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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76132
    작성자 : 비키라짐보
    추천 : 23
    조회수 : 7643
    IP : 211.253.***.34
    댓글 : 14개
    등록시간 : 2015/01/11 22:12:52
    http://todayhumor.com/?panic_76132 모바일
    [브금/19금] 단편 'CTRL_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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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TRL_Z(부제 : 중곡동 강간살인 사건의 전말...
     
    hu_1415852935_7217877848.jpg
     
    그것은 조금 놀라운 경험이었다.
    나는 야동을 보고 있었다. 31살, 결혼은커녕 애인조차 없는 집구석 백수가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몇 가지 방법 중 야동은 꽤나 효과적이고 매혹적인 방법이다.
    서른하고도 한 살이다. 미성년자가 아니란 말이다. 여자가 홀라당 다 까뒤집고 나오든 기구를 사용하든 또는 2 대 1로 플레이를 하던 누가 뭐라 할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남자의 입장에서 야동을 보다가 걸린다는 건 나이와 상관없이... 아니 때론 나이가 많을수록 더 수치스러운 일이다. 거기에 그 사람의 입장이 연봉 1억 넘는 능력자에 여자들을 수도 없이 꿰차고 다니는 능력자가 아닌 집구석 백수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한심한 놈!]
    [짐승 같은 새끼!]
    [비싼 밥 맥여놨더니 딸딸이냐 이 버러지만도 못한 새끼야]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은 물론이거니와, 흉악한 짐승이라도 보는 듯 경멸을 가득 담은 그 눈초리를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주섬주섬 바지를 추켜올려 민망하게 드러난 나의 생식기를 가리기도 전에 머리통으로 날아온 엄마의 빗자루... 왜 하필 맞는 부분은 꼭 손잡이의 딱딱한 부분일까? 얇은 티셔츠 위로 솥뚜껑처럼 두꺼운 엄마의 손바닥이 내리쳐지고, 빨개진 등짝을 해서는 죄인마냥 방구석으로 내 쫓기는 경험은 해보지 않은 이라면 감히 입에 담기조차 힘들만큼 모욕적이다.
    나의 아픈 마음을 아는지 엄마가 나간 뒤 스피커를 통해 함께 울어줬던 유야 사쿠야에 “하아 하아 아아” 여튼 그 뜨거웠던 음성을 기억한다.
    나는 불과 1년 전에 느꼈던 그런 치욕스런 순간의 재발을 방지하고픈 마음뿐이었다.
    누군가의 인기척을 들은 순간 다행히 난 스피커 대신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입고 있던 옷은 순식간에 허리춤까지 잡아 당겨지는데 아무런 수고로움이 없는 늘어난 츄리닝 바지였다.
    오른손은 무릎위의 츄리닝 바지, 왼손은 키보드...
    그야말로 양수겸장의 완벽한 형태였다.
    걸음소리가 가까워지고, 문고리를 잡는 소리가 났다. 이제 문을 열고 방안의 내용물이 온통 살색의 화면 아래 무언가를 곧츄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데에는 채 몇 초의 시간도 소요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누가 말했던가!
    손은 눈보다 빠르다고...
    고니는 아귀에게 밑장을 빼 장을 주고, 정마담에게 8광을 주었다.
    이제는 내 오른손이 바지를 치켜 올리고, 왼손이 ALT_TAB을 누를 것이다.
    걱정은 없다.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나의 오른손은 재빨리 키보드를 두드린다.

    고요하다.
    불안감에 고개를 돌려보지만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방문은 굳게 닫혀있고,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던 엄마의 인기척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당황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문 쪽으로 다가간다. 문을 빼꼼히 열고 얼굴만 내밀어 밖의 상황을 살핀다. 아직 당당히 문을 열기엔 하체에 불끈하게 솟아 오른 텐트의 각도가 높다. 허리는 구부정하고 하체는 문 뒤에 상체만 밖을 향한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의아했다. 방금 전의 인기척과 엄마로 추정되는 우악스런 문고리의 움직임은 무엇이란 말인가?
    고개를 갸웃거려보지만 아무래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나는 문을 다시 잘 닫은 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그걸 어떻게 밝혀내야겠다는 탐구심보다는 클라이막스에 도달하지 못한 하체의 갈증을 다스려 주어야겠다는 욕망이 앞섰다.


    “어? 뭐야 씨팔... 없네?”


    이상했다. 컴퓨터의 다운로드 폴더를 눌러 열어봤지만 그곳엔 최근에 받은 영화들만 있을 뿐, 이십 분전에 다운받은 유야 사쿠야의 노모 복귀작이 없다.


    “지워졌나? 아닌데... 휴지통에도 없는데...”


    알쏭달쏭한 미스테리가 반복된다. 인기척의 대상도 없어지고, PC안의 새로 받은 야동도 사라졌다.
    실망감 때문일까? 불끈 솟아 있던 하체의 욕망덩어리가 어느새 사그라 든다.
    욕망이 잠들자 발현한 현자의 호기심이 나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나는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와 조용히 엄마를 불렀다.


    “엄마! 어엄마~아!”


    거실은 고요하다. 분명히 10여분 전에 엄마가 시장에 다녀오셨다며 찬거리를 잔뜩 들고 부산스럽게 들어오셨는데... 거실은커녕 부엌까지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려도 마찬가지다. 오 분, 십 분... 그 미칠 것 같은 고요속에서 얼마나 더 시간이 흘렀을까?
    당혹스러웠다. 내가 미친 건가? 아니면 미스테리 영화에서나 보던 차원이동이라도 된 걸까?
    불안감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서른 한 살이다. 집에 엄마 없이 혼자 내버려졌다고 울고불고 할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기묘한 상황이 나를 미치게 할 것만 같다.
    나는 재빨리 주방으로 달려가 무언가 무기가 될 만한 것을 먼저 손에 들었다. 큼직한 식도...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왔다는 이 칼은 최근에도 잘 갈려 왔는지 제법 날카롭다.


    [끼이익]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푸닥푸닥 거리는 비닐봉지 소리가 들린다. 누굴까? 아니 뭘까? 왠지 두렵다.
    나는 슬금슬금 문 앞으로 다가갔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곧 현관문이 열릴 차례다.


    “히이익!!! 에구머니나 너 뭐하냐 지금!!!”
    “으헷!! 어 엄마!! 뭐야! 어디갔다와! 나 깜짝 놀랐잖아!! 엄마 한참 찾았단 말야!”
    “이 미친놈아! 미친놈아 엄마를 식칼 들고 기다리는 미친놈이 어딨어!!! 엄마 아까 시장간다고 했잖아!”
    “엄마 갔다왔잖아 시장... 아까...”


    그 순간 훑어 본 엄마의 모습이 이상하게끔 낯 익다.
    여러개의 두툼한 검정 비닐봉지들... 한 30분전쯤 본 것 같은 미나리와 대파...
    무언가 이상하다.
    왜냐하면... 난 이 장면을 정확히 30분전에 보았었으니까!


