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외갓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각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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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도 없고 휴대폰도 없던 시절.
나는 언제나 마을 입구의 버드나무 앞에서 장터에 나가선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저 멀리서 얼큰하게 취해 콧노래를 부르며 비틀비틀 걸어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약간 부끄러웠지만 언제나처럼 낡은 자켓 주머니에 들어있을 눈깔사탕은 날 기대하게 만들었고, 동생들보다 하나라도 더 받아 먹어 우쭐해지고 싶은 마음이 이 기다림의 지루함을 해소하게 해 주었다.
-아버지예~ 오늘도 눈깔사탕 사왔습니꺼?
-으헤헤헤~ 우리아들. 아버지 기다렸나?
알콜 냄새를 풍기며 기분 좋은 듯 안겨드는 아버지는 안중에도 없고 나는 자켓 주머니에 눈이 가 있을 뿐이다.
-내 사탕 주이소 아버지. 기다린다고 목 빠지는줄 알았습니더.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웃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시덥잖은 실랑이를 벌이는 중 뭔가 싸한 기분이 든다. 어디서 이렇게 한기가 느껴지나 하니 버드나무다. 버드나무 위에서 누군가가 쳐다보는 기분이 든다.
버드나무 가지 위에 검은 사람 형상이 보인다.
5~6살 쯤 되는 어린 아이가 양반 다리로 앉아 눈도 깜빡이지 않고 계속 날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잘 못 본 게 아닌가 해서 계속 그쪽을 응시했지만 아무 미동도 없이 그 아이도 날 쳐다만 보고 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한 번 불러 보았다.
-야야~ 니 거기 있으면 위험하데이. 퍼뜩 내려온나.
-............
-니 말 못하나? 내가 손 잡아 주께 이리 와 봐라.
-.............
-자 내 손 잡아봐래이
나는 손을 아이쪽으로 내밀었다.
아버지가 내 행동을 보고 슬쩍 나무 위로 쳐다 본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한 마디 거든다.
-아버지~ 쟈 나무 위에서 올라가가 몬내려 온다. 함 봐보이소.
-(한참 쳐다보신 후)...그 있기는 머가 있노? 암것도 안 보이구만
쓸데없는 소리말고 집에 가자~
술이 꽤나 취한 아버지는 듣는둥 마는둥 나를 밀치며 집으로 유도했다.
나는 잘 못 본 게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아버지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갔다.
그때 시간은 대략 밤 10시 즈음,
우리 집은 동네 입구에서 꽤나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동네 회관을 지나 몇 차례의 논길을 가로질러 가야만 한다.
논길은 좁고 질척 했으며, 가로등 하나 없어서 논에 고여 있는 농수에 비친 달빛을 전등 삼아 걸어갈 뿐이다.
오늘따라 개구리의 개굴~ 개굴~ 우는 소리도 스산하다.
스윽~ 스윽~
무언가 우리를 뒤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잠깐 걸음을 멈추면 그 소리도 멈춘다.
이미 아버지는 저만치 앞에서 걸어가고 있고 나는 계속 이 신경쓰이는 소리를 들으며 걸어갔다.
흔한 산짐승이라고 생각 했으나 뭔가 미묘하게 달랐다.
궁금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무섭고 겁이 나서 그 존재를 확인하고 싶지가 않았다.
단지 집으로 들어가 따뜻한 안방에서 어머니, 동생들과 함께 눈깔사탕을 먹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점점 가까워지는 기운을 느껴 위기감에 휩싸인 나머지 슬쩍 뒤돌아 봤다.
- 으악~~~!!!
아까 버드나무에서 본 아이가 논길을 네발로 기어오고 있는 것이다.
흰자가 없는 검은 눈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고 입은 사람이 지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귀까지 찢어진 상태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하고 있었다.
- 아버지!! 아버지요!!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아버지를 쫓아가려 했으나 아버지는 어느샌가 사라져 보이지가 않았다.
스윽~ 스스스윽~~스윽~ 스윽
날 쫓아 오는 소리가 더욱 빨라진다.
이 악몽 같은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조건 달려서 집으로 가야 했다.
슬리퍼에 돌이 들어와 발도 아프고 무서워서 눈물이 나지만 어쩔 수 없다.
머리를 비우고 계속 달리고 또 달렸다.
가까스로 집으로 들어와 재빨리 대문을 잠그고 쓰러지 듯 주저앉아 가쁜 숨을 쉬었다.
- 헉...헉
아까 그게 뭐꼬?? 아버지는 어디가뿌고?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을때 아버지가 타올을 목에 두르고 런닝 차림으로 안방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온다.
만신창이가 된 내 모습을 보고는 아버지가 놀라신다.
-니 어디갔었노? 갑자기 사라지가 1시간만에 들어오네.
니 어디 가면 간다카고 나가라 짜슥아.
그러면서 헛기침을 하며 태연히 화장실에 소변을 보러 가신다.
이 모든 게 믿기지가 않은 상황이므로 어린 나는 어떻게 할 수도 없이 악몽이라고 자기 자신을 세뇌시키며 어머니의 품에서 공포를 잊어가야만 했다.
그날 밤은 유난히 길고 길었다.
다음 날 아침 무언가가 대문바닥 문틈에 끼어 있다.
너덜너덜하고 피묻은 오래 된 빗자루가 실에 둘둘 감겨 괴상한 형상을 하고 있다.
세수를 하러 나온 아버지가 그걸보고 한 마디 하길,
-아이고 저거 뭐꼬. 누가 도깨비 만들라꼬 저짓을 했노...쯧쯧
우리집에 들어왔으면 클날뻔 했네~ 빨리 가온나. 태우뿌자.
나는 잡 쓰레기들과 함께 타고 있는 빗자루를 바라보며
전날 달리다 넘어져 무릎에 생긴 상처의 쓰라림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문득 바지 호주머니 안에 무언가가 느껴진다. 눈깔사탕이 하나 있다.
투명한 껍질을 까서 곧바로 입속으로사탕 하나를 넣는다.
이 기억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달리다 다친 무릎의 시큰함과 혀에서 녹아드는 눈깔사탕의 달콤함은 여전히 기묘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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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써보는 괴담이라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이해해 주시고 봐주십시요^^
출처 : 루리웹 붸스트 님(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327/read?articleId=23004890&objCate1=314&bbsId=G005&itemId=145&sortKey=dep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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