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원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 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욥 : 33장 3절)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박 태수, 나이는 23세, 직업은 백수. 외모는 한마디로 안경 낀 여드름 난 돼지를 연상케 한다. 23년, 그의 인생에 이뤄 놓은 것이라곤 고등학교 졸업장 한 장과 운전면허증, 학창시절 따놓은 워드프로세서 2급 자격증 하나 뿐, 정말 보잘 것 없는 인생 23년을 아무런 목적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는 몇 해 전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 놓은 5천만 원 가량의 재산으로 2천만 원짜리 전셋집을 구하고 남은 돈으로 놀고먹으며 무료한 인생을 보내고 있다. 다른 친척들과는 연락을 끊은 지 오래이며 지인 한 명 없는 전형적인 오타쿠에 은둔형 외톨이이다. 취미 생활은 오로지 저질 온라인 게임과 일본 만화 구독뿐이며, 그의 책장에는 온통 일본 만화들 밖에는 없다.
수북이 쌓여 있는 먼지 가득한 책장들 사이로 검은 바탕의 두꺼운 책 한권이 눈에 뜨인다. 오래 전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두툼한 성경책. 전형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 그이지만 믿음과 설교 따위는 개가 짖는 소리로 밖에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별다른 활동 없이 눈뜨면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즐기며, 일본 SOD 야동을 보며 자위를 하고, 가끔씩 채팅으로 꼬인 가출 여고생을 집으로 불러 원조교제를 즐긴다. 식사는 거의 인스턴트식품과 배달 음식으로 하루를 때우며 방안은 돼지우리를 연상케 한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다보니 몸무게는 90키로 가량 불어 있고 여유 자금 또한 다 떨어진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냉장고는 비어가고 통장의 잔액 또한 줄어들어 가지만 도무지 일을 할 생각이나 앞날을 위한 계획 따위도 없이 하루하루를 낭비하는 삶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결국 통장의 잔고는 다 떨어지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남자는 결단을 내린다. 일 따위는 죽어라 하기 싫고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 남자가 선택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몇 가지가 안 된다. 이사를 가기로 결심을 한다. 전세 값 2천만 원으로 보증금이 없는, 월세가 50만원이나 나가는 오피스텔로 이사를 가게 된다. 아무런 지출이 없어도 일 년에 600만원은 꼬박꼬박 사라진다. 결국 잉여생활 2년 만에 또 다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집 주인은 방을 빼라는 협박성 문자를 매일 같이 보내어온다.
오랫동안 끼니를 제때 해결하지 못했던 그는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에 성공을 해 30키로 가량의 살이 빠지게 되어 피골이 상접한 몰골을 하게 된다. 결국 그는 집 주인이 보낸 용역업체 직원들의 횡포에 시달리다 못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구린내 풍기는 거지같은 꼴을 한 채 거리로 쫓겨나게 된다.
갈 곳은 없다. 연락할 곳 또한 없다. 가방에 들어있는 짐이라고는 닳고 닳은 칫솔 하나와 속옷 두벌, 그리고 아버지가 물려주신 성경책.(아버지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 남은 아버지의 유품이므로 도저히 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 또한 <이 성경책이 너를 인도 할 것이리라.> 라고 했으므로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성경책을 가슴에 품었다.) 더더욱 계절의 아픔 또한 그를 괴롭힌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그의 갈라진 피부 사이사이를 파고든다. 마치 작은 바늘 수천 개가 동시에 꽂히는 느낌이다. 배는 고파오고 잠은 쏟아진다. 결국 서울역을 찾아가서 성경책을 베게삼아 그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길거리에서 주워 온 신문지를 구겨서 품속에 집어넣는다. 꽤나 따뜻하다.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온다. 매일 따뜻한 방에서 삶에 아무런 제제가 없는 풍요로운 일상에서 이 쓰레기 구덩이 같은 곳으로 떨어지게 된 현실에 슬픔과 후회가 몰려온다. 한줄기 눈물이 갈라진 볼 위를 타고 흘러내린다.
