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과학의 분리를 말씀하시는 분들께...
글 쓴 이: staire ( 故 강 민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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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형 staire님 약력
1965년 부산생, 유년기를 부산(김해) 구포에서 보냄
1983년 부산 해운대고 졸업
서울대 의예과 입학 이후 본과 3년 수료
의대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주자
야학 교사
1989년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입학
1993년 졸업, 동 대학원 석사과정 입학
1995년 졸업, 이후 KIST등에서 연구원으로 일함
2005년 5월 30일 사망
저서 : 일반인대상의 반기독교강의와 유대민족사가 있음.
telnet://kids.kornet.net/ 에 "의대시리즈"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글을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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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과학은 합리성으로부터 비롯된다. 그것도 합리성 그 자체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성을 향해 열리고 비합리성에 복종함으로써 그 속에 뿌리를 내리는
그러한 합리성으로부터 출발한다.
- 야스퍼스, '니체와 기독교'에서
종교와 과학은 분리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 둘은 서로 반대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야스퍼스는 기독교인이었지만 과학이 종교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을 - 스스로의
의도와는 다르게 - 예민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1000년 전의 '현대'과학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지요? 그 당시에도 그것을 '현대
과학'이니 '첨단 과학'이라고 부르고 있었겠지요. (이런 어휘를 쓰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그러한 개념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겨우 1000년이 지난
오늘날의 '현대과학'에 대해서 '더 추구할 여지가 없을 만큼 극한까지 추구된'
과학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경솔한 일입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현대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이라는 수식어에 어떠한 신비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경솔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 주변에는 - 그리 먼 곳도 아닌 우리 주변에 - 현대과학으로 설명이
안 되는 '초월적인'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그러한 초월적인
현상들이 과학의 입지를 위협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있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 과학은
종교와 구별될 수 없습니다.
종교는 스스로 갖추어진 완벽한 체계입니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주장합니다.)
그 체계에 위배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허약한 체계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과학은 야스퍼스의 지적대로 합리성에 바탕을 두면서도
비합리성마저 끌어안을 수 있는 '열린' 체계입니다.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잔혹하고 야만적이며 피에 흠뻑 젖어 있는 부분이 바로
종교사라는 아이러니는 종교의 속성을 꿰뚫어 본다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란 카에자르의 검으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을
만큼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니케아, 카르케돈 등등 초기 교회사를 장식하는 수많은
종교회의 - 삼위 일체론, 예수의 신성 인정 및 성육신 인정, 마리아의 신성 인정
등이 결의된 - 의 결론은 항상 논쟁에 진 편에 대한 피비린내나는 학살로 끝났음을
잊지 마십시오. '신앙만으로 서서 버틸 수 없기에 검을 들었다'라는 아타나시오스
(삼위일체론을 주창하여 아리우스파 말살의 선봉에 섰던)의 궁색한 변명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적어도 과학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Newtonian paradigm의 붕괴는 과학의 붕괴가
아니라 발전을 의미합니다. (여담이지만 정작 뉴튼은 수학과 광학, 역학보다는
연금술과 불사약 연구,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는 신학의 연구, 우주의 신비를 성서
속에서 찾으려는 시도 등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인물입니다.)
Newtonian paradigm이라는 '작은 합리'에 얽매여 더 큰 비합리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자는 과학자가 아닙니다. 비합리성을 향해 열려 있고 그것을 받아들여 새로운
합리성의 틀을 짜는 것이야말로 종교의 편협성과 취약성을 뛰어넘는 과학의
강점이요 힘힌 것입니다.
창조 과학회 - 여기에 관여하시는 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것은 '창조
과학회'가 아니라 '창조 신학회'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립니다. 결론을 미리
결정해 둔 '닫힌 체계'를 설정해두고 그 속에서의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 학회가
어찌 '과학회'일 수 있습니까. 종교와 과학의 결합은 종교와 과학의 분리만큼이나
부자연스럽습니다. 철학(과학)은 신학의 시녀라고 악을 써야만 했던 아퀴나스의
20세기 version일 뿐입니다.
저는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므로 종교의 입장에서 과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해 본 바 없습니다. 그렇지만 과학의 입장에서 종교를 받아들이는
나름의 방식은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해와 용서와 포용'입니다. 과학에 기반을
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신앙에 기초를 둔 사람과 드잡이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질투하는 하나님'은 이를 갈며 일곱 개의 봉인을 뗄 날을 기다리겠지만
인간마저 그 장단에 놀아나서는 안됩니다. 과학으로써 종교의 허점을 파헤치고
공격하려 애쓰지 마십시오. 그것은 '과학이라는 신앙'에 사로잡힌 사람이나 하는
너무나 '종교적인' 행동일 뿐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싸움을 걸어 온다.'라는 불평은 하지 맙시다.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립시다. 지난 수천년간 인류는 편협한 이념의 굴레를 서서히 벗어나
진정한 '인간'의 존엄성에 주목하는 humanism의 세계관을 갈고 닦아 왔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느리고 무겁게 전진하고 있습니다. 서구 문화를 뒤늦게
받아들여 고유의 철학에 아직 유연하게 이식하지 못한 일부 지역(예를 들면 한국)을
제외하면 종교는 지난날처럼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전쟁의 빌미가 되지도 못하는
'문화 현상'일 뿐입니다. (어떤 교회에 다니십니까...라는 질문이 어떤 스포츠를
좋아하십니까... 라는 정도의 무게를 갖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유럽의 교회는 이미
'사교 클럽'이 된 지 오래입니다. 성탄절 선물을 받으러... 여자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유학 생활이 외로와서... 가난한 이웃을 돕고 싶은데 혼자서 하기에는
벅차니까... 이런 이유만으로 기쁘게 교회를 찾을 수 있는 그날이 머지 않아 올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착한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이만큼 성숙치 못해서요.
기다리면 나가 떨어질거란 기대를 갖기에는 인간이란 신앙이라는 무기로써 상상도 못할 짓을
저지를 만큼 무서운 속성을 지니기도 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