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질문이 올라와서 꽤 오랫동안 제가 생각해왔던 바를 정리해서 댓글로 올려 드리려 하다가, 글이 좀 길어질듯 해서 본글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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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일이십년간 소위 말하는 "한나라당 세력"이 해온 일들을 보면 상식적으로 어떻게 저런 당을 지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이해가 안되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해방이후 기나긴 정당의 역사와 우리 사회의 정치사를 다 살펴보지 않고, 최근의 일들만 바라본다면 도대체 어떻게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고정 30%를 깔고 항상 4-50%에 육박하게 되는지 이해할 도리가 없으며, 결국 사람들이 다 바보인가 보다~ 하는 단순한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 대한 자기비하로 흐를 수도 있는 위험한 결론입니다.
한나라당의 지지계층을 연령별, 지역별, 계층별로 나누어 생각해 보면 좀더 문제에 대한 이해가 쉬워집니다.
일단 노년층에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높습니다. 전쟁을 겪고, 419, 516, 박정희의 장기집권, 80년광주, 87년 610항쟁, 97년 IMF등을 모두 몸소 겪어온 계층입니다. 이 분들의 사고방식은 아쉽지만 아직도 전제봉건국가의 백성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재자 이승만이 419의거에 의해 쫓겨날 때에도 "국부의 실각"을 슬퍼하며 흰 한복 입고 우시던 경험이 있고, 영구집권을 노리던 박정희가 자신의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을 때에도 "국상"을 치르시던 분들입니다. 이 분들에게는 대통령은 "나랏님"이며, 좀 억울한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나랏님 하시는 일에는 협조해야 하며, 반대하면 역모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입니다. 물론 직접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봉건국가의 백성으로서의 "충"이라는 심리적 기제가 머리속에 남아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입니다. 당연히 국가 주류의 집단에게 반기를 드는 행위는 매우 불편하고 위험한 행동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러므로 한나라당을 지지하게 됩니다.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 시절 10년간 한나라당이 야당생활을 하는 기간에도 한나라당이 이 나라의 주인이며 잠시 버릇없는 아이들에게 정권을 내어줬을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이분들의 머리속에는 나랏님 하시는 일에 대해 대차게 반대하는 것은 전쟁통에 봤던 광기어린 북한군들 밖에 없으니, 주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몽땅 빨갱이라는 마타도어는 주로 이분들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선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년층에서조차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새로 유권자 집단으로 등장하는 20대의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게 나타날 정도인데, 이유는 결국 시간이 흐를 수록 사람들은 각성하기 마련이며, 전쟁을 겪고 혁명을 겪었던 세대들의 생물학적 연령층이 자꾸 높아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을 살아오면서 머릿속에 고착된 사고방식은 어떤 변화에도 둔감하기 마련이므로 이 부분은 누가 와도 개선하기 힘들고 오로지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지역별 지지자들입니다.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역감정, 지역주의, 지역구도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간단히 하자면, 먼저 지역감정이나 지역정서는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당연히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온 지역에 대한 선호감정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누구나 자신이 속한 지역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 감정이나 정서가 발전해서, 내가 속한 지역이 우월하며, 국가의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내 지역에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이기적이고도 체계적인 지역주의가 발현되기 시작하면 문제가 심각해 집니다. 그 지역주의가 여러곳에서 발현되어 정치구도에 영향을 주고, 각 정당이나 정치인들의 정책이나 개인적 능력보다 그가 속한 지역이 지지여부를 결정하는데에 우선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이 오게되면 우리는 이것을 지역구도라고 부르며 대단히 위험한 상태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사실 이 지역구도를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최초로 만들어낸 사람이 박정희입니다. 지역감정의 기원이야 길게 보는 사람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기원을 찾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정치구도가 지역구도에 심하게 의존하게 된 책임은 박정희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김대중을 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호남지방을 박대하는 것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지역감정은 이제 영호남간의 문제에서 확장되어 수도권과 지방의 문제, 충청이나 강원지방의 "푸대접 감정"문제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무척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별로 성과가 없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결국 한나라당 지지자들 중 상당수가 영남지방과 수도권에 있다는 것은 이러한 지역구도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내가 경상도에 사는데, 전라도에서는 