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명 출판사의 텀블벅 대성공으로 인터넷에 "던전월드"라는 TRPG 룰북이 유명해졋습니다.
저 역시 그 유명세를 보고 던전월드와 TRPG를 접한 1인이지요.(엄밀히 따지면 중고딩 때 ORPG를 처음으로 해보긴 했습니다만)
여튼 사실상 "TRPG를 처음하는 입문자"인 제가 실제로 처음 플레이해볼 TRPG로써 던전월드는 좋은 선택이었을까요?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같이 게임을 할 친구들(플레이어) 역시 TRPG를 단 한번도 못 해본 문외한인데 말이죠?(그나마 저처럼 ORPG라도 해봤거나 팀장을 맡은 경험이 있는 사람도 전무)
일단 전 대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 정발되어 온라인 구입이 가능한 겁스, TRPG의 시초이자 교과서인 DND, 매력적인 세계관에 스토리텔링 중심의 WOD 등등 여러가지 룰북이 있었습니다만 저와 친구들은 던전월드를 선택했고 이 선택에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던전월드가 다른 룰북과 달리 갖고 있는 특징. 장점과 단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엄청난 접근성.
돈이 필요 없었죠. 뭐, 다른 TRPG의 경우도 주사위를 제외하고는 룰북 하나만 사면 그만입니다만 그래도 돈이 든다는 점과 룰북을 자신이 소유하는데 있어서 시간과 비용이 소비된다는 것은 현실적인 제약이 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던전월드는 인터넷 공개 페이지로 룰북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서 초여명에서 너무나 고맙게도 각종 자료와 고급 플레이 가이드를 친절히 공개해주셧죠.
전 불과 3일만에 던전월드의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리플레이와 커스텀 예시, 실제 플레이할 때 주의점과 조언, 게임 시스템에 관한 룰북, 플레이할 때 아이템과 NPC 샘플 등을 전부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모두 너무나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철저한 100% 합법적이었단게 강력했죠;;
던전월드의 테마와 기본 직업, 시스템이 가장 익숙하고 전형적인 중세풍 판타지(정확히는 DND)를 기반으로 하고 있단 점도 강력합니다. SF를 싫어하거나 쿠툴후를 싫어하거나 잘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용과 마법사 나오는 판타지를 혐오하거나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마스터가 룰을 익히는 것, 플레이어가 룰을 익히는 것 양면적인 부분에서 이 "흔해빠진 테마"를 사용한다는 것은 초심자에겐 참으로 고마운 배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상 룰북이 필요없다(시스템 X)
이게 충격이었어요.
친구들끼리 테스트플레이를 해보고 정식 플레이를 현재 2번. 총 3번의 플레이를 했습니다만 이 얼마 안 되는 짦은 경험으로 확신이 들었습니다.
"던전월드는 마스터고 플레이어고 말빨로 다 해먹는거닷!"
npc와의 협상, 세계와의 상호작용, 적들과의 전투, 험난한 곳을 향한 여정.... 그 모든 것들이 그냥 말빨입니다. 던전월드는 정말 최소한의 시스템과 규칙만이 있으며 플레이어와 마스터가 이를 어떻게 알아서 쓰느냐가 관건이죠.
즉, [전사가 고블린을 공격한다]라는 행위를 할 경우 발생하는 대표적인 표본들을 보고 예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1. 대검을 휘둘러 고블린의 목을 노린다.
2. "연속공격" 기술을 선언하며 좌우로 몸통을 썰어버리겠다!
3. 귀신과도 같이 몰래 접근하여 일단 발을 걸어 넘어트린 후 상황을 보겠다.
보통 TRPG라면 1번에서 일반 공격굴림을, 2번에선 기술의 규칙에 따른 룰 적용을, 3번에선 각 룰북에 따른 독자적인 시스템이 있을 것 입니다.
던전월드는 어떨까요?
1번이던 2번이던 3번이던... 그냥 "알아서 해라" 입니다.
