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이 시발아, 내말 안들려?"
영기다, 또 영기 놈이다.
자는 척 하다가 내가 올려둔 필통으로 강하게 머리를 맞았다.
두개골이 함몰되는 것 같은 느낌에 머리가 띵하다.
미처 이런 생각 하기도 전에 멱살을 잡아 올려진다.
"씹새끼가 어디서 구라를 까?"
뺨을 한대 맞는다.
지겹다. 이런 일상은.
내가 지 심심풀이 장난감인줄 아나.
하지만 어쩌겠는가. 수년동안 공부만 한 속칭 공부벌레같은 나는 저런 양아치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우리반 상양아치 김영기. 공부 빼고 다 지가 해먹으려 하는 놈이다.
한심한 몇몇 여자애들은 돈많은 집안에 운동 잘한다고 헤벌레 해서 졸졸댄다.
오죽하면 나랑 좀 친한 여자애들 말로는 그런 여자애들이랑 같이 자기도 했다나.
부럽지도 않다. 영기놈 따라가서 몸 파는 한심한 애들로밖에 안보인다. 끼리끼리랄까.
"....똑바로 해라 병신아?"
멍하니 있는 내 귓가에 영기 녀석의 잡소리가 메아리친다.
학기 초에 약한 모습을 보인적도 없는데.
아니다, 쉬는시간에 공부하고 있으면 우리 나이때는 약해 보이나. 범생이로 보였던건가보다.
"괜찮냐? 아이구야."
영기 패거리중 한명인 태진이가 날 일으켜 세워줬다.
태진이는 썩 나쁜 애는 아니다. 다만 노는걸 좋아해서 영기 패거리에 끼어든 것 뿐.
"근데 너 조심해야겠다 철진아."
태진이가 날 보며 말했다.
"또 왜."
"영기 쟤, 부모님이 쟤 거의 신경 안 쓰는거, 알지?"
"...그러니 저 꼬라지겠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복도에서 들을까 걱정이 됐다.
"근데 요번에 성적 올리라고 아버지란 양반이 후드려 팼다나봐. 아마 너보고 공부 단시간에 올리는법 내놓으라고 할껄?"
"지랄 말라그래, 평생 공부 안하던 놈이."
"쉿, 야야 들을라."
하굣길에, 가만히 태진이의 말을 곱씹어 봤다.
상당히 찝찝했다.
쾅
생각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앞에 사람이랑 부딫혔다.
바라보니 왠 할아버지셨다.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괜찮으신가요?"
나는 노인에게 거듭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허허허허...괜찮다니까는."
나는 연신 사과를 드릴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돌
"...아가신 조부님이 생각나나 보구만."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외국인 노인이 말했다.
"그걸 어떻게.."
"사람마다 장점이란게 있다네, 젊은 친구."
나는 속으로 놀라면서, 그가 떨어뜨린 책들을 줍기 시작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책들부터 역사 시간에 배운 겐지 이야기까지.
노인이 참 책을 많이 읽는군, 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들어다 드릴게요, 어디까지 가세요?"
"아이구 고마워서리, 근데, 저 앞이면 되네."
그가 가리킨 곳은 건널목이었다.
그를 도와 건널목에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사람이란 참 재밌지 않은가?"
"...예?"
"아까도 왠 학생들이 지나가다가 제일 말썽쟁이같은 녀석이 날 일부러 치고 가더군. 그래놓고선 뭐랬더라...'눈깔 똑바로 떠, 뒤질 날 멀지 않는 노친네야' 이러고는, 낄낄대며 가더구먼."
안봐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근데 자네는 말이야, 마음속에 지켜야 할 것들이 분명한거 같구만."
"아..아뇨 그냥 당연한 걸.."
"그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닳아버려서 사라졌단 말이지. 끌끌끌...인간이란 참 재밌단 말일세."
난 순간 이 노인이 실성하지 않았나 싶었다.
"읏차, 여튼 고마웠네. 이만 가보겠네."
초록불이 되자 노인은 책뭉치를 받아들었다.
툭
그 때, 책 한권이 떨어졌다.
난 그 책을 줏어올렸다.
"여기 이거..."
그러나 노인은 온데간데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 책을 들고 집까지 왔다.
침대에 누워 무료함을 달래고자 그 책을 살펴봤다.
"책 제목이...소설가의 창작품들....신과 외계인 편...허."
딱히 종교라 할것도 없지만서도, 괜히 심심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필기가 가득했다. 노인이 한 것일까?
