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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몸을 가누기 힘든 충격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아주 낯익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아주 낯선 광경...
그것은 괴리감을 넘어서서 공포와 두려움으로 융합돼 내 몸을 강하게 덮쳤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나의 상식선을 넘어서도 한참을 넘어서고 있었다.
왜일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28살, 졸업한 지 이 년여 만에 어렵사리 취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하고 몸쓰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나는 겨우겨우 경호학과에 진학해,
경찰한답시고 백수생활을 하다가 그마저도 청산한지 갓 3달 남짓 되었다.
결국엔 경찰의 꿈은 접고 조그마한 보안업체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주위의 지긋지긋한 눈총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도망치듯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수밖에 없었다.
뭐, 말이 보안업체지 하는 일은 이름만큼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주, 야, 휴 3교대로 지정받은 건물이나 기업에서 2인으로 짝 지어 순찰돌고 잡상인이나 수상한 사람 있으면
내쫓으면 되는직업 이였다.
오늘도 특별할일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9시 반쯤에 일어나 대충 김칫국에 밥 말아 먹고 10시 50분에 출근해서 두어 시쯤에 햄버거 하나 먹고 순찰 몇 바퀴 돌다가
출입증 등록을 위해 신분증 요구하니 '내가 누군지 아냐!!' 면서 꼬장피던 노땅하나 처리하고, 보안을 위한답시고
금속탐지기 몇번 쓰다듬었더니'무슨 짓이냐!' 고 난리 피우던 아줌마까지.... 어느때와 다름없는 그저 그런 하루였다.
일곱시 반쯤 대충 눈치 보면서 회사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와 친구 녀석 불러서 맥주에 소주 한잔 거하게 말아먹고
알딸딸 취해 어기적 어기적 담배 하나 꼬나물고 쌀쌀해진 바람에 잔뜩 움츠려서 집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어..라..?'
평소와는 다르게 현관문이 약 두어 뼘 정도 열려 있었다.
뭔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다지 개의치 않고 현관문을 활짝 열며 입을 떼었다.
"다녀................"
더이상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태연하게 다녀왔다고 말할수 있을 사람은 미친 또라이 싸이코패스 밖에 없을 것이다.
집안은 정말 말 그대로 '지옥' 그 자체였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약 1초간은 '장판을 빨간색으로 새로 깔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거실 바닥 구석구석 가득한 선혈.... 그 한가운데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앉아 칼을 들고 피칠갑을 한채 무언갈
쑤셔대고 있었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그렇게 약 한 3초간을 서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밥을먹고 티비를 보던... 나에게 가장 아늑했던 '우리 집' 이 불과 몇시간만에
피가 낭자한 '도륙의 장'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저 미친 싸이코패스 옆에서 꿈틀거리는 건 모로 보나 '우리 엄마' 였다.
분노?, 슬픔? 그 무엇도 아닌 '공포' 만이 사방을 메웠다.
어떻게든 여기서 '도망가야 한다' 라는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난 조용히 눈앞의 광경을 주시하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싸이코 살인마 새끼는 내 기척을 못느낀 건지, 아니면 신경을 안 쓰는 건지 같은 동작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덜그럭-'
소리와 동시에 그 녀석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나 역시 소리와 동시에 용수철처럼 튀어서 바로 내달 음질 쳤다.
녀석도 바로 일어났는지 우당탕 소리와 괴성이 등짝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지만 나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 같았다.
'사람 많은 곳!' '사람 많은 곳!!' 머릿속에는 이 생각 말곤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쉬지도 않고 미친 듯이 한참을 내달려 번화가 중턱에 다다르자 그제야 온몸에 힘이 풀렸다.
나는 대로변에 주저앉아서 공포에 잠식당했던 슬픔과 분노를 마음껏 토해냈다.
그렇게 감정을 어느 정도 토해내자 이성적인 사고가 천천히 돌아왔다.
망설일 것 없이 나는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러다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10시 27분....' 평소 아버지는 열시반 남짓 집으로 귀가 하시곤 하셨다.
나는 다급히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젠장!!!!!!!왜 꺼져 있어!!!"
나도 모르게 대로변에서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지만 지금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도리가 없었다.
이미 엄마의 생사는 불투명해 보였다.
이 상태로 아버지까지 잃게 되면 난 정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눈앞이 막막했다.
눈물이 흘렀다.
미친 듯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왜 나에게 이런 지옥 같은 일이 벌어지는지 신이 있다면 욕을 한 사발 퍼부어 주고 싶었다.
아버지가 집에 도착하실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벌써 도착했을수도 있을 시간이었다.
나는 다시 미친 듯이 달음박질쳤다.
술기운과 눈물로 뿌옇게 된 시야로 몇 번을 굴러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그래도 죽을힘을 다해
미친 듯이 집으로 뛰었다.
막상 동네에 다다르자 아까의 공포가 다시 온몸을 휘감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 했다.
하지만 술기운인지, 아니면 공포심인지 정신줄을 잡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마 미친 듯이 동네방네 뛰어다닌 탓에 체력이 고갈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필이면 이런 날에 친구 놈을 불러 히히덕 거리면서 부어라 마셔라 한 내자신에 환멸을 느낄 때쯤이었다.
'82버7XXX'.....아버지 번호판이 확실했다.
나는 미친듯한 절망감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을뻔했다.
"위이이잉-!!!"
바로 코앞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앞을 보니 경찰차 한대와 봉고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경찰을 보자 가슴속에서 취기와 함께 엄청난 용기가 샘솟았다.
나는 손에 피가나도록 주먹을 쥐고 전속력으로 집으로 뛰었다.
뒤에서 경찰들도 부지런히 하차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씩씩 거리며 현관문 앞에 섰다.
예상과는 다르게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고리를 돌렸다.
'철컥-'
소리와 동시에 발로 문을 세게 걷어찼다.
'쾅!!!!!!!!'
여전히 피가 낭자한 거실... 거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엄마...
그리고 엉거주춤한 포즈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녀석...
더 이상 그어떤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분노만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녀석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녀석을 내동댕이 쳤다.
'쿠당탕!!!'
녀석과 엉켜서 거실 바닥에 함께 나뒹굴었다.
녀석은 나를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김칫 국물로 가득한 거실에 그렇게 아버지와 나는 극적인 상봉을 했다.
'어휴.....취하려면 곱게 취할 것이지...'
뒤이어 따라온 경찰들의 한숨 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
엄마의 매서운 눈초리가 느껴졌다.
아버지 역시 눈꼬리가 관자놀이 까지 올라가셨다.
아마 진정한 공포는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그렇지만 기분 좋은 공포일 것이다.
나는 배추 포기들 한가운데서 호탕하게 웃었다.
출처 : 네이버 유령의공포문학 까페 큡큡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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