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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감은 오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래도 굳이 제 소개를 올립니다.
유정이를 대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미 늦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경찰에는 연락하지 말 것, 당부 드립니다.
다음 주까지 1000만원 현금으로 준비해주셨으면 합니다.
금요일, 파고다 공원에서 기다리시면 찾아뵙겠습니다.
제가 나타난다면 거래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무언가 알아차린 것으로
인지해주셨으면 합니다.
돈이 준비 되지 않거나
불미스러운 행동을 하신다면
다음에는 유정이 손가락을 붙여드릴 예정입니다.
유정이 예쁜 손가락, 몇 개를 보내야
저의 진지한 마음을 알아주실지, 아직 고민 중에 있습니다.
불상사가 없다면 서로에게 더 좋은 것이겠지요.
그러길 바라봅니다.
두 번이나 말씀 올립니다.
경찰에는 연락 삼가바랍니다.
* * * * * * * * * * * * * * * * *
편지 잘 읽었습니다.
정말 당황스럽고 송구스럽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유정이가 누구인가요?
혹여 제가 유정이의 부모라거나 그에 준하는 누군가라고
생각중이시라면, 이 편지를 통하여 오해가 풀리시길 바랍니다.
저는 29세의 독신 남성으로 여자친구 조차 없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이 독신들 즐비한
대학가 원룸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시는 건지요?
혹여 동수나 또는 호수를 틀리게
편지를 보내신 건 아닐까 심려가 큽니다.
사전 조사는 면밀히 하셨는지요.
면밀하셨기를, 그리고 이번 편지가 그저 실수였기를 바랍니다.
제가 상관할 바는 아닐지 모르지만,
유정이 손가락이 헛되이 잘리는 일은 없었으면 하니까요.
가능하다면 유정이 손가락은 자르지 않는 방향으로 생각해주세요.
꼭 유정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라하더라도
혹시라도 범행이 발각되어 체포되셨을 때,
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하시는 게 옳다 봅니다.
체포 당시 유정이 손가락이 없다면,
서로 곤란하지 않을까요?
속단 마시고 미리 방책을 세워두시는 것이
본인의 신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추어 주제에 쓸데없는 사견 죄송합니다.
* * * * * * * * * * * * * * * * *
접니다.
시치미 때시는 건 곤란합니다.
사전 조사는 충분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허접한 사람이 아닙니다.
유정이가 스스로 집 주소를 외우고 읊는 건 아시는지요.
제가 확인한 주소와 유정이가 읊는 주소가 같습니다.
벌써 3주가 넘어가는 시점에 이렇게 생 때를 부리신다니
진심으로 믿어지지가 않고, 너무나 속이 상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성을 잃을 것만 같습니다.
유정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 아니신지요.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요즘 유괴치고 1000만원이면 괜찮은 가격입니다.
손해 보는 건 아니라 봅니다.
유정이를 생각해주십시오.
* * * * * * * * * * * * * * * * *
다시 한 번 말씀 올립니다.
도대체 유정이가 누구입니까...
제가 이 방으로 이사 온 것이 대충 3주 여가 된다는 사실은 알고 계신지요.
저 이전에 부부가 살았는지, 유정이가 살았는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계속 이리 귀찮게 여기신다면 저는 경찰을 부르는 수밖에는 없다는 점 밝힙니다.
신종 사기 수법인지 뭔지, 아무튼 이제 멈춰주세요.
저는 1000만원이라는 큰 돈 엄두조차 안 납니다.
* * * * * * * * * * * * * * * * *
접니다.
염치 불고하고 댁에 잠시 들렸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올립니다.
유정이 부모님께서 이사를 하셨으리라
감히 상상도 못하였기에 경황이 없었습니다.
자기 따님을 잃어버리고, 어찌 이리도 훌쩍 떠나실 수가 있는지
말세란 말을 통감하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그런 파렴치한 부모가 세상에 또 있을런지요.
뜬금없으시겠지만, 부탁 한 말씀 올립니다.
혹시 유정이 부모님 이사 가신 곳,
부동산 같은 곳을 통해 좀 여쭤주실 순 없으실까요.
제가 스스로 유정이 부모님을 찾아 나서기엔
‘나 잡아가세요.’ 하는 꼴인 듯하여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유정이에게 들이는 돈이 상당해서 곤란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본업이 잘 풀리지 않아 아이를 키울 여력이 안 됩니다.
선처를 바랍니다.
* * * * * * * * * * * * * * * * *
선처라니, 당치도 아니합니다.