'크툴루는 이름조차 발음하기 어렵다. 문어처럼 생긴지도 안개에 가려 보기 힘들었을껄?' 부터 '고대신들이 인간 괴롭히는 놈들만 있는줄 아나?' '무슨 외계인이 아직도 접시모양 유에프오를 타고 다니나? 70년대야?' 등.
나야 공부한답시고 도서관에 처박혀서 읽은 게 죄다 소설이니 대충 뭐가 뭔지 이해는 갔다.
그냥 취미가 괴팍한 노인이군. 이란 생각만 들었다.
우리학교는 한 주 걸러 토요일마다 커리큘럼 액티비티, 통칭 CA 활동을 한다.
재수없게도, 영기 녀석과 나는 같은 제과제빵반이다.
장점은 빵 먹을수 있다는 것과 겁나게 일찍 끝난다는 것.
단점은....재수없으면 얘가 또 날 부려먹는 단 것이다.
근데 그 토요일은 재수 없는 날이었다.
이놈이 나보고 한다는 소리가, 지 패거리중 한명의 친척이 샤머 뭐시기라면서, 강한 신을 내려서 원하는걸 이루게 해준대나 뭐래나.
드디어 미쳤구나. 양아치도 지 부모한테 쳐맞는건 싫은가 보지. 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학교 뒤편을 끌려가, 속칭 이 '의식'에 필요한 재료랑 불피우고 기타 잡다한 짓거리를 내가 다 도맡아 하자, 이놈이 그 기운을 받는답시고 그려놓은 원 안에 들어갔다.
차라리 그 정신으로 공부를 해라, 단기간에 성공하긴 바라면서 노력은 안하냐.
속으로 잔소리를 끓여부었다.
"에이 씨팔! 다 개소리야! 믿은 내가 잘못이지!"
2초 기다려 놓고 이놈이 소리를 꽥꽥 질러댄다.
그때였다.
"학생들 여기서 뭐하는가?"
그때 그 할아버지였다.
"시팔 영감은 신경끄시지?"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는 영기였다.
근데 더 무서운건 그를 맞받아치듯 쳐다보는 노인의 두 눈이였다.
노인은 영기와 바닥에 난장판을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또 뭐 바라는게 있어서 장난을 쳤구만."
"씨벌 노인네가 공부 잘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열망을 알기나 해?"
퍽이나 공부를 잘하고 싶겠다. 맞아야만 뭘 하면서.
"학생은 참 입이 고와. 낄낄낄."
노인은 괴상한 웃음을 짓더니, 주머니에서 작은 성냥갑을 꺼냈다.
그러더니 그 안에서 왠 작은 벌레 한마리를 꺼내더니 영기의 얼굴에 냅다 던졌다.
"뭐야 시발! 으아악!"
미쳐 떼어낼 틈도 없이, 벌레는 영기의 이마쪽 여드름을 파고 얼굴 속으로 사라졌다.
"아아아악! 이 미친 새끼야! 무슨짓 한거야?"
"공부 잘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녀석이 소원을 들어줄게야. 그러니 이런 신 불러내는 위험한 장난 하지 말고 썩 떠나게나들."
이 말을 끝으로 노인은 훌쩍 가버렸다.
씩씩대던 영기는 나보고 뭘 보냐며 꺼지라고 허공에 주먹질을 해댔다.
난 그자리를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몇일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영기 놈이 3월 모의고사를 반에서 7등, 전교에서 39등 한 것이다.
맨날 바닥을 기던 놈이 저정도 받은 건 엄청난 것이었다.
우쭐거리는 녀석을 둘러싸고 비결 물어보는 한심한 패거리를 뒤로 한채, 나는 또 녀석에게 불려나갔다.
그는 나에게 절대로 그때 있었던 일을 말하지 말라고, 아니, 꼴에 유식한 단어인 '발설하지 말라'고 했다.
어짜피 그럴 생각도 없었기에 알았노라고 말했다.
녀석의 실력은 점점 늘어갔다. 쪽지시험은 물론이고 중간고사도 평소 그의 실력과는 달리 일취월장해서 선전하고 있었다.
나야 뭐 노력형 스타일이라,아직은 상위권에 머물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면서, 우리 부모님은 날 두들겨 패시지 않은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헷갈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6월 모의고사를 앞두고, 일이 터졌다.
이놈이 학교에서 계속 안절부절거리는 것이었다.
태진이가 전해준 말에 의하면, 볼에 난 여드름을 짜다가 왠 벌레가 같이 짜져서, 죽은 벌레때문에 그런거 같다고 했다.
