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 재단’을 주도적으로 설립한 주체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말고 청와대도 포함돼 있음을 보여주는 문건이 나왔다. 이는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은 청와대와 무관하게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것”이라던 청와대·전경련의 해명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한겨레>가 29일 단독으로 입수한 어느 대기업의 내부 문건을 보면, 미르 재단의 성격과 관련해 “대한민국 국가브랜드 제고를 위한 정부(청와대)와 재계(전경련)가 주관하는 법인 설립 추진”이라고 청와대를 분명히 거론하고 있다. 이 문건은 또 “대표 상위 18개 그룹이 참여하고 매출액 기준으로 출연금(500억원) 배정”이라고 적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각자 형편에 맞게 돈을 낸 게 아니라, 위에서 하향식으로 출연금 액수가 배정된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어서 ‘권력 개입’ 가능성이 더 짙어졌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재단 출연금을 모금한 통로는 전경련이어도 우리는 처음부터 청와대가 추진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 문서는 지난해 10월25일 한 재벌그룹 본부가 각 계열사의 계약담당 임원들에게 내려보낸 것으로 다음날인 26일 오전 10시까지 서울 강남의 팔래스 호텔로 가서 미르 재단 설립에 필요한 서류작업에 참여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가지고 갈 서류로는 재산출연증서와 법인등기부등본 1부, 대표이사 법인인감증명 2통, 사용인감을 적시하고 있다. 이 문서를 <한겨레>에 건넨 이는 “그룹 관계자가 25일 오전 계열사 임원들에게 전화를 한 뒤 그 내용을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 오후에 다시 보낸 문서”라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이 문건의 진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26일 팔래스 호텔 모임에 참석한 기업 관계자와 접촉했다. 그는 “10월25일은 일요일이라 다들 쉬는데 그룹에서 갑자기 전화가 왔고 필요한 인감과 서류들은 회사에 있어 26일 아침 일찍 회사에 들러 서류를 작성하고 출력해 팔래스 호텔로 가느라 무척 시간에 쫓겼다”고 말했다. 팔래스 호텔 관계자도 “10월26일 아침 7시 전경련이 연회장을 예약했고 예정 시간을 넘겨 점심시간이 지나서까지 사용했다”고 말했다. 문건은 또 “출연금을 내는 일정과 그 범위는 추후에 논의하자”고 적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출연금이나 기부금을 내겠다고 하고 일정을 뒤에 정하는 것은 수해나 재해 등 긴급한 상황일 때”라며 “출연금 일정과 범위를 나중에 정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급한 상황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이 문건을 공개할 경우 문서양식이나 서체 등으로 제보자의 신분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문서의 사진은 싣지 않고 내용만 전달하기로 했다.
김의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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