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세종대왕의 식성을 아주 잘 보여주는 짤
- 이종무 장군의 대마도 정벌. (사실 태종이 주도했지만...)
- 최윤덕 장군과 김종서 장군의 4군 6진 개척.
- 정책 연구 기관이었던 집현전 설치.
- 훈민정음 창제.
- 정간보 발명.
- 앙부일구, 자격루, 측우기 등의 발명.
- 유교 사상과 불교 사상의 발전.
- 전세제도의 확립.
- 총통, 신기전, 화거를 비롯한 각종 화약무기의 대대적 개발과 개량.
- 조선 풍토에 맞는 농서인 농사직설 편찬.
- 한성을 기준으로 한 역법인 칠정산 편찬.
이 모두가 세종대왕이 31년 동안 이루어낸 업적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고기덕후 세종대왕의 일화들...
1.
세종 26년인 1444년, 훈민정음 반포를 앞두고 집현전 부제학이었던 최만리, 정창손 등 집현전 학자들이
그 유명한 6개 조문을 들며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림.
당시 집현전 부제학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였음.
최만리의 상소에 대한 세종의 답 :
"이 조또 모르는 새퀴들이, 니네가 운서를 아냐? 사성 칠음에 자모가 몇이나 있는지 아냐?
언어의 ㅇ자도 모르는 새퀴들이 말이야. 아는 것도 없으면서 임금한테 깝치냐? 뒤지고 싶냐?" - 세종26년 1444년 2월 20일.
지금으로 따지자면 KDI 상임 연구원 정도 되는 교수가 대통령에게 학문적 조언을 펼치자
"내가 너보다 더 많이 안다, 새퀴야" 하고서 씹어버린 거랑 마찬가지...
그러더니 마지막에는 정창손을 제외한 모두를 하루 동안 감방에 가뒀음.
그리고 정창손은 파직 크리...
집현전 부제학에게 "조또 모르는 새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던 언어학 천재였음...
2.
세종대왕은 잘 알려진대로 고기를 무척 좋아해서 비만이었음.
밥상에 고기반찬이 없으면 상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함...
오죽하면 아버지 태종의 유언도 '충녕이 고기를 좋아하니 내 상을 치를 때는 고기를 먹게 할 것'이었음...
결국 말년에는 당뇨, 비만,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렸다고 함...
3.
세종대왕은 식욕 뿐 아니라 성욕도 왕성했음...
1부인 5후궁으로 할렘을 거느리고 사셨음.
그리고 이 6명의 부인들을 통해 18남 4녀를 낳음.
이것은 조선왕조 역사상 아들을 가장 많이 낳은 기록임....
아래로는 누구 보다도 백성을 굽어살핀 희대의 성군이며
본인께서도 왕성한 식욕과 성욕으로 심심하지 않게 사셨으니
과연 한민족 최고의 군주...
4.
세종대왕이 당시 시행되던 조세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대신들에게 새로운 제도를 만들라고 명함.
1차 보고서 - "이게 백성들을 위한 제도냐? 대신들 위한 제도지." 돌려보냄.
2차 보고서 - "야이 씨, 달라진 게 없잖아. 장난치냐?" 돌려보냄.
3차 보고서 - "때려치워, 이 색휘들아!" 조세제도를 담당하던 부서를 없애버리고 새로운 부서를 만듬.
그리고는 전국의 관리와 백성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함.
이러한 노력 끝에 토지 질이나 풍흉에 관계없이 똑같이 세금을 내는 '공법'을 제정함.
5.
세종대왕이 수립한 정책들의 완성도는 굉장히 높았던 것으로 유명함.
세종대왕 때 입안된 거의 모든 정책이 조선왕조를 지탱하는 토대가 됨.
예를 들어 농지개혁은 입안에서 시행까지 무려 13년이 걸림.
그러나 대한제국이 근대 양전 사업을 시행하기 전까지 400년 넘게 이걸로 우려먹음.
18~19세기 수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성리학자와 실학자들이 "도대체 이걸 어떻게 만든거지?"라고 경탄했을 정도...
6.
세종대왕은 양반, 노비 가릴 것 없이 모든 백성들을 사랑하셨음.
세종대왕은 출산이 예정된 달을 포함해 출산 후 1백일을 쉴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렸고,
출산 1개월 전부터 산모의 복무를 면제시켜 주는 조치를 취했으며,
또 산모만 쉬게 하면 누가 산모를 돌보겠느냐며 그 관비의 남편에게도 산후 1개월간 쉬게 해 줌.
7.
세종대왕은 뛰어난 추리력을 자랑하는 명탐정이기도 하셨음.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 맹사성이 몇몇 관리들과 짜고 황희의 사위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은폐하려 함...
하지만 세종대왕은 조작되어 올라온 상주문만 읽고서는
사건 정황에 의심을 느끼고 의금부에 명하여 진상을 규명해냄.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