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대테러부대: 러시아
▲1995년 6월= 체첸 반군이 러시아 부됸노프스크 마을의 한 병원에서 수백명을인질로 잡음. 반군들의 공격과 러시아 특공대의 기습 실패로 100여명 사망.
▲1996년 1월= 체첸 반군 약 250명이 러시아 남부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키즐야르시의 한 병원을 습격, 수백명을 인질로 잡아 체첸 국경까지 버스로 데려감. 인질들은 사망
▲1998년 9월= 영국인 국제구호요원 영국인 카밀라 카가 인질로 잡힌 지 1년만에 석방됨. 이어 4명의 엔지니어가 인질로 잡혔다가 석방된 것으로 보도됐으나 나중에 참수된 것으로 확인
▲2002년 10월= 모스크바 극장에서 체첸 반군이 700여명을 인질로 잡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부대가 3일 후 극장을 기습해 인질 129명, 인질범 41명 사망. 숨진 인질 대부분이 인질범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주입한 가스에 희생.
▲2004년 9월= 인질범들이 러시아 남부 북오세티야공화국의 한 학교에서 수백명을 인질로 삼고 체첸 독립을 요구하다 러시아 특수부대에 진압. 200여명 부상.
이거 뭐냐? 잘하는게 없네..
최고의 대테러부대: 사렛트 매트칼
▲개요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테러에 대비해 창설
▲특징:아랍국의 적진에 직접 투입되어 실전을 많이 쌓아 특공대원으로서의 자질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1968년 12월 PFLP에 의한 엘 알 항공기 납치에 대한 보복으로 40명의 사렛트 매트칼 정예 요원들이 베이루트 공항에 대한 공격을 단행하여 13대의 비행기를 폭파하기도 했다.
▲사렛트 매트칼은 1972년 5월에 발생한 사베나(Sabena) 여객기 납치사건을 성공적으로 진압하여 최초로 대테러리즘 능력을 검증 받았다.
검은 구월단(Black September Organization) 소속의 테러리스트 4명이 사베나 여객기를 이스라엘의 로드 공항으로 공중납치하여, 탑승객 100명을 인질로 억류하고 이스라엘 정부당국과 대치했다.
납치범들은 이스라엘 감옥에 투옥된 371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의 석방을 요구했고,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국제적십자의 대표자를 협상 중개인으로 활용하여 시간을 벌었고, 그 동안에 구출작전을 준비했다.
항공기 정비 기술자로 위장한 사렛트 매트칼 요원들이 납치된 항공기에 은밀히 접근하여 테러리스트 2명을 사살하고 2명은 생포하는데 성공했다.
사렛트 매트칼의 구출작전은 최초의 성공적인 항공기 납치 구출작전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인질구출작전의 대명사로 알려진 1976년의 엔테베 작전도 인질 구조팀이 제35공수여단과 골라니 코만도 대원들의 합동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사렛트 매트칼이다.
▲엔테베 구출작전.
<사건개요>
1976년 6월 27일 승객 및 승무원 269명이 탑승한 파리발 텔 아비브행 에어 프랑스(Air France) 항공사의 민간 여객기가 중간 기착지인 그리스의 아테네를 이륙한 직후 7명의 중무장한 PFLP 소속의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공중납치 되었다. 납치된 항공기는 리비아의 벤가지 공항에 급유를 위해 착륙했고, 그 곳에서 출혈이 심한 영국인 여자 패트리시아 수잔이 석방되었다. 벤가지 공항을 이륙한 납치범들은 수단에 착륙하고자 했으나, 수단 정부의 착륙거부로 인해 기수를 돌려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착륙했다.
