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이 장군사모에게 아줌마라고 햿다가 영창을 갔다는 사건.
진위 여부를 떠나 당시에는 충분히 있을법 했다고 생각하며 한말씀 올립니다.
본인은 1989년 2군사령부내의 제2수송교육대에서 방위로 근무했습니다.
약칭 2수교에는 방위중대가 별도로 운영되고 있었구요,
방위병들이 아침에 2군사령부내 2수교 방위중대로 출근을 하면
2수교에서 운영중인 각 중대로 출근을 해서 현역병들과 같이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이발병, 세탁병, px병, 취사병, 골프장 관리병, 행정병, 군수병, 작전병 등등이 보직이었고,
저는 교육생 포함 천명의 식수인원을 책임지는 취사병으로 보직을 명받읐죠.
제가 근무하던 당시 저희 방위중대의 고참중 한명이 영창을 갔던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분은 골프장 관리병이었습니다.
골프장관리병의 주업무는 수,토,일요일에는 캐디를 돌고,
나머지 요일에는 골프장 잔디관리 (노가다)에 투입되었죠.
캐디를 돌면 공식적으로 7천원인가 8천원의 수고비를 받게 되어 있었기에 고된 골프장 관리에도 꽤 짭짤한 소득을 올릴수 있어 방위병들의 선망이 되곤 했습니다.
당시 병장월급이 만원 정도 였을거에요.
(술집 소주 가격이 500원, 담배한갑이 800원 하던 시절.)
자, 그 고참이 왜 영창을 갔나.
1990년이 되어 88올림픽이후 고성장 시대가 되자 인플레이션이 왔
고 그여파가 골프장캐디돌던 방위병의 수고비에도 영향을 주었죠.
7~8천원하던 캐디비가 만원으로 올랐습니다.
캐디비가 오르고 얼마후 투스타 한명이 일반인 세명 데리고
라운딩을 했는데
라운딩이 끝나고 투스타가 8천원을 캐디비로 준거죠.
8천원을 받은 제 고참이 장군님에게 조심스레 한마디 했어요.
"만원인데요.."
새파란 방위 상병에게 들은 한마디에,
투스타는 모시고 온 일반인 손님앞에서 체면을 구겼고,
그옆에서 보좌하던 대위가 알아서 골프장관리 인사계에게 즉시 통신을 날렸죠.
영창 13일.
영창대기라고도 했고
군기교육대라고도 했고...
방위병인 우리는 정확한 명칭을 몰라요.
단, 소집해제 일자에 영향이 없고
속칭 빨간줄이 안 그이는 수준의 처벌을 받았어요.
지금 김제동이 말하는 딱 그수준으로요.
술김에.
핸드폰으로.
이렇게 긴글을.
주절주절.
문맥이 맞는지.
탈고도 없이 써서 올리는 이유는.
따로 말씀 안 드려도 아실거라 믿고.
이만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