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이맘때쯤 친구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이다.
친구집에서 가까운 완만한 산이 하나 있는데,
짧은 코스는 한 두 시간, 길게는 대 여섯 시간 정도 걸리는 산이었다.
친구도 어머니를 따라 몇 번 가봤는데 산세가 험하지는 않지만 등산로가 아주 좁고 안전장치도 되어 있지 않아 위험해 보였다고 했다.
어머니는 친구분과 등산에 빠져 4계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을 타셨는데, 특히 여름에는 덥다는 이유로 산에 있는 편백나무숲에 밤늦게까지 놀다 오시는데 아무리 완만한 뒷산이지만 어머니께서 다치지는 않을까 친구는 걱정이 많았다.
어느 흐린 날.
어머니는 점심을 드시고 tv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친구분에게 산에 가자는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니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 시간 후에 산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약속 시간이 되어 어머니는 약속 장소로 가서 친구분과 만나 간단한 안부 인사를 주고 받고 등산을 시작하셨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흐렸지만 두 분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후 세 시가 조금 넘어서 편백나무 숲에 도착한 두 분은 근처 약수터에서 물을 받고 의자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하셨다.
거의 매일 보다시피하는 사이인데 무슨 할 말 들이 그리 많은지... 산을 탄 시간보다 수다를 떤 시간이 더 길어져 버렸다.
여섯 시가 다 되어가자 그제서야 두 분은 하산 길에 나섰고 내려가는 내내 수다는 끝나지 않았다...
절반 조금 더 내려 갔을 때, 아주 좁고 땅도 고르지 않아 험한구간이 있는데 그 구간을 지날 때도 두 분의 수다는 그때까지도 이어졌다. 문제는 여기서 터졌다.
한 명씩 지나 가야 되는 그 좁은 길을 나란히 서서 가던 어머니 친구 분이 발을 헛디뎌 미끌어졌는데, 친구분이 넘어지면서 허우적 거리다 어머니를 붙잡았고 결국 두 분 다 밑으로 굴러 떨어졌고 어머니는 무언가에 부딪혀 의식을 잃고 말았다.
' 툭 툭 투둑 툭 '
어머니는 뺨 위로 떨어지는 차가운 빗물 때문에 눈을 떴다.
어머니는 머리가 좀 멍하고 어지러운거랑 조금 긁힌 것 빼고는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한참 멍한 얼굴로 앉아있던 어머니는 금새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보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려는데 휴대폰이 없어졌다.
굴러 떨어지며 잊어버렸는지 주변을 찾아봐도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일단 산을 내려가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비는 오는데 등산로를 벗어난 낮설은 길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긁히고 넘어지고를 반복하며 내려가는데,
먼발치에서 누군가 내려가고 있는게 희미하게 보였다.
어머니는 전화라도 빌려보려 빠른 걸음으로 그 사람을 쫓기 시작했다.
"저기요! 거기 앞에.. 잠시만요. 저기요!"
어머니는 다급하게 앞에가던 사람을 쫒아가며 불러세우려 했지만 그 사람은 묵묵부답으로 제갈 길만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가갈수록 눈에 익은 뒷모습이었다.
분명 같이 산에 온 친구였다.
체구, 복장, 요란한 색깔의 모자...
어머니는 앞서가던 사람이 친구임을 확신하고 큰소리로 불러세웠다.
"옥자야?! 옥자야!! 내다 내 옥자야!!"
"좀 기다리봐라. 옥자야!!"
앞서 가던 사람은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멈칫하고 걸음을 멈췄다.
어머니도 그 자리에 멈춰서서 거친 숨을 내몰아쉬고 있는데,
그 사람이 스르르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의 친구가 맞았다.
" 옥자야. 괜찮나? 어디 다친데 없나? 니 혼자 어데를 갔... "
어머니는 친구에게 서시히 다가가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친구는 꼭 다문 입술에 무서운 눈으로 어머니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어머니를 노려보던 친구는 이내 발길을 돌려 산아래로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친구분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친구는 어머니가 쫓아올수록 도망이라도 치듯 더 빠른 걸음으로 길을 내려갔고 어머니는 아무리 뛰어도 친구를 잡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무래도 친구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고 계속 친구를 쫓아갔다.
