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의지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 2장 27절)
잠시 후 작업을 마친 태수는 해금사랑의 맥박을 체크한 뒤 왼쪽 손목으로 혈액을 공급한다. 그리고 오른쪽 팔목 위쪽으로 포도당을 공급하여 곧 빠져나갈 것 같은 그의 영혼을 잠시 동안 붙잡아 놓는다. 전자레인지에 수분 간 돌려놓은 뾰족한 철심지로 만든 가시면류관을 꺼내어 그의 머리에 조심스레 씌어 놓는다.
‘치지지직’
살이 타는 소리와 함께 또 한 차례 삼겹살 굽는 냄새가 흘러나온다. 이번에는 머리털이 타는 고약한 냄새와 더불어.
실제로 인간의 유전자는 돼지와 많이 가까우며 화재인명피해가 난 곳에는 항상 삼겹살을 굽는 듯한 냄새가 풍겨 나온다. 그 이유로 소방수들은 삼겹살을 입에도 안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잠시 후 태수는 몇 걸음 뒤에 있는 미리 설치해 놓은 도르래를 이용해 십자가를 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레일을 따라 벽을 향해 밀어 나간다.
‘드르륵, 드르륵’
잠시 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십자가 형틀은 한 쪽 벽면에 고정된다. 해금사랑은 아랫배에서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마치 산 채로 내장을 굽는 듯한 느낌이다.
태수는 곧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뒤 탁자 위에 놓인 카메라를 들고 해금사랑을 찍기 시작한다. 셔터에서 터진 불빛마저 고통을 전해주는 듯하다.
‘찰칵 찰칵’
십여 장을 찍은 뒤 태수는 그곳을 빠져 나간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현상 된 사진을 해금사랑의 눈앞에 펼쳐 놓는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인 해금사랑의 눈앞에는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져있다. 커다란 십자가 형틀에 못 박혀 있는 한 남자의 배에 그려져 있는 문양을 보며 차라리 죽여 달라며 믿지 않았던 신을 다시 한 번 되찾게 된다.
태수가 말한다.
- 신을 보았나?
며칠 뒤. 끊임없이 공급되는 포도당의 힘으로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닉네임 해금사랑은 고소한 향기에 취해 의식을 차린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테이블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있는 태수가 보인다. 분노가 치솟는다. 그를 향해 욕을 쏟아내고 싶지만 나오는 건 오직 당 가득한 누런 소변뿐이다. 성기 끝이 찌릿찌릿 해오는 것이 며칠 사이 당뇨가 생긴 듯하다.
‘며칠 내내 포도당만 처먹였으니 당연한 것이겠지’ 해금사랑은 생각한다.
인기척을 느낀 태수는 시커멓게 탄 고기 한 점을 들어 해금사랑에게 들이 밀며 말한다.
- 돼지고기가 왜 맛있는지 아는가?
독기 가득한 눈으로 그를 노려볼 뿐 해금사랑의 입은 열리지 않는다.
- 그건 말이지. 돼지 유전자가 인간과 아주 가깝기 때문이야. 인간의 유전자와 가까운 것과 고기의 맛이 무슨 상관이 있냐고? 후후후. 고대부터 인간이 인육을 먹은 행위를 기록한 책들은 무수히 많이 있지. 그리고 현재까지 식인 풍습을 이어가고 있는 원주민들도 있고 말이야. 그들은 하나같이 그 맛을 이렇게 기록했거나 말했지. 인육을 먹은 뒤부터는 다른 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고 말이야. 후후후. 고로 인간의 고기는 돼지고기의 맛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뜻이 되기도 하지. 흐흐흐······.
태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해금사랑의 눈앞에서 다 타버린 고기를 게걸스럽게 씹어 먹는다.
해금사랑은 얼마 남지 않은 기력을 모아 있는 힘껏 태수의 얼굴에 침을 뱉어 버리며 말한다.
- 더러운 새끼. 니가 그러고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냐. 지옥이 존재한다면 바로 너 같은 놈을 위해 존재할 것이다.
일그러진 표정의 태수는 젓가락을 바꿔 잡고 해금사랑의 왼쪽 팔뚝에 꽂아 버린다. 이미 물러져버린 해금사랑의 근육들은 젓가락을 막아 내기에는 역부족인 듯 쉽게 뚫려버린다. 해금사랑의 입에서는 ‘아아아······.’ 라는 작은 소리만 새어 나올 뿐 비명을 지를 기력조차 상실한듯하다.
잠시 후 만찬을 마친 태수는 해금사랑이 붙어있는 벽의 커튼을 쳐버리고 불을 끈 뒤 그 곳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해금사랑에게 찾아온 칠흑 같은 어둠은 팔과 다리, 그리고 배와 머리에서 전해지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배가 시킨다. 무한의 어둠과 정적사이에 갈라진 입술사이로 나오는 작은 신음과 그의 옆에 놓인 심박 수를 체크하는 기계의 일정한 소리만이 들려 올뿐.