호남사람만 99% 찍어준다는데, 내가 한나라당을 안 찍어줘서 호남 사람이 득세하게 되면, 우리 영남은 호남에 비해 피눈물나는 푸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공포심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공포심 앞에서는 영남이 호남에 비해 인구가 두배 이상이며, 여태껏 영남출신 지도자들이 한국을 이끌어 왔으며(김대중을 제외한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심지어 노무현까지, 그리고 이명박도) 호남에 비해 영남은 과할 정도로 개발이 되어 있다는 사실도 무력해질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이제 국면이 바뀌면서 수도권과 지방문제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아직은 정치집단 중에서 수도권의 이익을 대변한다거나, 지방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조만간 한나라당의 수도권 위주의 정책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한나라당을 수도권 정당으로 간주하는 집단의 인식이 등장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세종시 문제가 그 시작이 될 수도 있겠죠.
정리하자면, 한나라당이 영남지역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혹은 그렇게 해주리라는 기대가 빚어낸 허상의 결과로 영남지역에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위의 두가지는 문제가 있는 상황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래 민주공화국이 된지 백년이 다되어 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한제국 시절의 백성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도 문제이며, 이 좁은 국가에서 자신의 지역,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가차원의 판단은 할 생각도 못하고 지역정서에 의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무시못할 비율로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것에 비하면 계층별 지지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한나라당은 아무래도 정강 정책상 상위계층을 대변하는 정당입니다. 이는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의 기조에도 일단 기업과 부유층을 살려놔야 소비력이 살아나고 그래야 경제가 살고 경제가 살아야 서민이 산다는 논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유층이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면, 민주주의 원칙상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행동이며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 됩니다.
하지만, 계층별 지지자그룹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오히려 민노당을 지지해도 시원치않은 빈곤층에서 한나라당 지지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여기에 해당되는 분들이 바보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 빈곤층에 속한 분들이 교육이나 사회생활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고, 그 결과 정치적 각성의 기회가 적기 때문에 아직 계층별 지지의 영향보다는 앞선 두가지, 봉건적인 마인드와 지역별 지지의 영향을 더 크게 받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대선이나 총선에서 수도권에서는 한나라당이 압승을 했습니다. 한나라당이 부동산 거품을 관리하기 보다는 경제규모 확대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을 더 올려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 몫을 했다고 봐야 하며 그래서 수도권에 조그마한 아파트라도 한채 가지고 있거나, 재개발할 땅에 집이라도 한채 있는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동산 거품은 미리미리 관리 안하면 일본처럼 크게 혼쭐날 일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하필 지금 부동산 가격을 잡아버리면 나만 손해본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있으므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가지 정도로 따져보면,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왜 그렇게 높은 비율(대략 30-40%가 될 것입니다.)로 존재하는 지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앞으로는 봉건적인 의식은 점점 사라져 갈 것이고, 지역구도도 영호남 문제에서 수도권-지방 문제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 대중들의 정치적 인식도 점점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정치행태가 주류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한나라당도 지금처럼 자신들의 정책과는 전혀 관계없는 지지율을 유지하기 어렵게 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지금처럼 말도 안되는 행태를 반복하는 짓은 하기 어려워 질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미국도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해야 되는 가난한 백인들이 공화당을 지지하기도 하는 수준인데 우리도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이렇게 문제있는 상황을 끝내고 정상적인 상태로 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언제나 있는 정답, 바로 그거 뿐입니다.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좀더 알아보고 좀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좀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우리가 나아갈 바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 집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거 참.. 그게 말이 쉽지 어디 쉬운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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