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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출마의지를 밝히자 대선판도가 요동을 치게 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그를 둘러싼 여론의 변동이다. 출마 직전에 조사된 그의 지지율은 박근혜/문재인과 비견해 볼 때 그리 높지 않았다. 또한 여론은 그의 출마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깨끗한 인물이 정치판에 더럽혀지지 않길 바라는 심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출마와 함께 발표된 기자회견문은 즉각적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그의 지지율이 삽시간에 반등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전의 진짜 비밀은 대중이 그러한 드라마틱한 ‘반전’을 처음부터 기대했던 데에 있는 건 아닐까?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것은 여론이 지닌 이러한 자기반영성이다. 출마선언을 하는 즉시 대중이 마음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여론에 반성적으로 고려되었기 때문에 그의 출마선언이 여론상에서 그를 ‘정치와 무관한 경영인’에서 ‘상식과 소통의 정치를 시작할 새 인물’로 바꾼 것이다. 그것만이 최대 10%에 가까운 지지율 상승을 설명해줄 수 있다.
이렇듯 안철수의 출마선언은 그 자체로 탁월한 정치적 행위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어진 선택지(“깨끗하고 선량하지만 정치를 잘 모르는 경영인인가, 노회하고 냉소적이지만 현실적인 감각을 갖춘 정치인인가?”라는 선택지에서 “정치”라는 관념 그 자체를 새롭게 재정의하는 인물로 출현한 안철수) 자체를 바꾸는 행위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치가 무엇이냐는 질문과 대답 자체를 새롭게 정식화하는 데서 가장 탁월한 정치적 행위가 나타나는 것이며, 이는 오늘날 진보적 사회를 바라는 정치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앞으로 보겠지만) 이러한 안철수의 행위가 정치적 행위인 동시에 가장 탁월한 반정치적 행위라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오늘날 왜 가장 탁월한 정치적 행위가 그 반대의 극단, 즉 ‘반-정치’로서 나타나느냐는 것이다.
안철수가 밝힌 비전은 ‘상식’과 ‘소통’이다. 이것이 대중에게 먹히는 것은 그만큼 지난 정치판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가 표방하는 이러한 가치들은 이전의 정치적 수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가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그가 정치권 바깥에서 공정한 게임의 룰을 지키며 기부를 행하는 등의 사회참여를 묵묵히 해온 데서 보이는 ‘진정성’이다. 그럼에도 안철수의 정치적 행보는 이전 정치권이 보여준 ‘탈정치’를 향한 행보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 극단에 도달해 있다. “죽음으로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시대는 끝났다”는 노무현에서부터 자칭 경제 대통령 이명박을 이어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넘어선” 새로운 창의적-지식주도적 경제모델을 만들겠다는 안철수가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안철수의 비전에 담긴 탈정치적 핵심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 정치는 사회를 가로지르는 첨예한 적대에서 출발하여 보편적 정의(발리바르의 말을 빌리자면 ‘평등-자유’)를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게임의 룰 내에서 규칙을 공정하게 협상하고 준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게임의 룰 전체를 뒤바꾸는 급진적 정치는 자리를 잃게 된다. 정치를 이러한 ‘합리적 행정’으로 환원하는 데서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이명박에 가깝다.
여기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물론 안철수가 중시하는 ‘공정한 게임의 룰’ 자체야말로 구조적인 착취와 억압에 기초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예컨대 그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상창하는 IT산업의 노동현실을 보자. 대다수의 IT 노동자들은 안철수의 장밋빛 비전과 달리 이중삼중의 하청/외주의 사슬에 묶인 채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다. 안철수가 기대하듯이 새로운 경제성장을 견인할 ‘유연’하고 ‘창의’적인 성장동력이란 바로 그 ‘유연’하고 ‘창의’적인 노동착취와 억압에 기초해 있다. 안철수가 밝힌 저 상식과 소통이라는 가치에 대해서도 우리는 레닌의 방식대로 되물어야 한다. “상식과 소통? 좋아.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상식과 소통?”
