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할머니라고 불렀다.
아주 어렸을 땐 자주 뵈러 갔었지.
아주 큰 전통한옥.
앞에는 바다처럼 넓은 마당이, 뒷뜰에 한 단 높혀 하늘처럼 높은 밭, 대추나무 스무그루와 곧바로 이어지는 뒷산에는 갈대만 무성하게 둘러
왕할머니는 그 모든 큰 것들 사이에 가장 작은 안방에 앉아게셨다.
그 커다란 집에서 떠날 이는 모두 떠났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외할머니와 우리가족을 빼곤 아무도 없다.
왕할머니는 우리가 올 때 한 번, 갈 때 한 번,
그 커다란 수묵화에 눈물 두 방울씩 찍으셨지.
마지막으로 왕할머니를 뵌것이 6년 전.
많은 사람이 찾아왔고
왕할머니는 울지 않으셨다.
왕할머니는 활짝 웃고게셨고
우리는 모두 울었다.
눈물때문에 빛의 줄기가 시야를 방해한다.
향연마저 왕할머니의 사진앞에서 가무락가무락.
기억해 달라는 뜻일까 잊어 달라는 뜻일까.
새벽같이 달려온 피로가 몰려오고 귀에 아지랑이가 핀다.
지이이잉.
잠시 옷가지를 풀고 상주실에 들어가 벽에 허리를 기대었다.
머리맡 영창에서 아침해가 그림자 지는 듯,
정수리에 그 따뜻한 손을 포개어 놓는다.
눈이 감긴다.
햇살이 몸을 이끼처럼 휘감고 우주공간에서 빙글빙글 몇바퀴를 돌더니 척추에서 부터 아주 따뜻한 전기가 온몸으로 퍼지고 혈압이 떨어진다.
눈을 뜨니 몸이 안 움직인다.
이런 상태에 빠지면 발악을 해서 깨어나곤 했는데 그 순간은 봄날 마루에 누운것 처럼 따뜻하고 편안하더라.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왕할머니가 분홍색 꽃자수된 한복을 입고 여전히 따뜻한 손으로, 머리맡에서 이마를 짚어주신다.
나 애기때 처럼.
저절로 눈물이 내린다.
왕할머니한테서 빛이 나는 것 처럼
햇빛이 눈물에 산란되는 것 처럼 상주실의 사방이 확실히 보였다.
그리고 방 한 구석엔 맷돌같은 진한 피부에 고목같은 주름이 패인 늙은 남자가 서있었다.
미라같은 모습을 한 노인.
정확히 말하면 벽에 반쯤 들어가 있는것처럼 얼굴과 상체의 일부만 노출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렇게 방 한구석에 박혀 왕할머니와 나를내려다보고있었다.
그 어두운 남자는 한참을 그렇게 있더니 쇠를 긁는듯한 목소리로 왕할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그 비현실적인 목소리를 듣자마자 감정이 깨어지고 나도 깨어났다.
장례식 후에 어머니께 이 꿈에 대해 물었더니 예쁜 옷을 입었다면 좋은 곳에 가신거라며 나지막하게 답하셨다.
하지만 벽속의 노인이 왕할머니를 부른것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집을 청소하고 물품을 정리하기 위해 친척들과 왕할머니집에 갔다.
그 커다란 한옥은 아주 좁아졌다.
큰 방에 이어진 부엌을 건너오다 문뜩 큰 방 벽 위에서 상주실의 벽에서 보았던 노인의 얼굴을 마주쳤다.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신 왕할아버지의 가족사진이었다.
사진속에서 왕할머니는 무뚝뚝한 표정의 할아버지 옆에서 그 어느때 보다도 행복해보였다.
두번째로 눈물이 흘렀다.
묘는 왕할머니집의 넓은 뒷산에 했다.
아주 큰 전통한옥.
앞에는 바다처럼 넓은 마당이, 뒷뜰에 한 단 높혀 하늘처럼 높은 밭, 대추나무 스무그루와 곧바로 이어지는 뒷산에는 갈대가 무성하게 둘러
왕할머니는 그 모든 큰 것들 사이에서 가장 큰 자리에 왕할아버지와 나란히 누워게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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