<신 따위는 없다. 오로지 고통과 어둠만이 나와 함께 할 뿐이니······. > 그는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리고 첫 번째 주말이 찾아온다. 태수는 잘 다려진 고가의 양복을 멋지게 차려 입고 차를 몰아 서울을 향한다. 여의도. 대형 십자가를 위시하며 그 웅장함을 뽐내고 있는 건물에 차를 세운 뒤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성경책을 집어 들고 건물 현관에 들어선다. 곳곳에서 깔끔한 새 옷을 뽐내며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는 인사들이 보이며 이내 태수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건넨다. 친근한 눈인사를 건네고 포옹을 나눈 뒤 서둘러 자신의 이름이 붙어있는 작은 방에 들어선다. 조금 늦게 온 탓에 미리 기다리던 학생들이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이한다. 태수 역시 친절한 눈웃음으로 그들을 맞이한다. 선량한 얼굴 한 꺼풀 속에 숨어 있는 괴물의 얼굴이 실룩이는 듯하다. 성경책을 펼쳐든 뒤 두 시간 가량의 형식적인 수업을 마치고 어린양들에게 숙제를 내어준다.
- 오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리신 숙제를 내어 주겠습니다.
- 주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 마태, 마가 복음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누가 복음 :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 요한 복음 : “다 이루었다.”
- 이처럼 복음서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다릅니다. 과연 이것에는 어떠한 하나님의 뜻이 숨어있는지 풀어 오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없습니다만, 가장 진리에 근접한 대답을 하시는 분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6개월 간 십일조를 면제하여 드리겠습니다. 이상으로 오늘의 수업을 마치겠습니다.
태수는 교회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신도들에게 가식적이 눈인사를 건넨 뒤 차를 몰아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한 그는 아침에 남긴 게시글에 대한 반응을 확인할 목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초록색 바탕의 포털사이트에 로그인을 한다. 카페 창을 누르고 댓글들을 확인한다. 그간 무수히 많은 댓글들이 달려 있는 것을 확인한다. 크리스천들과 반 크리스천들의 댓글 비율이 <22 : 78> 정도로 달려 있는 것이 전도의 필요성을 더욱 확고히 느끼게 한다.
- 예수를 죽인 망할 유대인들의 법칙 같으니라고.
태수는 실룩이는 입술로 그 말을 내뱉는다. 하루 게시물 제한이 2개로 한정이 되어 있는 카페여서 12시가 넘어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글쓰기를 누른 뒤 장문의 글을 입력한다.
제목 : 하나님의 공의로 서술된 성경의 비밀.
내용 : 잠언 29 : 18 -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암 3 : 7 -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타자를 치다가 귀찮음을 느낀 태수는 인터넷 성경 사이트에 접속을 한 뒤 필요한 구절들을 복사하기 시작한다. 여러 자료들을 긁어모은 뒤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붙여넣기 신공을 펼친다. 그리고 곧 반응들이 보인다. 대표적인 안티 크리스천 두 명이 댓글을 달기 시작한다. 그 중 한명의 댓글을 읽고 나서 태수의 얼굴 가죽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 흐흐흐. 다음은 바로 네 녀석이다.
닉네임 <사생결단>은 말 그대로 사생결단의 스타일을 가진 건장한 청년이다. 특전사 출신의 산전수전 다 겪은 강인한 눈매를 가진 30대 초반의 직장인이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헬스를 끝으로 하루일과를 마친다. 지하 주차장을 내려와 차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뒷좌석 차창에 비친 복면을 쓴 괴한들을 본 순간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를 향해 뒤차기를 날린다. 뒤차기를 정통으로 맞은 한 녀석은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고 반대편으로 달려갔던 한 괴한은 권총 모형처럼 생긴 무엇을 겨눈 채 사생결단을 노려본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초인적인 스피드로 앞문을 열고 차에 탑승을 하려는 찰나 왼쪽 허벅다리에서 엄청난 충격이 전해진다. 고개를 돌려 보니 쓰러진 괴한의 손에 들려 있던 무언가가 자신을 겨누고 있다. <테이저 건>이다. 곧 왼쪽 다리에 마비가 오는 듯하며 온몸에 전기적인 충격이 전해진다. 반대편에 있던 괴한은 우측 문을 열고 테이저 건 두 방을 닉네임 사생결단의 가슴팍에 꽂아 넣는다. 그리고 곧 그는 정신을 잃고 차 핸들에 머리를 처박으며 고꾸라지고 만다.
사생결단은 절제된 중년남성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따끔한 고통이 왼쪽 허벅다리와 가슴팍에서 전해진다. 테이저 건의 후유증은 쉽게 가시지가 않는다. 그리고 본인이 어딘가에 누워 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된 후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본다. 양쪽 팔과 다리에 벨트가 단단히 채워져 있으며 그 사이로 피가 배어나온다. 그리고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웬 중년 남성이 의자에 앉아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사생결단은 고통을 참으며 입술을 연다.
- 당신은 누구요?
- 내가 누구인지는 알 필요가 없고 그저 내가 묻는 말에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 주었으면 합니다.
