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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냐? 또야!! 이런 옘병할 년!!”
나 박병춘이 비록 내 짧은 인생을 [발명]이라는 가치위에 두고, 십 수년을 소진해 오며, 돈도 못 벌어오는 밥버러지, 쓸모없는 거나 만드는 정신나간 인간이란 소릴 들으면서도 꿋꿋이 참아왔다. 비록 그 말이 내 아내가 나에게 퍼 부운 악담이긴 해도, 나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든 악담과 폭력행위는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무려 결혼 7년만에 얻은 나의 무남독녀 외동딸에게 가해진 이 폭력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떻게 얻은 딸이냔 말이다. 가희 무정자증에 가깝다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시험관 3번, 그리고 수도 없는 한밤의 뿅뿅으로 태어난 나의 보물, 나를 쏙 빼닮아 극단적으로 귀여운(?) 나의 딸이 또 얼굴에 상처를 입은 채 돌아왔다.
“야 이 인간아! 뭘 또 흥분하고 그래! 어차피 애들끼리 싸운걸 가지고!!”
“시끄러워! 이 여편네야! 3살 버릇 여든 간다고, 그런 애들이 커서 일진되고, 애들 괴롭히는 불량학생이 되는 거야!”
“어린이집 선생이 우리 애 자꾸 괴롭히지 말라고 걔 한테 주의 줬다잖아! 뭘 어쩌려고 그래! 애들 싸움 어른 싸움으로 만들려고 그래?”
“안돼! 안돼! 뭔가 방법을 찾아야 돼! 나를 때리는건 용서 할 수 있지만, 내 딸을 때리는 건 용서 할 수 없다!”
“염병할 인간! 애들이 다 맞으면서 크는 거지! 안 그래도 그 집 엄마랑 통화했어, 듣자니까 걔도 얼굴에 멍이 들었데! 대충해둬! 그리고 그럴 시간있으면 그 놈에 발명인지 뭔지 좀 때려치고 돈이나 벌어와 이 식충아! 으이구!!”
역시나 아내는 악담을 늘어놓고는 딸을 데리고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참을 수 없다.
나는 급히 내가 가진 모든 과학적 재능을 모아 나의 딸을 지키고, 나의 딸을 괴롭히는 악당 분홍반 3세 연희를 무찌르기 위해 새로운 발명에 돌입한다.
작용과 반적용의 원리, 그리고 그러한 힘의 등속속도를 저장할 수 있는 괴랄 맞은 기계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즉시 설계도를 그리고, 소형화하여 아이가 소지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기 시작했다.
“됐다. 드디어 됐어!”
기계를 완성한건 약 일주일 정도 뒤였다. 컴팩트하면서도, 움직이는 힘의 방향을 저장하고, 또 되돌려줄 수 있는 기계...
그렇다. 이른바 ‘무지개 반사(Rainbow reflecting)’라고 명명된 나의 이 발명품은 내 딸에게 가해질지도 모를 분홍반 연희(3세)의 폭력을 기계 내부에 저장했다가 동일한 부위에 다시 되돌려주는 극강의 방어기능을 가진 기계인 것이다.
나는 손이 떨려왔다. 이것이 있으면, 나의 딸을 지킬 수 있는 것과 동시에, 전국에 있는 모든 빵셔틀, 찐따들을 잔악한 일진들로부터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야... 이거 출시되면 대박이겠는데?”
나는 이 발명품을 착용한 여아를 건드렸다간 고영훅이고 뭐고 간에 죄다 치질이 걸리고 말꺼라는 자신만만한 악담을 늘어놓으며, 등굣길에 나서는 딸의 주머니에 슬며시 그것을 넣어 둔다.
하지만 최초로 제작한 시제품이기도 하고, 괜시리 당장 분란의 소지를 만들필요는 없을 듯 하여, 계기를 조정, 착용자에게 가해진 물리적 힘이 되돌아가는 시기를 3시간 뒤로 맞춰 놓는다. 생각해보라 불쌍한 내 딸을 괴롭히는 분홍반 3세 연희는 간악한 미소를 지으며 딸의 팔뚝을 꼬집어 보지만, 3시간 뒤 연희 역시 통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허나... 그때는 이미 3시간이 지난 후다.
아무런 증거도, 분란의 씨앗도 남지 않으며, 그때쯤 나의 딸은 이미 집에 와 있을 것이니, 알리바이 역시 완벽해진다.
“예승아 어린이집 잘 갔다와 선생님 말 잘 듣고”
“아빠 어린이집 안갈래 안갈래”
“안돼! 오늘은 꼭 가야돼! 기필코 가야돼! 연희 이 망할 계집... 아니 연희랑 재밌게 잘 놀아!”
