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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여자'는 홍상수의 24번째 영화이자,
김민희와 협업한 7번째 작품이지요.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부터 줄곧 쓸쓸한 감정,
심지어는 죽음의 기운까지도 뿜었던 홍상수의 영화가
이번 '도망친 여자'는 또 다시 완전히 다른 톤으로 영화를 만듭니다.
저는 '강변호텔'이 나왔을 때,
정말로 홍상수 감독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는데
다작의 감독 답게 금방 또 영화를 만드시네요.
이번 영화역시 쓸쓸한 감정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좀 더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자연 자체를 카메라에 담는다거나,
동물들이 인서트 되는 장면,
그리고 CCTV나 인터폰 화면 같은 것은
홍상수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변화이기도 합니다.
(CCTV나 인터폰은 엔딩과 그대로 연결이 되기도 하죠.)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홍상수 영화에서
어떤 대상이나 사물이 줌인 되어 명시되는 쇼트들은
상징적인 의미 같은 것이 없지요.
'강원도의 힘'에서 대야 물에 담긴 물고기들이 무슨 의미인지
'오 수정'에서 젓가락과 숟가락은 무슨 의미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죠.
진짜 중요한 것은 그러한 대상이나 물체가
카메라에 담겨있다는 사실 자체일 것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우연과 반복과 변주가 중요한 모티브입니다.
이번 작품도 역시나 놀라운데,
그 미세한 차이점을 바라보는 시각이 홍상수 영화의 진가이자
그가 왜 뛰어난 예술가인지를 알게 해주는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주는 뉘앙스 자체도 굉장히 독특합니다.
사실은 여자 뿐만 아니라 극중 모두가 도피 혹은 도망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겁니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플롯을 보면
또 다시 홍상수 영화에서는 들을수 없었던 대사들이 나오는데,
'고마워' '괜찮아' '미안해' '잘했어'등 과 같은 대사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격려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지요.
역시나 홍상수의 남자들은
인상 찌푸려지는 행동들을 조금씩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남자가 전부다 행동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테지요.
이 작품의 여성들도 남자들 못지않게 조금씩 책임이 있어 보입니다.
결국 홍상수 영화는 따스함과 차가운 공기가 동시에 불어 들어오는데,
자연을 동경하던 '만희'는 다른 의미에서 자연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첫번째 만남과 두번째 만남은 계획을 잡고 가진 만남이었다면,
세번째 만남은 우연입니다.
영화는 이 세번째 만남이 진짜 중요한 만남일 것입니다.
저는 올해까지 본 한국영화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기도 합니다.
홍상수의 영화는 언제나 놀랍고도 감탄스러운데,
이번 작품도 새로운 홍상수 영화의 만남이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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