-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여기에 왜 묶여 있느냔 말이오?
- 흐흐흐. 무슨 호기심이 그리도 많은가 미련한 중생이여.
- 미친 새끼. 이거 빨리 풀지 못해! 사생결단은 고함을 지르며 몸부림을 친다.
- 그렇게 몸부림칠수록 고통은 더 심해질 것이오. 내가 당신이 묶여 있는 그 벨트에 유리가루를 발라 놓았거든.
태수는 가여움 반 가소로움 반 섞긴 야릇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한다.
사생결단의 필사적인 몸부림에 대형 나무십자가가 들썩들썩 거리며 삐걱대는 소리를 내뱉는다. 그리고 태수가 말한다.
- 닉네임, 사생결단. 당신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합니까? 긍정합니까?
- 뭐? 하나님? 이런 미친 새끼가···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풀지 못해!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다혈질 성격의 사생결단에 귀에는 신 같은 단어가 들려올 리가 만무하다.
- 당신들은 왜 내가 기회를 주려고하면 욕부터 하는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구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겠소. 하나님을 믿습니까? 안 믿습니까?
- 까는 소리그만하고 지옥에나 떨어져라 이 개 같은 새끼야! ‘퉷!’
사생결단 역시 태수에게 침 세례를 퍼 붓는다.
- 또 침이란 말인가··· 나는 너희들에 은혜를 베풀려고 했건만 침으로 답하다니··· 내게 침례라도 해줄려는 것인가? 도저히 봐줄 수가 없구나.
태수는 중얼거린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태수는 독기 가득품은 눈빛으로 사생결단을 노려보며 걸어온다. 사생결단이 묶여있는 나무십자가 옆에 있는 의료용 카트 위에 놓인 망치와 대형 못 4개를 들고 그의 옆구리 쪽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 말한다.
- 내 특별히 너에게 만은 최상의 고통을 선사해주마. 예수님이 느꼈던 고통 그대로를 너에게 안겨주마. 영광으로 알고 맛 보거라.
그리고 태수는 녹이 슨 거대한 못의 뿌리 부분을 사생결단의 손바닥에 올려놓은 뒤 못질을 시작한다.
‘쿵!쿵!쿵!퍽!쿵!’
정확히 네 번 만에 대형 못은 사생결단의 손바닥을 뚫고 나무 십자가에 박혔으며 빗나간 한번은 그의 새끼손가락을 으스러뜨려 놓았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치는 사생결단을 무시하고 반대편 손바닥에도 그 작업을 반복한다. 그리고 아킬레스건과 복숭아 뼈 사이의 부드러운 부분에 못을 올려놓은 뒤 망치질을 시작한다. 붉은 피가 솟구쳐 나무 십자가를 적시 운다. 태수의 입가에는 미소가 새어 나오며 사생결단의 입에는 욕지기가 쏟아져 나온다.
- 너 이 새끼 내가 가만히 안 둔다. 내가 풀려나게 되면 너의 눈알을 갈아 마셔 버리겠다. 나를 죽이지 못한다면 너의 목숨 또한 죽은 것으로 알고 있어라.
고통을 참기 위해 꽉 다문 사생결단의 입가에서는 피가 배어 나온다.
- 오냐. 너의 소원대로 죽여주마. 하나, 아직은 때가 아니니 실망하지 말고 어디한번 참고 견디어 보거라. 흐흐흐.
작업을 마친 태수는 도르래를 이용해 십자가를 세운 뒤 해금사랑이 있는 곳의 커튼을 걷고, 그의 옆에다가 사생결단을 고정시켜 놓는다. 사생결단의 손바닥과 발목에서 흘러나온 피는 십자가를 적시고 이내 바닥을 붉은 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한다. 사생결단은 고개를 돌려 좌측을 바라본다. 중년의 남성이 가시왕관을 쓰고 붉게 물든 십자가에 묶여 고개를 숙인 채 기절해 있다. 옆에 놓인 심장박동수를 체크하는 기계에서 들려오는 일정한 소리가 아니면 시체라고 해도 믿을 만한 몰골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태수는 몸부림치는 사생결단의 얼굴에 주먹세례를 퍼부은 뒤 목 부분을 유리 벨트로 고정하고 미리 달궈놓은 가시왕관을 그에게 씌어 준다. 머리털 타는 냄새가 고약하게 새어나오며 곧 머리 가죽을 태우는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이윽고 태수는 엄청난 온도로 달궈놓은 불 꼬챙이를 들고 그의 뱃가죽에 예술작품을 그리기 시작한다.
‘치지지직’
고소한 고기 굽는 냄새와 사생결단의 비명소리가 지하실을 뒤흔든다.
<방음장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해놨어.>
태수는 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생각한다.
살이 타는 냄새에 허기를 느낀 태수는 또 그들이 보는 앞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 시작한다. 태수는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얼마나 엽기적이고 미친 짓인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사단의 무리들을 처단하는 임무를 충실히 행하고 있다며 본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정신질환을 갖게 된다.
그리고 3개월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