유정이를 생각하는 마음에서라면
저 또한 부모님을 찾는 일을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유괴범을 돕는 꼴이 되는 것 같아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또 있을까, 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머리가 어떻게 되신 건 아니신지요.
스스로 제정신인지 거울 앞에 스스로 여쭤보심은 어떠신가요.
앞으로 그런 곤란한 부탁은 삼가바랍니다.
유정이 생활비 때문에 곤란을 겪고 계신다면
유정이를 경찰서 같은 곳에 맡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생각보다 친절히 유정이를 맡아주시지 않을 까요?
PS. 차라리 체포되셨으면 더 좋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 * * * * * * * * * * * * * * * *
접니다.
경찰서에 유정이 맡긴다는 의견이 썩 괜찮은 것 같아 시도해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제가 전과가 있는 몸이기에 혹여 경찰 측에서 제게
간단한 조사라도 원하는 날이면, 유괴범인 것이 탄로 날 것이 너무도 자명합니다.
저는 며칠 유정이를 맡아 준 죄로 교도소 신세를 지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설상가상인지라, 유정이가 너무도 영특하여
저희가 살고있는 집의 주소를 외워버리고 말았습니다.
유정이만 경찰서에 버리고 도망치자니,
유정이가 저희 집 주소를 홀라당 불어버릴 것이 너무나 염려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서
무척이나 마음을 졸이고 있습니다.
또 하나 큰일은 유정이가 올해 7살이라는 것입니다.
내년에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켜야하는데, 정말이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주변에서 제게 이렇게 큰 딸이 있었냐 물어오기에,
젊어서 아이를 낳고 이혼 했다며 둘러댔습니다.
기분 탓인지 아주머니들 표정이 굉장히 못 미더워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잡혔으면 좋겠다는 말씀 큰 상처가 됩니다.
어찌나 서운한 마음이 들었는지, 저 그날 밤 혼자 울었습니다.
너무합니다.
* * * * * * * * * * * * * * * * *
죄송합니다.
울리려는 의도에서 드린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요즘같이 범죄자의 인권이 하늘처럼 높은 시대에,
제 의식이 아직 90년대 중반에 머무르는 탓입니다.
아직도 가끔 정의가 살아있다고 믿어서 탈이지요.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한 점 사과드립니다.
유정이는 잘 있는지요.
저번에 유정이 손가락을 자르시겠다는 말씀이 마음에 걸립니다.
밥은 잘 먹고 있을지, 잘 모르는 아이지만 괜히 우려 생겨 말씀 올립니다.
혹시 생각 있으시다면 전화로 해결해보는 건 어떠실런지요.
번호 남깁니다.
[국번 없이 112]
* * * * * * * * * * * * * * * * *
오랜만에 편지 올립니다.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조금 쌀쌀합니다만,
야산이며 언덕길에는 벌써 초록이 물들었습니다.
몸은 건강하신지요.
유정이는 잘 있습니다.
물론 손가락도 잘 붙어있습니다.
유정이가 최근 들어 저를 엄마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영특한 아이인지라 사리분별은 가능할 줄 알았습니다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모라고는 죽어도 부를 마음이 없나봅니다.
제가 나름 음식에는 조예가 있어 밥은 잘 먹이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유정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벌써부터 받아쓰기 100점을 받아오고는 합니다.
구구단을 19단까지 외운다는 게 믿어지질 않고는 합니다.
유정이 말로는 요즘 아이들은 다 자기 정도는 한답니다만,
제가 보기엔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 머리가 비상하다고 생각됩니다.
옆집 아이는 7살에 벌써 국영수 교습을 받고 있다는데
저희 유정이가 교육을 못 받아서 남들에게 뒤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는 요즘입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하는데요.
교육비가 얼마나 들지 혹시 아시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다른 아이 엄마들과 어울리기엔
유정이의 대한 거짓말을 만드는 일이 여간 고되는 일이 아닙니다.
진솔한 답변 주시는 분이 따로 없기에 감히 도움을 바라봅니다.
112 번호 남겨주셨을 때 크게 웃었습니다.
저도 제 처지 잘 알고 있습니다.
가내 두루 평안하시고 신년 복 많이 받으세요.
* * * * * * * * * * * * * * * * *
제 기억이 옳다면 다섯 달을 넘겼는데,
아직도 유정이를 맡고 계신다니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제정신이신가요.
유정이가 그쪽을 엄마라 부른다니, 더욱 놀랍습니다.
저도 모르게 유괴범은 남자라 단정 짓고 있었습니다만,
역시 세상만사 제 좁은 상식 안에서만 놀진 않는군요.
한동안 편지가 없으셨기에 내심 불안했습니다.