    “뭘 갔다와! 이제 왔구만... 으이구 팔 아퍼라! 니 놈새끼 쳐 멕일라고 엄마가 이 고생을 하는데 취직은 언제하냐! 응?”
    “아 곧 해... 해야지...”
    “이 놈 새끼가 방안에서 뭐 이상한거 봤어? 또? 그래서 지금 눈에 힘아리가 쪽 빠져가지고 멍한거야!!”
    “보긴 뭐.. 뭘봐! 이... 이상한거는... 내가 뭐 애야... 취직자리 있나 그거 봤지...”
    “근데 왜 그래!!”
    “아... 아냐! 엄마 일 봐... 나 이력서나... 써야겠다. 그래...”


    나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려 애쓰며, 엄마에게 대충 둘러 댄 후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맞다. 아까도 엄마에게 비슷한 내용의 잔소리를 한번 들은 후 방에 들어와 그 전에 미리 눌러 놓은 유야 사쿠야의 복귀작이 약 20여분만에 겨우 다운 된 것을 확인했다.
    맞다. 조금 전에 아무리 찾아봐도 없던 유야 사큐야의 복귀작이 다운로드 폴더에 다운 완료를 알리며 나타난다.
    당황스러움에 여러번 찾아봤기 때문에 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휴지통은 물론 다운로드 폴더 바탕화면 어디에도 없던 그 놈이다.
    나는 바둑기사 이창호처럼 아까의 상황을 복기하려 애썼다. 무언가 내가 한 행동들 중 하나에 그 단서가 있으리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야동을 틀고, 몇 년만에 드디어 다시 AV계로 복귀한 희대의 육덕 미녀 유야 사쿠야를 반긴다. 화끈하게 복귀 첫 작부터 노모버젼을 유출한 제작사에 감사하고, 노모버젼이 뜨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별로 번역할 것도 없는데 자막을 입혀준 딸쟁이 놈들이 고맙다.
    여기까지는 아까와 똑같다. 나는 발기조차 잊은 채 야동의 러닝타임을 살핀다. 대략 9~10분 가량... 때가 왔다. 아니나 다를까 부엌에서 야채 손질에 몰두하셔야 할 엄마의 인기척이 들려온다.
    모든 상황이 동일하다. 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아채는 그 우악스런 손동작 까지 똑같다.
    나는 아까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내리지도 않은 바지춤을 부여잡고 다른 한 손을 키보드에 가져다 댄다.
    여전히 손은 눈보다 빠르다.

    [ALT_TAB]

    “야 이 쌍노무 새끼야! 뭐 이력서를 써!!! 아이구!!! 내가 뭔 영화를 보겄다고 이런 노무새끼를! 그거 당장 안꺼!”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아뿔싸... 아까 다운로드 폴더에서 사라진 유야 사쿠야의 복귀작을 찾겠다고 모든 창을 다 열었다 닫아 버려 떠 있는 창이 달랑 야동 뿐이란걸 잊었다.
    열려 있는 창이 없다면 알트탭을 눌러봐야 소용이 없지...

    한바탕 쏟아진 엄마의 잔소리... 지겹다. 갑갑하다. 누군 뭐 취직하고 싶지 않아서 안하나?
    나도 이제 다 컸다며 대들어 볼까 하다가 포기한다. 생각해 보니 그 레파토리는 이미 스무살 무렵에 수도 없이 써먹어서 약발이 먹힐 것 같지가 않다. 나도 스트레스 해소하려고 잠깐 본 거 뿐이라는 멘트도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사그라든다. 몇 달 전 [니 깟 놈에 새끼가 집에서 빤빤히 놀면서 뭔 노무 스트레스!] 라며 쓰레받기에 얻어 맞은 트라우마가 쓸데없는 반항욕구를 집어 삼킨다.


    [아 지겨워... 언제쯤 끝나려나... 이거 뭐 엄마 잔소리... 취소할 수 없나? CTRL_Z 눌러서...그냥!!!]


    순간 머리가 띵하다. 잠시 간과하고 있던 기억의 실마리가 풀린다.
    처음 엄마가 문고리를 잡아쥐시고 열어젖히려던 그 순간... 그 때 내 손모양이 떠올랐다.
    ALT_TAB을 누른다는게... 나도 모르게 CTRL_Z...


    [말도 안돼!]


    어처구니 없는 상상이었다. 키보드 펑션키 한번 눌렀다고... 그게 말이 돼?
    백문이 불여일견... 하지만 백번 보아봤자 한번 하느니만 못하다.
    엄마의 지겨운 잔소리 암바 속에서 나의 왼손이 재빨리 키보드를 향한다.


    [딸깍]


    경쾌한 소리다.
    머리가 약간 띵한 것 같지만...
    놀랍게도... 고요하다.
    모니터에서 현란한 살색 향연을 보여주던 유야 사쿠야가 사라졌다.
    그리고... 엄마도...
    사.라.졌다.

    나는 머리카락을 쥐어잡은 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 감탄하기 시작했다.
    나를 찾아 온 이 놀라운 기적에 대해서... 그리고 이 기적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씨.발! 로또를!! 그래 로또를 사는거야!!! 내 인생 이렇게 한방이구나!!!”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테스트 삼아 연달아 눌러보았지만 한 번에 반복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30분에 불과 했다. 머나먼 시간 여행은 꿈으로 돌아갔고, 내 심장을 뛰게 만든 로또에 대한 열망 조차 차가운 겨울밤의 고드름처럼 산산히 부숴졌다.
    로또 당첨번호 발표시간과 로또 최종 구입시간간의 텀은 30분이 넘었으니까
    스포츠 토토도 마찬가지였다.
    주택복권, 즉석복권, 모두 똑같았다.


    “그래! 마권! 경마장을 가자!!!”


    연전 연승이었다. 컴퓨터를 싸 짊어지고 간다는건 불안했기 때문에 친구에게 부탁해 첫 게임 천 원부터 차곡차곡 배팅액을 올려갔다. 결과는 역시 대 성공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내 부탁을 탐탁치않게 생각하던 친구도 내가 약속한 성공보수인 낙찰액의 절반을 손에 쥐어주자 눈이 벌개져서 다음주에도 꼭 불러달라고 성화다.
    마음 같아선 내가 직접 경마장에 가서 따로 떼 줄 것 없이 잔뜩 배팅해버리고 싶지만, 이 기기묘묘한 상황을 연출해준 컴퓨터를 움직이면 왠지 마법같은 일들이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배를 가른 바보가 되고 싶진 않았다. 나는 그 후 인터넷을 통해 30분의 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주식, 외환거래... 단 시간에 짧은 추이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했다.


    “어머! 너 설마 다단계 이런데 들어갔니?”
    “아이고... 다단계도 뭐가 있어야 하지... 너 혹시 퍽치기 하냐? 거 왜 있잖아 술취한 놈들 뒤에서 후려치고 돈 훔치는거!!”
    “이 양반이! 우리 진환이가 능력은 없어도 못된 애는 아니예요!”


