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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79736
    작성자 : Omisty산
    추천 : 16
    조회수 : 2025
    IP : 124.197.***.186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5/05/15 16:54:35
    http://todayhumor.com/?panic_79736 모바일
    단편)죽어주세요

    ※읽기 전에 : 아래 소설은 다음의 내용을 포함합니다.


    판타지, 클리셰 파괴, 잔인한 표현


    본래 판타지 단편으로 쓰다가 잔인하다길래 여기로 올립니다...



























     "죽어주세요."


     마왕성의 옥좌 앞에서, 공주가 용사에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녀의 옷은 용사가 쓰러트린 마왕의 피로, 그녀의 팔은 자신이 찌른 용사의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용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지금 배에 찔린 단검 때문이 아닙니다. 방금 전까지 미왕과 싸웠기에 지쳐서가 아닙니다. 용사는 자신이 구하려던 공주의 눈 속에 있던 뭔지 모를 '무언가'를 느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정말로 저를 구하러 오셨다면,"


     그녀는 가볍게 용사의 배에 박힌 단검을 빼냅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본능에 따라, 용사는 붉게 물들기 시작한 자신의 배를 움켜쥐고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합니다. 등 뒤로 공주가 들고 있던 단검이 가르는 바람이 느껴집니다.


     "여기서 죽어주세요."


     살아있는 것은 이 둘밖에 남지 않은 검은 성, 그 안에서 용사는 공주를 피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어째서일까요, 제 아버지와 그 주변 것들이 저를 물건 취급하는 건."


     용자가 내는 쇠장화 소리와 숨 헐떡이는 소리, 그리고 공주의 너무나도 가벼운 발걸음 소리에 그녀의 목소리가 섞입니다.


     "어째서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정해진 것에 저를 맞춰야 할까요. 전 태어나기도 전에 다른 왕국에 팔려 가는 장식품이었을까요?"


     용사가 자신이 까맣게 태워 죽인 시체에 발이 걸려 휘청하는 사이, 공주는 주인을 잃은 칼로 자신의 치마를 쳐냅니다.


     "저는 기도 했어요. 누구라도 좋으니 저를 구해달라고. 이 곳을 달아나기를, 아니면 제가 팔려갈 왕국이 멸망하기를."


     자신이 조각낸 시체를 밟고 넘어지는 용사의 머리 위로 사람 키 만한 투창이 스쳐 지나갑니다. 용사는 넘어질 때의 반동을 살려 옆에있는 문을 붙잡고 그 안의 방으로 도망칩니다.


     "제 꿈이 이루어졌어요! 그 돼지같은 왕과 역겨운 떨거지로부터 그 땅은 해방되었어요!"


     용사가 뛰어든 방, 식당으로 들어서며 공주는 소리쳤습니다. 막 반대편의 문으로 도망치려는 용사를 발견한 공주는 식탁에 박혀있던, 무언가의 팔목을 잘랐던 푸줏간 칼을 빼 용사를 향해 던집니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갑니다.


     “그래서 원했어요, 마왕이 저를 해방시키기를! 그 망할 왕국을 해방시킨 것처럼! 저를 물건 취급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기를!”


     공주가 문을 부수며 말했습니다. 어떻게든 거리를 벌렸을 것이라 예상했던 용사는 그 거리가 네 다섯 발자국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에 기겁해 허겁지겁 달립니다.


     “그래서 편지를 썼어요. 저를 위해서 마왕이 있는 곳까지 편지를 건네 주겠다는 충직한 하인의 손을 빌려. 그리고 마왕의 하수인이 오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밤...”


     용사가 메인 홀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져 굴러 내려가는 사이, 공주는 그 계단 위에서 사랑에 빠진 소녀같은 맑은 목소리를 냅니다. 용사는 넘어져 구르기 직전, 공주의 양 다리 사이를 흐르는 한 줄기 피를 봅니다.


     “아아, 저는 그이가 직접 저를 찾아온 그 초승달 뜬 밤을 잊지 못해요. 발코니에 서 있던 제 옆에 와 속삭였죠, 당신을 구해 줄 백익의 기사가 왔노라고. 저는 그이에게 당신에게 안기고 싶다고 말했고, 그이는 제게 다시는 무언가에 얽메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 말했어요.”


     굴러 내려간 뒤 몸을 일으키려는 용사의 손을 검은 단검이 스쳐 지나갑니다. 단검이 대리석 바닥에 박히는 순간, 용사의 약지가 돌 조각처럼 뒹굴고, 그는 튕겨진 스프링처럼 정문을 향해 달려나갑니다.


     “내 사랑은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낙원을 원했어요. 다시는 고블린들이 지하의 동굴에 숨죽여 살지 않고, 살라만더들이 얼어죽을 걱정이 없는 땅, 하피들이 날개를 쉬어갈 수 있는 땅. 이 땅의 인간들이 우리를 ‘몬스터’ 대신 ‘드워프’나 ‘엘프’를 부르듯이 ‘마족’이라 부르는 그런 땅을요.”


     용사가 정문을 향해 위태로운 모습으로 달려가는 사이, 공주는 천천히 바닥에 박힌 검은 단검을 빼 냅니다.


     “저는 붉은 태양 마을을 시찰한 날을 기억해요. 고블린도 오크와 인간이 같이 농사를 짓고, 술집에서 노래를 하며, 축제 때 같이 노래를 부르는 마을이었어요. 고블린 꼬마가 해맑게 웃으며 제게 감사하다고 인사했을 때 전 정말 행복했어요.”


     사람 두 명 만한 정문을 힘겹게 열고 막 뛰쳐나가려는 용사의 등에 엄청난 통증이 밀려옵니다. 용사가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피에 젖은 손이 그의 목덜미를 잡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다 망쳤죠.”


     공주는 고통에 비명 지르는 용사의 목덜미를 잡고 마치 감자 포대를 끌고 가듯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당신은 오크들의 마을에 독을 풀었어요. 고블린들의 도시를 무너트려 전부 생매장 시켰죠. 살라만더들의 마을의 핵을 빼내 살라만더들이 얼어죽게 만들었고, 하피들의 신목을 불태워 그들을 또 다시 방랑종족으로 만들었어요. 당신은 나의 낙원을 무너트리고, 나의 사랑을 죽이고”


     정문을 나와 다리 한가운데까지 용사를 끌고 온 공주는 비명을 지르다 지친 용사의 귀에 속삭입니다.


     “나의 아이가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앗아갔어.”


     방금 들은 말에서 감당할 수 없는 본능적인 감정, 즉 공포를 느낀 용사는 자신에게 그 말을 속삭인 다음 일어서는 공주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공주의 눈에서 본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알아서는 안 되는 ‘그것’을 알아버린 용사의 얼굴은 굳어버리고, 무너진 댐 처럼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그 모습에 아랑곳하지않고 공주는 다시 용사의 목덜미를 붙잡고 다리 건너편으로 걸어갑니다.


     다리 건너편에 왕국의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죠.






    P.S 1 : 가입하자마자 처음 쓴 글이 소설이라니!
    P.S 2 : 태그 기능이 있으면 편하지만... 안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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