일단 접근전 판정이니 힘+ 판정을 합니다만 마스터나 플레이어가 판단하기에 "힘을 겨루는 접근전이라기보단 보다 빠르게 정밀한 공격을 하는 행위"로 간주하여 민+ 판정을 하셔도 좋습니다.
전사가 2연속 공격을 한다면 일단 첫번째에 민+ 판정으로 명중 여부를 본 후에 명중 시 힘+ 판정으로 2타째도 적중하는지 계산하는 법도 있고 이 것이 귀찮거나 게임 진행을 빠르게 하기위해 그냥 힘+판정 한번으로 해줄 수도 있지요.
모든 시스템에 "A=B다." 라는 완벽한 명제가 없고 "A는 B의 상황에서 쓰는 것을 추천한다." 라는 가제만 있으며 이 것을 어떻게 적용해서 맛깔나게 만들지는 각자의 몫이란 것 이죠.
초보 마스터와 입문 플레이어인 우리 팀의 경우 이런 엄청난 시스템 자유도가 너무나 편했습니다. 자기들 꼴리는데로 판정을 조정하거나 상황을 만들어내면 그만이니 머리아프거나 에러플레이를 할 경우가 매우 드물었거든요.
턴제가 아니라니! TRPG의 전투가 실시간 액션이라니!
던전월드의 전투에 감이 잘 안오는 분들은 "영화 촬영"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세트장에 배우들이 있고 감독이 설치한 장치와 엑스트라가 있습니다. 그럼 카메라를 키고 촬영을 시작합시다.
각본 따위 없습니다. 엑스트라도 배우들도 모두 애드립을 할 뿐... 카메라가 보여주고 있는 배우와 엑스트라만이 액션을 취하는 것 입니다.
만약 현재 분위기와 상황이 받쳐줄 경우 플레이어는 무려 2번에서 최대 10,000번까지 연속 행동을 해도 무방합니다. 반드시 내가 지금 한번의 주사위 판정으로 행동을 끝냈다고해서 다른 플레이어에게 액션권을 넘겨야 한다는 규칙 따위 없습니다.
해골전사와 서로 hp를 1만 남긴채 칼을 주고 받고 있습니까? 그런데 서로의 칼이 마주치며 아무도 데미지를 안 입었군요? 이런 극적인 상황에서 카메라는 슬로우 모션으로 넘어가고 바로 다음 2합째의 공격을 보여줍니다. 방금 전에 공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는 다시 공격을 선언하고 해골전사와 멋지게 2합째를 부딪힙니다. 이번에도 양측의 공격이 빗나가고 이번엔 해골전사의 반격! 무려 3연속 행동이 한 플레이어에게 강요되고 있습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저번 플레이에서 중간보스와 플레이어 한명이 일기토만으로 전투가 진행되어 버렸는데 이 때 전투의 박진감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마스터인 전 벨런스를 위해 몬스터들은 절대로 연속 행동을 안 하게 제한을 걸어두는데 이 일기토가 너무나 중요하고 멋있는 장면이라 저도 모르게 중간보스를 2연속으로 공격명령을 내리며 플레이어를 극한으로 압박하고 플레이어도 어떻게든 발악하고자 최고의 전투씬 묘사와 RP를 하며 열혈을 불태웠습니다.
해골궁수의 공격 주사위가 4면체입니까?
만약 지금 상황이 해골 궁수의 활시위가 당신 얼굴 바로 코앞에서 쏘는 상황이라면 어찌할건가요? 이럴땐 이런 위험한 상황에 처할만큼 생각없이 움직인 것에 대한 리스크와 게임의 박진감을 위해 공격주사위를 12면체로 바꿔버리세요 -_- 던전월드에 정해진 규칙이란 없습니다.
의외로 평이 갈리지만...
인터넷 평을 보면 "초심자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해서는 안 될 TRPG"라던가, "지나치게 모호하고 범용적인 시스템이 범람하는 룰북" 같은 평가도 은근히 있더군요.
하지만 적어도 저와 우리팀원들(위대한여정)에게는 최고의 입문서였습니다.
TRPG 입문에 대해 고민하거나 궁금하신 분들은 던전월드로 판타지 세계에 들어오셔도 무방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확언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