    모처럼 내민 수백만원의 거액을 본 아버지와 어머니의 반응은 참담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동안 내가 쌓아온 게으름과 무능력의 대가라 치부하며 나를 달래본다.
    어차피 상관없지 않은가? 눈 먼 행운처럼 나를 찾아온 이 30분의 기적 CTRL_Z가 있는 한 나는 최고의 능력자가 될 수 있었다. 돈, 명예, 권력... 얻고자 하면 뭐든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부모님께 얼마간의 돈을 드린 후 남은 돈으로 편의점에 들러 양담배 한 보루와 양주 한 병을 샀다.
    나름 편의점 내에서 가장 비싼 양주였지만, 그래봤자 편의점 양주... 그래도 뭐 어떠랴! 나의 지금은 초라해도, 가까운 미래는 그 누구보다 빛날 것을...
    나는 그것들을 들고 집 옥상에 올랐다.
    멋드러진 영화 주인공처럼 담배를 꼬나물고 폼나게 병나발을 불어봤다.
    쓰디 쓴 알콜들이 목구멍을 통해 꿀꺽꿀꺽 넘어간다. 드디어 성공의 문턱에 다가 섰다는 충만함에 몇 모금을 연거푸 마셔도 취하는 것 같지가 않다. 당장 다음 주 경마장에서 목돈을 손에 쥐면, 곧장 주식계좌를 만든 후 주식 투자를 시작할 것이다. 그럼 얼마 안돼 돈은 수백배로 불어 근사한 차에... 근사한 곳에서 수 백만원을 훗가하는 고급 양주를 마시겠지... 아마 그때 내 옆엔 연예인처럼 근사한 여자가 앉아 시중을 들 것이다.
    명품 옷, 명품 신발... 내 인생도 폐차장 쓰레기에서 명품이 되겠지?
    근사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입가에 미소를 걸고 잡아 당긴다.
    이러다 입이 찢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이 좋다.
    짜릿하다.
    집구석 백수였던 나는 사라지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슈퍼맨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느 샌가 취기도 몰려오고, 근거 없는 자신감들이 나를 채운다.
    못할게 뭔가!
    딱 30분! 딱 30분이면... 난 신과 다를바 없다.
    그 순간... 취기가 올라와 살짝 비틀거리던 내 눈에 누군가의 뒷 모습이 보였다.


    “호오... 민서! 씨.발.년! 내가 없는 돈에 영화표 예매해서 데이트 한 번 하자고 했더니... 뭐? 됐거든요? 그 쪽이랑은 일 없거든요? 아우... 씨.발.년! 넌 임마 아주 복을 발로 걷어 찬거야! 그때 데이트 한번 하고 좀 그래... 좀 줬으면 내가 비참하게 야동같은것도 안보고 말야... 그래 내가 너한테 아주 잘해줬을텐데... 비싸게 굴더니... 크크크 이제 어떡하냐? 난 최고가 될건데 크크크 썅년... 아주 XX에 금테를 두른 것도 아니고”


    순간 나쁜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꼭 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나긴 백수생활동안의 설움과 차갑게 퇴짜 맞은 모처럼의 고백... 그 쪽팔림이 한 순간에 밀려왔다.


    [그래... 씨.발.년... 내가 니 년 그 비싼 몸뚱아리는 쳐 밟아주고 간다.]


    다리가 조금 비틀거려서 옥상 계단에서 넘어질뻔 했지만, 몸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목표물을 향해 간다. 채민서... 이쁜년... 키도 160 중반은 되고, 다리도 쭉 빠지고, 잘룩한 허리에 궁둥짝도 토실토실했지...
    그 날 내 고백에 마치 벌레를 보는 듯했던 너의 눈빛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네 두 눈은 내가 입은 츄리닝을 위아래로 훑어봤었지... 마치 거지를 보는 것처럼...
    썅년아 그럴듯한 원룸 오피스텔에 산다고, 니 년에게 백수를 얕볼 권리가 생기는건 아니야!
    난 그저 벌을 주는 것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벌...
    나를 무시하고, 백수의 고백을 거절하고, 나라는 한 인간의 존재를 얕본 죄
    그녀는 이제 곧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위로든... 아래로든...
    나는 서둘러 그녀를 따라갔다. 외진 원룸 오피스텔은 입구에 방범 장치도 되어 있지 않다.
    3층... 나는 그녀의 층수도 잘 알고 있다.


    [띵동...띵동...]

    “누구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곧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문을 열기 위해 다가오는 그녀가 불쌍하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하체의 육봉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터질 듯이 팽창해 있다.
    철문 앞에 설치된 작은 유리구멍으로 방문자가 누구인지를 살피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웃었다.
    그래 30분 전으로 되돌리는 것 뿐이지, 철문을 뜯어내 그녀를 범할 수 있는 괴력은 없으니까 그녀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낭패다. 밝고 명랑한 미소가 그녀를 향한다. 음흉한 욕망과 잔인한 복수심은 감춘 채 허술해 보이는 거짓 웃음이 멋잇감을 현혹시킨다.


    “민서씨... 저예요 앞 집... 택배가 왔었나봐요 제가 맡아놨는데... 잠깐 문 좀 열어주세요”


    명랑하고 밝다. 목소리 어디에도 상대가 걱정할만한 위화감은 없다. 내 생각이 틀림 없다면 그녀는 문을 열 것이다. 신원 확실한 앞 집 찌질남의 방문은 그닥 경계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혹시나 의심이 들더라도 맡아둔 택배란 말은 닫힌 문을 열어주는 마법의 열쇠다.


    [딸깍]


    잠깐의 망설임 후 이윽고 문이 열린다. 그래도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남자 방문자라고 문이 활짝 열리지는 않고 빼꼼히 열린 채 얼굴 일부분만 드러낸다.


    “택배 내일 쯤 올 줄 알았는데....”


    얼굴도 제대로 안 보여주고 열린 틈으로 무정히 손만 쑥 내민다.
    씨.발... 개같은년... 싸가지는 아주 밥을 말아 쳐드셨다.
    약간이나마 가지고 있던 그녀에 대한 동정심이나 정의감이 그대로 싹 사라져 버렸다.
    역시 이 년은 내가 벌을 줘야 겠구나... 그런 확신이 더 강해졌다.
    덕분에 눈이 바빠졌다. 열려진 문 틈 사이로 현관문 여닫이 고리가 걸려져 있나를 재빨리 확인한다. 다행이다. 상대도 만만하고 또 이거저거 하는게 귀찮았는지 문은 그냥 열린 상태다.


    “빨리 주세요. 지금 막 퇴근한 길이라 피곤해요”


    짜증섞인 말투... 내 얼굴은 웃고 있지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씨.발.년...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뭣같은 년...”
    “네 뭐라고 하셨어요 지금?”
    “씨.발년아 이거나 먹어라!!!”


