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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매번 정의당과 관련해서만 글을 써오던 사람입니다. 이번에도 ‘아, 저놈 저거 메갈당 이야기만 쓰던 놈 아닌가?’ 싶으실 수 있지만, 오늘만큼은 정의당과 무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사실, 며칠 전만 해도 정의당과 관련된 글을 쓰려 했습니다. 정의당 지도부 일원이 포함된 지역위에서 당과 싸우는 모임, 반메갈을 외치는 이들을 제소한 사실을 알리고 싶었지만, 최소한 한가위까지 정의당과 같은 더러운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서 참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친한 선배님들과 술자리를 갖고 보니까.. 감기몸살 동안 고생하고 보니 이제 두 병도 버겁게 느껴지는데, 여하튼 술자리를 하고 버스에서 오유를 보니.. ‘손목 잃은 군인 근황’이라는761157번 글이 있더군요.
사실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술기운에 씻으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 군인분의 마음을, 10%나마 공감이 가서 그랬습니다. 저 또한 진보정당에 가입하기 이전에, 군 의무대와 병원에서 너무나 큰 고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군과 관련된 제 경험담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해왔던 이야기지만, 인터넷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쓰는 건 처음이라.. 사실 떨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숨기기보단, 오히려 많은 분들, 특히 미필분들이 보시고 ‘왜 사람들이 군병원을 꺼려하는지 알겠다’ 싶은 마음이 들길 바라며 쓰고 싶어진 겁니다.
아랫글은 정말 쓰잘데기 하나 없는 개인적인 글입니다. 괜히 술먹고 젊은 놈이 주정을 부린다 생각하시고 넘어가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미필 분들은 한번만 읽어 주세요.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최소한의 도움은 되리라 생각합니다.
전 2012년도 5월 군번입니다. 보통의 제 또래보다 살짝 느린 군번입니다. 저희 학과엔 재수생 형들이 동갑내기보다 많아 더 느리게 느껴지기도 했구요.
창피한 이야기지만 어차피 논산훈련소에서 훈련할 때, 아마 제가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훈련병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훈련 중대장이 ‘너 이새-끼, 2자리수로 살 빼면 내가 표창 준다!’ 라고 약속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훈련생들이 고봉밥을 먹을 때, 전 한두 숫갈만 먹으며 온 힘을 다해 훈련했습니다. 남들도 안 타는 앰뷸런스 두어번 타 보고, 조교들에게도 ‘쟨 진짜 열심히 한다’란 인정을 받아가며 이 악물고 훈련에 임했습니다. 결국 수료식 근방에 아내분의 출산 예정일이 잡힌 중대장 훈련병 동기(같은 소대) 형님에게 ‘당연히 형님이 받으셔야지!’ 하고 아무 소리 하지 않고 할 일만 충실히 했습니다. 약속한 두자릿 수는 당연히 일찍 달성했지만요. 그 형님이 같은 지역 사람이기도 했구요. 최소한 자기 딸 얼굴은 봐야지.
그리고 자대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논산에 가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놈의 ‘GoP! GoP!’ 라고 종교활동 도중에 외치던 것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에요. 저도 그랬어요. 근데, 제가 갈 줄은 몰랐지.
처음 ‘소대장님, 화천이 어딥니까?’라 물었을 때, 훈련소 소대장의 그 썩소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야, 니 등치에 화천이야?ㅋㅋㅋㅋ’. 그리고, 남들이 익숙한 수원역, 그리고 서울역에서 내리고 나서 전투식량을 먹으라 할 때, ‘우린 어디까지 가야하냐?’ 라 불안감에 휩싸여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민통선을 한참 넘어 말 그대로 GoP라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한동안 나름대로, 최소한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군생활을 하려 노력했다 생각합니다. 전 포반이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과는 다르게 휴식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지만 오로지 살을 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위에서 흘러내린 땀 때문에 바지가 젖을 정도로 운동을 한 건 아마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 합니다. 모두가 응원해주셨기 때문에, 더더욱 운동에 매진했기도 했구요.
하지만 결국 운명의 날은 오고 말더군요. 자세한 사정은 군과 관련된 일이라 조심스러워 언급할 수 없지만, ‘넌 왜 새벽길을 못따라오냐?’가 제 주요한 문제였습니다.
