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말을 접하면 대부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난감할것이다.
1. 허무주의로부터 접근하는 방법
사실 허무주의를 완벽히 이해하려면 모든현상에서 "나"를 빼고 보아야 해석할수있지 "나"라면 이럴텐데 저럴텐데 이런 생각으로 접근한다면 이해하는데 있어서 애로사항이 크다.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것은 "나"를 제외하기위한 수단으로 의식의 초점을 "우주"로 마추어야한다. 여기서 "나"를 제외하는 가장큰 핵심은 올고,그름 그리고 좋고,나쁨 마지막으로 인간이 지닌 모든 판단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판단을 제거하라는 뜻은 모든현상에 이유를 붙이는 행위를 하지않기 위함이다. 모든것에 관한 이유라는건 먼저 인간이 붙인것에 불가하다는걸 인지해야한다.
불에 물을 뿌리면 불은 꺼진다. 이걸 온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붙인것이다. 이 문구가 이해가 안된다면 계속해서 왜?를 붙여보라! 모든 현상에 끝없는 왜? 를 붙이면 이유라는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우주의 입장에서 볼때 생명이 옷보다 중요하지 않으며 당신이 배가 고파서 밥을 먹던, 죽을 위기에서 공포심에 벌벌 떨어도 그저 하나의 현상이며 선악,좋고 나쁨따위는 아무것도 없으며 이런류의 모든 판단은 당신의 몫이란걸 알아야한다.
우주의 입장에서 볼때 어떤것이던 가치를 지니는건 아무것도 없음을 이해해야한다. 모든 가치는 바로 당신이 정할뿐이다.
그렇다면 대화도 결혼도 입는것, 먹는것 무엇하나 가치가 없단말인가?
그렇다. 우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저 하나의 현상일뿐 일정한 가치를 지니는건 무엇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이 있던말던 우주는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게 아닌 당신이 우주의 일원으로서 존재할뿐이다.
모든 가치는 자신이 정하는것이며 어디에서 배우던 자신이 그것을 받아들여야 가치로서 인정되는것이다. 이 가치를 정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는 고유인물이다.
2. 당신의 에고와 상대계의 관계로서 접근방법
먼저 상대계는 반대의 개념이 언제나 따라붙는다는걸 알아야한다. 흰색을 인지하기위해서는 흰색과 비교되는 다른색이 존재해야 내눈에 보이는 색이 흰색이라는걸 인지할수있다.
사람또한 남자를 인식하기위해 여자가 필요하고 모든 동물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상대개념을 철저히 인식해야한다.
어느날 길거리에서 남자가 여자를 때리고 있었다. 이광경을 수많은 사람이 지켜본다면 여러의견이 있을것이다.
1. 남자를 말리고 싶다.
2. 맞는여자를 대신해서 남자를 때리고 싶다.
3. 그냥 별다른 느낌이 없이 지나친다.
4. 여자는 3일에 한번씩 패야하니 당연하다.
5. 고소하다.
6. 기타등등
여기의 반응 가운데 당신의 반응은 어떤것인가?
앞서 말했듯이 상대계는 반대의 개념으로 성립한다. 반대의 개념을 많이 인식할수록 "나"라는 독특함이 돋보이는법이다.
이러한 반응에서 남들과 다른 크게 분노가 일어나는 사람은 당신이 가진 "나"의 큰 폭을 차지한다. 즉, 나는 누구인가! 를 알려면 자신의 의견과 반대대는 개념을 가진 사람이 많아야한다. 쉽게 말해서 당신의 의견은 언제나 소수의 편에 있어야 반대대는 개념들을 남들보다 크게 인식할것이다.
남들눈에는 별거아닌데 당신눈에 크게 와닿는 분노가 있다면 그게 당신을 지칭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리고 당신이 지향하는 "나" 는 언제나 소수의 입장 혹은 혼자의 입장이기에 수많은 다수와 부딧히지만 진정한 "나"를 찾을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로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사람으로서 고래심줄같은 고집불통이 아니고서는 극복할수없는 환경을 자주 접하게 된다. 고집없는 사람은 결코 헤쳐나갈수 없다.
3. 불교로서의 접근방법
인과응보법칙은 내가 전생에 해왔던 행동이 나에게 돌아오는 법칙으로서 모든 사건사고는 전부 필연이며, 우연이라는건 아무것도 없으며, 진짜 우연같은 필연이다.