    내 주먹이 열려진 문틈으로 날아간다. 뻑하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느낌이 주먹에 닿는데 아마 그년의 머리통에 맞은 듯 했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년이 나자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재빨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왜... 왜이러세요”
    “왜이래? 이 씨.발년아! 그러게 달랄 때 줬어야지 이 썅년이 왜 비싼척이야 씨.발!”


    나는 그년의 멱살을 쥐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깨끗한 척 하더니 방안은 아수라장이다. 정리도 안하고 사나보다 하지만 뭐 어떠랴! 남은시간은 25정도... 거사를 치르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사... 사람살려!!”
    “이 씨.발.년이!”


    나는 바닥에 엎드린 그년의 배를 주먹으로 세게 내질렀다. 억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다문다. 역시 매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맞다. 나는 그 후에도 몇 차례 주먹으로 몇 대를 더 내질렀다. 그제서야 그년은 버둥거림을 멈춘다. 나는 입가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그년이 입고 있던 원피스 치맛자락을 들어 올렸다. 분홍색 속옷이 보였다. 입가에 침이 고인다. 내가 끌어내리려 하자 어느새 그년이 손을 뻗어 저항한다. 하지만 파운딩을 하듯 두어번 복부를 내리치자 빗장은 여지없이 풀리고, 감춰져 있단 금단의 수풀이 눈앞에 드러난다.
    하체의 욕망덩어리는 이미 벌써부터 준비 OK!
    몇 년을 기다린 유야 사쿠야의 노모 복귀작으로 풀지 못한 응어리를 살아 움직이는 여성의 몸뚱이를 통해 잔뜩 토해낼 기세다. 꿈틀거린다. 하얀 여체와 굳게 다문 허벅지를 빨리 풀어달라고 성화다.


    “흐읍!”


    진입이 쉽지 않다. 하지만 애무를 할 생각도 시간도 없다. 야동도 아닌데 강간범이 애무를 한다고 해서 금새 물을 철철 흘리며 응대하는 여자가 현실에 있을리 없다. 있다고 해도 그녀가 그럴 가능성은 적다. 취기는 있으되 나도 그 정도는 판단 할 줄 안다.
    적당히 침을 탁탁 뱉고, 어떻게든 그 옥죈 문 틈 사이로 진입하려 애쓴다. 다행히 서른 한 살의 혈기 어린 몸뚱이는 돌덩이와 같은 강직도로 닫힌 문을 서서히 뚫어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들이 닥칠수록 여린 그 문은 서서히 힘을 잃어간다.
    입구가 열리자 그 깊은 곳까지는 순식간이다. 뜨겁다. 비록 강압과 폭력에 의한 것이지만, 여성의 육체는 뜨겁다. 나는 그 열기를 음미하며 거칠게 반복운동을 시작했다. 본래 수컷들의 욕망이란 기다림과 숙성보단 단도직입적인 단순왕복을 원하기 마련이니까...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간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감흥이다. 5년? 아니 7~8년은 족히 지났다.
    스무살 무렵 대학때 CC였던 지연이... 고년은 내가 군에 입대하면서 쫑이 났다.
    고 계집애와의 마지막관계는 아마 내가 백일 휴가를 나왔을때까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 후 나의 마지막 여자는 상병 휴가 때 들른 청량리의 이름 모를 여자... 25살이라고 말했지만 대충봐도 족히 서른은 넘어보였다.
    뭐 상관없었다. 비록 끝나자마자 후회는 했을지언정, 근 2년여 만에 맛본 여자의 육체였으니까...
    그때가 22살? 23살? 여튼 대략 7~8년은 족히 흘렀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왼손 오른손이 아닌 진짜 여자를 맛 본다.
    살아 숨쉬는... 그것도 내가 한때 그렇게 연모하던 채민서... 그 년이 내 배꼽아래 깔려있다.
    모델처럼 늘씬한 다리가 내 어깨에 걸려 있고, 탐스러운 궁둥짝 사이로 내가 들어간다.
    이렇게 좋은걸 왜 안하고 살았을까?
    후회가 밀려온다.
    그때였다.


    “뭐야! 뭐야 이 씨.발.새끼야!”


    생각도 못한 남자의 고함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상대를 파악하려던 내 의도는 때마침 내 턱을 향해 날아온 발길질에 무참히 날아간다.


    “민서야! 민서야! 너 괜찮아!!”
    “오빠... 엉엉...”


    그제서야 감이 왔다. 채민서 그 년한테 새로 생긴 남자친구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년을 때려눕히고 안으로 들어올 때 왜 문을 잠그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해 보았지만, 이제사 후회해야 무엇할까? 지금 중요한 것은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다.
    그렇다. 나에게는 기적이 있다. 30분의 기적... 얼핏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대략 1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듯 했다. 시간은 넉넉하다. 아직도 15분이나 남았다. 하지만 문제는 놈이다. 하체가 벌거벗겨진 채 바닥에 누워 피를 흘리는 제 여자친구를 본 놈은 반쯤 돌아버린 것 같은 표정이다.


    “너 이 새끼!”


    놈의 눈이 도끼눈이 되어 나를 노려본다.
    분노, 증오, 여튼 인간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역력한 그런 눈이다. 이런 상황에 한번도 직면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두려움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씨.발.놈아!!”


    놈이 달려든다. 주먹이 날아와 안면에 꽂힌다.
    이럴줄 알았으면 운동이라도 좀 해둘걸... 아니면 소싯적에 어차피 백수될꺼 어설프게 공부한다고 깝치지 말고 싸움이라도 배워둘걸 하는 후회가 또 날아든다. 아니다 어차피 후회는 항상 늦다. 정신없이 날아드는 주먹세례에 눈조차 뜰 수가 없다. 망할 놈... 마치 흥분한 짐승과도 같이 나를 향해 주먹을 쏟아낸다.


    [이대로... 이대로 끝낼 순 없어... 이게 나한테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사실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억울했다. 삼십하고도 일년을 살면서 단 한번도 나 자신에게 만족한 적이 없었다. 성적도 보통, 키도 보통, 집안, 학벌 모두 보통이었다. 거기에 얼굴은 수준 이하... 최악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무언가 뛰어나게 잘 해본 적도 없고, 잘 해보려는 의지도 가져본 적이 없다. 패배자의 삶...
    난 그렇게 살아왔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성적에 맞춰 대학에 오고... 전공도 꿈도... 아무것도 없었다.
    백수로 살았지만, 그래도 밥 먹고 사는 것 정도는 해결해 주시는 부모님 속이나 썩이며... 쓰레기처럼 살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찾아낸 이 기묘한 현상은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온 터닝 포인트다.
    이걸 놓치면 난 아마 평생을 쓰레기로 살아야 할 것이다.
    놈은 아마 날 두드려 팬 뒤 경찰에 신고하겠지... 그리고 곧장 철창 행... 그땐 시간이 늦어 30분 전으로 되돌려봤자 달라질 것이 없다. 합의를 한다는 가정하에 최하 2~3년에서 길면 7~8년은 감옥에서 썩겠지...
    그때까지 컴퓨터가 내 방에 고이 모셔져 있을까?
    고이 모셔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 능력은... 그 능력이 그때까지 날 기다려줄까?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지금의 그 확신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
    오직 그것뿐이었다.