이제 겨우 3살인 내 딸은 말도 아직 어설프다. 그런 아이가 친구의 괴롭힘 때문에 이렇게 나에게 매달려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걸보니 또 한 번 가슴이 찢어질 듯 괴롭다.
허나 이제는 걱정 없다. 나의 희대의 역작, 최고의 발명품 무지개 반사가 나의 딸을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직장에 다니는 아내 대신 나는 어린이집으로 딸을 데리러 간다. 물론 나와 같은 발명가가 이런 것에 시간을 쓰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고 생각하지만, 오늘은 나의 발명품 무지개 반사의 효과를 확인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낭비라고만은 볼 수 없다.
하지만 약간의 불안한 마음은 있다. 혹시라도 오늘은 연희가 어린이집에 안 나와 딸이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거나, 그 못된 마귀 같은 연희(3세)가 갑자기 개과천선하여 나의 딸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나의 발명품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뭐랄까? 딸의 안전을 걱정하면서도, 또 동시에 딸이 오늘만큼은 괴롭힘을 당했으면 하고 바라는 발명가의 상충된 마음...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달리 나의 딸은 오늘도 불편한 얼굴이다.
“왜 그래 예승아 어디 아퍼?”
“여기 여기 아퍼”
딸이 제 볼을 가리킨다. 아직 말이 서툴러 뭐라는지 정확히 알아들을 순 없지만, 나는 아빠이기 때문에 나름의 해석으로 딸이 겪었을 상황을 유추해본다.
연희(3세)다.
망할 년...
염병할 것...
아마도 나의 착한 딸은 천사 같은 표정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을 것이고, 연희 그 나애리 같은 계집애가 나타나 딸을 때리고, 장난감을 탈취했을 것이다. 문득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꿋꿋이 참아본다. 그리곤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나의 발명품 무지개 반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확신할 순 없지만,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던 연희는 곧 벌게진 뺨을 어루만지며 엄마에게 매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연희도 연희의 엄마도,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를 것이다. 나의 무지개 반사는 3시간의 텀을 두고 실행되며, 연희가 고통을 호소하며 울고 있을 때, 나와 나의 딸은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여기서 지면을 빌어 이 글을 읽어주실 여러분들에게 내가 발명한 무지개 반사의 물리학적 근거와 실행원리를 설명해주고 싶지만, 시간도 없고, 어쩌면 이것이 특허 출원되어 제품으로 출시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한다.
“예승아 많이 아팠어? 에궁 우리 딸! 그러게 엄마가 주는 당근, 양파도 잘 먹고, 그 뭐야 그래 엄마가 담근 김치도 잘 먹고 그랬으면 키도 크고 튼튼해져서 연희한테 안 맞을 텐데! 왜 그렇게 편식을 하니! 응?”
“김치 시러!”
“김치가 왜 싫어! 그 노래 몰라?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한국 사람은 김치야 예승아!”
그때의 나는 그렇게 어린이집 앞에 서서, 예승이가 김치를 좋아하게 만드는 기계를 떠올리고 있었다. 혀의 미각세포중 김치의 매운맛을 느끼는 통각세포를 단맛을 느끼는 세포와 연계하여 아이에게 김치가 꿀맛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자극하는 기계...
무릇 한 분야의 장인들이 그렇듯, 나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딸의 손을 잡고 머릿속으로 그 설계도를 그리느라 바빴다.
등 뒤에서 ‘쿵’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에그머니나 사람이 떨어졌네!”
“어린이집 4층 옥상에서 왠 여자가 떨어졌어요! 거기 누구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어떡해! 김선생! 김선생! 어떻게 된 거야! 애들 수업 끝나서 옥상에서 담배나 한 대 피운다더니! 이게 왠일이래! 혼자 올라갔는데, 4층에서 왜 떨어진거야! 아이고 세상에! 누가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고서야 겨우 뒤를 돌아본 나는 평소 우리 예승이를 예뻐해주던 어린이집 선생님이 왜 머리통이 깨진 채 어린이집 앞에 쓰러져 있는 건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었고, 딸 예승이는 쓰러져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제 선생님의 모습을 보자 무서웠는지 부들부들 떨며 내 뒤에 숨었다.
그렇게 나는 재빨리 놀란 딸 아이를 안고, 처참한 사고현장을 빠져 나와야 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한쪽 뺨이 누군가에게 세게 얻어 맞은 듯 벌겋게 부풀어 오른다.
나는 나의 새 발명품 ‘무지개 반사’의 특허 출원과 시제품 개발을 전면 중단하기로 마음먹었다.
왠지 이사온 지 얼마 안된 인천 송도 신도시를 곧 떠나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맴돈다.
참... 연희야 아저씨가 미워해서 미안!
끗
실제 저도 3세 여아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학부형입니다.
좀 어설픈 설정이 있더래도 권선징악의 관점에서 이해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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