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플로 광화문 집회 참가했습니다.
11월 첫 주부터 지난 주만 빼고
토욜마다 광화문에 갔어요.
그런데 종각역에서 내려 광화문 광장 가는 길에
아빠에게서 문자가 왔더라구요.
아빠는 맨날 건강에 좋은 10대 채소라던가
행복한 일생을 위해 스트레스를 피하는 법 같은
장문의 글을 뮤자로 하루에도 서너 통 이상 보냅니다.
가끔은 어디선가 받은 세월호는 종북 어쩌고
무상급식은 종북 어쩌고 이런 문자도 보내셔서
저를 딥빡치게 만드시기도 합니다.
원래 살가운 부녀지간도 아니고 아빠도 침묵이 금괴라는 걸 새기고 사시는 분이라
안부 전화도 엄마한테 하지 아빠한테 하진 않지만.
한국전쟁 때 태어나셔서 전후의 가난과 피폐,
성인이 되셨을 때는 북한의 잦은 도발을 보며
군 생활하시는 동안 전쟁 공포를 느끼기도 하신 거 같아요.
그래서 아빠는 종북이니 북한 퍼주기니 하는 말에
잘 선동 당하시기에 당연히 김대중 노무현 뺄갱이 이러시죠.
논리도 안 통하고 제 말은 1분도 안 듣고.
그래서 얼마 전부터 저도 아빠가 하듯
문자를 여러 개 쏟아 보내기 시작했어요
주로 오유에 올라온 정치 풍자글이나
재미있게 정리된 시사 문제들요.
이정현이 주갤러에서 문자로 놀림 당한 것도 보내드렸죠.
사실 안 읽으실지도 모르겠지만
회사일에 바쁜데 자꾸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퍼붓는,
것도 어디선가 퍼온 별 거없는 내용을 자꾸 보내시니
아빠도 한번 당해보시면 이게 은근 짜증스럽다는 걸 아시겠지.!
받아라, 나의 문자 공격! 이러면서 퇴근 후에 집에 오면
오유의 재미있는 시사 베오베들을 다음 날 아침에 20~30분 간격으로 받으시도록
예약 문자 설정을 10개쯤 걸어두곤 했답니다.
한번도 답장은 안 하시길래 읽지도 않고 씹으시는구나
ㅎㅎㅎ 성공이다, 문자 공격! 이랬죠.
그래서 오늘 아빠의 문자도
요즘 횟수가 많이 줄었지만 또 겨울철 난방비 대비하는 법 같은
글인 줄 알고 대충 확인만 하려구 했는데 왠 사진만 덜렁 두 장이더라구요.
첨엔 본인 사진인가 했는데 키워서 보니
박원순 시장님!!?? 으아니??!!
연임 때 제가 박원순 뽑아달라고-저는 인천 살면서 서울 사는 부모님한테 문자 한 번 보냈는데
불쾌해 하시고 무상급식은 나라에 빚이 얼마나 많은데
아주 못된 짓거리라는 둥 박원순이도 어쩌고 욕하시더라구요.
그랬던 분이 왜 박원순 시장님 사진을.??
혹시나 싶어 전화를 걸어 보니.... 오 맙소사
광화문 나와 계시다고. 이순신 동상 옆 쪽 인도에서
어슬렁거리며 집회 구경 중이셨던 겁니다. 헐...
구호를 열심히 외치거나 퇴진 피켓을 들고 다니진 않으셔도
머릿수 채우려고 나오신 거에요. 혼자 뻘쭘해 하시면서.
ㅋㅋㅋㅋㅋㅋ 박원순시장님에 대해 여전히 잘은 모르셔도
우호적으로 생각하시게 되어서 지나가다 인터뷰 중인 시장님 보고 얼른 사진 찍으신 거.
아빠 붙잡고 다니다 안희정 님 보고 내가 막 안희정 안희정하니까 슬쩍 웃으며 사진 찍으시고요.
유인물 나눠주는 거 받으시면 꼭 읽어 보시고.
어쩐지 오늘 나올 때 이상하게 5만원권 들고 나오고 싶더라니. ㅋㅋㅋ
지갑에 3만원 밖에 없어서 아빠 잠바 주머니에 넜어드림.
어버이연합은 일당 2만원 주는데 저는 3만원드릴게여
이러니까 크크 웃으심. 안 받는다고 하시다가 저 말에 받으심.
신나서 아빠 끌고 근처 중국집에서 밥도 사드리고.
혼자 오셔도 잘 놀다 가시는 어른들 많은데
아빠는 혼자서 되게 뻘쭘하셨는지
오시면 항상 6시 전에 돌아가신다고 하더라고요
.....네? 모라고요?? 항상이라니...
그렇심다. 이 할아버지께선 벌써 몇주째
광화문 집회 솔플 중이셨던 거...ㅋㅋㅋㅋㅋ
제가 기분 확 좋아져서 근처 은행에서 얼른 현금 더 찾아서
7만원 더 드려서 총 10만원 맞춰드림. ㅋㅋㅋㅋ
아빠 친구들한테 꼭 어버이연합은 일당 2만원 준다는데
우리 딸은 집회 나왔다고 10만원 주더라고 자랑하라고 했더니
안 받는다고 인상 쓰며 거절하시다가 그제야 웃으면서 받아 넣으시더라구요. ㅋㅋㅋ
추워서 도저히 못있겠다고 7시에 먼저 일어나셔서
안치환 노래 못듣고 가심.
그래도 저랑 있으시느라 평소보다 더 있다가 가셨습니다.
서 있던 자리 뒤로 더민주 촛불홍보단 트럭이 있어서
거기서 하는 이야기 계속 들으시더라구요.
이번에 더민주가 확실히 일 좀 잘했져.?하고 물었는데 대답은 안 하셨지만 오유에서 더민주 의원들 이야기 올라올 때마다 문자로 보내서
아마 제 문자를 씹지 않으셨다면 아실 듯여.
저는 체력이 거지라 9시 반쯤 경복궁 근처까지 행진하다가 발을 돌렸지만여.
새누리를 찍지는 않지만 거의 새누리의 논조대로 조중동 플레이대로 따라가던 아빠가.
이번 일로 조중동 논리를 좀 벗어나시나 싶어 흐뭇했습니다.
어릴 때 사정상 집이 어려웠던 터라
복지를 쓸데없는 거라고 비난하는 아빠를 보면
올챙이 적 잊은 개구리냐고 화도 내고
도시락에 김치랑 단무지만 싸가던 자식들이 기억 안 나냐고 화도 냈는데요.
아빠랑 다음에는 좀더 이야기를 해봐야겠어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 기대됩니다.!!
참, 저녁 사드린다고 끌고 가면서
말도 없이 혼자 나왔다가 이렇게 만난 거 보라고,
그 아빠에 그 딸이라 그런 거라고 아빠를 슬쩍 추켜 세우며
누구네 아빠랑 딸과 다르져? 그랬더니 또 크크크 웃으시더라구요.
담주에 또 나가야죠.
그땐 아빠 춥지 말라고 핫팩도 챙겨야겠어요.
부모님 댁 들러서 두 분 다 모시고요. ㅎㅎ
인증샷은 아니지만
아빠가 찍은 박시장님 딸이 찍은 안도지사님 사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