    “씨.발.새.끼야!! 헉헉... 나도 좀 살자!”


    나는 고함을 지르며 내 위에 올라탄 놈을 밀쳐내고 일어섰다.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한 마지막 절규였다.
    놈을 물리치고 내 방으로 돌아가 키를 누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강간당한 민서 그년도... 지금 나를 두들겨 팬 이 놈도... 모두 없던 일 된다.
    어떻게 보면 해피엔딩이 아닌가?
    나는 이곳에 오질 않을 것이고, 강간당해 우는 여자도 없고, 여자 친구의 봉변에 격노한 남자도 없다.
    나는 손을 뻗어 무엇이라도 쥐어들려고 주섬주섬 더듬는다. 원룸이라 그런지 손바닥만한 거실의 등 뒤는 곧바로 부엌이고 싱크대 끝에서 무언가가 손에 쥐어진다.
    날카롭다. 두 번 더듬지 않아도 무엇인지 대번 알 수 있다.


    “비켜! 죽여버리기 전에!!”


    나는 손에 든 칼을 휘휘 저으며 놈을 위협해본다. 놈도 내 손에 들린 식칼을 보곤 조금 당황한 듯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신만 차리면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무언가 길이 보이는 듯한 느낌이다. 민서 그 년은 방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고, 흥분해있던 놈은 어느새 내 눈치를 살핀다. 그래 맞아 만난지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지만 저깟 걸레 같은 계집애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워서야 되나...
    어느새 평정을 되 찾은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쪽은 나다.
    나는 싱크대에 등을 기댄 채 여유롭게 호흡을 고른다. 인생의 묘미는 역시 반전이 아닌가! 결국 칼자루 쥔 놈이 이기게 되어 있는것이 이 세상이다. 식칼이든... 30분의 기적이든... 승자독식... All or nothing! 지금 내 손에는 모든 것이 쥐어져 있다.


    “도... 도와주세요... 중곡동... ㅇㅇㅇ에... 가... 강간..흑흑.. 빨리...”
    “젠장!”


    너무 여유를 부렸던 걸까? 채민서의 목소리가 들린다. 남자친구와의 대화라고 보기엔 내용이 이상하다. 돌아보니 품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하고 있다. 분명히 119 또는 112겠지... 그 무엇이든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개 같은년!! 시... 신고를...”
    “너는 X됐어 씨.발.새끼야! 깜빵가서 어디 콩밥 좀 먹어봐 이 씨.발.놈아!”


    칼을 보자마자 바짝 얼어서 눈치나 보던 등신 같은 놈이 어느새 제 여자 친구가 신고를 하니 기가 살아 기세 등등하다. 그래 보잘것없는 새끼들일수록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면 용감해지는 법이지... 마치 나처럼...
    나는 이를 악물었다. 상황이 어려워진다. 남은시간은 10여분 안팎으로 제법 여유가 있지만, 경찰이나 119 구조대 같은 놈들이 들이닥친다면 상황은 거기서 끝이다. 보다 빨리 결말을 보아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비... 비켜 이 X만한 새끼야!”
    “조까! 씨.발놈아! 찌... 찔러봐 이 새끼야! 찌...찌를 용기나 있어? 금방 경찰 와! 순순히 자수해 이 새끼야!”


    놈의 자세가 한층 더 호전적이다. 중곡동 토박이인 내가 아니더라도 골목 입구에 파출소가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놈도 그걸 알고 이렇게 내게 다가오는 거겠지... 하지만 놈은 딱 한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
    비록 내 방에 있지만 30분의 기적을 행해주는 CTRL_Z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생전 처음 해보는 살인이라는 것을 가차 없이 자행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을...
    놈은 전혀 모르고 있다.
    점점 다가온다. 숫제 지가 무슨 경찰 특공대마냥 칼이라도 빼앗을 기세다.
    나는 그 모습이 우스웠다. 살인이라는 거... 누군가를 죽인다는 거... 칼로 사람을 찌른다는 거... 그게 생전 처음이라 선뜻 내키지 않아 그저 도망가려 했을 뿐 잘 생각해보면 내겐 아무 일도 아니었다.
    이렇게 시간 끌 필요도 없었다. 애초부터 찔러버리고 내 방으로 가면 끝이다.
    지.금 이.렇.게!


    “흡... 흐읍...”
    “어때 이 개.새.끼야! 어디 그 X같은 정의감으로 나선 대가가... 맘에 드나? 응?”


    손에 쥔 칼자루 사이로 따듯한 액체가 흘러나온다. 놈의 복부에 박힌 칼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겠지? 나는 알량한 정의감으로 희번덕거리던 놈의 표정이 절망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죽는 순간이 되면 많은 것이 떠오른다지? 살아왔던 그 수많은 순간들이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느니...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보인다느니... 이러저러한 얘기들을 많이 들었었는데, 아쉽게도 놈에게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손에 쥔 칼자루에 힘을 주며 칼을 놈의 뱃가죽 속으로 힘껏 쑤셔 넣었다.


    “흐으으으...”
    “어때? 칼침 맞으니까? 기분이 좋아? 흐흐흐흐...”


    온몸 가득 쾌감이 전해진다. 문득 연쇄 살인마란 작자들이 이런 기분에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해서는 안되는 금기의 행동...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다는 것이... 버러지 같은 보통의 인간들과 나의 차이라는 아찔한 우월감이 온 몸으로 퍼져간다.


    “떨어져 이 새끼야! 옷에 피 묻는다!”


    나는 놈의 뱃가죽 속에 깊이 박힌 칼을 힘겹게 뽑아내어 가슴팍과 어깨 부위에 몇 차례 더 찔러주며 소리쳤다. 돌아보니 채민서 그년은 전화기를 붙잡고 엉엉 울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병신같은 년 도망이라도 치지... 아마 제 남자친구가 칼에 찔려 죽는 모습에 무서워 다리가 풀린 모양이다. 뭐 상관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해지는 이 찌릿찌릿한 쾌감을 한번 더 느낄 수 있다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나는 스르륵 바닥으로 쓰러지려는 놈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밀어내고 천천히 그년에게로 다가갔다.
    칼자루에선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져 바닥에 맺힌다. 채민서 그년도 상황을 직감했는지 머리칼을 손으로 뜯으며 벽에 기대 버둥거린다.