유정이가 벌써 세상에 없는 건 아닐지...
솔직한 말씀을 올리자면 지금도
유정이가 살아있다는 증거랄 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비가 걱정이란 말씀 너무도 뜬금없고 터무니 또한 없어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입니다.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이런 미치광이 같은 편지를 보내신 것인지요.
유정이 얼굴조차 모르는데, 그 아이가 떠오를 때면 밤잠을 설치곤 합니다.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기를 은근 기대하는 제가 있습니다.
유정이의 행복을 빌어봅니다.
* * * * * * * * * * * * * * * * *
접니다.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가요?
믿음을 드리지 못할 수 있다는 점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감이 좋으신 건지, 머리의 회전이 빠르신 건지,
예상을 잘 하시긴 하셨습니다.
사실은 작년 겨울 유정이를 가방에 넣고 강으로 간 일이 있었습니다.
유정이가 저희 집 주소만 외우지 않았어도,
고아원에 버리는 방법도 있었는데요.
주소만 몰랐어도요.
혹은 제가 주소를 옮길 돈만 있었어도.
한 겨울을 약본 탓이었는지 고생을 좀 했습니다.
생각한 것 보다 강이 얼어붙는 두께가 상당했거든요.
두께도 두께지만 참 단단히도 얼어 있었습니다.
얼음을 깨고 부수고 난리도, 난리도... 정말 난리였습니다.
인생 처음해보는 삽질이 만만치만은 아니하더군요.
삽이 얼음에 튕겨서 제 몸도 같이 밀리고, 넘어지고.
자칫 삽으로 유정이 들어있는 가방을 찌를 뻔도 했습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건 좀 아플 것 같다.’ 라고 문득 떠올랐습니다.
가방을 좀 멀찌감치 옮길 생각으로 들어 올렸죠.
그때 유정이는 뭘 느꼈던 것이었을까요.
유정이가 뜬금없이 제게
“그동안 맛있는 밥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 작별의 말을 했습니다.
초연히도 가방이 움직임 하나 없었어요.
저는 유정이를 강 밑으로 밀어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음을 깨지 못했기에 그랬던 게 아닙니다.
글만으론 증거가 부족할까 싶었기에
용기를 내 유정이와 찍은 사진을 동봉합니다.
경찰에 신고는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가능하다면 잡히고 싶지 않기도 하고,
그리고 왠지 유정이를 부모에게 보내지 않는 것이
옳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워낙 배운 게 없고 머리가 나쁜 저 인지라,
뭐라 조리있는 설명도 못하겠고, 글 조차 짧습니다.
이해를 바랍니다.
* * * * * * * * * * * * * * * * *
한동안 의문이었습니다.
그 어린 유정이가 집 주소를 그렇게 잘 외우고 있었을지.
과연 사전 조사가 그렇게 면밀하고 빈틈이 없었는지.
부동산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그동안 관리 부동산도 바뀌고 덩달아
관리인도 바뀌는 바람에 조금 애를 먹었습니다.
유정이 부모님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의문이 완전히는 아니지만 꽤 해소되더군요.
제가 방을 구하던 당시 값싼 방에 목을 매고 있었습니다.
욕심이란 게 생겼던 걸까요. 발품을 팔면 팔수록 조금씩 같은 가격에도
좀 더 조건이 좋은 물건들이 나타나더라구요.
돌고 돌아 찾은 방이 지금 살고 있는 방입니다.
진부한 괴담 같은 이야기랄까요.
이전 관리인 분이 더 이상 관리인이 아니시기에 속 편히 대답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살기 직전에 살던 부부가 방에서 독음을 한 모양입니다.
사라진 유정이 부모님과 유괴 시기, 저의 이사 날이 교묘하게 비슷합니다.
제가 탐정은 아닌지라, 정확하게 콕 집어 말씀은 드리지 못하겠습니다만
몇 주 정도의 시간차로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을까, 대충 예상해봅니다.
당시 월세가 몇 달은 밀려있었던 것이 음독과
방이 빨리 빠진 것에 설명을 어느 정도 충족합니다.
퍼즐을 맞추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더 깊게는 생각해보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유정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살아서 유괴를 당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부분입니다.
유정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보고 싶어졌었지만,
제 능력이 닿지가 않습니다. 또 동시에 찾는 게 무의미하단 생각도 있습니다.
한참을 밤잠 못 이루던 이유가 얼마 전 떠올랐습니다.
저는 참 비겁한 사람이었더군요.
