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언니가 '있었다', '고 한다' 나는 기억조차 못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으니까. 언니와 나는 나이 터울이 크다. 열 살 가까이 되는데 내가 임신된 지 3주쯤 후 차에 치어 죽었다. 엄마는 잠깐동안 미쳐서 정신병원에 수감됐다.
약물 치료는 못 했다. 날 품고 있었어서. 대여섯달 후 제정신이 돌아왔는데 엄마가 자기 몸을 내려다보고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자기 배에 할퀴고 뜯은 자국이 선명한 걸 보고 놀랐단다. 그리고 엄마 손은 손톱이 빠지고 갈려서 엉망진창. 자기가 임신했다는 사실도 몰랐고 그걸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와중에 미쳐버려서, 의사며 도우미에게 자꾸만 뱃속에 사탕이 들어있다면서 자해를 했다는 걸 엄마는 그제야 알았다 하루에도 몇시간씩 울고 뒹굴고 소리지르다가 갑자기 깔깔깔깔깔깔깔낄낄낄낄낄낄그르륵그르륵 그런 소리를 내다 픽 쓰러져 잠들었던 엄마는 정신적으로 쇼크를 받은 건 낫기 힘든데 신기하다며 의사가 혀를 내두르는 걸 듣고 내가 네 덕에 제정신을 차린 거라면서 날 복덩이라고 불렀다. 어린 오빠는 언니보다 두 살이 많았다. 사춘기를 엄마 없이 보낼 뻔한 오빠를 네가 구한 거라면서 날 예뻐라 했다 난 그때 까지도 내게 언니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
열살 생일날 가족들이 빙 둘러 케익에 촛불을 켰을때 난 정신을 잃었다. 일렁이는 촛불을 보다 눈앞이 흐려진 게 마지막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엄마는 목을 놓고 울고 있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있던 오빠는 까까머리 속이 다 보이도록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없이 울고 있었고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고 깨진 접시를 치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손등 위로 눈물이 떨어지고 있던 걸 나는 보았다 생일 파티는 엉망진창이었다. 며칠간 어머니는 말을 잃었다. 아버지는 내가 배웅하러 나갈 적 마다 나를 서글프게 보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곤 했다.
오빠의 말은 이랬다. 내가 촛불을 끄길 기다리는데 갑자기 내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막 울었다고 했다. 가족들은 생일날 이 애가 왜 우나 싶어 달래고 있는데 내가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 없이 ㅇㅇ이가 잘 지내서 좋은데 난 생일케이크 못먹어서 얄미워 근데 ㅇㅇ이 미워해서 미안해" 이러더란다. 어머니 말뜻을 깨닫자마자 엉엉 우시고 오빠랑 아버지는 아직 영문을 모르고 계시는데 내가 다시 오빠한테 말하길 "오빠 내가 오빠 울트라맨 팔 부숴서 미안해 학교에서 오빠 모른척 해서 미안해 밉다고 해서 미안해 오빠 안미워 많이 좋아 미안해" 그 말을 듣고 오빠가 들고 있던 접시를 떨어뜨렸고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는데 아무도 감히 주울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그러고 한참을 울다가 "엄마아빠오빠 다 너무너무 사랑해 먼저가서 미안해 계속 계속 지켜줄게 사랑해" 그 말을 하고서 픽 쓰러졌단다
이 날 이후 케이크와 과자 뿐이었던 내 생일상에는 과일과 전, 그리고 열 개의 초가 꽂힌 떡이 올라오게 되었다. 그럴 적마다 나는 이유 없이 어린아이 처럼 마냥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