    “괜찮아... 금방 끝나... 다시 살아날꺼니까 걱정말고... 크크크크”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폭행... 강간... 그리고 살인... 또 한번의 살인... 손이 떨려온다. 이것이 게임속의 일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다. 언제 튀었는지 이마를 타고 눈썹에 맺힌 뜨거운 핏물만이 지금의 현장감을 생생히 알려준다.
    하이얀 목덜미... 평소 내가 좋아하던 민서의 하얗고 긴 목이 보인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잘 보인다. 나는 변태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전부터 그 하얀 목을 핥아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저 목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바로 지금...
    한번 그 곳을 열어볼 참이다.


    “걸레같은 년...”
    “하악...하....아...”


    고요하다... 숨소리만이 들려온다. 칼이 후벼 판 목덜미는 굵은 핏물을 연신 쏟아내고, 그년은 더 이상 비명소리조차 지르지 못한 채 나를 바라본다. 원망과 저주가 한데 뒤섞인 오묘한 표정이다. 하지만 조금도 무섭거나 걱정스럽지 않다. 결국 나에게 이 모든 행위는 그저 일련의 유희에 불과하니까!
    조금도 심각해 할 필요없고... 조금도 불안해 할 필요 없다. 결국 모든 것이 초기화 될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30분 전처럼...
    나는 그 생각에 시계를 바라본다. 대략 5~7분정도가 남은 듯 하다.
    어쩌면 경찰이 곧 달려올지도 모른다. 본래 진짜 살인마라면 내 지문이 남은 바닥이며 싱크대 그리고 흉기를 서둘러 숨기겠지만 나에겐 그런 구차스런 행위가 필요 없다.
    그저 죽이고 떠나면 그만인 것이다. 내 방으로 돌아가서 펑션키 한 번만 누르면 끝난다.
    CTRL_Z...
    내 인생을 바꿔놓은 마법의 주문...


    나는 들고 있던 칼을 내팽개친 채 원룸 오피스텔 밖으로 빠져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지만, 좁은 골목 사이에 불법 주차한 차량들 때문에 진입이 어려운지 버벅거리는 모양이다.
    나는 그 모습에 코웃음을 치며 느긋하게 계단을 내려왔다. 역시 하늘도 내 편인가? 내가 입구를 나서 골목으로 몸을 숨기고 나서야 차에서 내린 경찰들이 서둘러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간다.


    “시간 여유가 남았으면 경찰도 몇 놈 죽여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았을려나? 크크큿”


    나는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집은 바로 코앞이다. 콧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집에 도착했다.
    3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키보드 한번 두드리는 데에는 무한한 여유를 제공할 것이다.


    “오... 아직 그대로 있네?”


    집 앞을 보니 내가 마시다 놔 둔 양주병이 그대로 놓여 있다. 채민서 그년을 자빠뜨리러 가다 그냥 내려 놓았는데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길바닥에 놓여진 술병... 뚜껑도 열려있다면 그게 뭔줄 알고 누가 마실까... 나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평소 나를 얕보고 무시하던 계집애를 짓밟아주고, 건방지게 내게 덤벼든 날파리 같은 놈에게 벌을 주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나의 첫 출정을 축하하는 축하주가 놓여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완벽한 앙상블인가?
    축배를 들어야겠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축배를 들겠는가?
    비루했던 내 인생이 바뀌었다. 비굴하고 초라했던 지난 시절에 위로를!
    짜릿한 쾌감이 가득한 새로운 인생에 축배를!
    나는 병을 주워들고 술을 들이켰다. 목젖을 타고 쓰디쓴 액체가 흘러들어간다. 마치 목마른 자가 물을 마시듯 많은 양의 알콜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들어 간다.
    긴장한 뒤라 또 땀을 좀 흘린 뒤여서 그런지 곧바로 취기가 올라온다. 하지만 걱정 없다. 어떤 놈들은 음주 운전도 하던데, 내 발로 걸어서 내 방하나 못 찾아갈까?
    다리가 조금 풀리긴 했지만, 당장 술에 취해 뻗거나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 나는 다 비운 병을 골목 한쪽으로 던져 버리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가족들은 다 잠들었는지 조용하다.
    거실을 지나 내 방문을 열었다. 어둡 길래 불을 켜니 사랑스러운 내 컴퓨터가 보인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린다.


    “일단 미션 하나는 클리어 한건가? 크크크 다... 다... 끝났...어... 이제! 남....보...란 듯이 그래 남 보란 듯...이 살아 보는...거...야 히히히히히 병신같은 인새...생은... 그래 끝났어”


    PC는 켜져 있었다. 엔터키를 누르자 화면이 뜬다. 창 밖에선 경찰차 몇 대와 구급차가 당도했는지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벼... 병신들... 헛수고들 하... 하고 있네... 이제... 다... 다 원상 보...복귀 될..텐데 말이야...히히히”


    이제 곧 없던 일이 될 일을 가지고 살인사건이네 강간이네 하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을 놈들이 한심해 보였다. 남은 시간은 1분여정도... 충분하다. CTRL_Z 한번 누르는 데에는 채 1초도 걸리지 않는다.
    간단한 일이다.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일...


    [따딸깍!]




    꿈을 꾸었다.
    짧지만 환상적인 꿈이었다. 그 꿈 안에서 나는 이 세계의 신이 되어 있었다. 전지전능한 신!
    CTRL_F로 원하는 모든 답을 찾고, CTRL_C와 CTRL_V로 돈을 무한정 찍어냈다.
    수많은 미녀들로 둘러 쌓이고, 귀한 술과 귀한 음식들이 즐비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하고, 문제가 생기면 간단하게 캔슬했다. CTRL_Z가 있었으니까
    모든 비루한 인간들이 나를 우러러본다.
    그렇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마술과도 같은 일들을 척척 해냈으니까
    나의 권능이 곧 힘이고 나의 의지가 곧 법이다.
    아까 죽인 채민서 그년이 내 발밑에 무릎 꿇고 내 발가락을 핥는다. 당연한 일이다 난 이 세상의 신이니까!
    내 얼굴을 본 딴 거상이 도시 곧곧에 세워지고, 나의 이름을 딴 탑이 세워진다.
    부모님의 얼굴이 보인다. 짜증 섞인 푸념이 사라진 그 얼굴엔 나를 향한 만족이 서려있다.
    환하게 웃는 그 얼굴... 그 얼굴엔 자랑스러움이 베어난다. 그렇다 나는 집구석 백수가 아닌 이 세계의 신!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그 동안 집구석에 앉아서 매일 컴퓨터나 한다고 잔소리했던 것을 아마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벅차오르는 기쁨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새어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신이다. 신... 전지전능한 신!


    “이거 진짜 미친새끼아냐?”


    나를 보고 웃던 엄마가 갑자기 굵은 남성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순간 맑던 하늘이 어두워지고, 느닷없는 천둥 벼락이 대지를 내리친다. 나를 닮은 거상들이 흔들리고, 내 이름을 딴 탑들이 무너진다. 무엇인가? 도대체 이 변고는 무엇인가? 난... 나는 신이란 말이다 누가 감히 무엄하게 나의 세상을 파괴하는가...
    지진이 온 것인지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CTRL_Z를 눌러보았지만 반응이 없다.