당신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인간관계(부모,형제,친구,배우자,직장상사,선임,후임 등등)는 당신이 전생에 있던 관계와 반대의 개념으로 현재진행중이라고 해석하면된다.
누구가가 당신을 지독스럽게 괴롭히던 아니면 당신이 누군가를 지독스럽게 괴롭히던 전생에서의 관계는 반대의 개념이었다고 해석된다.
그리고 당신이 즐겨입는 옷의 스타일, 선호하는 자동차, 선호하는 전자제품, 취미, 관심 등등은 모두가 당신이 전생에 해왔던 것이 당신의 영혼속 기억에 이끌려온것이며 이런 모든 것들은 당신을 뜻한다.
4. 촛불의 우화
태양 옆에 작은 촛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촛불은 엄청나게 강력한 태양빛으로 인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끈임없이 생각이 올라오는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다가 참을수없는 고통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싶은가!"라고 물어왔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위해 참을수없었던 촛불은 저를 알수있는 길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라고 하자!
"그래 좋다. 내가 그리로 보내주마!"
깊은 잠에서 깨어난 촛불은 칠흑같은 어둠속에 갖혀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여긴 어디지? 왜 세상은 온통 어두운거야? 여기 누구없어요?
아무리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온통 어둠뿐이었으며 자신과 비슷한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어둠뿐이었습니다.
촛불은 자기를 안내한 목소리에게 원망을 하고 한탄을 하지만 그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대답하지 않고 외롭고 쓸쓸한 자신이 그저 홀로 있는것만이 사실이었습니다.
위의 우화를 이해할수있다면 당신의 주변은 온통 자신과 트러블을 일으키는 사람이 절대적이며, 앞서 말한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촛불과 어둠이라는 극과극의 인간관계로 삶을 살아갈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아라!
촛불을 밝게 인식하기 위해선 어둠속이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극과극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당신에게 주어진 환경은 촛불과 어둠처럼 오직 당신이라는 개성에 알맞는 안성맞춤의 환경이다.
5. 올바르고 솔직함이 베이스가 되어야한다.
허무주의 입장에선 선악은 없지만 상대적인 세상은 그렇지가 않으니 우선 선의 개념은 교과서를 통한 학교에서의 가르침으로 잡겠다.
자~ 그럼 세상을 살펴보자!
세상은 교과서와는 전혀다르게 움직이며 선한 사람 즉, 올바르고 솔직한사람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렇기에 올바르고 솔직함이 베이스로 깔려있어야 남들과 심하게 부딧히며 많은 갈등을 하게 되며 남과 다른 자신을 고통속에서 체험하게된다. 이때 고통의 역할은 삶을 진지하게 만들고 허무주의관점을 벗어나 모든것의 가치를 극과극으로 인식하게 되어 작은 배려에 행복을 느끼며 작은 악행에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부딧히는 체험이 압도적으로 크다보니 삶은 언제나 어둠속이며 희망이 있다면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것이다.
희망을 품고 사람들을 만나서 사람들을 살펴보면 자신이 희망하던 일부의 행위를 보면 그 사람자체를 자기와 비슷한 부류로 착각하기 일쑤다. 이것이 바로 사람은 보는것을 믿는게 아닌 믿는것을 보게된다는 속담처럼 자신이 믿음이 보여지는 과정이다.
이쯤되면 "나는 누구인가!"를 알수있는 사람이라면 이글에 푹~빠져서 삼매경을 헤맬것이다.
6. 담금질의 과정을 마쳐야한다.
쇠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불에 달굼과 물로 식히는 담금질의 과정을 거쳐야 기존의 쇠보다 견고해진다.
"나는 누구인가!"를 흔들림없이 온전하게 알기위해서는 담금질의 과정처럼 주변의 끝없는 시기와 질투를 받으며 계속되는 흔들리는 과정을 밟아야 알수있으며 과정을 마친사람의 정신력은 세상모든이의 질타를 받더라도 절대로 흔들림없이 견고하며 자신을 밖으로 들어내지 않는다.
자신이 어른이라면 유치원생을 이길수있다며 이들과 싸우겠는가?
싸우기도 전에 이미 흔들림없이 온전하게 알기때문에 세상 모든이가 도발을 하더라도 그럴필요를 전혀못느끼는 완고한 상태이기에 증명하려는 시도자체를 하지 않을것이다.
이처럼 "나는 누구인가!"를 알기위해서는 사람에 따라서는 죽을 위기를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며 이 글을 쓴 나는 수십번은 족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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