<지난날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생각을 끝으로 그는 지난날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세상으로 빠져들게 된다. 얼마가 흘렀을까. 누군가가 그를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뜨게 된다.
노신부 목사는 쉰을 갓 넘긴 중년의 풍채를 풍긴다. 검은 뿔테를 끼고 두터운 코트를 입고 있는 그가 장갑을 벗은 채 오른 손을 내밀어 태수의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다 죽어가는 몰골을 한 태수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 훗날 들은 이야기로 태수가 베고 있던 검은 바탕에 붉은 옆면의 책을 보고 그를 구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이 성경책이 너를 인도할 것이리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노 목사는 여의도에서 전도활동을 하고 <에스라연구소> 원장을 맡고 있으며, 상당한 자산가였지만 슬하에 자식은 있지가 않았다. 그때부터 그는 태수를 양자로 삼아 친자식처럼 키웠으며 씨알도 안 먹힐 것 같던 신의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태수 또한 이 성경책으로 인생이 구원 받게 되었으니 조금씩 신의 말씀을 귀담아 듣기 시작하였으며, 4년 뒤에는 신학 대학까지 졸업하게 되고 몇 년 뒤에는 목사의 자격까지 갖추게 된다. 그는 성경책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은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으므로 목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사명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의 나이 33세.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노 목사는 태수를 지옥의 7층에서 천상의 7층으로 올려놓게 된다. 그리고 1년 뒤 노 목사 부부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자식이 없던 관계로 수백억에 달하는 모든 재산은 양자로 입양 된 태수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그는 한동안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술집을 방황하며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게 된다. 매일 밤 강남의 고가 룸살롱에서 술잔을 마치 성배를 다루듯 정성스레 애무한다. 어느 날 그러한 생활에 빠져서 해어나 올 줄 모르던 그의 꿈속에 새아버지가 나타나 성경구절을 읊어준다. 하루, 이틀, 그 꿈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이어지며 그 구절이 <뉴런> 속에 각인되기 시작한다.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 하리이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 하리이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 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매일 꿈속에서 반복되는 이 장문의 문장을 태수는 정확히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성경의 어떤 부분인지도 알게 된다. 새아버지께 제일 처음 배웠던 잊지 못할 구절이다. 바로 <시편>의 199장 1절~10절 사이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태수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아 책장에 꽂혀 있던 자신의 성경책을 집어 들고 시편의 그 부분을 찾아 책장을 넘긴다. 그곳에는 예상대로 손바닥만 한 작은 종이쪽지가 꽂혀 있다. 태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것을 펼쳐본다. 그리고 그는 두 눈을 감고 조용히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다음날 태수는 새아버지의 메시지로 비로소 정신을 차리게 된다. 그는 새아버지의 재산을 정리 한 뒤 경기도 인근의 수백 평에 달하는 대지를 매입하여 그곳에 대저택을 짓고 정착을 하게 된다. 집 주위로는 온통 논과 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집 뒤에는 작은 산이 버티고 있어 마치 천연 요새를 방불케 한다.
저택의 내부는 10여개의 방과 거실, 주방, 화장실, 그리고 엄청난 넓이의 지하실을 꾸며 놓아 헐리웃 배우에 버금가는 호화생활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만한 각종 서적들과 경전, 고서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뉴에이지, 신지학, 오컬트 관련 정보들 섭렵하게 되며 심지어 외계인의 존재에까지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구상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와 자신 또한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지에 대한 의구심도 키워 가게 되며, 어느새 그가 수집한 서적들로만 거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게 된다.
그는 특히 유대인에 관련된 정보들을 즐겨 읽었었는데, 세상을 지배하는 유대계열의 기업인들과 자유로운 석공들의 모임에까지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인터넷 검색 중 우연히 초록색 바탕의 모 포털사이트에 있는 한 카페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국제유태자본론 연구회>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