    “일어나 이 또라이 같은 새끼야!!!”


    정신을 차린 것은 생전 처음 보는 우락부락한 사내가 내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운 다음이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재빨리 컴퓨터로 달려가 다시 한번 CTRL_Z를 누르려 했지만 강하고 억센 손이 나를 붙잡는다. 뒤로 잡아 제껴진 손목엔 금속성의 무언가가 둘러 채워진다. 이건 아마도 수갑? 어안이 벙벙하다. 난... 난 분명히 CTRL_Z를 눌렀을텐데


    “너를 중곡동 강간 살인 사건에 피의자로 검거한다. 너는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형사 나부랭이로 보이는 덩치 큰 남자가 영화에서나 본 듯한 단어를 중얼거린다.
    무언가 잘 못됐다.
    뭐든 심각하게 잘 못 되어가고 있다.


    [덜컹]


    경찰차 문이 열린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십명은 족히 넘을 듯 많은 기자들...
    펑펑 터지는 플래쉬 세례에 눈조차 뜰 수 없다. 미친 것들 이 세계의 신에게 이 무슨 무엄한 짓인가? 내 손목을 옥죄고 있는 수갑이 갑갑하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키를 누르고 싶다.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끔찍한 중곡동 강간살인사건에 범인이 확실시 되는데 지금 심경이 어떻습니까!]
    [살해당한 채민서씨는 바로 이웃에 살고 있었는데, 계획된 겁니까? 아니면 우발적 살인입니까?]

    “씨.발.것들아 저리 못가!!!”


    고함을 쳐보지만 놈들은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경찰서 입구를 틀어막은 채 미친 듯이 내 사진을 찍어댄다. 경찰 한 두놈이 앞으로 나서 길을 열어보려하지만 이 놈들... 도무지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


    [철컹!]


    철문이 닫힌다. 경찰서 안은 소란스럽다. 일부 기자들이 경찰서 내부까지 들어와 취재를 하려고 안간힘이다.
    나는 홀로 철창 안에 앉아있고, 다수의 경찰들이 입구에서 기자들과 실랑이다.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철창 바로 앞에 설치된 TV만이 내가 처한 상황을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댄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난 중곡동 모 원룸 오피스텔 앞에 나와있습니다. 범인은 평소 자신이 연모하던 채모양을 강간하고 채모양의 연인으로 알려진 김씨를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7군데가 넘는 자상과 혈흔만이 그 날의 처참한 참상을 이야기해주는 듯 합니다.]

    [피의자 서모씨의 PC에서는 일본 유명 AV배우 유야 사쿠야의 동영상 및 다수의 음란물이 발견되었으며, 이에 경찰은 음란물 시청 등에 따라 발생한 우발적 강간 살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에... 범행 흉기, 지문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까지 100% 일치합니다. 평소 취업준비생이던 강씨는 집에서 야동을 주로 시청한 것으로 보이고, 사건 발생 직전에도 야동이 재생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 등이 현장에 방치된 정황으로 보아 우발적인 살인으로 보이며...]

    [여성가족부는 잔인한 이번 살인의 동기에 일본 음란 동영상과 게임 등이 주요 원인이 되었다며, 관계법령의 강화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서진환법... 일명 야동금지법이 국회에 정식으로 청원되었습니다. 폭력적이거나 음란한 영상의 시청이 대상자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는 사례지만, 청년실업 백만 시대에 우울한 자화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시끄럽게 떠든다.
    야동? 개소리 하지 말라 그래! 게임에서 상대 캐릭터 죽이면 살인마되고, 야동 보면 강간범 되는거야?
    알지도 못하는 미친 개.새.끼들이 전문가랍시고 TV에 나와서 떠들어댄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야동 좀 즐겨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상상을 혼동하거나 비이성적인 욕구를 느껴본 적은 없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CTRL_Z는 분명히 현실이었고, 나는 그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채민서 그년을 죽일 때처럼...
    그것이 꿈이거나 착각일리 없다.
    나는 확신한다.

    난 분명히...
    난 분명히... 눌렀는데...
    머릿속이 멍하다.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TV 때문에 혹시라도 내가 체험한 CTRL_Z의 기억이 착각이거나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상은 아닐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의문을 던져 보았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더욱 확고하다. 분명히 나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진 그 때의 기억...
    절대... 그것은 환상이 아니었다.
    나는 눈을 감고 다시금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기억들을 훑어본다.
    엄마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고, 없었던 야동이 다시 다운로드 되어있고, 친구를 통해 산 마권...
    그래 마권이었다. 마권이 사실이라면 CTRL_Z에 대한 나에 기억이 환상이 아닌 것이다.


    “야 이 씨벌놈아 눈 감고 뭐하냐 이 빌어먹을 자식아!”


    기자들을 대충 밖으로 몰아냈는지, 한 경찰이 내게 다가와 욕설을 내뱉는다. 이해한다. 나라도 강간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를 보면 그런식으로 대할 것이다.


    “어쭈? 쌩까냐? 아이구 이런 갈아 죽여도 시원찮을 새끼... 이런 걸 새끼라고 또 면회를 온 니 부모가 다 불쌍하다”


    순간 눈이 확 떠진다. 면회... 부모님... 그렇다 부모님을 통해 확인하면 된다.


    “씨.발.놈아 증거고 뭐고 너는 빼도 박도 못 하니까 허튼 생각하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가라! 어이 거기! 서진환 부모님... 이리오십쇼”


    경찰이 손짓하자 저 쪽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아버지와 어머니다.
    어머니는 이미 눈물을 한바가지는 쏟아내셨는지 초췌한 얼굴이고, 아버지 역시 참담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걸어온다. 하지만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 뿐이다.

    진실을 확인하는 것...


    “에라이... 썩을놈아... 어떻게 헐 짓이 없어서... 어휴...”
    “진환아 진환아... 왜 그랬니! 하이고 부처님 하느님 우리 진환이가 그럴 애가 아닌데....”


    아들을 대면하자마자 쏟아지는 한탄과 탄식... 그리고 눈물...
    부모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에 내 자신을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화가 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때가 아니다. 물어야 한다. 확인해야 한다. 진실을... 그리고 내가 가졌던 권능을...


    “엄마! 내가 돈 줬던거 기억해? 내가 경마로 돈 따서 엄마 줬잖아!”


    나의 다급한 질문에도 엄마는 그저 눈물만 흘리며 대꾸하지 않는다. 불안해졌다.
    설마...

    그 모든 것이 다... 환.상.이.었.을.까?


    “에라이 후레자식아! 이 미친새끼야! 자식새끼라고 31년을 키웠는데 처음으로 용돈이라고 돈 오백 주길래 이제사 이 놈이 사람구실은 하려나 했더니만... 혹시나 했더니 내 짐작이 맞았어... 너 그 돈 퍽치기 했던 거지? 아니면 또 다른데서 사람 죽인 거냐!! 아이고 내가 못 살아 어디서 이런게 나왔어... 어휴...”