어머니보다 한참을 앞서가던 친구는 서서히 어머니의 시야에서 멀어졌고, 어머니는 한참을 그렇게 헤매다시피 산길을 내려가다가 결국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고 그 곳에서도 친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지 않자 어머니는 친구분 집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친구집 창문에 불이 켜진게 보였고 어머니는 대문을 두드리며 친구를 불렀다.
' 쾅쾅쾅쾅 '
"옥자야! 집에있나?! 옥자야! 집에 아무도 없나?"
대문을 열고 친구의 작은딸이 꾸벅 인사를 하며 대문밖으로 나왔다.
"느그 엄마 집에 왔나?"
"예."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친구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친구딸이 어머니를 살짝 잡으며 말렸다.
"엄마가 아줌마보고 그냥 가시라고 전해달라는데요..."
"와?"
"그건 모르겠어요. 그냥 좀 화나신 거 같아요. 두 분 싸우셨어요?"
"아니. 엄마 몸은 괜찮나? 어디 다친데 없더나?"
"산에 갔다 넘어졌는가... 다리 조금 접질맀다 카시데요."
"그거 말고는? 다른데 다친덴 없드나?"
"아니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이다. 어데 다친데 없으모 됐다. 엄마한테 몸 다 나으면 전화 한 통 해달라케라."
어머니는 떨떠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그 후로도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집으로 찾아도 가봤지만, 친구는 전화를 받지도 찾아온 어머니를 만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친구를 다시 만난건 사흘이 지난 후였다.
그 날도 어머니는 친구집으로 찾아갔는데 집 앞 평상 위에 앉아서 동네 아는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고있던 친구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집으로 들어가 버리려는 것이다.
"옥자야 잠깐만, 니 와그라는데?"
친구는 화가 난 듯 어머니에게 눈을 흘기며 쏘아붙이 듯 대답했다.
"지 혼자 살겠다고 사람 버려놓고 갈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뭔 볼일인데?"
어머니는 의아함에 친구에게 되물었다.
"내가 뭘 버리고 혼자가? 무슨 말인데? 오히려 내가 묻고싶은 말이다."
어머니와 친구는 서로 상대방이 자기를 버리고 가 버렸다고 언쟁을 벌였는데,
가만히 서로의 말을 들어보니 뭔가가 이상했다.
친구의 말은 이랬다.
그 날 친구도 산에서 굴러 떨어져 정신을 잃었었고,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절뚝거리는 다리로 어머니를 찾아 한참을 헤매였다고 했다.
주머니에서 넣어 둔 전화가 생각이나 주머니를 뒤져보니 친구도 전화기가 없어졌다.
친구도 일단 산아래로 내려가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고 산을 내려가는데 먼발치에서 어머니가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친구는 어머니를 불렀는데 어머니가 그 자리에 멈춰서서 뒤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죽을라면 혼자 죽지 와 내까지 잡고 늘어지는데?"
"니는 니 알아서 해라. 내는 내 알아서 간다."
그러더니 어머니가 뒤돌아서서 먼저 가버렸다는 것이다.
친구는 어머니를 애타게 불러봤지만 어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을 내려갔고, 쫓아가 보려 했지만 다리를 다쳐서 얼마 쫓아가지 못 하고 놓쳐버리고 말았다.
친구는 어머니가 자기가 붙잡아서 같이 떨어졌다고 자신을 원망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아무리 그래도 다친 친구를 놔두고 혼자 가버린 어머니가 용서가 되지 않았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겪은 일을 친구에게 들려주었고,
그 날 서로가 외면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홀렸었던거란 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와 등산 친구들은 아직도 이산 저산 찾아다니며 등산을 즐기지만 그 뒷산만은 절대 가지 않을거라고 했다.
출처 : 웃대 bi1d 님(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fear&number=69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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