남들은 눈을 감으면 까맣게 보이고, 밤에도 그냥 까맣게 보이거나 미세하게 윤곽은 보인다 합니다. 하지만, 전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제가 눈을 감으면 은빛, 푸른빛, 보라색 빛, 녹색 빛, 가끔은 붉은 빛까지 폭죽 터지듯 보이고, 낮에는 까만 아지랑이나 파장 같은 것들이 보여왔습니다. 가끔은 소용돌이 치듯이, 또 가끔은 물 속에 들어와 있듯이. 그래서 전 밤눈이 상당히 어두운 축에 속했고, 그 길을 완벽히 알지 못하면 밤이나 새벽엔 뛰어 올라갈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스무 해가 넘도록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모르는 일이었지만, 아무도 이해를 하지 못하더군요. 이 이야기를 들은 군의관님께선 ‘음.. 일단 심각한 문제가 있는 듯 하니까 한번 입실을 좀 하자’라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마 이등병 3~4호봉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뒤로 약 1년 뒤, 군대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전 줄곧 의무대에서만 살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단 한 명, 김XX 군의관님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저를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각 부대 의무대마다 다르겠지만, 저희 의무대의 장기입실자들은 서로 익살적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팔이 부러진 아저씨는 ‘팔 아저씨’라 불렀고, 다리가 부러진 아저씬 ‘다리 아저씨’였습니다. 저의 경우는 ‘눈 아저씨’가 되어야 했겠지만, 당시 제 별명은 ‘뇌 아저씨’였습니다. 다른 환자들 이야기론 ‘우리가 공중파 볼 때 저 아저씬 케이블 보는거잖아?’란 거였습니다. 한동안은 그저 농담일 뿐이기에 웃어 넘기며, 몇 달간의 의무대 생활을 즐기며 외진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춘천병원에 한번, 두 번 갈 때마다 점점 웃음은 사라졌습니다. 아무 곳도 이상이 없단 겁니다.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휴가 갈 때마다 대대 본부에 들려야 하는 선임들은 절 찾아서 ‘야, 니 없으니까 많이 힘들다.. 빨리 복귀 할꺼지’라 물으며 나가고, 의무병들은 ‘저 아저씨가 어디가 아픈데?’ 라며 뒷담을 하더군요.
어느새 밥을 먹으러 갈 때마다, 흰 쌀밥 위에 머리카락이 기어가는 것과 같이 검게 물결쳐서 보이는 것이 싫어 식사를 거부하고, 전염병 환자들을 수용하는 격리실로 자진해서 들어갔지만 달라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격리실에 있었던 전자레인지를 이용하기 위해 ‘미안해요, 렌지좀 돌릴게요’라며 냉동을 덥히던 의무병만이 절 찾을 뿐이었습니다. 환자에게 아군이 없다는 건, 그런 겁니다.
그나마 오직 군의관님만이 ‘내가 피부과라 눈은 잘 모르지만, 넌 정말 (신체의) 문제가 있어 보인다. 네가 거짓말 할 애는 아니야. 난 믿는다’라 격려해주셔서, 결국 휴가를 땡겨 쓰고(청원 휴가 제도로 기억합니다) 군병원이 아닌 외부로 나가봤습니다. 성남 소재의 수도통합병원도 갔지만, 거기선 ‘네가 진짜 아파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건지 모르겠다’는 의심만 들을 뿐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결국 병명을 알았습니다. 나름대로의 희귀병이라 합니다. 나름대로 안과와 관련된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에 든다는 병원 의사도, 하다못해 위키피디아에서도 ‘Though there is no treatment for ~~’, 치료법은 없다는 말만을 하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이론상으론 실명까지 갈 수도 있다곤 하는데, 확신은 못 해요’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진찰 결과 CD를 들고 어머니와 함께 수도통합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 안과 군의관은 그저 ‘죄송합니다’와 함께 고개를 숙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 처우가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CD가 있던 없던 ‘저 말은 어떻게 믿냐? 돈 주고 사 왔을 수도 있지’부터 시작해서, 갖은 의혹(제가 얼굴도 모르는 소대 선임을 마음의 편지로 찔렀다던가)의 주범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대한민국 군법 상 ‘의병 제대에 있어 조항에 없는 희귀병’이란 이유로 의병 제대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현역복무부적합 심사, 불명예 제대만이 가능하단 이야기를 듣고 좌절감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아미 2012년도 겨울에서 13년도 초로 기억하는데, 화천은 이 시기에 눈이 자주 내렸습니다. 심사일 마다 차량통제가 걸리고, 수면유도제에 의존해 날짜를 어떻게든 달 단위로 땡겨보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리고 1월 말, 결국 군단 본부에 도착해 심사를 받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 때 중대장은 ‘보통 30분 정도 걸리는데, 질문에 대답 잘 해라’라 말하며 미리 다독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 심사장에 들어서지도 못했습니다. 심사장 안에서 의사봉 몇 번이 탕탕 울리더니, 간부님들이 우르르 나오셨습니다. ‘아, 자네가 그 친군가? 고생했어.’라 악수하시고 나가시더니, 그거로 끝이었습니다. 병명도 확고하고, 이유가 너무 확실하니까 물어볼 이유도 없단 거였습니다.