    아버지가 철창안에 갇힌 나를 향해 악다구니를 쏟아내신다. 화가 나셨겠지...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일게다.
    믿었던 자식에 대한 철저한 배신감.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악다구니 속에서 내가 찾던 해답을 찾았다.

    돈 오백 주길래...

    그렇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얼레 이 씨.발.놈 보게! 쳐 웃어? 야! 이 새끼야 경찰서가 니 놈 안방인줄 알어? 부모님 보니까 즐거워? 아주 이거 못쓰겠네! 김형사! 이 새끼 정신과 감정 받어야 되는거 아냐? 이거 미친놈같애! 사람 둘 죽이고 쳐 웃는거 보게!”


    형사 한명이 그런 나를 보고 욕설을 내 뱉는다.
    하지만 상관없다.
    CTRL_Z에 대한 환상이 사실이라면... 그런 것 쯤은 감수할 수 있다.
    지금이야 이런 신세지만, 언제고 복구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 떠올려야 했다. 무엇이 잘 못 된건지...
    혹시 마지막 순간 CTRL_Z가 처음 예고없이 찾아 온 것처럼 사라질때도 예고없이 사라진 것인가?
    나는 분명히 키를 눌렀다.
    기억을 더듬었다. 술에 제법 취해 몽롱한 가운데에서 나는 필사의 노력으로 기억 세포 하나하나에 녹아 있을 그 때의 기억을 되짚었다.
    방에 돌아왔고,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손을 뻗었다.
    뻗어진 손이 키보드에 닿는다.
    좋다... 기억이 난다. 기억이 나... 아주 생생하게 떠오른다.
    눈은 희미했지만, 기억은 정확하다.
    그리고 나는...
    뻗어진 손으로 키를 누른다.
    무언가 이상하다.
    술기운 때문인지 누를 때 무언가가 같이 눌린 기분이다.
    CTRL_Z가 아닌...

    Shift_Ctrl_Z다.
    Shift_Ctrl_Z다.
    Shift_Ctrl_Z다.
    Shift_Ctrl_Z다.
    Shift_Ctrl_Z다.

    대략 이쯤에서 머리가 멍해졌다.
    아마 그리곤 술기운이 올라와 골아 떨어진 것 같다. 하지만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나는 키를 잘 못 눌렀고, 바로 그 한순간의 실수로 이곳에 갇혀있다.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았고, 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하지만...괜찮다.
    그저 순간의 실수일 뿐이다.
    정신 이상이든, 아니면 우발적 살인이든... 이 나라의 법은 술취한 이에게 관대하다.
    문득 미성년자 강간 살해범도 술에 취해 불가항력이었다는 전제로 생각보다 적은 형량을 받았던 과거의 사건이 떠올랐다. 나 역시도 그 사건에 대한 기사에 악플을 달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내가 그 케이스가 될 차례다.
    형량은 잘해야 5~10년... 어쩌면 그보다 적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간단하다. 이미 저지른 죄에 대해 속죄하는 기분으로 형량을 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풀려나겠지?
    그리고 내 손에는 다시금 내가 가졌던 권능... 즉 CTRL_Z가 손에 들어온다.
    까짓거 인생에서 5~10년 정도 지우고 새출발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병신같이 비루한 인생으로 살아온것이 벌써 31년이다. 까짓 5~10년 못 기다릴까? 미소가 지어진다. 잠깐 고생하고 새 출발하면 되는데, 이게 수지맞은 인생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 5~10년도 조금만 주의했으면 온전히 내 것이 됐겠지만, 뭐 괜찮았다. 그 정도는 일종의 세금이랄까?
    더 큰 행복과 희망찬 미래를 위한 고통의 시간으로 알고 감내하면 된다.
    나는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지은 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제 컴퓨터... 컴퓨터는 잘 있죠?”

    “에라이 미친놈아! 지금 이 상황에서 컴퓨터 얘기가 나와! 어휴... 내가 너 전에 야동 보다가 엄마한테 걸렸을 때 왜 그때 내가 너한테 더 쓴소리를 못 했을까... 어휴... TV에서는 니가 야동보다가 이렇게 됐다고 그러던데 어휴 이게 다 내 죄다”

    “진환아! 아빠가 그거 다 뿌시뻐렸다. 내 새끼 망쳐놓고 내 새끼 집구석 폐인 만들어 놓은 그 몹쓸 기계 아버지가 다 뿌셔서 불태워버렸다 이말이다!”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하다.


    “씨.발 뭐요!!!”


    이성을 잃은 나는 철창으로 달려들어 아버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모든 것이 파괴된 기분이었다. 컴퓨터도 CTRL_Z의 마법도 다시 시작할 나에 새 인생도...
    모든 것이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어라 이 미친새끼보게! 진짜 또라이네! 이젠 부모님한테 달려드냐 이 호랑말코같은 새끼야! 야 김형사 뭐해 이 새끼 좀 잡어봐!”


    형사 하나가 그런 나를 보며 소리를 지른다. 눈에 핏대가 선다. 분노와 절망감으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아버지가 내 인생을... 나에 힘을... 나에 모든 것을 파괴했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고 나는 표류한다.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나도 모르게 멱살을 쥔 채 아버지의 목을 조른다.


    “허...헉...”
    “진환아! 진환아! 이 놈 새끼야! 안돼 진환아!!”


    엄마의 절규가 들린다. 철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내 머리통을 발로 찬다.
    단단한 돌바닥에 머리가 부딪히며 의식이 희미해진다.
    희미한 의식속에서도 들리는 목소리가 있다.

    바로 엄마의 울음소리...



    [사건번호 #78029 중곡동 강간 살인사건에 대해 최종 판결합니다. 피고인은 당시 술에 취해 심신이 미약해져 있었고, 장기간에 걸친 구직활동 실패에 따라 심신이 피폐해져 있었다는 피고측 주장 및 정신상태가 극도로 불안정해져 있다는 진단소견을 받아들여 징역 5년을 선고합니다. 아울러 진단서를 근거로 피고의 형량중 1/3에 해당하는 2년간의 정신과 치료를 겸할 것을 확정하는 바입니다.]


    “내가 그랬지? 이 놈에 나라는 술 처먹고 죄 지으면 봐준다고... 흐흐흐 그나저나 어딜까? 태워서 버린데... 혹시 키보드는 멀쩡하지 않을까? 흐흐흐흐 흐흐흐흐 그것만 찾으면 다 죽여버릴꺼야! 판사도 검사새끼도 날 잡은 형사새끼들도... 그리고 컴퓨터 불태운 아버지도... 흐흐흐 난 신이니까... 이 세계의 신... 5년뒤... 5년뒤에 보자”


    나 31세 서진환... 지금은 아니지만 5년뒤... 이 세계의 신이 될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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