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뉴스=gonews_jin 기자) 나는 강정구 교수의 역사관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예전에 어느 세미나 자리에서 그와 얼굴을 붉히며 논쟁을 한 적도 있고, 이번에도 미군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10,000명 정도만 죽고 끝났을 것이라는 그의 발언을 “위험하다”고 비판했다가 그에게 “미친 것이 틀림없다”는 욕설을 듣기도 했다. 다만 “당신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당신이 그 말을 할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는 볼테르의 말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가치라 믿을 뿐이다.
나는 강정구 교수에 앞서서 김일성을 김유신의 반열에 올려놓고 6.25는 통일전쟁이라고 했던 조갑제씨의 생각이 매우 “위험하다”고 믿지만, 누군가 그가 그런 생각을 표현할 자유를 빼앗아가려 한다면, 그의 발언의 자유를 위해 그와 함께 싸울 것이다. 서로 생각이 다른 시민들 사이에 공유되는 이런 묵언의 약속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초석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이 기본적 약속이 흔들리고 있다.
국보법, 사건을 만들다
흔히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을 옹호하는 논리가 있다. 이것은 거의 도착증적인 논리인데, 바로 그렇게 등장한 나치야말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살아있는 ‘국가보안법’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나치 독재는 공산주의에 대한 대중의 과장된 두려움이 만들어낸 괴물이었다. 그 괴물은 반공의 명분으로 자기와 다른 견해를 갖거나 표현하는 행위를 반국가 사범으로 규정하여 가혹하게 처벌했다.
통일이 되기 전에도 서독에는 버젓이 공산당이 있었다. 통일이 된 후에도 시뻘건 플래카드에 노란 색 글씨로 ‘마르크스-레닌주의 당’이라 써 붙이고 가두선전을 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대학가 선거 때가 되면 트로츠키주의자, 마오주의자 등 온갖 좌파 그룹이 제 존재를 요란하게 알리나, 이들이 법적으로 처벌을 받았다는 얘기는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모든 나라에 국가보안법과 비슷한 법이 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당장 UN에 항의를 해야 한다. 왜 UN에서는 하필 우리나라의 국보법에만 ‘반인권적’이라며 폐지를 권고하는가? 박 대표는 국보법이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맞다면 한나라당은 UN에서 폐지를 권고하는 그런 당이다. 기꺼이 UFO당(유엔에서 포기한 당)이 되겠다는 선언은 세계의 바깥에 나 홀로 외계인으로 존재하겠다는 당당한 외침이리라.
‘사건’은 국보법이 일으켰다. 국보법이 없었다면, 우익단체에서 그를 경찰에 고발할 일도 없고, 개입할 일도 없고, 법무부 장관이 지휘를 할 이유도 없고, 검찰총장이 퇴진을 할 일도, 한나라당에서 정권퇴진 구국대집회를 열겠다고 할 필요도 없었을 게다. 국보법이 없었다면 어느 교수가 어느 사이트에 이상한 글 하나 올린 것은 대부분의 국민이 모르는 새에 그냥 지나가 버렸을 것이다. 국보법이 그것을 거대한 정치적 사변(?)으로 둔갑시켜 놓은 것이다. 국보법이 존재하는 한, 언제라도 이 나라는 60년 전 해방전후사의 혼란에 빠져들 수 있다.
생각해 보라. “해방 이후 최대의 간첩 사건”이라던 송두율 사건은 결국 집행유예로 끝났다. 노동당 서열 10위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판에 노동당원도 아닌 한 교수의 필화 사건은 또 얼마나 허무하게 끝날까? 그런데도 이 일이 검찰총장의 자진사퇴를 낳고, 법무부 장관의 퇴진 요구를 낳고, 급기야 구국대집회라는 궐기대회로까지 번질 조짐이다. 이 모두가 국보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다.
검찰의 코미디
검찰의 논리는 허접하다 못해 처량하기까지 하다. 검찰총장은 검찰의 독립성을 위해 사퇴를 했다고 하나,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지검 공안1부는 구속수사안과 나란히 불구속 수사안도 함께 올리면서 “불구속수사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게다가 장관의 수사지휘는 김종빈 검찰총장이 직접 요청한 것이라고도 한다. 한 마디로 정상적인 논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검찰총장이 정말로 검찰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사퇴를 하려면, 일찍이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행해졌던 그 모든 부당한 정치적 외압에 대항하여 했어야 한다. 아주 가깝게는 지금 천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주장하는 박상천 전 법무부 장관이 자민련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하지 말라고 전화질을 했을 때, 바로 그때 했어야 그 사퇴가 ‘검찰 독립을 위한 희생’이라는 거룩한 뜻으로 이해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일본의 록히드사건 때처럼 거물 정치인의 비리에 대한 수사를 정치권에서 막으려 할 때, 그때 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검찰 스스로 그 비율이 증가했다고 자랑하는 불구속수사를 하는 게 옳다는 보편인권 차원의 지시가 그렇게도 억울했다는 말인가? 강교수가 도대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다시 집어삼킴으로써 증거를 인멸한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강교수가 이 땅에서 어디 도주할 곳이 있다는 얘기인가?
