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보인다는걸 글로 표현하는건 힘들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다....라고 말하는건 사실 의미가 없다. 보인다기보다는 느낀다는 말이 더 맞다고 생각된다. 2013년 2학기. 나는 그놈을 만났다.
그놈은 나 처럼 늦게 학교에온 늙은놈으로 동갑이라는 유대감과 나대기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동질감으로 이어졌다. 둘다 수다를 좋아하고 나름 철학적이라고 자부하는 늙다리 둘이 모이니까 학교라는 좁은 세계에서는 당해낼 자들이 없었다. 심지어 교수도 우리가 붙어있으면 쉬쉬했다.
그놈은 까까머리고 풍채도 좋아 어디를가도 눈에 띄었고 나또한 한덩치 하는지라 둘이 붙어있으면 어디든 좁아보이는 착시효과를 발생시켰다. 나는 보통 화법이 직설적이라 되도록이면 상처가될 요소들은 건들이지 않고 말하지만 그 까까머리놈은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고 있었다. 실상은 뒤에서 울놈이 앞에서만 센척하는게 여간 안쓰러워서 나는 다른 사람앞에서 일부러 그놈에게 져주곤 했다. 그렇게 우리가 자연스럽게 고민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자 그놈이 말했다.
"M군, 나 사실 보여."
처음에는 술기운도 올라서 뭐가 보인다는거냐며 여느때처럼 농담따먹기인줄 알았는데 그놈이 지갑에서 작은 부적을 꺼내는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제일 힘들 때는 우리 고모가 보일 때야."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평소에 언제나 활기찬놈이라 그놈이 이렇게 무거운 화제를 진지한 얼굴로하는건 좀처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제가 주제이다보니 나도 흥미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시골에서 하얀간판을 만난 이후로 나도 자주 가위에 눌리고 가끔은 대낮에도 그런것들이 보이곤했다. 때로는 인간이 아닌 괴기한 모습도 있었고 때로는 너무 평범해서 그냥 넘길뻔 한적도 있었다.
이쯤에서 그간의 이야기들을 적어보자면 하얀간판 이후 반년정도는 아무일 없어서 다 잊고 지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끔 돌아가진 모(母)의 꿈을 꾸기도 하거니와 밤마다 무언가 흐릿하게 보이는 듯하기도 하더니 어느 순간 내 옆에 그게 딱 서있었다. 처음 만난 녀석은 평범한 남자의 모습이었는데 생기는 없고 무표정한게 딱 봐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것들은 으레 딱 보아도 살아있는게 아니라는걸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 낯선 변화가 두렵고 무섭기도 했는데 몇주지나고 나니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게 사람들의 이야기속에선 '귀신이야기를 하면 귀신도 흥미를 가지고 모여든다.', '귀신은 자기를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나면 달라붙는다.'라고 하지만 전혀 그런기미가 없었다. 가끔 귀신이야기를 하는 무리들 근처에 몇몇이 느껴져도 그건 그냥 스쳐지나듯 흘러가는 우연일 뿐이고 정작 그렇게 모여들었다고 추정되지는 않았다. 가끔 정말 모이는 경우도 있지만....그리고 '자신을 알아봐주면'이라는 전제에 겁을 먹었던지라 항상 못본척하다가 한번은 얼떨결에 눈이 딱 마주치는 바람에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질렀건만 정작 그것은 별 반응이 없었다. 이때 또 위험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일부러 아는척을 해보았는데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결국 남들과는 다르게 이상한것들이 보이긴하나 실생활에 큰 지장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놈이 그 이야기를 꺼내자 조금 당황했다.
"M군, 나는 부계야. 너랑 다르게 물려받은거지. 그냥 언젠가 너에게 말해야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 내가 아는것들을 좀 말해줄게."
그렇게 시작된 그놈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면에서의 이야기였다. 그냥 '이것도 ㅈㄴ 현실이다.'라는 느낌의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놈이 처음 그것들을 보게된것은 장례식장이었다고 한다. 분명히 자기 고모는 죽었는데 계속 보인다고. 그때가 18살때여서 보자마자 어떤 상황인줄 알았다고 한다. 그 뒤부터는 그곳을 방황하는(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셨다고한다.) 고모때문에 여러가지로 정신적인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진짜 반쯤 미쳐갈때 쯤 자기 아버지가 자기 손목을 꽉 붙잡았다고 한다. 그때 정신이 돌아왔다며 그놈은 맥주한잔을 들이켰다.
