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사업이 망해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일했던 전직 자게이입니다.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 풉~~
그런거 없답니다.
고인이
한국사회에서 고인은 단지 알바에게 맡겨질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시체닦기 알바는 다 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유글을 보다 낙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낙태의 현장에는 없었지만
낙태후 영안실로 모셔오고 화장장으로 보내기전 까지는 우리 업무였습니다.
저에게는 잊을수 없는 트라우마입니다.
산부인과에서 나오는 서류봉투에서 한지 더 크면 고운 이불
보통 한지에 싸오던 애기를 ㅠ,.ㅜ
우리는 큰어른이라 표현했었죠.
영안실에 다른 고인들에게도 큰 어른 오셨으니 잘해 드리라고.......
아무도 산부인과에서 호출오면
가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200kg되는 거구도 겪어봤고 순직한 목없는 경찰관님도 제가 모셨지만
산부인과는 더 싫었습니다.
한달에 평균 100명 이상을 염합니다.
"영의귀가 왕즉유택 제진결례 영결종천"
혹시나 출처를 의심하실까바.
3년 조금넘게 했습니다. 3000명 이상은 시체를 세세히 봤었겠군요.
다른 장례식장 보낸 고인까지 합하면 두배는 넘을겁니다.
2살 3살 아기들이 죽으면 그 부모님은 그주변인은 정말 슬퍼합니다.
기 기운이 저희 같은 프로에게도 넘어오죠.
눈물이 흐를때도 있습니다. 저도 사람이거든요.
근데 지금 저의 트라우마는(좀 과장 하였습니다.)
한지에 싸인 큰 어르신들 입니다.
달랑 혼자 몸만가서 지하통로 지나 (저희병원은 영안실과 통하는 지하 통로가 따로 있었습니다.)
봉투하나만 가져 오면 되는건데...
그 서늘함은 그 부피감은 .....
그리고 안치실에 안치할때 그 적막감은
정말 싫었습니다.
깊은 애도보다 더 슬픈건 고요함입니다.
교통 사고로 몸의 일부분이 없는 고인보다
시간이지나 더 생각이 나는건 서류봉투의 애기들 이였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공포입니다.
지금은 업무상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주로 아이 사진을 많이 찍을려고 합니다.
정말 잘 찍을려고 노력합니다.
더 잘 찍을려고 공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