268명 인질들의 안전한 석방을 담보로 납치범들은 로드 공항에서 발생한 항공기 이용객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가담하여 투옥중인 일본적군 테러리스트 고조 오카모토를 포함한 53명의 동료 테러리스트 석방을 요구했다. 납치범들은 그들의 협상대표로 우간다 주재 소말리아 대사를 지정했고, 프랑스 정부대표로 우간다 주재 프랑스 대사를 지정했다. 그러나,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Idi Amin)은 프랑스 대사의 협상 참여를 제지하고 대신 자기가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한다고 발표했다. 납치범들은 요구조건 수락 시한을 7월 1일로 정하고, 52명의 동료 테러리스트들을 엔테베 공항으로 데려올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건 발생 초기에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이 테러리스트의 협박에 굴복할 기미가 전혀 없었으며, 테러리스트와의 협상불가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항공기 납치사건 발생 3일째인 6월 30일 납치범들은 노인과 어린이를 포함한 47명의 인질을 석방했고, 이들은 케냐로 후송되었다. 한편, 이츠하크 라빈 총리실을 점거하는 등 인질 가족들의 거센 항의가 계속되자 이스라엘 정부는 초기의 강경한 입장에서 벗어나 인질들의 석방을 위해 납치범들과 협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납치범들은 그들이 정한 협상시한을 7월 4일로 연장하고 추가적으로 100명의 인질을 석방했다. 한편, 프랑스의 중재로 PLO의장 아라파트는 대표자를 우간다로 파견하여 사건의 조기 종결을 시도했으나, 납치범들의 거부로 무위에 그쳤다. 7월 2일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의 추가적인 요구조건으로 5백만 달러의 현금을 요구했다. 이스라엘의 정보당국은 이스라엘 정부의 반응을 무시하고 유태인 인질들을 무조건 사살하라는 PFLP의 아디 하다드의 명령이 내려진 전화를 도청하고 인질구출작전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인질구출작전>
이스라엘은 에어 프랑스 항공기가 납치되었다는 정보부 모사드(Mossad)의 보고 직후 라빈 수상을 위원장으로 한 위기관리 대책위원회를 사건발생 당일인 6월 27일 긴급 소집하고, 계속적으로 정보수집을 지시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테러리스트와의 타협불가’이라는 강경정책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건발생 직후부터 특공대에 의한 인질구출작전은 어느 정도 고려되어진 사항이었다. 그러나, 구출작전을 감행하는 것에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지리적으로 항공기가 납치되어 있는 우간다까지는 이스라엘로 부터 4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 특공대원의 수송을 위해 무착륙 비행을 할 수 없으며, 특공대원 수송항로가 적대국들인 점, 그리고 납치범들은 이디 아민 대통령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들 이었다. 그러나, 모사드는 납치범, 인질, 공항구조, 우간다 정부군의 배치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고, 이를 바탕으로 특공대는 공군기지에서 작전명 썬더볼트(Thunderbolt)에 의거 인질구출작전 리허설을 반복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 건설이 이스라엘 건설회사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공항구조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입수되어 있었고, 미국이 촬영한 엔테베 공항 인공위성 사진도 입수되어 분석이 이루어졌다. 6월 30일 추가적으로 유태인을 제외한 인질들이 석방되었고, 석방된 이들 인질들로부터 엔테베 공항, 테러리스트, 우간다 정부군 배치상황 등에 대한 세밀한 정보를 입수함으로써 구출작전의 계획은 용이해졌다.
7월 2일 시몬 페레스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구르 참모총장에게 인질 구출작전에 대한 세부지침이 하달되었고, 이에 따라 구출작전에 투입되는 특공대는 C-130허큘러스(Hercules)기 4대, 지휘용 및 구호용 보잉 707 2대로 편성키로 하고 엔테베와 이스라엘 간의 비행계획, 공항 습격계획, 인질구출요령 등이 작성되었으며, 우발사태에 대비한 계획도 검토되었다. 중간 급유계획은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케냐의 나이로비로 결정하고 제반조치도 완료했다. 동 구출작전의 지휘관은 공수여단장 덴 솜론(Dan Shomron)이 맡았고, 특공대장은 조나단 나타나휴(Jonathan Netanyahu) 중령이였다.