듣자 하니 한 검사가 법무부 장관에게 E메일을 보내 사퇴를 촉구함으로써 지금 검사들이 누리고 독립성의 드높은 수준을 만방에 과시했다고 한다. 검찰, 저렇게 달라졌다. 감히 일개 검사가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다니, 과거 같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검사는 장관과 다른 생각을 표출했다. 장관은 그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이견을 말할 그의 자유만큼은 열렬히 옹호해줌으로써 강 교수 사건을 처리하는 민주적 방식이 무엇인지 아직 민주주의에 익숙하지 못한 검사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표, 이성을 수습해야
박근혜 대표는 “현 정권이 이성을 잃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성을 잃은 것은 한나라당이다. 첫째, 내가 아는 한 불구속 수사의 확대는 그 동안 한나라당에서도 주장해 왔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을 향해 한나라당이 주장하던 바로 그 원칙을 적용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왜 태도를 바꾸는가? 피의자의 인권보호도 국보법 피의자에게만은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인가? 한나라당의 주장은 기호논리로 표시하면, A & ~A, 즉 모순율 위배에 해당한다. 주장에 모순이 없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성’의 기초다.
둘째, 지금 검찰에서 강교수에게 뒤집어 씌우려 하는 국보법 7조 ‘고무찬양죄’는 원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원내대표가 폐지하기로 합의를 했던 조항이다. 만약 그때 여야 합의로 그 조항이 폐지가 됐다면, 애초에 이 사건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이제 와서 태도를 바꾸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무찬양죄’는 폐지되어야 하나, 동시에 존속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머리에 과연 ‘이성’이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셋째, 이게 안 통하니 선동죄에 걸린다는 새로운 논리를 내놓고 있다. 강 교수의 글을 아무리 읽어도 구체적인 행동의 선동은 나오지 않는다. 기껏 나온다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자”는 것뿐이다. 도대체 이 나라에서는 맥아더의 동상을 철거하자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감옥에 갈 각오까지 해야 하는가? 동상 철거하자고 주장한다고 잡아가두는 나라도 있는가? 맥아더의 구리동상이 곧 대한민국의 체제이며 안보란 말인가?
넷째, 박근혜 대표는 “우리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고 도전하는 자를 보호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여기서 강 교수의 견해에는 반대하나, 그가 그 견해를 말할 자유는 옹호하겠다고 생각하는 볼테르들은 졸지에 대한민국의 체제를 수호할 의지가 없는 반국가 사범으로 낙인이 찍혀 버린다. 하지만 이성을 가진 존재라면, 자기와 다른 ‘정신’을 반박하기 위해 그의 ‘신체’를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황당한 논리적 비약을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머리’를 쓸 일에 ‘몸’을 쓰는 것은 이성적 존재가 할 일이 못 된다.
다섯째, 한나라당에서는 색깔공세를 즐기고 있다. 강정구 교수의 견해가 워낙 황당해 수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그 분노에는 정당한 측면이 있다. 다만 그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과 정도에는 문제가 있다. 정치권은 그 분노를 냉정한 언어로 분절해야 한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감정의 불길에 풀무질을 하며 색깔공세로 얻어질 정치적 이득을 계산한다. 오죽하면 같은 당 소속의 손학규 지사마저 “지금은 유신 시대가 아니”라고 했겠는가? 박 대표, 뜨거운 감정을 억누르고 차갑게 이성을 수습하기 바란다.
사주와 교수
이성을 잃은 박대표에게 이성의 목소리를 들려 드리겠다. 그거 아는가? 조중동의 보수언론도 피의자의 인권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준 적이 있다는 것을. 물론 그들의 사주가 탈세 혐의로 구속되었을 때다. 먼저 조선일보. “우리의 헌법과 헌법정신은 형사 사법제도가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권리의 신장이란 대원칙에 입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형사 피의자도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무죄로 추정되어야 하며 그 취지에서 인신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도록 불구속재판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2001/10/11)
다음은 동아일보. “형사소송법 70조는 인신구속의 요건으로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 등 세 가지를 명시하고 있는데 구속된 사주들은 이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 법원의 최종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법리에도 어긋난다.” (2001/08/20) 사주의 경우에는 탈세의 문제이므로 증거인멸의 우려라도 존재하지만, 강 교수는 도대체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 등 세 가지” 중에 어디에 해당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앙일보 사설은 이 문제에 관한 모범답안이다. “불구속 수사는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형사법의 대원칙이다. 유죄 확정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헌법정신과도 같은 맥락이다. (…) 무엇보다 ‘피의자는 구속시키는 것이 말썽이 없다’는 수사기관의 무사안일이 (…) 없어져야 한다. 또 구속을 행위에 대한 응징 수단으로 삼는 자의적인 법 운용도 문제다. 아울러 구속이 유무죄를 가늠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국민들의 법 감정도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 쪽으로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확립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9/01/07)
이 귀중한 말씀을 강 교수의 경우에 적용시키면, 강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는 “형사법의 대원칙”이며, 천 법무장관의 불구속 수사지휘는 “헌법정신과도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 “‘피의자는 구속시키는 것이 말썽이 없다’는 수사기관의 무사안일”은 없어져야 하며, “구속을 행위에 대한 응징수단으로 삼는 자의적인 법 운용도 문제”다. 나아가 “구속이 유무죄를 가늠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국민들의 법 감정도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 쪽으로” 바뀌어야 하며,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국민 모두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게 중앙일보의 주장이다.
박근혜 대표, 이상한 군중집회 열어 나라의 혼란을 가중시키지 말고, 조중동이 도미솔 협화음으로 들려주는 이 조화로운 ‘이성’의 화음에 겸허히 귀를 기울여, 무섭게 거칠어진 정서를 함양하시기 바란다.
글•진중권(시사평론가•‘SBS 전망대’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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