그게 이유가 아니란걸 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혼자서 '난 망했어 난 망했어'를 주절대는것도 그렇고, 아마 자신의 수호 천사, 아니, 수호 벌레가 죽어버려서 그런것이리라.
아니나다를까, 6월 모의고사때도 계속 불안에 떨던 영기는 시험을 개판치고 말았다.
그 이후 점점 불안증세가 심해지고 괴팍해지더니 급기야 학교를 슬쩍 슬쩍 빠지다가 7월 말이 되서는 아예 학교를 쭉 안나오기 시작했다.
그놈의 소식을 들은건 8월 첫째주 금요일이었다.
종례 시간에, 담임이 말하길, 녀석이 자살했다는 것이다.
더 자세한건 말하길 꺼려했지만, 영기 패거리는 이미 어디선가 정보를 캐왔다.
소식에 의하면, 자기 방에 틀어박혀 며칠을 안나오더니, 자신의 얼굴을 가르고 찢고 거기에 어디서 잡아왔는지 온갖 종류의 벌레들을 쑤셔넣은 채로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더 어이없는 건, 영기의 부모란 양반들은 서로가 서로탓이라고 우기기 바빴고, 애 시신이 구급차에 실려가는건 신경도 안썼다는 것이다.
그녀석이 그렇게 가버리고 난 후에도, 학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잘 돌아갔다.
나는 일반적인 학교생활을 드디어 누릴 수 있었고, 영기 패거리는 그냥 친목이나 다지는 일반 뭉치로 변했으며, 영기 녀석에게 잘보이려고 같이 자기까지 한 날라리 여자애들은 잘생긴 남자친구를 어디서 구했는지 꿰차고 다녔다.
참 허망했다. 한때는 지 원하는대로 살았던 양아치 영기가 그렇게 가버리고 나니, 부자연스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를 다시 보길 원한건 아니지만 기분이
"...좀 찝찝한가 보구만?"
그때 그 노인이었다.
"어르신!"
"아이구, 깜짝야. 기차 화통을 삶아먹었는가? 나 쓰러지겠네!"
"...죄송합니다. 아참, 여쭈어 볼게 있어요."
"그 벌레에 관한 거겠지?"
역시 대단한 노인이다.
"그녀석은 사실, 공부를 잘하게 해준다거나 하는 녀석이 아니야. 고대 이집트에서 주로 얼굴 미용을 위해 쓰던 지방을 갉아먹고 사는 녀석이지. 먹을게 없으면, 굶어 죽거든. 아마 그런 녀석을 짜냈을게야."
"그럼 어떻게 공부를 잘하게 된거죠?"
노인이 말했다.
"그녀석의 욕심 때문이지. 믿음이 더해진 욕심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네. 결국 그녀석은 자기 힘으로 높은 학업 성과를 거둔 게지. 하지만 결국, 그친구를 죽게 만든 것도 욕심이지. 결과적으로 말하면, 안에서 그를 파먹던건 내가 던진 벌레가 아니라, 그녀석의 욕심이었던 게야."
"그렇군요."
순간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그녀석의 부모란 사람들도 참 이상한 인간들이지. 자식이 죽었는데, 밖에서 돌아치던 남편이나, 잘나가는 부인들 모임에나 나가던 아내나, 서로 자식관리를 안했다고 따지기 급급하니. 애정도 없는 인간들이였어."
이 노인도 소식을 아는 모양이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노인이 다시 입을 뗐다.
"그러고보니, 그때 그일 말인데, 자네도 신이란걸 믿어서 그 일을 한건가?"
"아뇨, 딱히 믿지는 않지만 억지로 시켜서..."
그러고보니 노인이 그때 떨어뜨린 책이 생각났다.
나는 가방속에서 책을 꺼냈다.
"어르신 참 이거..."
그런데 노인은 건널목 앞에서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 넓은 학교앞 길에서 말이다.
야자 끝난 저녁 시간이라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그로인한 정적과 가끔씩 들려오는 차 소리는 괜히 내 등골이 서늘하게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 책을 마저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펼친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거기엔 양피지 같은 작은 조각에 이렇게 씌여져 있었다.
-그럼 하나 믿는게 좋을게야. 믿는다고 나쁠 건 없거든.-
[작가의 한마디]
자다가 모기물린 경험과 하워드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를 읽은 경험 등을 죄다 비벼서 만든 아마추어 소설입니다.
근데 정작 쓰고보니 무섭지가 않네요. 미스터리 하지도 않고...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