그 30초를 위해 저희 온 가족은 약 세 달간을 눈물바다로 지내야 했고,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지만 그 누구도 책임져주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꾀병’, 흔히 ‘뺑끼’라 부르는 의혹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간의 고통들은 누가 보상을 해 줄까요?
전 GoP에 있었습니다. ‘아, 그냥 부대로 복귀를 하자. 그래서 섹터를 타자. 그리고 중간에 수류탄을 입에 물고 핀을 뽑아버리자’라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어머니, 그리고 당시 저희 집에서 살았던 다섯 살 배기 사촌동생만을 생각하며 이 악물고 버텼습니다. 오로지 저를 유일하게 믿어주시는 군의관님의 격려에 의존해서, 결국 제 동기들보다 1년 먼저 전역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민간인’으로 살지는 못했지만, 여튼 전 군병원에 대하여 수많은 회의감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엔 책 한 권도 읽기 힘들었지만, 이젠 컴퓨터도 나름대로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고 있습니다(두통은 항상 따라오지만). 남들의 의심은 친구처럼 익숙하게 따라올 뿐이고, 그냥 제 나름의 살 길을 찾으면 될 문제라 생각하고 살아갈 뿐입니다.
그리고 2014년 하반기, 전 학교 후배의 제안으로 정의당에 입당했습니다. 처음엔 메갈당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지만… 여튼 잠시만 하겠습니다. 당시 심상정 19대 국회의원은 군 인권법을 발의하겠다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청년 기관의 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할말 많다. 그러니까 연결만 해 달라. 직접 겪었던 것 전부 이야기해주겠다.’
그럴 기회는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약 1여년 조금 안되게 당의 청년-학생 기구에서 일했지만, 단 한번도 군인과 관련된 발언을 할 기회는 주어지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연대현장에서 제 개인의 이야기를 지금처럼 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정의당은 군인 자체를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태어난 성별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종의 ‘잠재적 가해자’로 규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종대 의원을 데려와 국방을 어떻게 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결국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일 뿐일 테니까요.
‘손목 잃은 군인 근황’이란 글을 읽으니, 정말 가슴이 너무나 아픕니다. 그 군인분, 그리고 그 가족분들은 어떤 고통을 겪고 있을지… 10% 정도는 공감이 갑니다. 그 안에 아군이 없어요. ‘전우’가 없단 말입니다. 옆자리 아저씨는 전입 온지 1주일도 안됐단 이유만으로 허리 아래쪽에 감각이 사라져가도 말 한마디 못 꺼내고, 한국말도 서툰 호주 출신 한국인 후임은 아픈 부위 하나 이야기를 잘 못해 오해를 사는, 그런 곳이 의무대고 군병원입니다. 그런 곳에서 국방부와 싸워야 하는 처지라니… 이 고통을 누가 공감을 하고..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런 ‘군의 낙오자’, ‘패잔병’들은 이 나라가 일찍이 버려왔습니다. 그리고, 진보정당이라 지껄이는 부류들도 이들을 보호할 의지는 없어 보입니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 오로지 늘어만 가는 건 당사자들의 알코올 한계와 지방간 수치뿐일 겁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구역질을 서너 번은 했을 거에요.
결국 사회의 한 약자이자 ‘낙오병’, ‘패잔병’ 중 한 명의 술주정일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분명히 바뀌어야만 합니다. 저보다 더욱 고통받는 군인들이 이 사회에, 이 나라의 군병원과 의무대에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보정당들은 그저 ‘여성이 더 고통받는다’란 명제 때문에 이런 담론조차 전부 흙더미로 매장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메갈리아-워마드’를 감싸기 위해서요. 그래서 밑의 ‘손목 잃은 군인’의 글을 읽고, 너무 슬픈 마음이 듭니다. 그 고통을 가늠할 수 조차 없지만, 그저 슬프기 때문에요…
대안도 없고, 결론도 없는 그저 푸념일 뿐입니다. 쓰잘데기없는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의당과 관련 없다고 했지만, 결국 낚시니까.. 이에 따른 비판도 감수하겠습니다.
그저 드릴 수 있는 말은 하나 뿐입니다. 미필이시라면,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시란 말 뿐입니다. 그저.. 그것 뿐입니다. 이렇게, 처음으로 정의당과 관련없는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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