제 깐엔 상식 있는 척, 윤리 있는 척해가며
그쪽을 조롱하고 말장난처럼 경찰에 가라, 잡혀라 했습니다만,
저는 치졸하게도 그리고 냉정하게도 사실은, 정말 마음 깊숙이는
유정이가 어찌 되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편지가 멈추고 조금씩 생각이 트였습니다.
어느 날 문득 유정이가 죽었다면? 이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제서야 비겁한 주제에, 죄책감이 물밀 듯 쏟아져 내리는 걸 느꼈습니다.
비록 유정이의 얼굴도, 그쪽의 얼굴도 모르지만
이 사진을 믿는 것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저는 제 무능함을 톡톡히 깨달았습니다.
유정이가 본인을 엄마라 부르며 따른다니,
저는 제가 무엇을 믿고 따라야할지 의문입니다.
경찰에 사진을 전하고 유정이가 시설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그저 유정이와 유정이 엄마 두 사람을 가만 두는 것이 맞는지.
유정이가 강 밑에 들어가지 않아 다행입니다.
사진이 사실이라 믿으며, 저 같은 비겁자를 믿어주신 분께
저 또한 그에 부흥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받은 편지를 모두 돌려보냅니다.
제게는 더 이상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유정이와 유정이 엄마 모두 마음 불편한 날 없으셨으면 합니다.
PS. 미인이십니다.
* * * * * * * * * * * * * * * * *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 유정이라고 합니다.
올해에는 대학에 입학합니다.
다음 주면 대학 기숙사에 들어갈 예정이기에
지금은 방 정리에 몰두하던 중입니다.
두 분께서 이런 편지를 주고 받으셨군요.
저는 엄마 이외에 사람이 저의 정체를
아시는 분이 계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엄마가 혹시나 다른 곳에 편지를 더 보관중이 아니라면
아마도 아저씨는 엄마와 편지를 주고받으신지 10년을 훌쩍 넘기셨네요.
저희 엄마를 못 본체 해주셔서 감사하다,
그런 말씀 전한다면 그건 너무나 비도덕적인 걸까요.
유괴범을 못 본 척 한 일이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제 입장에서 판단을 하기는 너무 얄궂은 질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은 엄마가 저를 가방에 넣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답니다.
희한하게도 겨울옷을 단단히 입혀선 저를 가방에 들어가게 했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그렇습니다. 희한합니다. 굳이 겨울옷을 사서 입혔었으니까요.
그 전까지는 제게 겨울 잠바 따위는 없었어요. 당연하죠.
원래였다면 제게 겨울이 올 예정은 없었을 테니까요.
엄마의 편지를 보니 기억이 더 뚜렷하게 살아납니다.
“그동안 맛있는 밥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슨 정신에 그런 말이 튀어나왔을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분명한 건 그날 제가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 건 엄마만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아저씨 또한 저를 위해서 엄마를 설득해 준 일이 있었네요. 저는 모르게.
제 손가락을 자르지 말라 엄마를 설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저희 엄마는 분명 제 손가락을 냉큼 잘랐을 거예요.
정말이지...
몇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일단, 이 편지들은 왜 제방에 있는 걸까요?
엄마가 생각 없이 뒀을까요?
그렇게 단순한 분은 아니신데.
알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두 분이 편지를 어떻게 주고 받으셨는지 입니다.
어떻게 하셨나요. 두 분은 편지봉투 보내실 곳 란을 텅텅 비워두셨네요.
아저씨가 저희 집을 알리는 없고... 엄마가 직접 오갔던 건가요?
엄마 얼굴도 마지막까지는 몰랐던 것 같고.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조금 괘씸하다 여기셔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사실 정말로는 마지막까지 제가 죽거나 살거나
그런 건 진짜 아무래도 좋았던 게 아니었나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왜 이런 느낌이 드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마치 귀찮으니까 편지를 매듭짓기 위해,
완결편이 급조 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급박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이건 조금 위험한 생각입니다만,
귀찮지 않았다면, 혹여 밤잠을 못이룬다는 말이
조금은 색다른 의미였다면, 하는 것입니다.
저희 엄마가 아저씨네 집도 잘 알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요.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혹시. 정말로 혹시.
저 대신 가방에 들어가 계신 건 아니죠?
가방에 들어가 강물에 잠겼다거나, 그렇지 않죠?
저희 엄마가 워낙 그런 부분이 있으셔서요.
무언가 위협을 느끼셨기 때문에 급작스래
편지를 모두 엄마에게 떠넘기려고 했던 게 아니길 빕니다.
아니라면 다행이고요.
어찌 되거나 말거나 아저씨의 덕입니다.
아저씨의 덕에
제 손가락은 잘 있습니다.
PS. 편지 붙이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디로 붙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끝-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