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위 조사관 '총기 협박' 당했다
"자료 가져와라, 아니면 다 죽이겠다!"
오마이뉴스 | 07/12 16:17 | 조회 1634
◎ 우리 군의 '사법'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는 '전시(戰時)'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기반한 군 사법제도 때문으로 평시에 '軍 비리'를 은폐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오마이뉴스>는 [특별기획-군 사법을 고발한다]를 통해 현행 군 사법체제의 불합리 실태를 고발하고 대안도 제시할 방침이다.이번 기사는 의문사위가 12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국방부 특조단의 재은폐 의혹 제기와 인아무개 상사의 의문사위 조사관 총기협박사건 폭로를 다룬 것이다.
"탕! ---
지난 2월 26일 저녁 7시, 대구 시내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을 든 현역군인 인아무개 상사는 곧바로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 박종덕 조사3과장과 조사관 1명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자료 가져와라. 안 가져오면 다 죽이겠다.'
'너희들, 오늘 다 죽는다!'
'나도 죽겠다.'
인 상사는 인도 한복판에서 의문사위 조사관 두 명의 한쪽 손목에 각각 수갑을 채운 채 10여분간 고성을 질러댔다. 그 뒤 이들은 인근 카페로 들어가 30여분동안 실랑이를 계속했다.
인 상사는 의문사위 조사관들의 멱살을 잡고 '죽이겠다'고 협박하거나, 자기 머리에 총을 겨냥한 채 '자료 돌려주지 않으면, 내가 죽어버리겠다'면서 금방이라도 자해할 것같은 행동을 취했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위 조사관들에게 총 쏘며 '협박'... 수갑까지 채워
위 내용은 의문사위 박 과장 등으로부터 전해들은 당시 공포스러웠던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날 오후 6시경 대구에 위치한 인 상사의 집에서 실질조사 차원에서 압수한 1박스 분량의 자료를 싣고 서울로 향하던 의문사위 관계자들은 구미 근처에서 차머리를 되돌려야 했다.
인 상사와 만나고 있던 두 명의 조사관들이 위협에 처해 있고, 또 자칫 인 상사의 '자해 협박'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상황이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인 상사는 이날 저녁 8시경, 대구시내 한 카페에서 자료를 다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한 대통령 소속 의문사위 조사관들에게 총을 발사하며 협박하고, 수갑까지 채운 어처구니 없는 사건의 전말이다.
이에 대해 인 상사는 12일 오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총을 쏜 기억은 없지만, 경찰서에서 허가를 받은 가스총을 들고 있었던 것은 맞다"면서 "의문사위 조사관들을 주거침입, 절도죄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한 적은 있다"고 밝혔다.
인 상사는 특히 "의문사위는 주거에 침입해 개인 물건을 압수해갈 수 없다"면서 "아내로부터 이같은 사실을 전화로 전해듣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조치한 뒤 두 명의 조사관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종덕 과장은 "이 사건이 터진 뒤에 의문사위 관계자가 인 상사를 만나 '왜 총기를 쏘며 협박했냐'고 채근하니, 인 상사가 '난 총기사용 허가증을 가지고 있다'면서 실탄 사용을 사실상 인정했다"고 밝혔다.
박 과장은 특히 인 상사의 협박소동으로 인해 '중요자료'를 되돌려 준 것과 관련 "부하직원이 총을 맞을지 모르고 인씨가 자해할 가능성도 있어 어쩔 수 없이 자료를 되돌려줄 수밖에 없었다"며 "진실의 힘보다는 무력의 힘이 컸던 모양"이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인아무개 상사의 '가스총' 해명과 관련 당시 현장에 있었던 정은성 조사관도 "나도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가스총과 권총의 차이를 잘 안다"며 "실탄까지 가지고 있는 걸 봤는데 '가스총'이라고 우기는데 정말 어이없다"고 반박했다.
의문사위 조사관들과 인 상사와의 만남은 이보다 열흘 전인 지난 2월 12일이었다.
국방부 특조단 조사관이었던 인아무개 상사가 지난 2월 26일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관들을 향해 권총 1발을 발사하며 협박했던 장소.ⓒ2004 의문사진상규명위
이후 조사관들은 지난 2002년 허 일병 사건에 대한 국방부 특별조사단에서 활동했던 인 상사가 주요 수사자료를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고, 26일 그의 집에서 자료를 압수했던 것이다. 이날 총기협박 사건은 자료를 가져갔다는 사실을 안 인 상사가 격앙된 상태에서 저지른 것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 보름만인 지난 3월6일 의문사위 조사관 4명은 정수성 사령관의 요청으로 방배동 한 식당에서 만났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 사령관의 '협박' 의혹, 즉 의문사위 조사관들을 향해 '언론에 공개하기 전에 나에게 먼저 얘기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발언은 바로 이 자리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이 자리에는 정 사령관과 함께 인 상사도 참석했다.
의문사위는 정 사령관의 '협박 발언' 의혹은 인 상사의 이날 행위와 무관치 않다고 추정하고 있다.
한편 인 상사는 정 사령관의 '협박' 의혹 관련, 지난 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그 자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고, 정 사령관이 '죽이겠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12일 오전 두번째 전화통화에서는 "(정 사령관이) 웃으면서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고, 이에 조사관 한명이 '장군님 그런 말씀 하시면 안됩니다'라고 대꾸하기도 했지만,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협박한 적은 없다"고 번복했다.
인 상사가 소지하던 1박스 분량 자료... 허 일병 사망사건의 비밀?
의문사위는 총기협박 사건 이후 인 상사를 끈질기게 설득해 그로부터 당초 압수했던 자료를 4월경 되돌려 받았다. 하지만 인 상사는 "국방부 특조단 수사 당시 녹취록과 관련 디스켓을 파기했다"면서 이를 제외한 채 서면 자료만을 의문사위에 건넸다.
그렇다면 당시 1개의 종이박스 분량의 자료중 누락된 자료에는 무슨 내용이 들어있었을까. 이 속에 지난 20여년간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둘러싼 공방이 끊이지 않았던 허 일병 사망사건의 진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의문사위는 지난 2002년 허 일병 사망사건에 대한 조사에 나섰던 국방부 특조단의 재은폐 의혹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의문사위원회는 조만간 인 상사와 정 사령관을 협박 등의 혐의로 고발조치 할 것인지에 대해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법 제34조에는 조사관 협박과 관련, 징역 5년 이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으며, 이는 의문사법에서 규정하는 최고 형량이다.
한편 의문사위는 오늘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국방부 특조단의 재은폐 의혹을 제기하며 인 상사의 총기협박을 폭로했다. 이에 대해 인 상사는 "의문사위 조사관들이 온갖 회유와 협박을 했다"면서 "오늘 오후 별도의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머니투데이(경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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