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반 문재인, 친 국민의당 성향의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총리로 지명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저는 인터넷상에 더민주당이 곤혹스럽겠다는 생각을 피력했었습니다. 김 교수가 외형상 친노로 치장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할 명분을 딱히 찾기 어려워서입니다. 게다가 친 국민의당 성향이어서 국민의당 지도부가 인준 동의로 돌아서 버리면, 더민주당으로서는 김병준 총리 카드를 막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글을 올리고 나서 인터넷 뉴스를 살펴보니,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노발대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야당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총리를 지명하면,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이죠. 낮에는 안철수 의원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며 총리 지명을 비판하였습니다. 오후 3시 경에는 박 대통령 하야 촉구 성명까지 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친 국민의당 내지 친 안철수 성향의 인사가 총리로 지명되면, 박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반응을 보일 법한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박 대통령도 국민의당, 새누리당 찬성, 더민주당 반대의 구도를 노렸을 수 있습니다.
국민의당 수뇌부가 격렬히 반대한 데에는 김 교수가 감투를 너무 욕심낸 나머지 이중 플레이를 한 데 따른 모멸감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국민의당은 그간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경선에 나가기 위해 비대위원장직을 사퇴하고 후임을 물색해왔습니다. 아무도 안 맡겠다고 하여 지난 10월 24일 의원 총회에서 당내 4선인 김동철 의원에게 맡기기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런데,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손학규계의 호남 4선 김동철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맡았을 때, 당 장악이 어려워질 것을 염려하여서인지 지난 10월 26일 (수), 김 교수를 만나 비대위원장직 수락을 받아냈습니다. 다음날인 10월 27일 (목)에는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당 소속 의원들에게 이에 대한 의사 타진 겸 설득 작업으로 들어갔습니다. 10월 28일 비상대책위원회가 열리자, 안 전 대표 쪽에서는 김 교수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밀어붙이려 하였지만, 당내 중진 의원들이 워낙 강하게 반대하여 11월 7일에 결정하기로 하고 다시 연기했습니다. 이는 안 전 대표 및 당 지도부에서 시간을 내어 좀더 설득해 보자는 심산이었습니다.
오늘 김 교수가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총리직 제안을 언제 받았으며 어떤 권한을 부여받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연락 받은 지는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달력을 봐야 알겠지만 일주일 정도 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1주일 전이라고 하면, 바로 지난 10월 26일 (수)로서 안 전 대표가 김 교수를 만나서 비대위원장 수락 약속을 받아낸 바로 그날입니다. 김 교수는 그날 비대위원장직 수락과 동시에 청와대로부터 총리직을 제안받은 셈이니까 두 가지 인사 카드를 쥐게 된 셈입니다. 처신이 올바른 사람이라면, 안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신이 청와대로부터 총리직 제안을 받아서, 비대위원장 맡는 안은 유보해 달라고 전달하는 게 맞지요. 만일, 국민의당 지도부가 그런 전화를 받았다면, 10월 27일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소속 의원에게 김병준 카드 설득하는 작업을 안 했을 것이고, 28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김병준 카드를 놓고 갑론을박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국민의당은 며칠 전 언론에서 차기 총리로 김종인, 손학규, 김병준이 거론된다는 보도가 나온 후에에 당내 설득 작업을 중지하였다는 보도가 있는 걸 보면, 김 교수가 얼마나 무책임하게 이중플레이 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총리 지명이 발표되자마자 박지원 위원장, 안철수 전 대표가 즉각적으로 비판 모드를 취한 점도 김 교수의 이중 플레이에 화가 나 며칠 전부터 내심 벼르고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게 합니다.
요컨대, 안 전 대표가 오후 3시 경, 긴급 기자 회견을 열어 “이번 개각이 국민을 우롱한 폭거이다. 박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물러나라!”고 강력히 반발한 것은 자신과 국민의당을 갖고 논 김 교수와 박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모멸감이 많이 작용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런 저간의 사정을 유추해 보며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에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