둘다 술이 약하기 때문에 모이면 언제나 맥주를 마셨고 이번에도 역시 맥주를 마셨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음기가 강해야지만 그것들이 보이는게 아니라고 한다. 자기처럼 양기가 강한인간들은 양기가 강해져도 역으로 그런게 보이기 때문에 소주같은걸 마시는 날이면 그날밤에 난리가 난다고 했다. 참고로 그놈은 전생같은것도 보일때가 있다고 했다.(나보곤 과거에 사람이 아니었단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비밀이라고하며 해주지 않았다.)
녀석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사실은 아버지쪽이 강했고 고모는 돌아가시기 전에 아예 무속인이셨다고 했다. 집안쪽에서는 그놈의 아버지 대신에 그놈의 고모가 신내림을 받은것이라는 말도 도는데 그 진실은 자기도 모른다고 한다. 그것때문에 빨리 돌아가신거냐고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단다. 그러면서 그놈은 그날이후로 그게 너무 무서웠단다.
귀신이 보이는건 없던게 있어지는게 아니라 원래 있던 그것들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란다. 예민해지는 것. 진짜 보고 싶다고 찾아다니다가 보이는 놈들은 우리가 안쓰는 감각을 계속 쓰다보면 그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한다. 그래서 평소에 같지만 다른 세계에 있는 그것들을 볼수 있게 되는거고 나는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바람에 그 감각이 잘못 깨어버렸단다. 그래서 처음보자마자 '이새끼는 뭐하는 새끼지?'하고 흥미를 가졌단다.
애초에 귀신이라는 놈도 영물이기 때문에 딱 봐도 뭐가 선무당인지 알수 있고 나같은 별종은 거들떠도 안본단다. 그래서 앞으로도 별일 없을껀데 그 근거중 하나가 원래 붙은 놈들이 워낙 강하다고 했다. 쉽게말하자면 수호신 개념이라며 나 같은 경우엔 두명이 지켜주는데 조금 약한 사람이 항상 지켜주다가 그 사람으로 감당이 안되면 큰 사람이 도와준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M군, 한번 죽었다 살아났어."
나는 그 순간 하얀표지판 사건을 말한다는걸 대번에 알았다. 왜냐하면 그때 나를 정신차리게 했던 과속방지턱이 사실은 그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가서 아무리봐도 없었고 원래부터 그런거 깔린적 없다고 이상한놈 취급당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놈은 시종일관 큰 사람이라고 지칭했다.
"나는 그 감각을 죽이는 연습을 하고 살아왔어. 보는게 너무 괴로워. 넌 그런적 없겠지만 나한테는 진짜 달라붙거든."
그놈은 자신의 영감이 조금 과하다고 했다. 그래서 안보려고 아무리 애를써도 어떻게든 보이는 부분도 있고 인연이라는게 연결되는것에 대한 느낌도 알 수 있다고 했다.(그런데 왜 모태솔로냐?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분위기 때문에 하지 못했다.) 가장 강할때가 과거가 보일 때라고 했다. 그래서 그놈은 이런말도 했다. 이 영감이라는게 단순히 귀신이 보인다 안보인다가 아니라 그냥 그들이 있는 세계를 느낀다와 안느낀다로 나뉘는 것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과거나 인연따윈 알수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M군, 이건 감각같은거야. 네가 여기서 더 예민해지면 나처럼 들러 붙는다. 이건 절대 좋은게 아니야. 일반사람은 할 수 없는 동작을 운동선수가 할 수 있듯이 이 감각이 예민해지면 니가 이때까지 생각했거나 상상했던건 다 우스워지는 세계가 느껴질꺼야."
녀석은 내가 술을 못 마시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나역시 자신과 비슷한 체질이라 양기가 강해서 소주같은 음식은 먹어선 안된다고 한다. 그걸 두 사람이서 막고 있어서 나는 소주를 조금만 마셔도 어지럽고 토를하고 아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은 이런것도 일종의 빙의라고 했다. 소름돋게도 이런 유사빙의를 계속하게 되면 빙의를 하는 감각이 께어나서 다른 것들이 눈독을 들일수도 있다고, 이 방법은 임시방편일 뿐이고 너 스스로 그런것들을 멀리해야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날 이후로 안타깝게도 우리는 좀처럼 둘이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놈은 나보다 빨리 취직을해서 먼저 해외로 나가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후에 그런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놈은 언제나 처럼 밝게 잘 살고있는 듯하다. 그놈의 충고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모금의 소주도 마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는 순간 우리의 맞은편에서 어떤 여자가 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놈도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