한편으로 이러한 안철수 신드롬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그의 부상을 진보-좌파 정치의 내재적 실패를 신호하는 현상으로 독해할 필요가 있다. 일련의 요란한 대선행보 속에서 안철수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해 왔던 이헌재를 멘토 삼았다는 사실은 덜 부각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일부 선견지명(?)이 있는 이들은 안철수가 ‘복지’보다는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시장개혁’을 우선시하는 합리적 우파에 지나지 않는다는 (새삼스러운) 비판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주의자들의 불평은 복지라는 전통적인 진보적 의제가 복지 시스템을 지탱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시장경제를 전제하고 의존한다는 사실에 눈 감고 있다. 성장담론과 복지담론은 동전의 두 양면이며 이에 따라 복지라는 화두는 그 자체로는 어떠한 정치적 급진성도 담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장’과 ‘분배’ 모두 가능하다고 말하는 안철수의 등장은 그 자체로는 전혀 모순될 것이 없다. 그것은 오히려 지난날 진보적 복지담론의 한계를 전치된 형식으로 보여줄 뿐이다.
이런 착종된 정치적 현실 속에서 차별화를 꾀하는 일부 좌파들의 대선대응에 관한 논의 속에서 진정한 급진적 정치가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나 징후를 찾기는 아직 힘들다. 복지와 성장 프레임 모두 안철수 식의 ‘합리적’ 우파가 선점한 상황에서 ‘비정규직/정리해고 철폐’와 같은, 현체제에서 불가능한 요구를 고장난 자본주의의 질서를 고치겠다고 자처하는 개혁가들의 면전에 던질 필요가 있다. 오늘날 공정한 게임의 룰이 기반해 있는 변하지 않는 시스템을 변화시키겠다는 요구를 중심으로 한 정치가 절실하다. 그리고 그러한만큼 진정한 급진적 요구를 중심으로 결집할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형성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안철수가 표방하는 전망, 즉 시장경제의 불공정함과 부조리함을 시정하고 보다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듦으로써, 오늘날 ‘카지노 자본주의’의 폐해로 지적되는 현상을 체제 내에서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의 위험성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어떤 점에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짓된 희망을 설파하는 인물보다는 체제가 필연적으로 노정할 수밖에 없는 폐해들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억압적이고 탐욕스러운 인물들이 훨씬 더 낫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누구를 위한 상식과 소통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만큼, 브레히트의 시를 따라 ‘안철수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김진숙과, SJM과 현대차 하청 노동자들, 그 외의 수많은 싸우는 피억압자들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피억압자의 편에 서지 않은 '좋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총으로 쏘아서 좋은 삽으로 좋은 땅에 묻어야 한다는 브레히트의 시는 오늘날 안철수와 같은 ‘착한 CEO’들에게도 여전히 의미심장한 울림을 지닌다.
앞으로 나오라, 우리는 / 그대가 좋은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대는 매수되지 않지만, / 집을 내려치는 번개 또한 / 매수되지 않는다.
그대는 그대가 했던 말을 지켰다. / 그러나 어떤 말을 했는가?
그대는 정직하고, 자기 의견을 말한다. / 어떤 의견인가?
그대는 용감하다. / 누구에게 대항하는 용기인가?
그대는 현명하다. / 누구를 위한 현명함인가?
그대는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돌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대는 누구의 이익을 돌보는가?
그대는 좋은 친구이다. / 그대는 좋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친구인가? //
이제 우리의 말을 들으라, 우리는 / 그대가 우리의 적임을 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이제 그대를 벽 앞에 세우리라. 그러나 그대의 미덕과 장점들을 고려하여 /
우리는 그대를 좋은 벽 앞에 세우고 그대를 / 좋은 총의 좋은 탄환으로 쏠 것이며
그대를 좋은 삽으로 좋은 땅에 묻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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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씨의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본 글입니다.
물론 현재의 박가분 씨의 논조와는 차이가 있지만, 읽어볼 만한 가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 안철수, 인간의 얼굴을 한 이명박|작성자 박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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