 익숙한 듯 평온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태수의 눈앞에는 마치 가죽을 벗겨 놓은 듯 한 짐승 네 마리가 인간의 형태를 한 채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어 태수를 바라본다. 어느새 초점 없는 그들의 눈동자는 정확히 태수의 두 눈에 고정 된 채 못 박혀 있고, 그 두 눈동자에서는 결의에 찬 확고한 의지와 무엇이든 찢어발길 것 같은 살기가 풍겨 나오는 듯 해 보인다.
    -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갈 단계라오.
    - 신세계 질서를 위해.
    태수는 노목사가 남긴 쪽지를 꺼내어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신세계질서>
     
     (끝)
     
     
    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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