7월 3일 오후 구출작전의 내각 결정이 내려지기 20분전 특공대는 우간다로 출발했다. 특공대는 이스라엘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저공으로 비행하여 7시간만에 계획대로 22시 45분에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 상공에 도착했다. 한편, 보잉 707 1번기는 엔테베 남쪽 빅토리아호 8천미터 상공을 선회하며 특공대의 지원과 본국의 작전본부와 통신망을 유지했고, 2번기는 작전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상자의 치료와 후송을 위해 케냐의 나이로비에 대기하고 있었다. 특공대와 작전에 필요한 장비를 탑재한 4대의 허큘러스 수송기는 엔테베 공항으로 비행하여 관제탑에는 석방할 테러리스트의 수송기라고 속이고 아무런 저항없이 24시경에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했다. 나타냐후 중령의 지휘로 특공대원들은 이디 아민 대통령의 개인 리무진으로 위장한 벤츠 승용차로 경비병 대기소로 접근하여 경비경을 사살했고, 이 순간 공항 전체가 정전이 되었고 허큘러스 4번기에서 조명탄이 올려져 특공대원들에게 측면지원을 시작했다. 구터미널 밖에서는 특공대원들이 입구에 있던 납치범 2명을 사살하고, 건물내로 진입하여 히브리어로 인질들을 향해 "엎드려"라고 소리치고 추가적으로 납치범 2명을 사살했다. 추가적으로 터미널 밖에서 응사하는 2명의 테러리스트 역시 사살했다. 테러리스트들을 사살하고 인질들을 구출할 때까지의 총격전은 불가 1분 45초로 끝났으나, 우간다 군의 응전이 시작되었다. 특공대의 대전차 미사일과 기관총의 응사가 이어졌고 폭파팀은 우간다 공군의 추격을 막기 위해 공항에 있던 11대의 미그기를 파괴했고, 헤큘러스 1대는 이륙하여 지상에 있는 이스라엘군을 엄호하여 인질들의 수송기 탑승을 도왔다. 최초 계획대로 53분만에 작전을 완료하고 인질을 무사히 구출한 특공대는 4대의 헤큘러스기에 분승하여 이스라엘 전투기의 호위속에 텔 아비브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여 열열한 환영을 받았다.
인질구출과정에서 4명의 인질이 목숨을 잃었고, 특공대장 조나단 나타냐후 중령이 숨졌다. 그리고, 사건 종결후 치료를 위해 우간다의 병원에 후송되어 있던 영국인 국적의 유태인 도라 블록(Dora Bloch)은 보복조치로 우간다 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엔테베 작전의 평가>
이스라엘 대테러리스트 특공대의 엔테베 작전은 최초의 원거리 인질구출작전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으며, 이러한 유형의 작전에 모델이 되고 있다. 엔테베 작전의 성공에 결정적인 요소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엔테베 공항의 구조와 인질억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 이스라엘 정보국의 정보수집 능력의 우수성이다. 둘째는 이스라엘 특공대의 수송기를 탐지할 수 있는 레이다의 성능을 아프리카 국가들이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디 아민 정권에 대해 비우호적인 케냐의 레이다에 포착된 이스라엘 특공대의 움직임이 우간다 당국에게 노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셋째는 엔테베 공항이 외곽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증원군의 차단이 매우 용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그 누구도 이스라엘이 인질구출작전을 감행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납치범들 뿐만아니라 우간다 군의 방어가 허술했고, 기습적인 구출작전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모사드의 정확한 정보와 특공대의 치밀한 계획, 그리고 이스라엘 정부의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결단에 의해 이루어진 엔테베 작전은 군사적 측면에서 볼때 완벽한 작전이였다. 이스라엘 정부의 "눈에는 눈(An Eye For An Eye)" 이라는 대테러리즘 강경정책, 즉 테러리스트의 적대행위가 정상적인 한계선을 넘어서는 경우 그것을 즉각 응징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행위를 할 수 없도록 억제한다는 의미에서 엔테베 작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엔테베 작전이 테러리즘을 완전히 근절하는 작전은 아니였지만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단체에게 엄중한 경고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하겠다.
대원들의 개인적인 자질은 대한민국의 707부대도 훌륭하다고 생각되나
사렛트 매트칼은 실전경험면과 모사드라는 엄청난 정보력까지 보유하고 있네요.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